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너지 분권의 길
    [에정칼럼] 지역에너지 패러다임
        2015년 07월 16일 02:4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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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핵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법제도의 최대 걸림돌로 중앙과 지방 간의 비대칭적 권력 구조가 꼽힌다. 중앙 정부와 담당 부처의 권한과 예산이 비대해서 몇몇 지자체나 지역사회에서 진행하고 있는 에너지 전환 실험이 안착되고 그 성과가 다른 곳으로 확산되는 데 한계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10년간 운영되던 발전차액지원제(FIT)를 폐기하고 2012년에 정부가 그 대안으로 도입한 신재생에너지의무할당제(RPS)가 풀뿌리 재생가능에너지의 기반을 조성하는 데 도움을 주기는커녕 싹을 고사시키고 있을 정도니 에너지 전환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시민사회 진영이 중앙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2차 국가에너지계획과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그리고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 수립 과정과 그 결과에서 드러나듯 핵발전도 늘리고 온실가스도 늘린다는 국가 전망은 변함이 없다. 이런 사정 탓에 현 정부의 에너지 정치와 기후 정치에서 변화를 바랄 수 없다는 주장에 많은 이들이 동의한다.

    하지만 지방으로 눈을 돌리면 곳곳에서 중앙에 반기를 드는 새로운 흐름이 형성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은 물론이고 삼척과 영덕의 탈핵 운동이 그렇고, 인제와 고흥의 신재생에너지 100% 목표 설정도 여기에 포함된다. 특히 올해 들어 광역 지자체의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원전 하나 줄이기’ 깃발을 꽂은 서울시가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겠지만, 충남, 제주, 경기에서도 지역 민심과 여건을 반영해 지역에너지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다. 예전에는 광주와 대구경북이 주로 재생에너지 보급이라는 특정 에너지원 확대라는 한정된 정책 목표를 추진했다. 반면 서울과 충남, 경기는 현재의 핵과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시스템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 것으로 보인다.

    원전 하나

    서울은 이미 원전 하나를 줄인다는 슬로건을 발표하면서 핵발전시스템을 흔들기 시작했고 2020년까지 전력자립 20%를 달성하면 원전 두 개를 줄이는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충남은 석탄화력발전소 세 개를 줄이는 대체효과를 거두겠다고 선언했다. 여기에 더해 경기도는 2030년까지 전력 70% 자립이라는 ‘에너지 자립 선언’을 통해 원전 일곱 개를 대체할 수 있도록 에너지 효율개선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꾀한다고 한층 더 높은 목표를 세웠다.

    이들은 나름대로 지역에너지실태를 분석․전망하고 자체적인 지향을 밝히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계량적 객관성뿐만 아니라 일정한 의견수렴과 의사결정 과정을 통한 협상된 합리성도 갖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특히 광역 차원의 이해관계에 그치지 않고 지역간 에너지 생산과 소비의 불균형과 핵발전의 위험과 석탄화력발전의 기후변화 위험 등 국가에너지시스템의 취약성을 극복하려는 데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 에너지 분권의 길에서 연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불가피한 폐로 기술의 확보라는 측면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불확실한 고리 1호기 폐쇄 결정을 탈핵 에너지 전환으로 향하게 하는 것에도 큰 도움이 된다. 대체 핵발전을 건설하는 방향으로 향할지, 아니면 단계적 핵발전 폐쇄의 방향으로 향할지,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런 지방의 에너지 반란은 에너지시스템의 전환을 견인할 수 있다.

    얼만 전까지 광역 지자체가 세우는 지역에너지계획은 상위계획인 국가에너지계획과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철저히 종속된 계획이었고, 대부분의 지자체도 형식적으로 수립하는 것에 만족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지고 있다. 확실히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더 이상 중앙의 지시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역량을 보임으로써 분산형 에너지시스템의 가능성을 실현할 계기를 만들고 있다.

    중앙정부와 정부 출연기관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관행을 하나씩 버릴 수 있다면, 중앙정부가 설계하는 핵발전 확대와 온실가스 확대 기조는 설득력을 잃게 될 것이다. 2029년까지 핵발전소 13기, 석탄화력발전소 20기를 더 지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이런 ‘배신의 정치’야 말로 탈핵 에너지 전환은 물론 국가균형발전과 지방자치의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더 많은 광역 지자체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안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또한 시간이 흐르면서, 앞서 나간 지자체가 좋은 결실을 내면, 에너지 분권의 연쇄 반응을 기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부 지자체가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한다는 명분에서 지역 안팎의 대기업의 자본과 기술에 의존하고 대형 에너지 단지를 건설하려는, 일종의 ‘녹색 개발주의’라는 색깔만 바꾼 ‘개발동맹’과 또 하나의 ‘개발주의’에 치우칠지 모른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재생에너지동맹이, 예컨대 LG-제주 동맹, 한화-충남 동맹으로 끝나거나 그것이 전부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에너지 갈등은 핵발전과 석탄화력발전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이미 LNG발전과 열병합발전은 물론이고 조력, 풍력, 바이오, 태양광 등 재생가능에너지에서도 유사한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자연적으로 재생 가능할지라도, 누가, 무엇을, 언제, 어디서, 왜, 어떻게 추진하느냐에 따라 ‘착한 에너지’가 될 수도 있고 ‘나쁜 에너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제라도 에너지 분권과 에너지 전환은 개발주의와 성장주의와 철저히 결별해야 한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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