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 노닐던 용유담,
    용만 논 게 아니다
    [다른 삶] 지리산 물들의 이력서
        2015년 07월 17일 03:4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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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의 서북능선에서 흘러내린 물들은 운봉 너른 평야에서 ‘광천’이란 이름을 얻는다. 이 광천은 운봉을 지나 서북능선의 끝자락인 바래봉과 덕두봉을 돌아나가는 인월에서는 ‘남천’(람천)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이 남천은 산내로 들어와서 반야봉에서 흘러내린 심원계곡과 달궁, 뱀사골에서 흘러내린 물과 합수하여 ‘만수천’이란 이름으로 갈아탄다. 굽이굽이 흘러간 만수천은 백무동 한신계곡과 광대골(비린내골)에서 흘러내린 물이 합수하는 마천 즈음에서 ‘임천’이란 이름으로 바뀌어 불린다.

    임천은 다시 의평에서 천왕봉에서 내려선 칠선계곡, 국골, 허공다리골에서 흘러내린 물과 합수하여, 이름 그대로 마천(馬川)처럼 말이 휘달리는 자세로 힘차게 흘러간다. 임천은 용유담을 지나 휴천(休川)에서 ‘엄천’이란 이름으로 또 다시 바뀌어 불린다.

    휴천에서 물길은 말 달리는 포즈에서 제법 묵묵히 흘러가는 하천다운 자세로 태도를 바꾼다. 그리고 이 엄천은 산청에서 저 멀리 덕유산에서 흘러나온 ‘남계천’과 만나 ‘경호강’이란 이름을 얻고, 이 경호강은 진주에서 지리산 대원사 계곡과 중산리에서 흘러온 ‘덕천강’과 합류하여‘남강’이 된다.

    남강은 함안군 남지에서 ‘낙동강’에 합류하여 을숙도를 거쳐 몰운대에서 드넓은 바다로 흘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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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들의 이력도 만만히 볼 게 아니다. 지금 지리산이나 전국의 4대강에서 이런 도도한 이력의 물들이 수난을 받고 있다. 물도 시대를 잘 만나야 할 게다.

    용유담, 마적도사가 놀던 곳

    앞에서 말한, 지리산 북부의 물길 가운데, 용유담이란 곳이 있다. 임천이라는 이름의 물이 엄천이라는 이름으로 갈아타는 곳에 용유담이 있다. 말 그대로 용이 놀다간 연못처럼 생겼다. 어마어마한 물들이 집채만한 바위를 타고 넘어가고, 바위에 포트홀이란 구멍을 뚫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시퍼런 물들의 놀이터이다.

    이 용유담에는 알 만한 사람은 알고, 모를 만한 사람은 몰라도 되는 시시껄렁한 전설 하나가 전해져 온다.

    옛날, 대개 모든 전설은 연도를 알 수 없는 ‘옛날’로 시작된다.

    옛날, 이 용유담에는 ‘마적도사’가 살았더랬다. 이 마적도사의 실존은 용유담 위에 있는 ‘마적송’이 있기에 능히 증명된다. 그래도 설마하는 사람들이 있을 게다. 전설에 나오는 마적도사의 실존을 믿고 안 믿고는, 물론 각자의 몫이다.

    실존했던 마적도사에게는 말 잘 듣는 당나귀 한 마리가 있어, 마적도사의 심부름을 곧잘 하곤 했더랬다. 이 당나귀가 장에 심부름 갈 적엔, 용유담에 사는 용이 나와 다리를 만들어 주곤 했다.

    어느 날이었다.

    항상 어느 날, 사건은 발생하게 마련인지라, 이 마적도사는 장기 두기를 워낙 좋아했는데, 그 어느 날 마적도사는 장기두기에 빠져 당나귀가 장에서 돌아오는 시간을 깜빡한 게다. 장을 보고 돌아오는 당나귀는 당연히 마적도사가 도술을 부려 용이 다리를 놓았겠거니 하고 용유담을 건넌다. 아뿔사, 그러다 당나귀는 용유담에 빠져 죽고 만다.

    당나귀의 울음소리를 들은 마적도사는, 아차하고 후회를 했지만, 이미 때는 늦고 말았다. 그 다음 대목은 동네 어르신의 말씀을 그대로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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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가지고 거서 나귀가 빠져 죽고, 말하자면 패해가 발생했다 아입니까?

    장기 때문에 원인은 이리 됐다 해가지고 자기가 당나귀를 그렇게 질을 들이자면 엄청난 공을 들였을 거 아니요. 그런 당나귀가 죽어뿠으니까. 자기가 장기 때문에 그랬다 해가지고 장기판을 갖다가 돌장기판이제, 그 돌장기판을 떤지뿠는데, 하나는 길 건너에 말하자면 저 강 건너에 길에 가 떨어져 삐맀고, 현재 길, 도로 있는데… 한 쪼가리는 이 주변에 떨어져가 있는데 이 건네 떨어져있는 현재 어딨는가 몬 찾았고, 저 건너 하나는 거는 도로를 딲다가 장기판을 발견했대요, 돌장기판을. 그래 그걸 갖다가 발견을 했이먼, 그대로 보존을 했이먼 상당한 관광꺼리가 될낀데. 그 돌을 갖다가 우째 했는지 현재는 없어요.

    그래가지고 당나귀가 달고 다니는 구슬방울. 방울도 일곱 개나 발견을 하고 그랬는데. 그래가지고 그기 또 이상한 일이 거기서 여 송전 사람이 도로공사 일을 했거든요. 일을 했는데, 방울을 멧 사람이 나눠가졌대요, 일하는 사람들이, 본 대로. 근데 그날 저녁에 가서 자고 나니까 전부다 없어졌대요. 이 도로 논 지 불과 십한오륙 년 전이거든요.“

    십오륙 년 전만 해도 흔적들을 찾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깜쪽같이 사라진 마적도사의 슬픈, 아니 마적도사 당나귀의 슬픈 전설이 담겨져 있는 용유담이 지금 조금 시끄럽다. 이 용유담 바로 밑에 ‘지리산 댐’을 만들겠다는 얼토당토 않는 사람들이 있어, 속 시끄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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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2011년에 대한민국 문화재청은 용유담을 국가명승으로 지정하겠다고 지정예고하고, 2012년 2월8일에 심의를 열어 국가명승으로 지정할 계획이었다.

    근데, 국토부와 수자원공사에서 용유담 밑에 댐을 건설할 예정이니 명승지정을 유보해달라고 요청을 했고, 줏대있는(?) 문화재청은 심의를 유보하고, 또 한 차례 더 유보를 해서 명승지정을 아예 포기했다. 참..나..원, 뭔 문화재청이 이래? 월급 받고, 문화재와 천연기념물, 국가명승을 지켜야 할 정부기관이, 다른 기관에서 하지마라니깐, 본연의 업무를 그냥 안해 버리네.

    암튼, 그래서 용이 놀던 용유담은 아직 국가명승으로 지정되지 못하고, 마적도사의 실존에 관한 학술적 논의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용과 당나귀의 생사 여부도 아직 국과수에서 밝히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올 여름휴가, 마땅히 갈 곳도 없고, 휴가비용도 넉넉지 않다면, 지리산에서 명승이 되지 못하고 한숨 쉬고 있는 용유담으로 놀러가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을 게다. 마침, 지리산에 공정여행과 생태여행을 하는 ‘지리산 여행 협동조합’이 생겼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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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소개
    대구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지금은 지리산에 살고 있는 초보 농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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