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당 당대회
    당원총투표 부결 유감
    [기고] 한 노동자 당원이 당신에게
        2015년 07월 06일 09:5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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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당 당대회의 결과에 대해 경남 창원의 노동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강범석씨가 기고 글을 보내왔다. 당대회 결과에 대한 강한 비판의 의견이다. 다소 감성이 많이 묻어나는 내용이지만 기고 글의 취지에 따라 그대로 게재한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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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에게

    진보결집을 묻는 당원총투표 안이 노동당 당대회에서 부결됐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저는 오리무중입니다만, 당신은 무언가 계획이 있겠지요. 아무런 계획도 없이 일을 벌이진 않으셨을 테니까요.

    그래서 당신의 계획에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제 의견을 피력하고자 합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좀 격하게 들리더라도 이해해 주십시오. 거두절미하고 다소 감정이 섞인 제 결론부터 말씀드리는 것으로 시작하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두서가 없어 말이 거칠어지기도 하겠지요.

    쿠데탑니다. 쿠데타가 아니라면 무어라고 표현할까요? 적당한 말이 있습니까? 진보결집 당원총투표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나경채 대표가 결국 사퇴했습니다. 당원이 뽑은 당의 대표를 당대회에 모인 대의원들이 쫓아낸 것입니다. 그러니 쿠데타라고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대표에게 사퇴하지 말라고 말렸다, 누가 사퇴까지 하라고 했느냐, 라고 말하는 일부 당원들이 있습니다. 이거야말로 더 웃긴 말씀입니다. 그럼 나 대표가 사퇴 안 하고 진보결집에 반대하는 당대의원들의 뜻을 받들어 소위 당의 독자적 미래를 책임져야 한다는 말입니까? 정말 잔인하군요.

    그래서 저는 대표의 사퇴를 만류하는 분들이 대표를 쫓아내고자 모의했던 분들보다 더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쿠데타에 성공했으니 당의 미래니 신좌파모임이니 하는 이름의 정파들이 당을 책임지는 게 맞습니다. 쿠데타를 했으면 반군이 당사를 접수하는 것은 상식입니다. 그게 자연스럽습니다.

    이 지점에서 그럼 당원들은 뭐냐? 라는 질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반문하겠습니다. “노동당에 당원이 있나요?”

    무슨 그런 황당한 질문이 있냐고요? 그러나 그렇게 말씀하는 당신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노동당에서 당원이란 존재는 이미 대상화된 지 오래라는 것을 말입니다. 대상화가 듣기 거북하다면 이렇게 고치도록 하지요. 당원의 대다수는 식물당원이 된지 이미 오래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당원들은 그저 무덤덤할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별 관심 없습니다. 그런가보다 하는 거지요. 그동안 해왔던 관성대로 투표하라고 문자나 전화가 오면 그 정도는 해줘야지 하면서 약간의 실천을 하는 데 만족합니다. 그렇게 해서 뽑은 대의원들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당대표가 사퇴를 해도 그런 일이 있었어? 하고 마는 겁니다.

    저는 사실 노동당이란 당명에 대해서도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우리가 진정 노동자를 대표할 자격은 있는 것일까. 자격 여부를 떠나 노동자들은 우리를 대표로 여기고 있기는 한 것일까. 우리는 그들의 바람을 이해조차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는 현역 노동자입니다. 그래서 전체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제 주변의 노동자들이 무얼 원하는지는 압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너희들끼리 모여서 뭘 하고 있는 거냐고. 너희들끼리 모여서 할 수 있는 일이 뭐냐고. 너희들은 너희끼리 모여서 너희들의 의제를 만들어 논쟁하고 다투는 것을 즐기고 있는 것 아니냐고. 취미생활 하는 거 아니냐고. 게시판이 바로 그런 곳 아니냐고. 그건 마약 같은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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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28일 노동당 당대회 모습

    당원총투표를 하는 게 옳았습니다. 나경채 대표는 그러기 위해 출마한 것이고 당원들은 그를 대표로 선택했습니다. 당원총투표는 한편 식물당원으로 전락한 당원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계기가 됐을 겁니다. 몇몇 소수의 논쟁이 아니라 당원들의 활기찬 토론이 필요했습니다. 당원들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도록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당원의 뜻을 대변해야 할 대의원들은 당대회에 모여 그 기회를 봉쇄했습니다. 그들은 무엇이 불안했던 것일까요? 당원들이 미덥지 못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당원의 뜻을 묻는 자체가 두려웠던 것일까요?

    당원총투표를 통해 당원의 총의가 무엇인지 확인했다면 이런 사태는 없었을 것이라는 진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 결과가 진보결집이었든 독자생존이었든 양측은 결과에 승복해야만 했을 것이고 또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젠 누구에게도 그걸 요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당원의 총의가 무엇인지 아무도 알 수 없게 되었으니까요.

    당원총투표에 반대하는 심정을, 엄밀히 말하면 진보결집에 반대하는 거지만, 한편으론 이해합니다. 이데올로기 때문이지요. 솔직히 말하면 정의당과 통합하면 노동당 이데올로기의 순수성이 훼손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 알고 이해합니다. 그러나 가슴에 손을 얹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노동당 당원들이 진보적으로 더 우월할까요?

    노동당, 그렇게 대단하지 않습니다. 말하기 부끄럽지만 제가 아는 당원 중에는 새누리당 비슷한 사람도 있습니다. 무상급식 그거 다 후세대에 빚이다, 그렇게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지금은 그분의 생각이 바뀌었는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당신들은 바로 이 이데올로기 문제 때문에 당원총투표 안을 부결시켰습니다.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놓고 이제와 딴소리 하는 게 들립니다. 이런 사태를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둥, 이래서는 안 된다는 둥, 이러지 말자는 둥. 당대회의 진보결집 당원총투표가 부결된 이후 탈당하는 당원들이 생기고 분란이 심해지자 나온 대응책이란 점은 이해합니다.

    양심에 어긋나는 소리 하지 말라느니 그런 소리는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그러지 마십시오. 차라리 태도를 분명히 해주십시오. 이번 당대회의 결정은 대중정당 노선을 포기한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그렇다고 말씀해주십시오. 그래서 당원들이 각자 알아서 판단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십시오.

    그래야 진정 독자적 진보좌파정당을 고집하는 당원들만 따로 남아 당의 미래를 구축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남을 사람은 남고 떠날 사람은 떠나는 것이 올바른 일입니다. 당원총투표를 하라고 뽑아놓은 당대표가 낸 안건을 부결시킬 때부터 이 정도는 각오하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쯤도 예상 못하셨고 그런 각오도 없었다고 말씀하신다면 그보다 더 슬픈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게 논리적이고 논쟁적이고 전투적인 노동당의 핵심당원이 그런 말씀을 하신다면 그야말로 큰 실망이지요. 마지막 한번만이라도 당원을 주체로 세우는 일에 나서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좋은 날 되십시오. 아름다운 마음으로 다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노동당 당원 강범석 드림

     

    필자소개
    창원 현대위아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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