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스턴트 농사와
    팔당 두물머리의 눈물
    [에정칼럼] 한 예능프로그램을 보며
        2015년 07월 07일 04:4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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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의 예능 프로그램 <인간의 조건-도시농부>의 인기가 높다. 개그맨, 가수, 그리고 최근에는 연예인이 된 셰프들이 모여 서울의 한 건물 옥상에서 좌충우돌 농사를 짓는다는 설정이다. 도시인들에게 그리고 특히 젊은이들에게 농업이 친근하거나 매력적인 것으로 다가오게 된 트렌드 자체가 어떤 징후라는 생각도 든다.

    <1박 2일>부터 <삼시세끼> 같은 프로가 이미 귀농과 귀촌의 간접 경험을 오락을 통해 선사했고, 작년 SBS에서 방영한 <모던파머>는 밴드 재건 비용 마련을 위해 배추농사에 뛰어든 록밴드 멤버들의 일화를 담기도 했다.

    대도시에서 안정적 생계수단을 찾기 어려워진 청춘 세대, 환경 인식의 상승, 시나브로 늘고 있는 청장년 귀농 귀촌 인구 등의 현상들이 예능을 만나 만들어낸 풍경이다.

    이 자체는 매우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인간의 조건-도시농부>는 매우 진지하고 치열하게 만들어지는 프로그램이다. 도시 사람들이 도시에서 흙을 만진다는 것, 마트의 소비자로 살던 이들이 자급하는 생산자의 경험을 나눈다는 것, 그리고 잘 먹는 원리와 좋은 맛, 영양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것들 모두가 긍정적이다.

    출연자들이 땡볕 아래서 하루 종일 흙을 날라 밭이랑과 고랑을 만들고, 스스로의 손과 발로 흙을 개어 논을 만드는 땀방울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러한 미덕들을 다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 프로그램 속의 도시농사는 인스턴트 농사, 편의점 농사에 가깝다. 건물 구조가 지탱할 수 있는 하중을 고려하여 영양분은 풍부하되 가벼운 재질의 흙을 중장비로 옥상으로 실어 올리고, 건축가의 조력 속에 밭과 논의 배치를 기획하며, 경기도의 모종 시장에 가서 이미 예쁘게 자란 갖가지 모종을 자동차로 실어와 심는다.

    작물의 효과적인 배치에 실패하여 다시 심고 예기치 못한 병충해를 만나 사투를 벌이기는 하지만, 이 도시농부들은 몇 계절 전 몇 년 전부터 땅과 작물의 조화를 생각하며 거름과 종자를 준비할 필요도 없고, 프로그램이 종영된 후 이 옥상 논밭이 어떤 모습으로 몇 년을 더 이용될 수 있을지를 고민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가뭄이 계속되어도 수돗물을 틀면 되고, 땅심을 돋아줄 똥과 오줌의 활용은 방송에 부적합하니 배제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 프로그램은 훌륭하며 <전원일기>나 <대추나무 사랑걸렸네>보다 오히려 농사라는 행위를 더 실감나게 보여준다. 그러나 나는 이 인스턴트 농사를 보며 그 정반대편에 있는 농사를 떠올리게 된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유기농, 구체적으로는 팔당 두물머리에서 철거당한 유기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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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팔당 농민들이 시민들과 함께 가꾸던 팔당 명랑 텃밭(사진=팔당공대위)

    농약과 화학비료를 전혀 쓰지 않는 제대로 된 유기농지를 만들려면 수년이 필요하다. 조안면과 양수면 두물머리에 자리잡고 십 수년 동안 수도권에 유기농 작물을 공급했던 농민들은 그렇게 어렵게 땅을 만드는 과정을 거쳤다. 그러한 성과를 인정받은 덕분에 익히 알고 있는 바 2011년 세계 유기농대회를 한국에서 열게 되기까지 했지만,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4대강 사업의 한강 1공구로 지정된 두물머리에 철거의 그림자가 들어닥치게 되었다.

    팔당에 와서 쌈채소를 맛있게 먹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4대강 사업의 몸통이었고, 세계 유기농대회를 유치하면서 팔당을 유기농의 메카로 만들겠다던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팔당 유기농민들이 수질오염의 주범이라도 되는 듯 막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두물머리 유기농 단지를 철거하러 몇 차례나 행정대집행 시도가 있었고, 마지막까지 남은 네 명의 농민과 팔당으로 모여든 두물머리의 친구들은 텐트 속에서 밤을 지키며 맨몸으로 대집행을 막아냈다. “공사대신 농사”와 “발전 대신 밭전”이 외쳐졌고, 폭우가 퍼붓는 가운데 음악회가 열렸고, 매일같이 두물머리의 끝에서 미사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국토부와 4대강 사업본부의 입장은 요지부동이었다. 강변에서는 ‘영농’ 또는 ‘경작’이라는 행위뿐 아니라 용어의 사용조차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두물머리의 갈대습지와 유기농 딸기 하우스를 거둬내고 만들려는 것은 기껏해야 서울 한강의 어느 둔치에서나 볼법한 자전거길과 꽃잔디밭이었다.

    대안적 상생모델까지 연구하며 타협을 요청하는 두물머리 농민들에게 정부는 막대한 벌금으로 화답했고, 남은 이들은 차라리 장렬한 강제철거를 감수할 결심까지 하고 있었다. 마음을 졸이며 지켜보던 이들에게 2012년 8월 14일, 국토부와 두물머리 농민들 사이의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속보가 전해졌다. 두물머리를 가칭 ‘생태학습장’으로 조성하기로 약속하고, 이를 이행할 협의기구 구성의 약속을 믿고 각종 시설물을 자진 철거한다는 것이었다.

    생태학습장을 이름도 생소한 영국 라이톤 공원과 호주 세레스 생태공원을 모델로 한다는 구절을 넣은 것은 공식적으로는 영농 행위를 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시민이 함께 할 수 있는 체험 시설을 통해 경작을 우회적으로 보장한다는 의미였다.

    농민들은 이 약속을 받아들이고 착하게도 그곳을 물러나왔다. 그리고 몇 년간 협의기구 구성에 함께 하고, 두물머리 근처나 또는 좀 먼 곳에 농지를 얻어 농사를 지으며 그곳으로 돌아갈 날을 기대해왔다.

    그 후 들리는 소식은 좋지 않았다. 생태공원 예정부지를 지도에 그려두기는 했지만 생태학습장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조성하고 운영할지를 정하지도 못했고, 그냥 간단한 조경공사가 끝나자 양평군은 협의기구가 할 일을 다 했다며 철수해버렸다.

    그리고 지난 4월 이미경 의원의 폭로에 따르면 다른 쪽에서 한강유역환경청이 ‘에코폴리스 양수리 조성계획안’을 작성하고 있다는 사실이 공개되었는데, 결국 생태(?) 조각공원과 문화공원 등 볼거리를 늘리고 둘레길을 만드는 4대강 판박이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네 명의 농민 당사자 등 주민들과의 소통이나 협의는 전무했다. 나아가 양평군은 두물머리에 펜스를 쳐서 유료화하고 세미원과 통합 관리하겠다는 의사까지 내비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잊고 있는 가운데 두물머리 생태학습장은 희미해져가고 있다.

    표지석

    지난 주, 어느 대학생 견학 일정에 함께 하게 된 나는 삼년만에 두물머리를 찾았다. 경건한 미사가 집행되고 두물머리의 친구들이 냉이를 캐던 버드나무 십자가 자리는 해남의 땅끝 표지석이나 부산 오륙도 앞의 경계석 같은 비석과 반반한 대리석이 차지하고 있었다.

    34억원을 들여서 조성했다는 산책길과 식재한 초화류는 여름볕 아래서 쑥부쟁이와 개망초, 환삼덩굴로 덮여가고 있었다. 잔디 사이로 비쭉비쭉 머리를 내민 케일과 보리 순이 이곳이 얼마 전까지 경작지였음을 웅변하고 있었다.

    인근에서 농사를 계속하고 있는 최요왕 농부는 최근의 상황과 자신의 생활을 담담히 설명해주었지만, 가슴 속에서 눈물과 분노가 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인간의 조건’을 묻는 카메라가 여기까지 찾아오면 사정이 달라질 수 있을까? 마침 한강에 녹조가 창궐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두물머리 농민들의 무죄는 완전히 증명되었다. 진정 죄를 지은 이들은 누구이며, 그 죄를 어떻게 물어야 할 것인가?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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