• 폭탄이든 원자로이든
    핵물질의 본질은 파멸과 파국
    [책소개] 『생명을 살리는 반핵』(히다 슌타로/ 건강미디어협동조합)
        2015년 07월 18일 02:1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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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사람들은 3차례 핵폭탄을 경험하였다. 히로시마, 나가사키, 마샬 군도의 비키니 환초가 그것이다. 세 차례 모두 전쟁과는 관련 없는 민간인들이 대다수 희생자였다.

    미국은 핵폭탄의 위력을 확인하기 위해 원폭 투하 이전에는 다른 일본의 여러 도시와는 달리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일부러 공습을 하지 않았다. 원폭 투하는 인류가 처음 경험한 비극이었으며, 이 비극을 일본의 민간인들이 고스란히 감당하였다.

    비키니 환초 사건은 관심있는 사람만이 알고 있다. 사실 비키니 환초의 핵폭탄은 인류 최초의 수소폭탄 실험으로서 히로시마 원폭의 약 천배에 해당하는 20메가톤 급의 위력을 갖고 있었다. 미국은 수소폭탄 실험을 사전에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로 일본의 참치 잡이 원양어선 승무원들이 피해를 입었다.

    비키니 환초 핵실험은 직접적인 피폭자 4그룹을 발생시켰는데, 인근 섬 주민 그룹이 두 개이고(243명), 세 번째 그룹은 실험을 관측하고 있던 섬에 주둔한 미군 병사 28명, 네 번째 그룹이 비키니 섬에서 동북쪽으로 약 140킬로미터, 환초를 중심으로 약 170킬로미터 떨어져 있었던 해역에서 참치조업을 하고 있던 일본의 야이쯔를 모항으로 하는 제5 후쿠류마루호의 승무원 23명이다.

    4그룹 중에서 참치잡이 배의 승무원 피폭량이 다른 3그룹보다 훨씬 높았기 때문에 귀항 도중 승무원 전원이 구토, 힘빠짐, 피부열상, 탈모 등의 급성 방사능 증상을 나타냈고, 귀항 직후에는 고도의 조혈기능 장애가 발생하여 중환자로 장기 입원치료를 받게 되었으며, 이중 7명은 결국 사망하였다.

    일본 국민은 이렇게 해서 무려 3차례나 핵무기의 피해를 받았다. 물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당시에 재일조선인이 7만 명가량 숨진 사실도 있어서 일본국민만이 유일한 핵무기 피해자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3차례의 경험은 어느 국가와도 비교할 수 없는 압도적 무게이다. 그리고 2013년 3월11일의 후쿠시마의 원전에 쓰나미가 왔다. 어찌 보면 가혹하리만치 한 국가에 핵으로 인한 피해가 집중되고 있다. 이 책은 이런 일본의 상황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생명을 살리는 반핵

    저자 히다 슌타로는 28세에 군의관으로 히로시마의 원자폭탄을 직접 경험하고, 이후 원자폭탄에 폭로된 원폭 피해자들을 진료해 오면서, 핵무기는 지금까지 인류가 개발한 어떤 폭탄과도 비교할 수 없는 종류의 것임을 절감한다.

    대개의 무기가 폭발과 동시에 사람이 죽거나 다치거나 해서 그것으로 더 이상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반면 핵무기는 오히려 그때부터가 문제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질적 차별이 있다. 이는 핵무기의 폭탄에서 발생한 잔류방사선에 폭로되는 것을 의미한다.

    히로시마나 나가사키에서 폭탄이 터질 땐 없었으나, 이후 가족 등을 찾기 위해 시내에 들어갔던 사람들에게 광범위한 방사능증이 발생했다. 물론 당시 잔류방사선을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이들의 병은 ‘꾀병’처럼 보이기도 했다.

    히다 슌타로가 해명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던 병이 바로 잔류 방사선과 같은 저농도 방사선에 폭로되었을 때 발생하는 ‘부라부라’병이다. ‘부라부라’라는 말은 왜곡돼 버렸다. 몸이 나른해지고, 노곤해지며, 아무 일도 하기 싫은 상태가 된다. 아무리 검사를 해도 이상이 없는데, 몸이 쉬 피곤해져서 일 하기 싫어지니 이것이 겉으로만 우리말로 굳이 번역하면 ‘빈둥빈둥’정도가 되겠다. 그러니 사람들이 오해하게 되고, 이로 인해 사회적 대인기피가 발생하며, 때론 이를 못 견뎌서 자살까지 한다.

    이런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었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터질 때는 없었는데, 그 후 며칠이내에 히로시마에 가족을 찾으러 가거나, 일이 있어서 들어간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맨 처음에는 ‘입시피폭’(入市被爆)이라고 했다. 시에 들어가서 폭로가 된 것이다.

    잔류방사선에 의한 질병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그로부터 30년이 지나서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부라부라병’에 걸린 피폭자들이 있고, 히로시마 원폭으로 발생한 잔류방사선이 원인이라는 것은 알고 있는데, 방사선의 어떤 물질에 의해서, 어떤 기전으로 질병이 발생한 것인지는 모른다. 이것이 핵폭탄의 비극이다.

    인류는 핵폭탄으로부터 파생되는 소위 방사능 후유증에 대해 어떠한 대책도 없다는 점, 아니 지구라는 행성의 땅속에서 핵물질을 분리하여 핵폭탄을 제작하는 순간 더 이상 이것을 안전하게 보관하거나 이동하거나 관리할 수 없다는 점을 확인할 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예로부터 핵무기를 국가안전보장의 핵심으로 생각하는 세력은 원자력이 안전하고 깨끗하며,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가능하게 한다고 주장하면서, 마치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 가능한 것처럼 눈속임을 해 왔다.

    그러나 실상은 미국의 스리마일 섬 원자력 발전소 사고, 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와 일본의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전부 원자력 발전소를 통해 핵물질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 한번 사고가 발생하면 감당할 수 없다는 점을 확인했을 뿐이다. 우리는 아직 핵물질을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상태임을 입증했을 뿐이다.

    핵물질이 폭탄이건 원자로이건 본질은 같다. 인류를 파멸로 이끌며, 파국을 초래할 뿐이다. 히다 슌타로는 이러한 핵물질을 없애기 위하여 핵물질을 옹호하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정체를 끝까지 확인하고, 정치 사회 운동의 필요성을 자각하면서 99세인 지금도 직접 사람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진정한 인권은 모든 사람이 세상에서 유일한 단 한사람이며, 절대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는 존재임을 자각하는 것이고, 이러한 자각은 핵물질과 도저히 양립할 수 없다는 점, 핵 없는 세상은 인권의 자각 속에서 구체화할 수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이 책은 히다 슌타로라는 의사의 개인적인 경험을 기록한 것이지만, 실제 내용은 세계 반핵운동의 역사적 의의와 성과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리하여 끝끝내 포기할 수 없는 것, 인간의 생명, 생명의 존엄성을 위해 반드시 확인해야만 하는 내용을 전달한다. 책의 원래 제목이 [히다 슌타로가 말하는, 지금 어떻게 해서든 전달해두고 싶은 것 – 내부피폭과의 투쟁, 자신의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인 것이다.

    책의 구성은 서장, 제1부, 제2부, 마무리 장으로 분류되어 제1부에서는 히다 슌타로 선생의 학창시절과 군의관시절, 히로시마의 원자폭탄 경험과 피해자 치료, 인류가 경험하지 못했던 잔류방사선에 의한 원폭증 치료를 위한 노력과 결국 미국에서 스턴글라스라는 전문가를 만나는 과정 등이 주로 나온다.

    제2부에서는 히다 슌타로 선생이 본격적인 반핵활동에 뛰어들면서 일본과 독일에서 겪은 경험들, 일본과 독일에서 나타난 반핵운동의 논리와 실상에서부터 결국 반핵은 반원전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내용들, 1970년대 이후 전 세계의 방사선 누출 사고나 이에 대한 인류의 대응 등이 압축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다. 독자들은 길지 않은 내용을 통해서 세계반핵운동사를 비롯한 각국의 방사선 폭로사고 등의 대응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히다 슌타로 선생의 글은 친숙한 표현과 일상적인 언어로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서술하는 것이 특징이다. 어찌 보면 진정한 전문성은 전문적인 내용을 쉬운 용어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통해서 한국의 반핵운동이나 핵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확산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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