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 차별의 물질적 토대는?
    [책소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여성해방론』(알렉산드라 콜론타이 외/ 책갈피)
        2015년 06월 27일 09:4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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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련 붕괴(1991년) 이후 한국의 여성운동에서는 마르크스주의를 스탈린주의와 동일시하면서 여성해방과 무관한 것으로 간단히 기각하는 경향들이 주류가 됐다. 여성 억압에 대한 유물론적 분석을 거부하고 가족제도를 자본주의 착취 구조에서 분리해 남성의 지배욕에 따라 작동하는 것으로 설명하는 분석들이 페미니즘의 주류를 이뤘다.

    여성 차별을 더 넓은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와 체제 운영 원리에 근거해 파악하지 않다 보니 다양한 여성 차별이 남성의 욕망이나 심리 탓으로 설명되기 일쑤였고, 국가나 기업이 자행하는 여성 차별도 계급을 초월한 남성들의 공모로 흔히 설명됐다.

    이런 분석은 여성의 삶이 역사적으로 크게 변화해 온 것과, 특히 현대 자본주의에서 여성이 처한 모순된 현실(많은 평등 조처가 제도화되고 성과 결혼이나 가족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개방적으로 바뀌면서 여성의 권리가 신장되는 반면, 다수 여성의 삶이 크게 나아지지 않거나 심지어 더욱 악화되기도 하는)을 종합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여성 차별의 물질적 토대를 파악하지 못함으로써 여성해방을 어떻게 이룰 수 있는지 그 전망과 전략을 제시하지 못했다.

    여성해방론

    평등을 강화하는 개혁 입법들이 있었지만, 자본주의의 구조는 그대로 남음으로써 그런 개혁은 종종 상징적 조처에 머물렀고 흔히 정치인들의 생색내기에 그쳤다. 경제 위기를 겪으며 각국 정부가 시행한 내핍 정책들로 말미암아 노동계급 여성들에게 법적 개선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더욱 커졌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적으로 유행한 신자유주의 정책들로 기업주와 부유층이 더욱 부유해지면서 여성들 사이의 양극화도 심화됐다. 이제 한국을 포함한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 극소수 여성이 정치·경제 권력의 핵심 부위에 포함돼 있지만, 대다수 여성의 삶은 그들과 현격히 다르다. 그뿐 아니라 노동계급 여성들의 삶은 지배계급 여성들이 같은 계급 남성들과 손잡고 벌이는 공격으로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2008년 위기로 드러난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가 지금껏 해결되지 않으면서 전 세계에서 노동계급과 서민의 삶을 파괴하고 있는 오늘날, 대다수 여성의 해방은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투쟁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여전히 심각한 여성 차별에 맞서 싸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자본주의에 대한 근원적이고 총체적인 비판과 함께 근본적 체제 변혁 전략을 제시할 수 있는 마르크스주의 이론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필요하다.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에서 착취와 여성 차별이 구조화되는 방식을 분석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하고, 무엇보다 자본주의 체제를 파괴할 수 있는 세력인 노동계급의 잠재력에 주목함으로써 여성해방을 성취할 수 있는 전략을 제공한다. 즉, 여성 노동자와 남성 노동자가 단결하고 차별받는 집단과 노동계급이 단결해, 차별과 착취의 근원인 자본주의를 분쇄하고 이윤이 아니라 인간의 필요를 우선시하는 사회를 건설할 때 진정한 평등과 여성해방의 길이 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의 격변기에 활동하며 사회의 근본적 변혁을 위해 치열하게 투쟁한 알렉산드라 콜론타이(1872~1952), 클라라 체트킨(1857~1933), 블라디미르 레닌(1870~1924), 레온 트로츠키(1879~1940)가 여성해방에 관해 쓰거나 연설한 내용을 골라 번역한 것이다.

    물론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여성해방을 위해 투쟁한 역사를 오늘날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불황이 장기화하고 국가 간 지정학적 갈등이 심화되는 시기에 불황과 세계대전 그리고 혁명의 시대를 살아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여성해방을 위해 내놓은 분석과 실천적 경험을 곱씹어 보는 건 여러모로 유익할 것이다.

    이 책은 여성해방을 위한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의 통찰과 실천을 이해하는 데 보탬이 되고, 근본적 사회변혁과 여성해방을 향한 투쟁에 영감을 불어넣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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