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당 당대회, 진보결집 "반대"
    당원총투표 부의, 284명 중 118명 찬성으로 부결
        2015년 06월 29일 11:5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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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쟁을 거듭했던 노동당의 ‘진보결집 당원총투표 부의의 건’이 결국 노동당 대의원대회에서 부결됐다. 진보결집 당원총투표를 핵심 공약으로 걸고 당선돼 6개월간 추진 과정을 밟아 온 노동당 나경채 대표 등 지도부의 거취 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노동당은 28일 오후 2시 서울 강서구민회관에서 2015년 정기 당대회를 열었다. 이날 당대회에서 핵심 안건은 ‘진보결집 당원총투표 부의의 건’이었다. 진보결집에 대한 찬반 여부를 당원들에게 물어도 될지에 대해 대의원에 우선 허락을 구하는 것이다.

    대표 발의자로 나선 나경채 대표는 과거의 3번의 조직진로 결정 과정에서 당원이 배제돼왔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당원총투표 부의의 건을 통과시켜달라고 발언했다. 하지만 재석 대의원 284명 중 의결정족수인 143명을 넘지 못하고, 찬성 118명으로 부결됐다.

    나 대표는 조직진로에 관한 경험 3가지를 언급하며, 안건 통과를 호소했다. 그는 2008년 2월 3일 민주노동당 분당, 2011년 9월 4일 진보신당 분열, 2012년 2월 19일 진보신당과 사회당의 합당을 언급하며 그 과정에 당원들의 총의는 배제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뼈아픈 전례가 있는 만큼 이번에는 당원들에게 당의 진로를 ‘선택할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나 대표는 “절대 다수의 당원들은 이 과정(당의 진로를 선택하는 결정)에 참여하지 못했다. 저는 당대표로서 찬반이 확연히 갈릴 수밖에 없는 주제를, 동지들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과 트라우마를 함께 경험한 입장에서 두려움을 이기고 토론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보다 가열차고 뜨겁게 논쟁해 이 과정에서 전체 당원들의 의사만 존중하자, 이것을 동지 여러분께 호소하고 싶었다”고 주장했다.

    앞서 당원총투표 부의의 건이 대의원대회에서 다뤄질 것이라고 결정된 후에도 당 내에선 이견이 분분했다. 당 대표 당선으로 이미 진보결집 추진에 대한 정당성을 얻은 상황에서 ‘통합’이 아닌 ‘추진’에 대한 총투표를 왜 하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나 대표는 진보결집에 관한 당원총투표를 부의할지에 대한 안건을 부친 이유에 대해 ‘중간 평가’ 혹은 ‘중간 과정’이 필요하다고 여겼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부에선 노동당 독자노선을 유지하자는 측을 압박하는 수단이 아니냐는 주장도 나왔다.

    나 대표는 “제가 대표발의자로서 이 안을 발의한 것에 대해 매우 따가운 질책과 질문, 비판이 있었다”며 “다만 우리 동지들에게 진보결집을 추진하겠다는 대표 공약을 걸고 당대표 선거를 치렀고 당선이 됐다. 진보결집 추진에 대해 바깥 세력들은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기초적인 의지가 확인돼야만 우리 동지들도 그들과 손을 잡고 진보결집을 나아갈 수 있을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 노동당만의 계획으로 혹은 저만의 계획으로 우리 당원 동지들의 뜻을 물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진보결집 추진과 관련된 최소한의 기본원칙과 입장, 과제, 의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중간과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안건을 발의한 취지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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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원총투표 안건 표결 모습(사진=참세상 김용욱)

    이날 당대회에선 진보 결집 자체에 대한 반대보다는 아직 그 조건이 성숙되지 않았고, 제출된 안건의 불완전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들이 반대 토론의 주된 기조였다. 진보정치의 결집 자체를 반대하기는 어렵다는 흐름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반대토론자로 나선 이장규 대의원은 “제대로 된 진보결집이라면 찬성한다. 하지만 현재의 어정쩡한 총투표는 당 분란만 자초할 뿐”이라며 “(이 안건은) 중간평가인 셈인데, 중간평가를 총투표로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쟁의행위에 대한 찬반을 투표하든지, 최종임단협 최종안에 대해 절차를 일임하지 중간에 어정쩡한 상태에서 묻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이 안건에 대해 최종결정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종결정이 될 수 있다. 부결되면 더 이상 진행 못 한다. 그런데 가결되면 최종 결정이 아니다. 이런 어정쩡한 안건에 서로 싸울 것이 아니라 정확히 최종결정으로서 총투표와 명백한 절차가 담긴 당헌개정안을 올리며 된다”고 말했다.

    그는 “저는 진보결집에 절대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도 “하지만 9월까지 결집 완료 이렇게 시한 못 박고 하면 안 된다. 제대로 된 결집하려면 최소한 1, 2년은 서로 논의해야 한다. 시한 못 박지 말고 계속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보정당의 중요한 축을 차지하던 노동당이 쇠락해 가고 있다는 일부의 시선을 의식한 토론자는 노동당은 노동당만으로 충분히 희망이 있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독자 노선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수 대의원은 “노동당이 망했다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우리 당처럼 청년과 학생이 활발한 곳 많지 않다. 알바노조도 우리 노동당 당원이다. 전국적인 조직을 갖추고 모든 분야에서 캠페인 능력을 갖춘 곳은 노동당이 유일하다. 이런 데 우리에게 희망이 없나”라고 말했다.

    이장우 대의원도 “제가 노동당을 선택한 것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정의당, 통합진보당, 새정치연합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며 “대표는 현재 노동당으로는 힘들다, 새로운 판 만들어보자는 것 같다. 그 평가에 작년 선거에서 유의미하지 못한 결과를 낸 것이다. 하지만 대중이 작년 선거에서 노동당을 찍은 것은 대충 선택한 게 아니다. 그것을 믿어야 한다. 판단이 다르기 때문에 물어볼 것이 아니라 정말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찬성 토론자는 하나로 모인 진보정당을 원하는 유권자의 물음에 답해야 할 때가 왔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경남도의원인 여영국 대의원은 “지난주 지역 순회 토론회 말미에 이 안건을 제출한 나경채 대표와 지도부에 쓴 소리 겸해서 이 안이 우리 당원들에게 성립되려면 최종결과물을 가지고 물어야 하는데 왜 준비 못했나, 이 안건을 철회하고 최종결과물로 추진해달라고 했다”면서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자리까지 왔다”며 이날 부의된 안건에 대한 비판적 시간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경남 상황 잘 알 것이다. 무상급식 중단에 맞서서 운동 하다가 7월부터 홍준표 소환운동을 한다. 노동당이 중심에 서 왔다. 학부모 강연 많이 다니는데, 그 분들이 진보정당 통합은 언제 되나, 질문 많이 한다. 그러나 그 정치적 물음에 답할 수가 없다”며 “새정치연합은, 비록 해산됐지만 통합진보당의 성과물을 챙겨가고 있다. 노동당은 우리 당에 대한 자부심은 있지만 노동정치, 진보정당의 대표성을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 이것을 제대로 만들어내는 것이 진보통합의 길”이라며 당원총투표 찬성 의견을 피력했다.

    김종철 대의원은 우선 안건이 불충분하다는 비판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새로운 세력이 포함된 최종합의안 다시 만들고 당원총투표를 최종결정할 수 있는 당헌 개정안 특별결의를 ‘당의 미래’에 제안한 바 있다. 그에 대한 답변이 거부라 지금의 당원총투표 안건이 불안한 채로 올라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종철 대의원은 또 “지금 여러분 마음속에 국회로 꼭 보내고 싶은 우리 당원 한 명은 계신가. 우리에겐 꿈이 있다. 최소한 교육비, 주거비, 의료비 걱정 없는 사회, 억울해서 자살하는 사람이 없는 사회가 꿈이다. 우리 동지, 동료, 가족, 민중의 꿈을 위해 정말 노력 많이 했다. 거리에서 투쟁하고 알바노조는 최저임금 1만원을 위해 경총에 (규탄하러) 갔다”면서 “하지만 훌륭한 후보 한 사람 반드시 국회 보내서 경총 뛰어 들어가 최저임금 1만원이 맞다고 할 의원이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날선 토론도 있었지만 당이 쪼개지느냐, 마냐를 결정할 정도의 안건이었기 때문에 착잡한 마음을 드러내며 눈물을 흘리는 대의원도 더러 있었다.

    남가현 대의원은 “꿈이 있었다. 정치를 통해 세상을 바꾸자, 그저 그 꿈 하나”라면서 “노동당이 망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동당이 망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꿈이 있기 때문이다. 더 큰 대중적 진보정당 통해서 세상을 바꾸겠다는 꿈이 있기 때문”이라며 잠시 울먹이기도 했다.

    그는 “당직자로 3년을 살았다. 월급도 받지 못했지만 행복한 당직자였다”며 “어렵다고 도망가겠다는 게 아니다. 우리의 정치를 할 수 있으면 언제까지든 버텨낼 수 있다. 그런데 말들이 아프다. 칼날 같은 말들이 우리 당 안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부족할 수 있다. 6.4 선언 내용이 맘에 들지 않는 분들이 있을 수 있다. 진보결집이 틀렸다고 하실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안건은 그저 당원들의 뜻을 한번 물어보자는 안건 아닌가. 협상 통해 제대로 된 정당의 상을 만들지 못한다면 저 역시 마지막 당대회에서 반대할 것이다. 그걸 믿지 못하시겠다는 건가”라며 “처음 정당을 시작하면서 갖게 된 꿈들이 있지 않나. 동지들, 서로의 마음을 믿어주셨으면 좋겠다. 우리가 새로운 정당을 만들든, 이 당을 발전 시켜나가든 서로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이 없으면 그 어떤 것도 될 수 없지 않나”라며 안건 통과를 호소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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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각 5명의 찬반토론자가 5분가량의 토론을 이어간 후 즉시 표결에 들어갔다. 표결 현장은 그 격렬한 찬반 토론의 분위기와 달리 조용했다. 각자 다른 의견을 개진하고 결국 부결로 끝이 났지만 대의원들은 자리에 일어서서 당가를 불렀고, 의장이 폐회를 선언했다.

    노동당의 진보결집을 이끌었던 나경채 대표는 이날 폐회 후 기자와 만나 “진보정치가 위기를 딛고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는 것에 근본적으로 부정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며 “다만 현실적으로 지금 추진되고 있는 과정과 방법에 대한 문제의식이 컸다는 측면에서의 결과라고 본다”고 밝혔다.

    나 대표는 “진보결집을 다른 방식으로 추진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찾아보겠다”면서 “무엇보다도 이번 과정을 통해 진보정치결집이 이뤄지길 바랐던 많은 당원들 뿐 아니라 노동자, 서민이 계셨는데 미안하다. 함께 논의를 이끌어 왔던 노동당을 제외한 3개 단체 대표 등에도 앞으로는 조금 더 어려운 길을 말씀드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돼서 미안한 마음”이라고 전했다.

    나 대표의 대표 공약이 부결된 만큼 당내에선 나 대표를 비롯한 진보결집을 이끈 지도부에 대한 거취 문제가 남았다. 이에 대해 그는 “고민이 된다. 지금 상황에서 이 논의를 지속하는 것은 어려워졌다는 측면에서 제가 가진 정치방침과 조직방침이 불가능해진 것을 인정한다”며 “거취에 대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여기고 있다. 다만 이 문제와 관련해서 가볍게 저 혼자만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당 내외 여러분들의 의견을 들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당대회에는 진보결집을 이끄는 4개 조직의 대표인 정의당 천호선 대표·국민모임 김세균 대표·노동정치연대 양경규 대표와 녹색당 이유진 공동운영위원장, 체포영장으로 발이 묶인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을 대신해 민주노총 김경자 부위원장이 참석해 연대사를 했다.

    노동당 당대회에서 진보결집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사실상 조직적 거부 입장을 밝힌 상태에서 노동당 내부와 노동당 외부에서 진보정치의 결집과 재편을 추진하는 흐름은 일정한 방향 수정이 예상된다. 진보정치의 결집 추진 흐름은 지속되겠지만 노동당이 이를 조직적으로 거부한 상태에서 새로운 방향과 주체 재설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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