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에 관한 ‘옛 생각’에서 벗어나라
    [책소개] 『경제학자들은 왜 싸우는가』(질 라보/ 서해문집)
        2015년 07월 11일 10:4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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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전문가들이 그렇듯이 경제학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자기의 진단과 처방이 옳다고 서로 싸운다. 특히나 경제학자들의 싸움이 신랄하고 격렬한 것은 경제학이 다루는 대상이 너무나 복잡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경제학자들이 경제를 저마다 다르게(심지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경제학자(고전파이든 신자유주의자이든)와 마르크스 학파, 케인스 학파, 그리고 최근의 폴라니 학파가 생각하고 말하는 ‘경제’ 자체가 서로 다른 것이다.

    지난 미국 금융위기나 최근 유럽의 위기 때도 경제학자들은 서로 싸웠다. 누군가가 세금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면 다른 누군가는 반대로 세금을 올려야 한다고 역설한다. 또 유로화 출범이 위기를 벗어날 해법이라고 주장하는 경제학자가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경제학자도 있다.

    이렇게 성장과 분배, 실업과 고용, 재정과 부채, 국제무역 등을 놓고 경제학자들끼리 싸우는 속내를 이해하려면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경제학자 4인방의 프레임과 그 한계를 비판적으로(그리고 서로 보완하면서) 살펴야만 한다.

    이 책은 이렇듯 세상을 움직이는 4가지 경제이론의 핵심을 파고들며 그 속에서 현재의 경제위기의 해법을 찾아내는 강력한 핸드북이다.

    애덤 스미스, 케인스, 마르크스, 칼 폴라니

    이 책의 저자는 경제학의 대전환을 이끈 네 경제학자의 4가지 핵심 표상(또는 이미지, 키워드라 해도 좋다)을 이렇게 정리한다. 애덤 스미스의 ‘시장’,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순환’, 칼 마르크스의 ‘권력’, 칼 폴라니의 ‘자연과 사회’. (스미스의 ‘시장’은 하이에크를 비롯한 신자유주의자들에 의해 ‘시장 만능’으로 강화되기도 하는데, 이 책에서는 ‘시장’으로 같이 묶어 다룬다.)

    위대한 경제학자들은 오직 경제학만으로 경제를 설명하려는 시도를 경계한다. “경제학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을 때 경제학은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경제학의 대전환을 이끈 네 인물 가운데 누구도 경제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한 이는 없다. 스미스와 마르크스는 철학자였고 케인스는 수학자였으며 폴라니는 역사학자였다. 경제 분석이 사회과학 분야에 속한다는 것을 이보다 더 잘 강조할 수 있을까.”

    경제학자들은

    1 “경제는 시장이다” – 애덤 스미스

    애덤 스미스 이래 현실에서 가장 강력한 이들은 ‘시장주의자’라 불리는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다. 이들은 대학과 국제기구 그리고 각국 경제 부처에 여전히 포진되어 있다.

    예를 들어 이들은 지난 미국발 금융위기가 미국 정부의 개입 때문이라고 말한다. 모두가 집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가난한 가계에 부동산 대출을 받도록 장려한 탓이다. 대출이 지나치게 늘어 가계의 상환 능력이 떨어지고 따라서 부동산 시장이 무너지고 은행이 도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니까 경제위기는 시장의 정상적 기능을 방해하는 정치적 개입의 결과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2 “경제는 순환이다” – 존 메이너드 케인스

    반면 케인스 학파는 시장경제란 근본적으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그들은 미국을 비롯한 유럽의 최근 경제성장 방식이 불안정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임금인상 속도가, 생산된 부의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21세기 자본>을 쓴 토마 피케티도 이런 말을 했다). 물론 부채가 한동안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가려주면서, 가계는 은행에서 돈을 빌려 기업이 생산한 재화를 구입했다. 그러나 이런 체계는 오래갈 수 없다. 가계가 더 이상 빚을 감당하지 못하는 순간이 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3 “경제는 권력관계다” – 칼 마르크스

    마르크스 학파는 케인스 학파와 달리 금융의 핵심적인 역할에 주목한다. 기업이 임금인상에 저항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주주가 원하는 단기 수익성을 최고로 끌어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금융규제 완화는 자체적으로 위기를 안고 있다. 감독과 관리가 느슨해지면서 금융사기를 저지를 확률이 높아진다. 금융권력은 입법 절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정치권력이기도 하다. 그래서 마르크스 학파는 금융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반면 케인스 학파는 위기 탈출 해법으로 투자를 활성화하라고 권고한다.

    4 “경제는 자연과 인간(사회)이다” – 칼 폴라니

    인간적이고 환경적인 접근법을 추구하는 칼 폴라니 학파는 현재의 성장 모델이 지속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원자재와 식량 가격 상승이 위기를 일으킨 주범이라고 믿는다. 가계의 구매력이 타격을 입으면서 소비가 줄고 결국 경기침체를 가속화시켰는데, 이러한 위기는 과도한 천연자원 개발과 사회관계 해체를 기반으로 하는 현행 경제 작동 방식에 이미 내포되어 있기도 하다. 따라서 환경, 인간, 사회적으로 지속 가능한 개발 방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1. 위의 네 가지 표상은 현재의 경제위기를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자유주의 경제학(스미스의 ‘시장’)의 실타래를 풀어내면서 그 자리에 주요 경제주체(국가, 은행, 기업, 가계) 사이에 이루어지는 통화의 순환을 설명하는 모델(케인스의 ‘순환’)을 놓는다. 그리고 이 ‘2차원’의 모델에 여러 주체 간에 존재하는 권력관계라는 ‘수직’의 차원(마르크스의 ‘권력’)을 가미한다. 그렇게 해서 부의 흐름(순환)과 불평등(권력)을 결합하는 경제모델을 얻을 수 있다. 그런 다음 이 모델을 좀 더 넓은 틀로 옮겨 인간적이고 환경적인 접근(폴라니의 ‘자연과 사회’)이 드러나도록 한다.

    2. 따라서 오늘날에는 칼 폴라니에게서 물려받은 인간적이고 환경적인 접근법이 일관성 있는 대안이다. 이 접근법은 우선 개인, 사회, 그리고 환경을 생각하는 세계관과 사회관을 제안한다. 그러면서 책임감 있는 농업, 지역화폐, 저렴하고 지속 가능한 주택, 의료체계, 연대감 있는 금융, 생산조합 등 세계 곳곳에서 이미 시작된 수많은 시도들과 영감을 주고받고 있다.

    3. 저자는 이 책의 목적이 자유주의 모델(시장경제중심주의)을 극복할 (경제적.철학적) 대안을 찾는 데 있다고 말한다. 주류 경제학의 편견에서 자유로워지자는 것이다. 자유주의 경제학의 인간관은 한마디로 ‘호모이코노미쿠스’이며, 이때 전제되는 인간은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이다. 하지만 칼 폴라니를 국내에 열정적으로 소개해온 경제학자 홍기빈의 말마따나 우리는 “총체적 존재로서의 인간, 영혼을 가진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해 이미 이야기하고 있고, 이야기해야 한다.

    4.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유주의라는 ‘옛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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