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배우의 삶,
    곤궁과 고단의 악순환
    [인터뷰] 배우 오민애 "예술노동자 스스로 나서자"
        2015년 07월 17일 10:1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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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명배우 김운하씨의 비극적 죽음 이후 예술인들, 연극인들의 삶이 잠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또 시간이 흐르면서 잊혀지고 있다. 레디앙은 문화예술인 그 중 연극인들의 삶과 현실을 알기 위해 연극배우 오민애씨(51)와 인터뷰를 가졌다. 오민애씨는 연극배우이면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사회활동에도 적극 나섰던 인사이고 국민모임의 대변인도 맡았던 사람이다. 문화예술이 고고하고 저 높은 곳의 삶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힘들고 고단하게 살고 있는, 하지만 예술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삶이고 노동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인터뷰는 유하라 기자가 맡았다.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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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달 연극배우 김운하 씨(40)가 죽었다. 거주했던 고시원의 총무에 의해 사망 5일 만에 발견됐다. 경찰은 김 씨가 심부전증 등 몇 가지 지병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다.

    김 씨를 사망에 이르게 한 지병은 생활고와 연결됐다. 그로 인해 가난한 예술인에 대한 삶이 재조명됐고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의 사망으로 만들어진 예술인복지법, 이른바 최고은 법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가난한 예술인의 삶에 대한 관심은 사라졌다. 국회에서도 예술인복지법에 대한 문제는 다루지 않았다.

    시간이 맞지 않아 며칠에 거쳐 진행한 인터뷰에서 연극배우 오민애 씨는 또 다시 과거와 같은 비극을 맞지 않기 위해 연극인 스스로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껍데기뿐인 예술인복지법을 ‘예술노동자’가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나서서 바꿔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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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배우 김운하·판영진 씨의 자살 등으로 연극인들의 삶이 재조명되고 있다. 연극배우로서 본 주변 연극인들의 삶은 어떤가.

    연극인의 일상은 매우 불규칙하다. 연출을 하는 아는 후배 A(34, 여)씨는 헬스센터에서 밤샘 알바를 했다. 밤을 새워 일하고 오전 7시에 퇴근을 한 후에 연극동아리나 극단생활을 했다. 잠을 포기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식사도 거의 인스턴트로 때우기 십상이고 그러다보니 늘 피곤해했다. 능력이 뛰어난 후배였지만 그런 환경 때문인지 자존감도 굉장히 낮았다. 나중엔 우울증까지 왔던 것으로 안다.

    8살짜리 아들이 있는 작가, 연출 겸 배우 B(41, 남)씨는 벌이가 없어서 연극이나 결혼생활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하는 상황이었다. B씨도 마찬가지로 일을 하며 경력을 쌓고, 대본과 기획서도 써야 하는 처지라 하루 3~4시간 밖에 자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기획서가 공모에 당선되면 다행이지만 공모 당선의 기회가 쉽게 오지 않았다.

    지자체에서 주최하는 공모사업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겨우 차비 정도만 버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적은 벌이에 바쁜 삶을 살다보니 끼니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했고 굶는 적도 다반사였다. B씨는 아내가 벌어주는 생활비로 생활을 유지했지만 그로인해 굉장히 많은 스트레스를 호소했었다.

    아는 선배 C씨(60대, 남)는 젊은 시절에 종종 원양어선을 탔다. 그 일로 돈을 벌어 연극을 하며 생활을 버티다가 돈이 떨어지면 다시 배를 탔다. 지금은 나이가 든 C씨는 늙어서 배를 탈 수 없다고 노심초사하다가 지금은 빚을 내 차량을 구입해 꽃배달을 시작했다.

    그 외에도 남자 연극인들 사이에선 밤중에 하는 지하철 공사나 공사장 막노동은 기본이고, 공연을 하며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극한의 알바도 서슴치 않는다.

    연극인의 연이은 사망 보도를 접하고 어떤 기분이 들었나.

    착잡하고 안타깝고 그리고 슬프다. 예술을 꿈꾸던 사람들은 더 이상 이 사회에서 설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가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성공하는 예술가만 존중한다. 성공하지 못한 무명의 예술가들을 보호하고 육성할 수 있는 법 제도의 제정이 시급하다. 예술가가 그 나라에서 어떻게 대우받는가에 따라 그 나라의 품격과 위상이 정해진다고 본다. 정부의 관심을 필요하고 실천이 절실하다.

    오민애 공연

    오민애씨의 공연 모습(사진=오민애)

    국내에 현역으로 활동하는 연극배우의 규모는 어느 정도 되나. 그들의 평균 소득 수준도 궁금하다.

    한국연극협회 사무총장에 의하면 한국연극협회에 등록되어있는 연극인은 서울4000명, 지방4000명, 이중 1000명은 스텝이다. 배우만 대략 7000명 정도다.

    하지만 한국연극협회에 소속되지 않은 연극인들, 가령 한국연극협회에는 가입하지 않고 배우협회에만 가입되어있는 경우 등까지 감안하면 약 1만 명 정도로 될 것이다. 연극인복지재단의 오세곤 이사는 작년 표준인건비 연구조사결과로 연극배우 연 평균소득 1100만원 중 공연수입 350만원, 예술 강의 350만원, 기타 400만 원 정도로 나뉜다고 한다.

    나 같은 경우 지난해엔 700만 원, 올해는 300만 원 벌었다. 공연을 통해선 차비 정도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이 정도 수입도 광고 등 다른 부수적인 것으로 번 돈이다.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가정이 깨지는 경우도 많고, 아이도 포기하며 사는 경우도 많다. 아예 결혼도 안하는 경우도 많고.

    사망한 두 분 모두 생활고로 인한 죽음이었다. 지금도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연극인 생활을 하는 분들이 많다고 하는데 당신도 그런 경험이 있나.

    당연히 알바 경험이 있고 배우는 누구나 알바를 해야하지 않나? 그렇지 않으면 생존을 위협받기 때문이다.

    처음 연극을 시작했을 때 스텝에 참여를 했는데도 운 좋게도 2000원짜리 식권이 나왔다. 월급이 나오지 않으니 식권을 현찰로 바꿔서 빵을 사먹고 차비 등 생활비로 썼던 기억이 난다.

    젊을 때는 커피숍 아르바이트, 행사 진행, 리포터, 강의, 광고, 영화, 드라마 등을 가리지 않고 했다. 불규칙적이고 고정적이지 못한 수입 때문에 연극을 그만 두고 싶을 때가 많았다. 다른 직업을 구하기 위해 대출까지 받아서 대학원에 입학했고 사회복지 상담사 준비를 했다. 결국 연극을 버리지 못하고 지금은 연극과 복지를 접목하며 살아보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내 직업은 배우지만 지금은 사회복지와 연극을 결합한 연극 기획을 하고 지역민을 대상으로 대본작업과 연출까지 하고 있다. 지역에 협회를 세우고 단체장 노릇을 하느라 모든 것은 재능기부 활동으로 이어져 수입은커녕 오히려 자비를 써야 하는 상황이 됐다.

    내가 사랑하는 연극을 과연 나는 끝까지 잡고 갈 수 있을까 종종 자문할 때가 있다. 오랜 세월 훈련하며 이제 배우라는 것이 무언지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게 되었는데 아마도 아이 교육을 위해서 연기를 포기하고 복지기관에 들어가 말단부터 일해야 할지도 모르고 또는 남편의 일자리가 없어진다면 당장이라도 슈퍼마켓이나 식당에서 서빙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는 남편의 덕으로 버티며 살아왔지만 남편(영화감독) 또한 비정규직 대학 강사여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삶에 보장돼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주변에도 같은 이유로 연극계를 떠나는 후배나 선배들을 많이 봤을 것 같다.

    재능은 있지만 생활고 때문에 연극계를 떠나는 선후배들을 많이 봤다. 젊은 나이에 연극계를 떠나 아예 새로운 직업을 갖는 후배들도 많이 봤다. 이런 경우는 그나마도 지혜로운 거라고 본다. 나이 먹으면 떠나지도 못한다. 평생 연기만 해왔던 사람들이 연극 바닥을 떠나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나이가 좀 든 연극인은 단순노동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명예와 자존심만으로 버텨왔던 예술가가 생존만을 위한 돈벌이를 하며 삶을 견뎌낼 수 있을지 좀 걱정이 된다.

    최근 고시원에서 홀로 사망한 채 발견된 김운하 씨는 연극계에선 어느 정도 지명도가 있는 배우라고 들었다. 그럼에도 한 해에 1~2편 정도의 작품밖에 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생활고가 심했다고 하는데 지명도가 있으면 작품도 많이 들어오지 않나. 작품 수가 극도로 적은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서울에는 약 4000명의 연극인이 있다. 협회에 가입이 안 된 연극인까지 합치면 그 이상이다. 그 많은 배우들이 전부 1년에 한 번씩만 무대를 올라가는 것도 기적에 가깝다. 또 각 극단마다 자기 식구들이 있고, 웬만하면 극단은 자기 단원들을 쓴다. 때문에 극단에 소속되지 못한 배우들은 더 기회가 없는 것이다.

    한 극단이 지원받을 수 있는 공연은 1년에 한 작품 정도다. 문화체육관광부, 지역 문화재단, 문화예술위원회, 연극인복지재단, 예술인복지재단 등에 신청해서 받을 수 있다. 평균 지원금이 2000만 원 정도다. 통상 작가비는 지원금의 1/10로 200만 원, 연출은 200~300만 원, 기획은 100만 원, 무대연출은 200~700만 원 정도 든다. 그 외에도 의상, 음악, 조명 등에 배분되고 포스터, 티켓, 현수막 등 홍보비로 100만 원 정도가 소요된다. 이렇게 다 쓰고 남은 금액이 배우들의 몫이다. 배우가 조금 나오는 공연이면 그나마 다행이고 배우의 수가 많으면 그만큼 배우들이 가져가는 몫이 줄게 되는 시스템이다. 나 같은 경우는 많으면 200만 원 정도 가져가지만 한 푼도 못 받고 안 받는 경우가 더 많다. 아무튼 연극계에서도 배우는 을 중의 을이다.

    대학로에서 하는 많은 공연 중 공간만 지원해주는 경우(창작공간 지원)나 참여 작품에 100만 원씩만 지원해주는(100페스티발) 지원의 형식은 다양하다. 그나마 연극인이 무대라도 올라가서 활동할 수 있도록 장을 열어둠으로써 참여자들은 즐긴다는 생각으로 하지만 3자가 바라보는 그 환경은 절대 즐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또한 몇몇 기관이나 단체에서 주는 지원금도 문화예술강사 자격증을 보유한 연극인에만 주는 제한이 있다. 이 자격증을 따려면 아카데미에 등록해서 수료 과정을 밟아야 하는데 등록금이 전문대학교 등록금과 비슷하다. 생활을 유지하기도 빠듯한 연극인들이 아카데미까지 등록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이 해결되지 않고 지속되다보니 보편적인 복지혜택이 절실해졌다. 경력 20년 이상의 예술인에게 연금을 주는 등 최소한 삶의 무너지는 위협은 받지 않고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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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동극장에서의 낭독공연 모습(오른쪽 오민애)

    대학로에 가면 상영 중인 연극이 굉장히 많고 또 연극을 보기 위해 일부러 대학로까지 가는 사람들도 많지 않나. 영화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연극을 사랑하는 대중이 꽤 많다고 느꼈다. 소위 잘 나가는 극단의 연극인과 그렇지 못한 연극인 사이에 양극화가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연극계의 구조가 그러한 것인가.

    잘나가는 극단이라고 할지라도 1년에 여러 작품을 하지 않는다. 많아봐야 세 작품 정도다. 세 작품을 해도 돈을 제대로 받는 것도 아니다. 지원 없이 극단 자체에서 제작하는 공연은 일주일 정도의 단기공연에서 흥행하기는 거의 불가능이다.

    물론 대학로 흥행작 중엔 장기공연을 하는 경우도 많다. 관객은 이러한 기획홍보가 잘 이뤄진 작품에 많이 쏠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흥행작임에도 불구하고 배우가 불합리한 처우를 받는 경우가 있다. 흥행작을 하겠다는 배우가 많다보니 최저임금만 주는 것이다. 적은 돈을 줘도 하겠다는 배우들이 줄을 서기 때문이다. 후배 연극배우들은 흥행작을 했다는 경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최저임금만 받고 하는 경우가 많다. 연극계에서도 배우는 철저하게 ‘을’이 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경력이 있는 배우도 처지는 비슷하다.

    배우에게 있어 잘 나가는 극단과 못 나가는 극단의 차이는 무대에 설 기회와 수입을 보장할 수 있는 공모지원을 잘 받는지와 탁월한 제작능력을 연출자나 영화감독, 캐스팅디렉터들과 연결되기 쉬운지다. 그래야만 배우가 돈을 벌거나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 정도 차이다. 단지 흥행작으로 장기공연을 하고 있다고 해서 잘나가는 극단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예술인은 작품을 마치고 공백기가 가장 힘든 시간이라고 들었다. 선진국의 경우 공백기에 있는 예술인에게는 실업급여 등의 형식으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만들어준다고 들었다. 국내에는 그런 제도가 전혀 없는데 예술인들 사이에서 이런 법의 필요성을 주장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 예술인들이 더 이상 관망하고 있을 수 없다고 본다.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예술인의 복지 대책을 위해 스스로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술인에게 예술인복지카드(예술인패스카드)가 제공되고 있기는 하지만 공공기관 공연장이나 박물관 할인 혜택 정도다. 혜택의 폭을 점차 늘려서 그 카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자랑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도로비, 주차비, 주유비 등의 할인이 포함돼야 하고 20년 이상 경력을 가진 연극인에겐 최소 40만 원 정도의 연금은 나왔으면 한다. 실효성 있고 구체적인 대책마련을 위해 다방면으로 연극인이 힘을 모아야 할 때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를 위한 법안을 만들어줄 정치에도 눈을 떠야한다. 하지만 아직 제도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정치인들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의무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여러 프로그램들이 실행돼야 한다. 예술정치를 하는 연극인들을 위해 힘을 모아줄 수 있는 조직연대도 필요하다.

    예술인 복지법, 이른바 ‘최고은법’에 대한 실효성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연극인으로서 최고은 법 어떻게 보나. 무엇이 문제라고 보나.

    예술인복지법을 일반 노동자를 기준으로 만들어선 아무 소용이 없다. 우선적으로 예술가의 특수한 상황에 대한 올바른 접근과 이해가 필요하다. 가령 예술인을 위한 보육시설이 만들어졌다고 치자. 연극인들은 공연이 끝나는 시간을 포함해서 오후 11시까지는 아이들을 돌봐주는 곳이 필요하다. 일반 노동자를 위한 보육시설처럼 오후 6시까지 아이들을 돌봐주는 것이 과연 연극인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은 시정되어 연극인들의 편의를 봐주는 연극인들이 소중히 여기는 곳이 되었다.

    ‘최고은 법’에서 정작 최고은은 어떤 혜택도 받지 못한다.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예술 활동 증명의 범위가 지나치게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그보다 섬세하게 예술가의 현실과 특수성을 반영해 접근해야만 실질적인 복지제도가 바로 설 수 있다.

    예술인 복지법을 만드는 과정에도 제기할 문제가 있다. 예술인 위한 법을 만드는 데 논의하는 사람이 예술인이 없다면 말이 안 되지 않나. 현장에서 힘들게 뛰고 있는 사람과 예술인 복지법을 논의해야 한다. 사실 아무런 근심 없이 잘 살고 있는 상류층 예술가들과 예술인 복지법 어떻게 고칠지 논의하는 것은, 라면 안 먹고 사는 사람한테 라면 맛이 어떠냐고 물어보는 것과 같다. 현장에서 고생하는 사람이 그 자리에 함께 해야 살아있는 예술인복지법이 나올 수 있다.

    현재의 예술인 복지법을 넘어서는 어떤 제도는 필요하다고 보나.

    지금 있는 예술인복지법을 잘 다듬으며 상황에 맞게 확대시켰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웃음). 다만 사람들이 연극인에 대한 인식을 좀 개선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연극인을 그저 배고픈 직업, 딴따라 정도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나는 연극인이 국가에서 보호하는, 존중받는 노동자, 직업군이 돼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의 인식도 달라질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연극인 내에서도 여전히 ‘우리가 무슨 노동자냐’ 이렇게 얘기하는 분들도 있다. 지금은 조금씩 연극인도 노동자라는 인식도 생기고 있지만 연극인 내에서도 예술인에 대한 개념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예술 하기 힘든 나라에서 어떻게든 연극인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뭔가.

    연극은 사람과 삶의 모습을 무대에서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도 인간의 갈등이나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며 승화시키고자 한다. 배우는 절대 흉내만 내어서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없기에 아픔과 상처들을 내 몸으로 기꺼이 받아들이고 꼭꼭 저장해둔다. 체득한 오욕칠정도 잊지말라고 뼈에 심어둔다. 이 아프고 불편한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을 때도 있지만 숙명이라 생각하며 그저 걸어가고 있다. 많이 아프시죠, 정말 외로우시죠, 알아요. 당신 마음 알아요, 무대에서 그렇게 사람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려면 내가 아파보지 않고 얘기할 수 있겠는가. 힘든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냥 간다. 하지만 나라와 시민들이 배우들의 아픔과 고단한 삶을 고귀하게 봐줄 수 있게 되길 희망해본다.

    <사족> 오민애씨는 이번 연말에 공연을 준비해서 내년 2월 대학로에서 공연을 일주일 정도 할 계획이라고 한다. 내용은 북한 여의사가 체르노빌 원전 사고에 참여하며 생긴 이야기인데, 러시아와 북한 여의사 그리고 사랑를 다루는 연극이란다.

    대한민국 연극제 서울예선에 나갈 거라고도 한다. 대상은 5000만원인데, 예선 지원은 200~300만원 정도이다. 그 액수로 어떻게 작품을 준비하라는 것인지, 여전히 연극의 현실과 행정가의 행정에는 거리가 크다는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후원 의향이 있으신 분들의 후원을 기대한다. <편집자>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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