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성, 효율성에 민감해야 한다
[교육담론] 진보의 척도는 무엇인가?
    2015년 07월 06일 10:55 오전

Print Friendly

3년 정도 교육 일선 현장에서 생활하면서 이런 저런 경험을 많이 했다. 경험을 돌아보면서 진보의 척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 보겠다. 전제할 것은 아래 사례는 누구를 비난하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님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첫째. 공공자원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경우이다. 민주화세력이 고학력 자원에서 충원되고 10년 정도 권력을 유지하면서 중년의 민주화 세력은 이러저러한 연고를 갖게 되었다. 특히 지방자치제와 관련하여 인맥을 통해 공공자원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각종 공모사업, 지원금 등이 그런 사례이다.

그런데 이런 사업들이 제대로 진행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사업이 진행되더라도 혈세를 쓴다는 긴장된 의식을 찾기 어려웠다. 눈 먼 돈을 먼저 가져다 쓴다는 도덕적 해이가 만연해 있다. 양식 있는 어떤 지인은 건강한 시민단체들이 관변단체로 전락했다고 개탄하기도 한다.

현재와 같은 불경기 그리고 장기 불황이 예고되는 속에서 국가 재정은 가난한 자의 마지막 쌈짓돈일 수 있다. 진보세력이 이른바 공모사업이라는 미명하에 함부로 재정을 사용하려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근본적으로는 우리가 집권 세력과 무엇이 다른가하는 의문에 직면할 수 있다. (실제로 구분이 잘 되지 않는 사람이 종종 있다)

둘째. 교육현장 나아가 삶의 현장에서는 불성실하거나 무능한데 각종 정치적 집회에 참석하거나 정치 토론을 통해 진보성을 확인하는 경우이다.

돌이켜 보면 진보진영의 최대 약점 중 하나는 능력에 따른 냉정한 평가와 보상 시스템이 없는 것이다. 그럴 수 없었다는 점은 이해한다. 독재정권과 싸우는데 싸우기로 마음먹고 행동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일이었을 테니까.

그런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정말 중요한 것은 정치적 발언이나 집회 참여가 아니라 일선 현장에서 얼마나 일을 잘하는가이다.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달라져야 한다. 그가 살아가는 현장을 중시하고 거기서 얼마나 능력을 발휘하는가를 중시해야 한다.

조금 더 확대하면, 사교육을 통해 번 돈으로 운동을 하거나 그다지 생산적이지 않은 전업운동을 하는 경우가 문제이다.

나이가 들어 생계를 책임질 때가 되었으면 전업 운동을 하다가도 그만 두는 것이 옳다. 운동을 하는데 성과가 없다면 대중, 시대와 맞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운동에도 효율성이란 척도가 개입될 필요가 있다. 10만큼 투입했다면 그것을 넘는 산출물이 있어야 한다. 10 투입했는데 3~4 정도의 산출물만 있다면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럼에도 무책임한 전업 운동이 지속되고 있는 이유는 지조나 헌신 등이 잘못 이해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것도 아니다. 그냥 관성이거나 다른 것을 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진보진영에 이른바 운동을 한다는 사람 중에 룸펜과 다름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셋째. 공교육에 들어가는 터무니없는 예산이다.

공교육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교육예산이 내려오는데 이를 쓸 사람이 없다고 한다. 돈은 많은데 이를 쓸 사람이 없다니… 공교육이 중시되면서 이에 따른 예산이 내려오는데 일선 교사들이 업무에 바쁘거나 귀찮아서 귀중한 돈이 낭비, 유실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공교육을 정상화하자는 논리가 그것에 필요한 가장 중요한 토대, 인적-사회적 토대 없이 구호성 예산 집행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업무가 얼마나 바쁜지 잘 모르겠다. 업무가 바빠서 할 수 없다면 이해는 간다. 그런데 후자의 경우(귀찮아서)도 적지 않다. 각종 공모 사업에 떨어지는 돈과 그것의 씀씀이를 생각하면 나라의 예산이 이렇게 쓰여도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

결론을 내리자면, 민주화시대의 낡은 관성이 교육현장에서도 숱한 부조리와 폐해를 낳고 있다. 생활현장에서 유리된 사람들을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생활현장에서 무능한 것을 함부로 용인하지 말아야 한다. 돈이 오가는 곳에서 성공과 실패는 매우 명확하다. 실패한 것은 무능하거나 고객의 요구를 제대로 대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자라면 노력해야 하고 후자라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정말 무엇을 위한 일인가를 돌아 봐야 한다.

필자소개
민경우
전 범민련 사무처장이었고, 현재는 의견공동체 ‘대안과 미래’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서울 금천지역에서 ‘교육생협’을 지향하면서 청소년들을 가르치고 있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