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포자를 위한
대안 학원을 생각하며
[교육담론] 낙오자 없는 수학공부
    2015년 06월 29일 05:1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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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초반 나는 1년 정도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쳤다. 내 수업 중에는 중1 5명 되는 반이 있었다. 반에는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침울하고 조용한 녀석이 하나 있었다.

녀석은 수업시간 내내 숨을 죽이고 수업을 참아내고 있었다. 녀석은 수업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었고 엄마의 강권에 따라 고통스러운 일정을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걸 알면서도 이른바 중위 수준에 맞춰 수업을 강행(?)했다. 당시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지금도 녀석의 얼굴과 표정을 선명히 기억한다. 그리고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 녀석에게 아직도 채무감을 갖고 있다.

90년대의 기억이 2012년 내가 학원을 하면서 구상했던 학원 시스템의 배경이 되었다. 한 명의 낙오자도 없게 시스템을 짜는 것…. 가능한 학생들의 공부시간을 유연하게 설계하는 것, 가능한 1:1로 수업하는 것, 여러 학생을 보게 되더라도 학생들의 수준과 학년에 따라 달리 수업 내용을 편성하는 것 등이다.

나는 지난 3년여의 경험을 통해 내가 구상했던 시스템이 수포자 문제 해결에서 매우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수포자 문제의 원인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초등 고학년~중등 3학년 정도까지의 과잉 물량식 공부, 다른 하나는 중3 이후 적절한 맞춤형 공부의 부재이다.(초등 고학년 이전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초등 고학년에서 중등 3학년 정도까지는 연산 위주의 과잉공부가 문제이다. 이 시기는 즐겁게 놀고 자유롭게 책을 읽는 것이 좋다. 수학을 하더라도 기본 개념을 튼튼히 하고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 주는 것이 옳다.

그런데 대부분의 공•사교육은 학생들의 수준에 맞지 않는 공부를 너무 반복해서 많이 시킨다. 대부분의 수학 포기자들이나 수학을 싫어하는 학생들은 이 과정에서 발생한다. 이른바 방정식•부등식•함수 등의 응용문제 등은 너무 어렵다. 유클리드 기하에서 보조선을 그어 푸는 문제들도 그렇다.

시험을 앞두고 이런 문제들을 반복해서 풀다보면 학생들은 생각하는 습관을 잊어버리고 풀이를 외우게 된다. 이른바 유형별 공략법이다. 시중의 참고서들 다수가 모든 유형을 잡았다며 선전하는 경우하곤 하는데 수학을 유형화했다는 말은 결국 수학을 기계화시켰다는 말로 수학(생각하지 말고 외우라는)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의 수학 경향과 참고서들은 70~80년대에 비해 보다 보수화되었다)

이런 학생들에게는 학원에 오가는 시간을 자유롭게 해 줄 필요가 있다. 학원에 와서도 너무 고통스럽지 않게 학원을 오가는 과정이 부담스럽지 않도록 해주어야 한다. 학원에 오면 고등학교에 필요한 기본 개념을 튼튼히 잡고 간간히 생각하는 문제를 섞어 주는 것이 좋다. 그것도 풀 수 있는 문제를 주어 수학에 대한 흥미와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조절하는 것이 옳다.

수포자의 또 한 번의 대량 발생 시점은 중3 이후이다. 이 시기에는 학생에 따른 철저한 맞춤형 강의가 필요하다. 어려운 개념이 등장하고 공부 분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가장 위험한 것은 학생들의 자의적인 연산 버릇과 기계적인 손놀림이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철저히 학생에 따른 맞춤형 수업이 진행되어야 한다.

반면 대부분의 수업은 중상위권을 대상으로 한 천편일률적인 강의식 수업이다. 학생들은 학교, 학원, 과외를 오가며 비슷비슷한 강의를 듣다 끝난다. 그러나 정작 수포자들 대부분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중상위권을 대상으로 한 어려운 문제 풀이가 아니라 자신의 옆에서 교묘히 은폐되어 있는 취약점을 교정해 줄 선생이다. 학원 초창기 우리 학원이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시스템 때문이었다. (나는 지금도 중3 이상 중위권 이하 학생들에게는 강의식 수업을 하지 않는다. 수업을 듣는 학생이 5명이면 가능한 학생들 사이를 누비고 다니며 연산 하나하나를 바로 잡는다)

수포자를 위한 대안학원을 만들면 어떨까?

공간은 편안하고 쾌적하게 설계한다. 초등 고학년~중2 녀석들에게 이 공간은 노는 공간과 공부하는 공간이 물리적으로 구분되지 않을 것이다. 수업을 하는 중간중간 녀석들이 친구들과 붙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게 스마트폰을 개방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중3 이상에게는 장시간 공부할 수 있는 편안함이 필요하다. 녀석은 공부하는 중간중간 휴식도 취하고 필요하면 잘 수도 있어야 한다.

교사는 30대 초반의 청년 인텔리나 50대의 중년 인텔리로 구성한다. 이들 중 공부하는 것과 학생들을 좋아하고 소박한 월급에 동의할 수 있는 사람이면 된다. 학원의 시간표는 교사가 아니라 학생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이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대외 활동에 바쁜 사람은 곤란하다. (외향적인 사람들이 사회를 주도하기 때문에 이런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지만 내향적인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일단 나부터 그러니까. 그들은 사람들 만나는 것보다 책보며 지낸 저녁이 더 재미있을 수 있다)

수포자를 위한 대안학원은 다른 컨셉의 교육기관과 함께 운영될 수 있다. 가령 학생부종합전형을 겨냥한 진로와 학습을 병행하는 프로그램,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사업 프로그램, 그냥 영리학원, 검정고시반, 성인들을 위한 평생교육 프로그램 등과 함께 한 공간을 써도 좋고 적당히 떨어진 다른 공간을 사용하며 협력해도 좋을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일선 현장의 교사들과 협력하여 판을 키울 수도 있겠다.

필자소개
민경우
전 범민련 사무처장이었고, 현재는 의견공동체 ‘대안과 미래’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서울 금천지역에서 ‘교육생협’을 지향하면서 청소년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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