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성장 시대의
    새로운 전력계획이 필요
    [에정칼럼] 에너지 미래 새 구상 필요
        2015년 07월 01일 04:3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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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법 개정을 두고 벌어진 청와대와 국회 사이의 힘겨루기로 국회의 일정이 전면 중단되었다. 그 때문에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전기본) 과정도 멈춰 섰다. 2013년 7월에 이루어진 전기사업법 개정에 따라 국회 상임의 보고를 해야 하지만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회 상임위 보고에서 문제점이 지적된다고 하더라도, 산업부가 2029년까지 13기의 핵발전소 추가 건설 계획을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 지난 6월 18일의 공청회가 그랬던 것처럼, 국회 상임위 보고도 요식행위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최종 결정은 전력정책심의위원회의 권한이지만 산업부와 한 몸이기 때문이다.

    공청회

    6월 18일 공청회에서 항의하는 환경단체와 지역주민들(사진=양이원영)

    녹색당과 환경단체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핵발전소나 송전탑 지역주민들에게 2년마다 수립되는 전기본은 언제나 큰 관심사가 되어 왔다. 향후 15년간 한국의 전력수요량이 어느 정도나 될지를 예측하고, 어떤 종류의 발전소를 얼마나 지을지 그리고 발전소와 수요처를 연결하는 송전선로를 어디서 어디로 건설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이 전기본이기 때문이다.

    지난 공청회에 삼척, 영덕 그리고 가로림만의 주민들은 핵발전소와 조력발전소 건설 계획을 반대하기 위해서 먼 길을 달려 왔었다. 한국사회의 ‘탈핵’을 주장하는 녹색당과 다른 진보정당 그리고 여러 환경단체들도 핵발전 확대정책을 멈추고 에너지전환을 모색하자며 모였다. 그러나 가방 검사까지 감수하면서도 어렵게 입장한 공청회장에서는 요식행위만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대다수 사람들은 입장도 하지 못했다.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초안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가득했다. 우선 정부는 목표수요―수요관리를 통해서 저감한 전력수요―기준으로 하였을 경우 2029년까지 연평균 2.2%의 증가율을 나타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런 예측을 하는데 사용된 가정들이 현실적인지 그리고 타당한 것인지 의문이다.

    전력수요 예측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래 GDP 전망치부터 문제다. 정부는 2029년까지 연평균 3.06%의 증가율을 예측했지만,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많은 전문가들의 평가에 부합하지 않는다. 특히 2015년 GDP 성장률로 예측한 3.5%도 터무니없는 것으로, 최근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3.1%로 성장률을 조정한다는 발표와 어긋난다. 또한 전기요금은 물가상승율 전망치의 절반 정도만을 반영하였으며 그 때문에 겨울철 난방을 전기에 의존시키는 전력화 경향이 지속된다고 가정하였다.

    이 모든 것들이 전력수요를 ‘과다예측’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것은 곧바로 추가적인 발전소 건설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이번 전력수급계획에서는 6차 때까지 결정된 발전설비 이외에 추가적으로 2기의 핵발전소를 더 짓겠다는 계획을 제시하고 있다.

    6차 때 과잉 반영된 석탄 화력발전소 4기를 취소하는 대신에 결정된 계획이라고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친환경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이미 건설이 불가능한 석탄발전 계획을 포기하면서 하는 생각내기가 아숩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과다예측된 수요에 근거하여 핵발전소 건설계획이다. 지금도 남아돌고 있는 발전소 상황은 더욱 악화될 뿐이다. 핵발전소 1기 건설에 필요한 예산이 3조5천억 원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쓰지도 못할 것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부어 ‘매몰비용’으로 낭비시킬 것이다. 물론 그 예산은 발전소 건설 사업을 수주하는 삼성, 현대, 두산 등과 같은 대기업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가겠지만.

    그러나 정부와 한전은 별 걱정이 없어 보인다. 없던 수요도 만들어 내며 과대예측된 수요와 신규 발전소 건설의 정당성을 증명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소위 ‘자기충족적 예언’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80년대 거의 70%까지 육박하던 설비 예비율(필요 전력량과 발전 설비량의 비율) 상황에서 몇 차례의 전기요금 인하를 통해 수요를 끌어 올렸던 경험이 있다. 이러한 경험 때문에 산업부는 발전소를 지어 놓고 당장은 놀려 두더라도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모두 가동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여기서 산업부가 최근에 뜬금없이 전기요금을 한시적으로 낮추겠다고 발표했는지를 이해할 길도 생긴다. 정부의 명분은 여름철 가정의 냉방 전기요금과 중소기업들의 생산비용을 낮춰 주겠다는 것이지만, 과잉 설비된 발전소의 전력을 소비시키기 위한 방안이라는 해석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6차와 비교해보면 7차 전기본의 수요예측치는 상당히 낮아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이 7차 수요예측치의 타당성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7차 수요예측조차도 과다예측되었다고 비판하고 있는 상황이니, 6차 수요예측의 과다함은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MB 정권 말미에 급하게 통과된 6차 계획은 과다 수요예측을 근거로 12기나 되는 석탄 발전소 건설계획을 반영하면서 기업들에게 큰 선물을 주었는데, 그 후 감사원은 그 과정에서 불합리한 계획이 포함되었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몇몇 발전소 건설 계획을 무리하게 포함시키는 특혜를 주려고 수요예측을 과다예측한 것이라는 비판을 살 수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7차 수요예측이 6차 수요예측보다 낮아지는 것은 획기적인 일이라기보다는 당연한 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얼마나 낮아져야 합당한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정부가 전문가들에 맡겨서 보다 객관적으로 엄밀하게 예측을 하면 될 일이라고 손쉽게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미 소위 전문가들이 충분히 참여하고 있으며 예측력이 높은 모형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문제는 전문가의 참여 정도나 모형 예측력의 우수성 정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이 얼마나 투명하고 민주적이며 무엇보다도 다양한 의견에 얼마나 충분히 개방적인가 하는 점이다. 어떻게 하면 전력 공급을 안정적으로 신속하게 이루어낼 것인가 하는 개발주의 시대의 인식을 고수하는 전문가들에게는 전력수요를 줄이고 더 이상 핵발전소 짓지 말자는 이야기는 허황된 이야기에 불과할 것이다.

    다시 강조하건데 전력수요 예측이나 신규 발전소 건설 계획 등을 담는 전기본은 전문가들의 과학적 계산의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 계획의 수립이 사회적 갈등을 내재한 정치․사회적 문제라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또한 기술․경제적적 문제로 치부해온 낡은 인식과 제도를 바꿔야 한다.

    최근의 법 개정으로 전기본의 수립시 국회에 보고하는 것이 의무화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이 계획의 결정은 산업부 관료와 전문가들로만 구성되는 전력정책심의위원회의 권한으로 남아 있다. 그들의 관심사는 더 많은 전력 수요와 더 많은 발전소 건설에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는 저성장 시대에 삶의 질을 추구해야 하는 현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현존하는 발전설비가 생산할 수 있는 수준 안에서 전력을 아끼고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 에너지 서비스의 질을 높일 것인가 그리고 에너지 부정의를 완화시킬 것인가 하는 질문은 결코 기술경제적 차원에서 다뤄질 수 없는 것이다.

    공청회장 앞에서 나눠진 유인물을 통해, 녹색당은 “당신은 더 많은 전기가 필요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이 질문은 최근에 발표한 녹색당의 대안 시나리오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에너지 부정의를 야기하는 핵발전와 송전탑을 더 지어야 하는 전력수요 증가를 멈추면 어떨까. 지금 지어져 있는 발전 설비량도 상당한데, 그 범위 내에서만 전력을 사용하고 조금씩 줄여 가면 어떨까. 우리가 전력의 ‘절대 빈곤’ 상황에서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닌가. 거의 제기되지 않았던 질문들로부터 시작하자.

    더불어 온실가스 배출이 상대적으로 작고 지역분산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LNG 열병합발전과 그리고 재생가능에너지 발전을 확대해야 한다는 오랜 주장을 결합시키면, 새로운 전력 계획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는 결코 뜬 구름 잡는 질문은 아니다. 이미 전력수요량 증가율은 급속히 둔화되어 작년에는 0.6% 불과했으며, 전력수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GDP 증가율도 계속 낮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소위 저성장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질문과 현실 변화는 한국 사회의 에너지 미래를 새로 구상해볼 수 있는 최적의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새로운 미래에 대한 상상과 추진력은 기존 시스템에 얽매인 관료와 전문가로부터 나오기 어렵다. 일상을 살아가며 다양한 문제에 대해서 상식적인 시선으로 살펴보고 판단할 수 있는 시민들의 집합적인 토론이 오히려 우리의 미래를 개척하는데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시민들에게 그럴 기회가 거의 제공되지 않았지만, 2004년에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가 개최한 ‘전력정책의 미래에 관한 시민합의회의’에서 그 가능성을 충분히 확인했다. 다양한 연령, 성별과 직업을 가진 일반 시민들이 전문가들과 토론하면서 만들어낸 결과는 전문가들의 어떤 연구와 토론에 비해 부족함이 없었다.

    오히려 지속가능성과 형평성 차원에서 전문가들은 쉽게 도달하지 못하는 결과―신규 원전 건설의 중지―를 제시하고 있었다. 후쿠시마 핵사고가 발생하기 전이며, 이미 10년 전에 있었던 ‘사건’이었다. 이 때의 선도적 노력을 이어받고 본격화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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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안 에너지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할 시민패널을 모집합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시민참여형 대안적 에너지 사니라오 사업’을 진행하면서, 이에 참여할 시민패널을 모집하고 있다. 시민들의 상식과 전문가들의 조언을 나침판 삼아 한국의 대안적 에너지를 함께 토론할 기회에 도전해볼 수 있다. 서울, 인천, 경기도의 수도권에 거주하는 시민들이라는 나이, 성별, 직업에 상관없이 모두 신청할 수 있다. 신청 마감은 7월 17일까지 이며, 여기(관련 홈페이지 링크)에서 신청할 수 있다. 참가자는 운영위원회의 심사를 통해 선정되며 개별 통보될 예정이다. 자세한 내용은 사이트 참조.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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