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을 고발한다!
    메르켈과 쇼이블레의 패권국가 독일
    [기고] 침묵하는 독일 사회민주당
        2015년 07월 14일 09:1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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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3일 오전, 브뤼셀에서 그리스 긴축안을 두고 장장 17시간의 밤샘회의를 마친 뒤의 앙겔라 메르켈의 얼굴은 피로해보였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는 또렷했고, 자신들이 이룬 성과를 감추지 않았다. 새 협상안은 독일의 승리였다.

    전날 쇼이블레 재무부 장관의 ‘부분적 그레시트’안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곤혹을 치른 터라 회의장에서 메르켈과 쇼이블레의 태도는 다소 누그러지지 않을까 하는 시각도 있었지만, 이들은 전보다 더욱 강경한 태도로 그리스의 ‘개혁’을 주문했다. 사실상 그리스의 시리자 정권이 모든 경제주권을 포기하라는 요구였다.

    협상이 끝나고 온라인에 협상 내용이 공개되자, 독일 트위터 이용자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ThisIsACoup 이라는 해시태그 달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들은 독일에 의해 강요된 이번 협상안이 사실상 그리스의 주권을 약탈하는 쿠데타라고 주장하며, 자신들이 메르켈과 같은 독일인이라는 사실에 수치심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뉴욕 타임즈> 기고문에서 메르켈과 쇼이블레가 강요한 이번 합의안은 “미친 짓”이라고 비난하며, 이 해시태그 운동의 정당성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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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IsACoup 해시태그 운동. 트윗 내용은 “쇼이블레는 유럽연합의 금융 피노체트”

    강대국 독일의 패권주의

    잘 알려져 있다시피, 독일은 유로화 채택의 최대 수혜국가다. 유로화 도입은 제조업 수출 중심의 독일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원천이었다. 독일은 동서독 통일 이후 막대한 통일비용이 낳은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유럽 최고의 경제 강대국으로 올라섰다. 메르켈은 경제호황의 인기에 힘입어 3연속 총리로 선출됐다. 남부 유럽은 물론, 옆 나라 프랑스까지 재정 위기를 겪는 상황에서도 독일은 낮은 유로화의 수혜로 수출과 내수가 모두 호황을 이루고 있다.

    독일 정부의 공식 발표를 보면, 2015년 6월 독일의 실업자 수는 2,711,000명으로, 지난달인 5월에 비해 51,000명,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12,2000명 감소한 수치다. 공식 실업률은 6.2%, 이 정도면 독일경제가 얼마나 안정적인지 알 수 있다.

    반면 같은 기간 그리스의 청년실업률은 60%에 달하며, 지난 5년간 그리스 GDP는 무려 25% 감소했다. 모두 독일의 쇼이블레가 만든 경제 계획을 그리스가 ‘충실히’ 이행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다시 말해, 지금은 유로화의 가장 큰 혜택을 업고 수출호황을 누리는 나라가 유로화로 인해 경쟁력을 상실하고 긴축 덕에 경제가 정체된 가장 가난한 나라에게 다시금 가혹한 긴축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독일이란 나라는 역사적으로 언제나 유럽의 최강대국이 되는 순간 유럽을 분열로 이끌었다. 비스마르크의 독일통일과 보불전쟁 승리 이후 군국주의화는 1차 세계대전으로, 이후 바이마르 공화국의 붕괴와 히틀러 집권 이후 재무장화는 다시 2차 세계대전으로 귀결된다.

    전후 초토화된 독일은 동서 분단을 겪었고, 이후 뼈를 깎는 과거사 반성과 놀라운 경제성장, 복지국가 건설로 다시 세계인의 존경을 받는다. 전 세계인들은 폴란드를 방문해 아우슈비츠 희생자들의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은 빌리 브란트를 기억한다. 베를린 장벽이 평화적으로 무너졌을 때, 세계인들은 냉전을 평화적으로 극복한 독일인들을 칭찬했다.

    그러나 독일의 피해자, 약자 코스프레도 이제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동서독 통일 이후 잠시 통일 후유증을 겪기도 했지만, 통일독일은 강했다. 독일은 프랑스와 함께 유럽 통합을 진두지휘하며 서서히 강대국의 면모를 과시한다. 유로화 채택 이후 독일은 그 혜택을 누리며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다시 유럽 최강대국의 자리에 오른다. 막강한 경제력으로 유럽연합에서 사실상 반장 역할을 맡고 있다.

    그 결과 다시 독일은 자국과 자국 은행, 금융자본의 이익을 내세워 유럽의 약소국들을 협박하는 유럽 내 열강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유럽통합 이후 유럽의 각 국가들은 통화발행과 금리조정권을 유럽중앙은행에 이관했다.

    유럽중앙은행의 본부는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해 있다. 사실상 유럽에서 가장 경제력이 강한 독일과 독일 은행들이 유럽 전체의 경제를 조절하는 시스템이다. 현재도 독일이 그리스에게 빚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유럽중앙은행이 빌려주는 것이지만, 독일이 최대채권국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유럽중앙은행이 사실상 독일의 영향 아래에 있기 때문에 언제나 메르켈이 협상을 진두지휘하는 것이다.

    그간의 구제금융 지원 과정에서 볼프강 쇼이블레가 설계, 지휘하고 앙겔라 메르켈이 강요한 그리스 긴축정책의 결과는 끔찍했다. 실업은 세 배로 치솟고 자살자가 넘쳐났다. 그 귀결이 그리스에서 반긴축세력인 시리자와 치프라스의 집권이다. 이들은 트로이카, 그리고 배후에서 그들을 조종하는 메르켈과 쇼이블레, 독일 채권단의 말을 더 이상 고분고분 듣지 않았다. 메르켈과 쇼이블레의 독일은 과감한 선택을 감행한다. 더 가혹한 긴축을 요구함으로서 치프라스 정권을 교체하기. 이것이 메르켈과 쇼이블레의 숨겨진 “플랜B”였음이 드러나고 있다.

    7월 초 연방의회 연설에서 독일 좌파당(Die Linke) 게오르그 기지 의원은 강한 어조로 메르켈 앞에서 이렇게 선언한다. “메르켈 씨, 당신은 그리스의 좌파 정부를 전복하고 싶은 겁니다(Sie wollen die linke Regierung in Griechenland beseitigen)!” 트로이카의 그리스 압박은 미국에 의한 아옌데 전복과 비교할만한, 그러나 화폐라는 평화로운(?) 수단을 이용해 이뤄지는 독일의 그리스 정권 전복 시도라는 것이다.

    이제 독일은 과거 칠레의 아옌데 정부를 전복했던, 그리고 십여 년 전엔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를 축출하려고 했던 미국과 CIA의 사례처럼, 그리스의 치프라스 정권를 전복하고자 한 것이다. 물론 더 이상 군사적인, 물리적인 수단을 통해 다른 나라의 정권을 전복하는 것은 유럽에선 이제 불가능한 일이 된 만큼, 독일은 새로운 수단, 즉 화폐와 금융, 채권이라는 금융자본주의 시대에 걸맞는 방식으로 그리스 정부를 붕괴시키려 시도하고 있다.

    국민투표 직후 사임한 전 그리스 재무부 장관 야니스 바루파키스가 인터뷰에서 공개한 바에 따르면, 유로그룹 재무장관 회의에서는 그 누구도 경제적인 담론을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은 경제의 논리를 제시하며 그리스를 압박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그리스의 모든 제안을 거부하고 더욱 까다로운 협상을 고수할 뿐이었다. 무엇 때문이었겠는가?

    현재 이들의 정권붕괴 시도는 부분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 바루파키스의 사퇴 역시 독일의 성과라고 볼 수 있으며, 새로운 합의안은 그리스 시리자 내 좌파를 동요시키고 있다. 시리자 내 좌파가 분열할 경우, 시리자는 과반의석을 확보할 수 없게 되어 조기총선에 돌입할 수 있다. 사실상 치프라스 정권의 붕괴인 셈이다.

    그리스인들의 Oxi

    그러나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한 자국 은행들을 지키기 위해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국민들의 연금을 또다시 줄이고, 국영산업 민영화를 강요해 경제의 성장동력을 낮추겠다는 독일에 맞서 자신의 주권을 방어하려는 그리스인들과 시리자의 항거는 정당하다.

    그리스인들은 지난 국민투표에서 트로이카와 독일채권단에게 자신들의 거부의사(OXI)를 분명히 밝혔다. 유럽이 소수의 금융자본과 독일패권의 희생양이 아니라 평화로운 정치적 공동체가 되길 바라는 사람들은 모두 이 결정에 환호하고 있다.

    유태계 독일 철학자 아도르노의 부정변증법은 아니오(Nein)라고 말하기의 철학이다. ‘아니오’라고 말하지 않는 한 진리는 생성될 수 없다. 세계가 허위적이라면 진리는 긍정이 아니라 부정에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인들은 ‘아니오’의 진리, 부정성의 진리를 보여주었다. 동시에 그들의 ‘아니오’라는 선언은 아래로부터의 인민적 의지가 주권의 원천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에 대한 강한 긍정이기도 했다.

    지금 그리스와 유럽이 벌이고 있는 싸움은 결국 그리스인들 자신이 2500년 전에 제기한 과제, 즉 민주주의의 원칙이 과연 금융자본주의와 양립 가능한 것인가 하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 독일의 메르켈과 쇼이블레는 이제 역사상 세 번째로, 독일이 유럽의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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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로화로 분열되는 유럽. 사진제공: 독일 좌파당 (Die Linke)

    더 이상 모범국가 독일은 없다

    메르켈 정부는 국내 민주주의도 위협하고 있다. 7월 3일 벌어진 베를린의 국민투표 Oxi 지지 시위에서 일부 시위 참여자는 “독일, 너 거대한 X덩어리(Deutschland, du mieses Stück Scheisse)!”라는 커다란 현수막을 들고 나왔다.

    이 현수막이 독일이라는 국가의 명예를 더럽힌다고 판단한 경찰은 이 현수막을 강제 회수하고 현수막을 들고 있던 시위 참여자들을 전원 연행했다. 이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시위대는 같은 문구가 적힌 종이를 들고 행진했는데, 경찰은 행진대열 안으로 들어와 시위대들을 강제로 연행했으며, 경찰에게 쫓아가 항의하는 한 젊은이의 얼굴을 가격하고 그를 쓰러뜨린 뒤 강제 연행하기도 했다(나는 이 광경을 직접 목격했다).

    수많은 시위대가 경찰의 호송차량 앞에서 연좌농성을 벌인 뒤에야 경찰은 시위대를 풀어주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독일 수사기관은 이 현수막 내용이 독일 국가에 대한 모욕이라며 현수막의 주인을 법적으로 처벌하고자 했고, 이는 커다란 사회적 논란을 낳았다.

    결과적으로 법원에서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 일단락됐지만, 이 사건은 그간 ‘경찰이 시위대를 보호해주는 나라’, ‘시위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선진국’이라고 알려져 있던 독일의 민낯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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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xi와 Nein을 함께 들고 그리스에 연대를 표하는 베를린 시위대

    독일은 유럽 주요 국가들에 의해 두 차례 부채탕감을 받은 적이 있다. 그리스는 과거 독일의 부채탕감에 합의해준 바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그리스는 나치의 지배를 받았고, 그리스 은행으로부터 4억 7600만 마르크를 강제로 대출해간 뒤 갚지 않았다. 나치의 점령기간 독일군은 그리스의 빨치산 저항군과 민간인을 무참히 학살했다. 주요 국가시설을 약탈하고 국토를 황폐화했다. 독일은 역사적으로 그리스에 진 빚을 갚지 않았다. 그러나 새로운 강대국으로 부상한 독일은 다시금 그리스를 압박하고 있다.

    앞으로 독일이 과거사를 반성하는 모범적인 나라라는 담론은 사라져야 할 것이다. 나치의 피해국가였던 그리스에게 지금 독일이 하는 태도를 보면, ‘과거사를 반성하는 모범국가’ 독일은 이제 사라졌음을 알 수 있다.

    국가주의를 강제하지 않고 ‘시민적 자유를 보장하는 국가’ 독일도 사라졌다. 자본주의라기보다는 사회민주주의에 가깝다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역시 사라졌다. 메르켈과 쇼이블레의 독일은 금융자본을 앞세워 약소국의 경제주권을 침탈하고 신생 좌파정부를 붕괴시키는 약탈자의 모습이다. 집권 보수당의 연정 파트너인 사회민주당은 이 모습을 침묵 속에 지켜보고 있다.

    이제 독일은 다시 역사에 죄를 짓고 있다.

    필자소개
    베를린 훔볼트 대학 철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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