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도한 수출의존도,
    한국경제에 약인가 독인가?
    한국경제 거시지표의 변화와 함의 ①
        2015년 07월 17일 04:4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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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경제의 거시지표의 특징과 변화 추이 등에 대해 남종석씨가 분석 글을 기고해왔다. 2회에 나누어 게재한다. 1회에서는 한국경제의 무역의존도와 내수경제의 하락 등에 대해 담았고 2회에서는 노동소득분배율의 추이와 그 실천적 함의 등에 대해 담고 있다.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운동이 한국경제의 구조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분석할 때 진보적 사회변화와 올바른 대안의 방향을 설정하고 실천할 수 있다는 게 기고의 취지이다. 토론으로 이어진다면 더욱 환영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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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거시경제 지표의 변화(1970-2010)

    1) 2008년 이전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1997년 이전 한국 경제는 고속성장을 지속해 왔다. 1981년 이후 1997년까지 한국의 GDP 성장률은 평균 9%에 가까웠다.

    이 성장률은 매우 놀라운 수치이다. 역사적으로 이와 같은 초고속 성장을 수십 년 간 장기적으로 지속한 나라는 한국을 비롯하여 동아시아 몇 개국밖에 없다. 박정희-전두환 정권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발전주의 국가는, 미국 헤게모니 하의 세계체제 하에서, 매우 예외적인 성장률을 기록한 것이다.

    경제성장이 좋은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의 문제는 간단하게 답변하기 어렵다. 환경 악화는 더 말할 것도 없고 경제성장이 행복도를 증가시킨다는 증거는 많지 않다. 그러나 경제성장은 물질적 부를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조건을 개조할 수 있는 역량을 축적함으로써 객관적인 사회지표를 개선시킨다. 이조차 부정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분명 현실과 동떨어진 인간이다.

    박정희 정권 하에서의 발전주의 전략은 합리성을 지닌 면이 있었다. 세계체제에서의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제공되는 혜택, 전후 자본주의의 호황이라는 예외적 조건이 작동하고 있었지만, 한국 내적으로 발전주의 전략, 후발주자로서의 따라잡기 전략이 유효성이 있었음을 부정하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이론적으로도 맞지 않다.

    다만 한국 경제의 발전이 노동자들의 엄청난 희생에 토대를 두었다는 것만은 분명히 하자. 자본주의의 발전국면에서 이와 같은 ‘과잉착취’는 어디에서나 있었고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노동자들에 대한 과잉착취는 수출주도 성장을 위한 가격경쟁력의 확보 수단이자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 부족 국가에서 자본 축적을 위한 저축이었다. 가계저축이든 이윤을 통한 자본가계급의 저축이든, 저축은 경제성장의 동력이다. 한국의 경우 노동자들의 소비를 억제하는 대가로 자본축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전두환 정부 때는 한국 경제의 과도기였다. 1979년 중화학 공업화의 위기는 신군부로 하여금 한국경제의 구조조정을 본격적으로 하도록 강제했다. 금융의 사유화, 국영기업의 민영화, 시장 개방 등 강경식-사공일 내각은 한국경제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위한 기초적인 프로그램을 포괄적으로 입안한 상태였다.

    다만 3저 호황(저유가, 저달러, 저이자율)으로 그와 같은 개조의 효과는 지연되었고 성장률은 그 이전 시기보다 더 높게 나타났다.

    저유가는 에너지다소비형 산업인 중화학 공업의 생산비를 싸게 했다. 저이자율은 풍부한 유동성을 공급함으로써 기업들이 차입비용을 낮추어 주었다. 저달러는 1985년 플라자 합의로 독일의 마르크화와 일본의 옌화를 고평가한 것을 일컫는다. 원화도 달러에 비해 11% 평가절상했지만 옌화의 경우 달러에 비해 무려 70%가량 절상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원화의 가치가 낮았던 것이다. 일본과 수출경쟁을 하고 있던 한국으로서는 매우 유리한 조건에서 대미수출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3저호황으로 한국 대기업들은 착시효과를 갖게 된다. 수출은 날개를 달았고, 투자는 언제나 그에 준하는 성과를 낳게 된다고 착각하게 된 것이다. 투자과잉이 나타났다. 상대적으로 뒤처진 후발 재벌들이 기업 규모를 키우기 위해 차입투자를 늘렸다. 자기자본 대비 부채 규모가 평균 400% 이상 되었다. 부채주도형 성장이었다. 재벌 계열사 간에는 상호지급보증을 섬으로써 부채의 상호의존성을 높였다.

    새롭게 시장에 진입한 종합금융사들은 외국 은행들로부터 싼 이자로 단기자금을 빌려와서 기업들에게 장기적으로 대출해 주었다. 그러다가 아시아에 밀려들어왔던 외국계 투자자들이 갑작스럽게 이탈하면서 종금사들은 자금 부족을 느끼기 시작했고, 이들은 기업 대출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빚을 갚지 못한 계열사가 무너지면서 지급보증을 선 다른 재벌 계열사도 동시에 무너졌다. 50대 재벌 가운데 30개 이상이 파산한다. 은행들은 대출회수가 늦어지자 외국계 은행에서 빌린 자금을 갚지 못하게 된다. 외환위기가 발생하고 한국은 IMF 관리체제로 들어가게 된다.

    IMF 이후 구조조정은 지금까지 한국경제를 묘사하던 모든 특징을 바꾸어 놓았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10년간 성장률은 평균 5.7%로 하락했으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성장률은 2.9%대로 대폭 하락했다. 한국 외환위기는 미국 경제가 IT 호황으로 최정점에 있던 시기에 맞은 것이다. 한국 기업들은 미국 시장의 과열과 원화의 대폭적인 평가절하를 통해 곧바로 수출 성장을 재개할 수 있었고, 국가 전체적으로 IMF 관리체제를 조기에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IMF 개입 이후 한국 경제는 구조적으로 변모한다. 경영권이 외국계가 다수가 된 기업들에서는 세후 이윤에서 배당의 비율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외국계가 지분의 50% 이상이 된 주요 은행들, KT 등의 대기업들에 주목해보라. 재벌들의 경우 기업경영권을 방어하거나 계열사를 늘리기 위한 수단으로 사내유보금을 활용했다. 비상장 계열사를 늘려 편법으로 부를 3세, 4세에게 넘겨주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현대자동차가 최초로 이를 실행했고, 최근에는 삼성도 이 예를 따라갔다.

    재벌 산하 기업들은 자산 구성에서 자기자본 비율을 높이고, 투자에는 신중해졌다. IMF 이전 부채주도 성장 과정에서 떠오른 많은 재벌기업들이 경제위기로 붕괴되는 것을 본 이후, 기업규모를 키우기 위한 무리한 차입경영을 자제한 것이다. 재벌들은 투자에 신중해졌으며, 신규고용에는 더 보수적으로 되었다. 새로운 투자를 하더라도 고정자본 투자에 집중하는 반면 신규고용의 창출에는 매우 인색해졌다. <표 2-1>에서 보듯이 투자 증가율은 IMF 이전 10년간 평균 11.8%에서 IMF 이후 평균 4.9%로 폭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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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비증가율 역시 외환위기 이전 10년간 평균 8.1%에서 이후 평균 5.6%로 대폭 감소했다. 그에 따라 GDP 증가율도 5.8%에 머물렀다. 다만 수출만이 외환위기 이전과 큰 차이 없이 꾸준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2002년 이후 미국 부동산 붐으로 인한 경기 호황과 중국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이 한국의 수출 시장을 확대시켜준 결과이다. 외환위기 이후 수출은 한국 경제의 성장을 유인하는 유일한 힘으로 작용했다.

    2) 2008년 이후

    그러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수출주도 성장의 명암이 뚜렷해졌다. <표2-1>에서 보듯이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수출증가세도 크게 둔화된 것이다. 수출증가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그 이전시기 11.9%의 성장률에서 6.3%의 성장률로 하락했다.

    수출증가율이 여전히 다른 지표의 성장률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조차 반토막 남으로써 한국 경제의 성장 동력이 매우 약화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표에 나타나 있지 않지만, 2014년 한국의 수출증가율은 2.4%로 경제성장률보다도 밑도는 상황에 이르렀다.

    한국의 수출 성장률의 감소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는 대기업 중심의 수출주도 경제성장 정책을 지속시켜 왔다. 외환위기 이후에도 한국경제를 고도성장으로 이끌었던 버팀목이 수출이었던 것이다. <표2-1>은 이를 잘 보여준다.

    다른 모든 지표들이 큰 폭으로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출은 그렇지 않았다. 정부의 경제정책도 수출 대기업 중심으로 짜여졌다. 경제성과를 수출 증가와 동일시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재벌 수출기업들은 큰 성장률을 이룩할 수 있었지만 다른 경제주체들의 힘들은 상대적으로 약화되었다.

    <표2-2>에서 보듯이 2000년 이후 총수요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비약적으로 증가한 반면 민간소비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총수요란 언제나 총생산과 같다. 한 해에 생산된 총부가가치의 합이 국민총생산이고, 이것은 정확하게 기업의 소득인 이윤, 가계의 소득인 임금, 정부의 재정 수입으로 나누어진다. 이 소득은 다시 수요로 이어져 총수요가 된다. 가계, 기업, 정부의 저축은 투자로 이어져 기업수요가 된다.

    여기에 개방경제에서는 외국의 수요가 더해진다. 수입은 외국 것을 한국이 수요하는 것이고 수출은 외국이 한국의 생산물을 수요하는 것이다. 순수출은 수출과 수입을 차감한 것이다. 이렇게 한 해의 총수요는 민간소비, 정부 재정 수요, 기업 투자, 순수출로 구성된다. <표2>는 한국의 총수요의 변화를 보여준다.

    <표2-2>에서 보면, 1995년 국내 총생산에서 수출이 차지하던 비중이 22.5%였던 반면 2010년에는 35.1%가 된다. 수출의 비중이 비약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2010년에는 급기야 수출비중이 내수비중을 앞지르는 상황이 되었다. 가계소득 감소로 내수는 지속적으로 침체되는 반면 대기업 중심의 수출은 더 확대된 결과이다. 내수와 기업 투자가 줄어든 반면 수출은 상대적으로 비약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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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 2-2> 최종수요 항목별 구성비 추이(단위:%)
    (자료: 한국은행)

    민간소비의 감소는 가계 소득의 증가율이 정체되었기 때문이다. 1997년 이후 임금 노동자 가구의 소득은 노동생산성 성장률보다 낮아졌으며, 임금노동자와 동일한 지위에 있는 자영업자들의 소득 증가율은 임금노동자들의 소득 증가율에도 한참 뒤졌다. 가계의 소비여력이 약화된 것이다.

    한국 가계는 소비여력은 고사하고 소득 증가율 정체와 고용증가율 둔화로 인해 가계적자가 심화된 상황이 직면하고 있다. 소비 자체를 할 여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빚을 내어야 가계를 유지하는 가구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수출

    수출 항만의 모습(방송화면)

    한국의 총수요 구성은 일본의 그것과 뚜렷이 대조된다. 일본의 경우 총수요에서 내수가 50.1%를 차지하는 반면 수출이 13.2% 밖에 차지하지 않는다. 일본도 수출 주도 성장국가이지만 한국 경제의 수출의존도는 일본보다도 훨씬 높은 것이다. 일본은 가계소비 비중이 높을 뿐만 아니라 정부수요의 비중도 매우 높게 나타나는 사회이다. 일본은 정부를 통한 부의 재분배에 있어서도 한국보다 훨씬 활발한 사회이다.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낮다는 것은 대외경제의 상황에 대한 의존도가 그만큼 낮다는 것이고 국내 시장이 그만큼 크다는 점이다. 일본의 경우 대외경제 조건이 변하더라도 국내 시장이 일정한 규모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해외수요 감소로 인한 경제적 충격은 한국의 그것에 비해 매우 작다.

    소비보다는 투자가 더 중요하고, 수출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기는 하나 국내 소비 여력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반면 국내 경제의 해외 의존도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한국 경제의 과도한 수출 의존도는 세계적인 경기변화에 대한 주체적 대응을 할 수 있는 여력을 매우 약화시키는 것이다.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국 경제에 미친 영향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그 여파로 인해 2008년 이후 세계 수요는 급감했으며, 해외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한국 경제는 이로 인해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경제의 수출 의존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대외불확실성에 더 크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경제의 대외의존성 증가는 국내 경제 정책의 자율성을 떨어뜨리며 수출을 위한 비용인하 경쟁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의 하방압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 이것은 노동소득의 성장을 억제하며 가계부채를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여 총수요를 더욱 위축시키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 경제의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는 대외의존도를 줄이고 내수 시장을 확대하는 것이다. 내수 시장을 확대하려면 노동자가구의 소득을 증가시켜야 한다. 이것은 경제학의 ABC만 알아도 누구나 할 수 있는 대답이다.

    문제는 노동자들이 임금을 인상할 경우 한국 상품의 가격경쟁력은 약화되고 수출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최근 한국 수출의 변동 추이를 보면, 대기업의 수출 성과는 환율변동이나 임금 인상률과의 상관성이 매우 낮게 나타난다. 임금이 오르거나 환율이 인상되어도 대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이 크게 약화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 주요 수출품의 세계시장 경쟁력은 점차 가격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의 질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는 다수의 시계열 연구에서 증명하는 것이다.

    수출경쟁력을 지닌다는 것이 단지 노동자 가구의 저임금, 내수를 약화시키는 것만으로 되어서는 안 된다. 노동자가구의 임금 상승과 내수를 살림으로써도 수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노동자들의 임금이 상승되면 기업들은 설비투자를 증가시켜 임금 상승으로 인한 비용 상승 문제를 생산성을 높이든가 제품 질을 향상시킴으로써 해결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기업들의 기술적 능력이 확대된다. 대기업만이 아니라 중소기업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

    노동자들의 임금은 향상되고 기업들은 새로운 설비투자를 통해 기술경쟁력은 높인다면, 내수도 성장하고 기업의 대외적 경쟁력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임금인상이 수출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주장은 더 이상 한국 경제에 맞지 않다. 더불어 임금상승은 가계적자를 줄이도록 하여 경제 체질을 건강하게 한다. 수출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를 벗어나는 것이 경제도 성장시키고 수출도 더 높일 수 있는 것이다. <2호에서 계속>

    필자소개
    경남연구원 연구위원. 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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