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 민중의
    역사적 승리를 기원하며
    [기고] 긴축 강요 트로이카에 맞서야
        2015년 06월 30일 01:1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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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 상황이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6월 27일 하루 동안에만 6억 유로의 돈이 은행에서 빠져나갔고, 자동현금입출금기의 1/3 가량에서 돈을 뽑기가 불가능해졌다. 그러자 시리자 정부는 당장 은행 휴업과 자본통제 조치를 취하고 나섰다.

    지금의 충돌은 시리자가 당선됐을 때부터 예고됐다. 시리자는 유로존 지배계급(트로이카)이 강요하는 긴축을 중단시켜 줄 것이란 기대 속에 급진좌파 정권을 수립했다. 하지만 2월말의 첫 대결에서 시리자는 유로그룹의 압력에 타협하며 4개월 후로 정면대결을 미뤄버렸다.

    당시에 시리자가 트로이카에게 양보했던 것들은 그리스 민중들에게 약속한 공약과는 모순되는 내용이었다. 아마도 시리자는 일단 시간을 벌고, 더 잘 준비해서 협상한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유로존의 신자유주의 규칙을 지키면서 시리자의 공약을 이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드러나 왔다.

    안타깝게도 지난 4개월 동안 시리자는 유로그룹의 요구를 조금씩 받아들이며 후퇴해 왔다. 특히 항구 민영화를 지속하거나, 학생들의 농성에 경찰을 투입하거나, 이집트 학살자 알 시시와 반갑게 악수를 하는 장면 등이 지지자들을 실망시켜 왔다. 그리스 경제의 디폴트가 아니라 시리자 선거 공약의 디폴트가 다가온다는 걱정이 나오기도 했다.

    재무장관 바루파키스도 “우리는 그들[트로이카]을 향해 4분의 3만큼 다가갔다”고 후퇴를 인정했다. 동시에 그는 “이제 그들이 우리를 향해 나머지 4분의 1만큼 다가와야 한다”며 유로존 지배계급에게 양보를 촉구했다. 하지만 현실은 바루파키스의 ‘게임이론’보다 계급투쟁의 이론으로 더 잘 설명됐다.

    트로이카는 ‘떡을 받아먹다가 결국 엄마를 잡아먹은 호랑이’같이 행동했다. 이미 청년실업률이 60%에 달하고, 연금이 절반이나 깍인 나라에서 저들은 가혹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갈취를 지속했다. 이것은 거의 마른 수건을 넘어서 쥐포에서 물기를 짜내는 수준이었다.

    저들은 자신들이 ‘구제’하려는 게 은행과 투기꾼들이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시리자 정부의 양보를 넘어서 붕괴를 원하고 있다는 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왜 트로이카는 이토록 인정사정 없었을까? 그것은 유로존 내에서 ‘좌파 정부를 선출해서 긴축을 약화·중단시킬 수 있다’는 약간의 희망마저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시리자의 집권 이후, 스페인, 포르투갈 등으로 번져가기 시작한 이런 희망의 싹을 잘라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저들은 ‘좌파 정부는 상황만 악화시킨다. 긴축 외 대안은 없다’는 것을 증명시키며 쓰디쓴 환멸을 심어주고 싶어했다.

    역사적 선택

    4개월 유예된 결판이 최근 다시 시작되자 트로이카는,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그렉시트)도 감수할 수 있다는 얘기까지 흘렸다. ‘그렉시트가 되도 큰일은 없을 것이고 통제 가능하다’며 배짱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스의 경제규모, 교역량이 유로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2%밖에 안 되며, 그리스에게 빚을 못 받아낸다고 흔들릴 나라는 없다’는 거였다. 마치 파업에 대비해 물량을 빼돌려놓은 자본가가 ‘파업할테면 해봐라’하는 것과 비슷했다.

    반면에 시리자는 ‘유로존에서 탈퇴할 생각은 없다’며 치킨게임의 기 싸움에서 밀리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지난주 초만 해도 시리자는 한발 더 물러섰다. 연금보험료와 부가가치세를 조금은 올릴 수 있다며 스스로 설정했던 ‘레드라인’을 살짝 넘어갔다.

    하지만 트로이카는 그 정도에 만족하지 않았고 완전한 굴복을 요구했다. 시리자 정부의 목줄을 끊어버릴 기세였던 셈이다. 하지만 ‘정치적 자살’을 강요당한 시리자는 더 이상은 안 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6월 27일, 유로그룹이 강요한 굴복을 거부하며 그리스 총리 치프라스가 한 연설은 역사적 격변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 그는 유로그룹이 그리스의 민주주의와 민중들에게 가혹하고 징벌적이며 굴복을 강요하는 최후통첩을 했다며 이렇게 호소했다.

    ‘우리의 어깨에 그리스의 민주주의와 주권을 위해 투쟁할 역사적인 책임이 주어졌습니다. 최후통첩적 공갈에 나는 자랑스럽고 주권적 길로 대응할 것을 호소합니다. 유럽과 세계에 울려 퍼질 단호한 민주주의의 응답을 보냅시다. 우리를, 미래 세대를, 그리스의 역사를, 민중의 존엄과 자주권을 위해 결정합시다.’

    이것은 단지 치프라스 개인이나 시리자 지도부의 용기와 의지로만 봐서는 안 된다. 협상테이블에는 시리자 정부와 유로그룹이 앉았지만, 진정한 동력은 테이블 밖에서 작동하고 있었다. 시리자를 뽑았고 공약 이행을 요구해 온 그리스 민중의 압력이 그것이다.

    이 압력은 시리자 내 좌파(‘좌파플랫폼’) 목소리의 강화로 나타나왔다. 이미 지난 2월말 치프라스 정부의 양보안에 대해서 시리자 중앙위에서는 41%의 반대표가 나왔다. 나아가 한 달 전에는 ‘긴축을 거부하고 그렉시트를 불사하자’는 ‘좌파플랫폼’의 안이 시리자 중앙위에서 75:95로 아깝게 부결됐다. 이런 압력과 거리의 투쟁들이 시리자 지도부가 완전한 굴복을 일단 거부하도록 하는 데 힘이 됐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역사적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물론 최근까지도 그리스 국민 여론조사에서 ‘그렉시트는 피하고 싶다’는 의견이 더 많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의견이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어 왔다는 것도 같이 봐야 한다. 또 시리자 지도부가 유로그룹의 공갈협박안 부결을 호소하고 있다는 것도 말이다.

    결국 투표 결과가 무엇일지, 투표 이후 무슨 일이 벌어질 지는 정해져있지 않다. 그것은 남은 일주일 동안 그리스와 유럽의 거리에서 어떤 압력과 열기가 분출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지금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그리스와 유럽의 민중들이다. 지긋지긋한 긴축에 고통받아 온 그들이 어떤 결심과 행동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따라서 시리자 정부는 여기서 동요하거나 물러서지 말아야 한다. 칠레 아옌데 정부는 동요하고 후퇴하다가 쿠데타의 기회를 주고 말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시리자 안팎의 좌파는 ‘시리자는 어차피 굴복할 것이고, 그러면 우리에게 기회가 올 것’이라는 식의 태도를 취해선 안 된다. 지금 함께 힘을 모아서 더 많은 행동과 부결 투표를 호소해야 한다. 나아가 자본 통제, 은행 국유화, 부자 증세, 일자리와 복지 확대, 임금과 연금 인상 등을 위한 투쟁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그리스 민중이 정말 유로그룹의 공갈협박안을 거부하고, 그것이 그렉시트로 이어진다면 그 다음은 무엇일까? 2008년에도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이 그토록 엄청난 파장을 낳을지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당시에도 주류경제학자와 언론들은 ‘통제 가능할 것’이라고 떠들었다. ‘희망 없는 세상에서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인간이 나아갈 길’을 열어가기 시작한 그리스 민중에게 지지와 연대를 보낸다.

    필자소개
    변혁재장전 준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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