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와 나뭇꾼',
그들 아이의 시선으로
[그림책] <난 커서 바다표범이 될 거야>(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풀빛)
    2015년 07월 03일 03:1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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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커서 바다표범이 될 거야

『난 커서 바다표범이 될 거야』의 표지에는 한 사내아이가 수영복을 입고 해변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뒷모습이 제법 당당하고 의젓합니다.

도대체 이 꼬마는 바다표범과 어떤 사연이 있기에 커서 바다표범이 되려고 하는 걸까요? 저는 말리고 싶습니다. ‘얘야! 넌 사람이란다. 이번 생에는 사람의 꿈을 꾸렴. 바다표범이 되고 싶은 꿈은 다음 생에서 이루면 안 되겠니?’

그래도 한 꼬마를 바다표범이 되고 싶게 만든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바다표범

수영을 잘 하는 아이, 바다 속을 훤히 아는 엄마

난 수영이라면 언제나 잘 했어. 배운 적도 없는데……. (본문 중에서)

표지에서 본 꼬마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첫 문장부터 좀 찜찜합니다. 자기는 배운 적도 없는데 수영을 잘 한다고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수영을 배운 적이 없어서 수영을 잘 못하거든요. 과연 이 꼬마는 잘난 체를 하는 걸까요? 아니면 스스로 궁금해 하는 걸까요?

어부인 아빠가 고기잡이를 떠나면 엄마는 꼬마에게 바다 속에 사는 동물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런데 작가 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는 엄마의 바다 이야기를 여섯 페이지에 걸친 그림으로 보여줍니다. 여섯 페이지에 이어진 환상적인 그림들이야말로 그림책 『난 커서 바다표범이 될 거야』의 하이라이트입니다. 그리고 분명히 그림책 역사에 명장면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놀라웠어. 엄마는 어떻게 그런 것들을 다 알까? 엄마는 한 번도 바다 속에 들어가 본 적이 없는데…… 단 한 번도 바닷물에 발을 담근 적이 없는데…….(본문 중에서)

정말 신기한 일입니다. 꼬마는 수영을 배운 적이 없는데 수영을 잘 하고, 엄마는 바닷물에 발도 담근 적이 없는데 바다 속 세상을 훤히 알고 있습니다. 도대체 두 사람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요?

사람이 된 바다표범 이야기

우리나라에 『선녀와 나무꾼』이 있다면, 독일에는 『셀키』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무꾼이 선녀의 옷을 훔쳐 선녀와 결혼한 이야기가 『선녀와 나무꾼』이라면, 어부가 바다표범의 가죽을 훔쳐 바다표범과 결혼한 이야기가 『셀키』입니다. 선녀에게는 자신의 옷이 비행복인 것처럼, 바다표범에게는 자신의 가죽이 수영복인 셈입니다.

중요한 것은 작가 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는 전래된 『셀키』 이야기를 완전히 새롭게 완성했다는 사실입니다. 『셀키』든 『선녀와 나무꾼』이든 모든 옛날이야기는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누군가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방식이지요. 또한 『셀키』 이야기의 원래 주인공도 바다표범과 어부였을 겁니다.

그런데 작가 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는 독일에서는 누구나 알고 있는 『셀키』 이야기의 주인공을 어부와 바다표범이 아닌 그들의 아들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아들이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새롭게 완성했습니다. 정말이지 그림책에 딱 맞는 선택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선녀와 나무꾼』도 선녀와 나무꾼의 아이 입장에서 서술하면 전혀 새롭고 환상적인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저는 우리 그림책 작가들이 이 점에 주목해 주기를 바랍니다. 이미 알고 있는 좋은 이야기들이 주인공이나 화자를 바꾸는 과정을 통해 더 새롭게 태어날 수 있습니다.

존 세스카와 레인 스미스가 만든 『늑대가 들려주는 아기 돼지 삼 형제 이야기』도 좋은 예가 됩니다. 또한 그림책은 아니지만 『로빈슨 크루소』의 주인공을 바꾼 작품 『프라이데이, 프라이데이』도 기억에 남습니다.

새롭게 이야기하는 즐거움

『난 커서 바다표범이 될 거야』는 옛이야기를 어떻게 현대적이며 새로운 예술작품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준 걸작입니다. 더불어 우리가 알고 있는 옛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새롭게 들려주는 일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일인지 알려줍니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새롭게 전달하는 일, 바로 그것이 창작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엄마아빠가 되면 창작을 시작한 것입니다. 엄마아빠는 어린이를 만들고, 어린이 덕분에 이야기도 만들게 됩니다. 엄마아빠는 어린이 덕분에 작가가 됩니다.

예술은 가슴에 씨앗을 심는다

『난 커서 바다표범이 될 거야』는 누군가에게 반드시 보여주고 싶은, 조금 슬프지만 신비한 그림책입니다. 그 슬픔과 신비로움 때문에 누군가의 가슴에 영원히 아로새겨질 아름다운 예술작품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독자의 가슴 속에는 이런 생각이 싹틀지 모릅니다. 왜 인간은 선녀의 옷을 훔쳤을까? 왜 인간은 바다표범의 가죽을 훔쳤을까? 우리는 선녀의 자식인가? 우리는 바다표범의 자식인가? 옛날 사람들은 왜 이런 이야기를 만들었을까……. 참 궁금하지요?

필자소개
이루리
동화작가, 그림책 평론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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