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인 강제징용과
    일본의 근대 산업시설
    1965년 한일조약, 근본적 문제 있어
        2015년 07월 10일 05:2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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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세계문화유산 ‘강제노동’ 부인 파동, 문제의 원인

    조선인 강제징용시설이 포함된 일본 근대 산업시설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결정 직후 일본 정부는 ‘강제노동’을 부인하고 나섰다.

    이는 독일 본에서 5일(현지시각) 열린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일본 정부 대표인 사토 주유네스코 대사가 “…there were a large number of Koreans and others who were brought against their will and forced to work under harsh conditions in the 1940s at some of the sites…”라고 발언해 강제노역을 사실상 인정한 것을 뒤집는 작태이다.

    일본 정부는 ‘강제노동(forced labour)’이라는 직접적 표현이 쓰이지 않았다는 것을 주요 근거로 말하고, 자국에 소개한 비공식 번역문에서는 ‘forced to work’를 ‘일하게 됐다’고 해 강제성을 잔뜩 희석시켰다. 나아가 국제사회에 징용된 한반도 출신 노동자가 ‘강제노동’을 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적극적으로 알려나갈 방침이라고도 했다.

    사토 대사의 위 발언은 전체적인 맥락상 “1940년대에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사람들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 끌려와 가혹한 조건에서 forced to work”라고 되어 있어 강제노역을 인정했다고 보는 것이 상식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강제노동’을 인정한 것은 아니라고 강변하고, 국제사회에 그걸 홍보하겠다는 일본 정부의 행태는 치졸하며 충분히 공분을 살 만한 행태이다.

    군함도

    강제노동이 이뤄진 대표적 시설인 군함도 모습(방송화면)

    이런 일본 정부의 행태에 따라 한일 관계가 다시 냉랭해지는 것은 물론 한국, 일본 모두 국내적으로 외교당국에 대한 비판과 문책의 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 정부가 보이는 모습의 원인에 대해 자국 여론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고 또 일부 그런 요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일본 국민 중 상당수는 ‘한국이 뒤늦게 왜 딴죽을 거는지 모르겠다, 문화유산 등재에 대해서 과거사를 강하게 연계시키는 것은 과하지 않느냐’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런 인식을 빌미로 아베 정부가 현재의 치졸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동 시설의 세계유산 등재 추진 움직임이 보이는 초기부터 그 문제점에 대한 지적과 홍보 등 외교적 조치를 취하지 않고 뒤늦게 부랴부랴 대응해 결국 문제의 불씨는 놔둔 채 성과나 부풀렸던 한국 정부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1965년 한일협정의 문제점이 근본 원인

    보다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일본 정부와 다수 일본인들의 ‘한반도 식민지 지배는 법적으로는 합법이었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1944년 9월부터 1945년 8월 종전(終戰) 때까지의 사이에 ‘국민징용령’에 근거를 두고 한반도 출신자의 징용이 이뤄졌다”며 이런 동원이 “이른바 ‘강제노동’을 의미하는 것이 전혀 아니라는 것은 (일본)정부의 기존 견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국민징용령 이전에도 강제징용된 사례가 많고, 특히 일본인에 비해 조선인이 가혹한 처지에서 강제노동에 내몰린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런 발언을 노골적으로 하는 것은 특히 아베 정부 들어 심화된 과거사에 대한 퇴행적 행태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의 주장 골자는 식민지배 합법론에 근거해 ‘자신들이 식민지배하고 있어 국민의 일원인 한반도 사람들에 대해서도 합법적으로 징용을 한 것이다, 이는 국제법이 금지하는 위법행위인 ‘강제노동’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징용과 관련한 보상은 1965년 한일협정 중 청구권협정에 의해 법적으로는 완전히 해결되었다는 입장을 갖고 있어, “강제징용에 대한 개별 보상은 이뤄지지 않았다”는 우리 법원의 판결과 정부 입장에 대해 무리한 주장을 펴고 있다는 생각을, 일본에서 과거사를 반성하는 사람들도 상당수가 갖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일본 정부와 일본인 다수의 과거사에 대한 인식과 대책의 한계는 1965년 한일 협정 자체의 한계에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청구권협정도 문제지만, 기본조약 2조는 ‘1910년 8월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되어 있다.

    이를 두고 한국은 체결 당시부터 불법·무효라고 해석하는 반면, 일본은 ‘이미’라는 조항을 근거로 체결 당시에는 합법이었으나 해방을 기점으로 무효라고 해석하고 있다.

    1910년 한일강제합병과 그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이 일제의 강제, 기만, 범법 등으로 점철됐으며 이에 따라 관련 조약은 원천 무효이고 식민지배도 당연히 불법이라는 우리의 기본 인식이 오롯이 표현되어야 했으나, 당시 박정희 정권이 적당히 야합하고 만 것이 두고두고 일본에 빌미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기 위해서는 2010년 한일 지식인들의 공동성명처럼 ‘한국병합(병탄)조약의 원천 무효’를 한일 정부가 공동 선언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나 침략과 식민 지배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의 핵심마저 사실상 부정하는 아베 총리나, 한일협정의 주역 박정희의 딸 박 대통령 집권 상황에서는 그런 것을 기대하는 것조차 힘든 게 현실이다.

    그러므로 단기적으로는 현재 일본의 일부 언론마저 “한반도 출신자가 이직 등의 자유 없이 중노동을 강요당한 역사에 눈을 감아서는 안 된다”고 밝히고 있는 만큼, 강제노동을 굳이 부인하는 아베 정부의 행태를 강력히 비판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일본 정부의 국제사회에 대한 공식 천명과 약속인 ‘해당 시설에서 강제노동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희생자를 기리는 안내 센터 설치와 역사적 설명’ 등의 조치가 제대로 취해지도록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압박이 필요하다.

    더불어 정부의 대증요법적인 대일 정책의 한계와, 이런 상황의 이면에서 진행되는 군사협력 강화 행태와 그 기조인 ‘과거사-안보협력 분리 접근’ 정책의 한계와 문제점 역시 재차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단순히 일본은 왜 과거에 대해 제대로 사과하지 않느냐며 반일감정을 분출하는 것으로는 아베의 폭주를 제어할 일본 국내의 힘과 국제사회의 공론을 키우기 힘든 게 사실이다.

    그러기에 진보진영은 단순히 한-일 정부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에서 그치지 않고, 과거와 미래가 연계된 한일관계의 기본 틀에 대한 인식과 평화로운 미래를 함께 할 중장기적 비전을 스스로 확고히 하면서, 정부에게도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일관되고 구체적인 정책의 실천을 요구해야 한다.

    필자소개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문제를 연구하는 정책가이며, 진보정당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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