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경제 성격 좌담회③
    재벌, 금융자본의 사회적 통제가 핵심
        2012년 07월 19일 10:3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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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대선 일정이 다가오면서 경제민주화 담론이 다시 정치적 화두로 재부상하고 있다. 이번 좌담의 주제와 맞물린 주제이다.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재벌해체, 사민주의 등의 광범위한 주제로 진행된 경제 좌담회의 마지막 분을 싣는다. 좌담의 두 번째 부분을 보시려면 여기.(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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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종권 : 이야기의 마무리 국면으로 넘어가보자. 그럼 그 얘길 해야 되는데, <선택> 필자들이 제기한 것 중에서 가장 예민한 것이 재벌 문제보다는 박정희 문제인 것 같다. 박정희 문제, 결국 박정희의 경제정책. 노무현 김대중 시기의 경제정책 이걸 한 번 짚어보고 비교평가를 해야될 것 같다.

    정승일 :간단하게 말하자면 박정희식 경제 체제는 반노동, 친성장 체제이고 그리고 반시장 체제이다. 그런데 과연 친자본 체제인지는 좀 애매하다. 왜냐면 자본주의의 제1 원리는 수익성 추구이지 경제성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박정희 경제체제는 성장 지상주의 체제이지 수익성 지상주의 체제가 아니다. 경제성장을 제일로 추진하면서 자본의 수익성, 따라서 자본의 자유를 억제하고 통제했던 측면이 강하다. 그래서 자본가들의 입장에서는 협조를 하기는 했지만 항상 기분 나빴을 거다. 국가권력으로부터 통제를 당했으니까.

    정종권 :자본에게 떡고물도 주지만 철퇴도 가한다는 거죠..

    정승일 :박정희식 경제에 비한다면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반노동, 친시장 체제였다. 그리고 경제성장은 시장이 스스로 알아서 하겠지라고 방임하는 자유주의적 입장이었다. 반노동-친시장적 경제체제인데, 간단하게 말하면 그게 바로 신자유주의이다.

    남종석 :박정희정권이 반노동인 것은 명확하다. 그런데 친성장하고 친자본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결국 성장이란 거 자체가 소위 잉여를 재생산에 투자하는 것이다. 기업의 성장을 위해 재투자 하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친자본 맞다.

    더불어 그것은 반시장이 아니라 관리된 시장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주류경제학자들의 말마따나 결과적으로 봤을 때 박정희가 성장시킨 것은 결국 시장경제이다.

    정승일 : 그렇다면 이렇게 얘기하면 되겠다. 박정희는 반노동, 친성장, 친산업자본 체제라고 한다면,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반노동, 친자본인데, 그 중에서도 친금융자본 체제라고. 분명한 것은 친성장 체제, 즉 경제성장 제일주의 체제는 아니라는 거다

    남종석 :그렇게 보는 게 정확하다고 본다.

    정승일 :친 금융자본, 친 투기자본 체제가 바로 김대중-노무현 체제이다.

    남종석 :우리나라에서 75년도부터 97년도까지 노동소득 배분율이 계속 성장한다. 그런데 97년도부터 떨어져서 그 다음부터 안정된 상태로 60%를 계속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무슨 말인가하면 박정희 정권 때나 전두환 정권 때도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상승한 것이다. 노동소득배분율이 왜 커졌냐? 기업들이 계속 투자했기 때문이다.

    물론 문어발식 확장 있었다. 그래도 산업투자가 있었기 때문에 노동에 대한 수요가 있었고, 이게 노동자들의 임금협상력을 높여준 것이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 이후 구조조정이 지속되면서 노동이 약화된 것이다. .

    정승일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경제민주화한다고 하면서 재벌개혁, 금융개혁, 공공부문 개혁하고, 비정규직 대폭 늘리고, 대기업들은 하청 단가를 대폭 깎으면서 노동소득 분배율이 그렇게 악화된 거다.

    정승일 이종태 남종석

    남종석 :근데 김상조 선생이나 이런 분들은 지금의 모든 문제가 박정희때 다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이들에 따르면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구조조정도 박정희 때문이라는 건데, 이는 잘못된 것은 모두 박정희 탓으로 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때 민주화 세력들이 잘못된 것은 모두 친일파 탓으로 돌렸던 것과 매한가지 사고방식이다.

    정승일 :진보적 자유주의를 말하는 분들은 요즘 사람들이 가난한 것은 이명박 때문이고 나쁜 재벌 때문이라고 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근본적으로 신자유주의였기 때문이라는 말을 쉽게 수긍하지 않는다.

    남종석 :소위 잉여라는 게 내가 보기에는 착취의 다른 이름이다. 가치라는 개념을 받아들일것이냐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냐 하는 문제는 걸려 있지만, 저는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봤을 때 결국 잉여를 축적하는 건 착취란 생각이다.

    정승일 이종태 선생 같은 경우에는 복지를 더 강조하는데 저는 노동자계급이 성장해야 한다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투자를 해야 된다는 입장이다. 투자는 결국 잉여에서 투자할 수밖에 없는 거다. 그래서 배당을 해주는 것보다는 정부가 자본이 투자를 하도록 해야된다고 보는데 그 부분에선 박정희 정권의 경제정책이란 것을 우리가 무시할 수 있는가 라는 생각을 한다.

    이 논점에 대해서 과거에 좌파들은 박정희가 아니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거기에 우파들은 박정희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됐다. 이렇게 주장했다. 그런데 전 어떻게 생각하냐면 세계체제 속에서 한국이 일본의 배후지가 되었고 미국이 안보를 상당 부분을 담당했고, 세계적 냉전체제 유지라는 상황적 조건 때문에 우리에게 특별한 혜택을 많이 주어진 점이 성장의 조건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는 생각이다. 또한 그 조건 속에서 경제성장을 하는데 박정희 정권의 경제적 자율성, 아까 얘기했던 친시장 친자본이라기보다는 친산업자본이라는 측면도 작용했다고 본다.

    개별자본을 넘어서서 총자본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 위해서 투자를 강요하고 추진했다고 얘기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런 부분에서 저는 박정희 정권의 성과를 인정할 부분은 인정해야 된다고 생각이다.

    정승일 :사회민주주의 또는 북유럽식 복지국가로 나아가자고 할 경우 대자본 중에서 국유화할 것은 하고, 그렇지 않은 대자본은 사회적 국가적 통제를 해야 할 것이다. 은행이나 철도, 전기 같은 유틸러티(utility)산업은 국유화하고, 재벌 같은 일반 산업자본의 경우 국가적, 사회적 통제 장치를 통해 규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박정희가 펼쳤던 경제정책 중에 사회민주주의가 계승하여야 할 요소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5개년 계획과 같은 계획경제 체제이다. 만약 진보 세력이 집권한다면 경제기획원을 부활시키고 5개년 계획을 부활시켜야 한다. 이 모두 김영삼 정부가 군부독재 유산 없앤다고, 세계화, 자유화 한다고 하면서 폐지한 것이다.

    복지국가 만들기 5개년 계획을 20년, 30년간 일관된 목표와 구상을 가지고 시행하려면 일관된 기획과 계획이 있어야 하고, 따라서 박정희 시절과 그 내용과 가치관은 매우 다르지만 경제기획원 같은 조직이 필요하다. 원래 역사상 처음으로 5개년 경제계획을 한 게 1930년대의 스탈린 소련이었다. 그것이 2차 대전 이후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같은 나라에도 퍼지고, 개발도상국에도 퍼져서 한국에 들어온 거였다.

    만약 앞으로 우리가 집권했는데 자본가들이 당장 수익이 나지 않는다고 꺼리면서 생산적 투자를 기피하고 일자리를 안만들어 낸다면 경제계획안을 만들어서라도 민주국가가 자본을 압박하고 통제하여 투자하고 일자리를 만들어내게 하여야 한다.

    남종석 :그게(자본의 투자를 통한 일자리 창출) 실질적으로 계급 타협할 수 있는 조건이다. 그것 말고, 지금 제기되는 계급타협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있었던 것처럼 노사정위원회 들어가서 그냥 노동자계급 해체시키는 것에 동의해주는 것밖에 안된다고 생각한다.

    정승일 :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의 노사정위원회는 한마디로 말해서 국가가 자본을 통제하고 압박하는 장치가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자본 특히 금융자본과 주식자본 더러 ‘너희들 마음껏 수익을 추구해’라고 풀어 놓고는, 그것을 ‘시장개혁’이라고 했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노사정위원회에 노사를 모아놓고 서로 타협하라고 하는 건데, 앞뒤가 맞지 않는다.

    진보적이려면 노사정위원회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자본을 국가적으로 통제하는 경제기획원 같은 것도 있어야 한다. 진보적인 민주공화국이 전방위적으로 자본을 압박하면서 노동자 편을 들어야만 자본이 어쩔 수 없이 노동과 타협하는데 동의할 것이다.

    정종권 :그런데 계급타협이라는 말을 했는데 박정희 시대의 성장모델은 어떤 면에서는 지켜봐야 할 측면이 있지만, 정권의 탄생 배경이나 정치적 측면에서 워낙 반민주적 정권이고 또 그 당시에는 계급 타협의 주체는 없지 않았나?

    남종석 :그렇다. 그건 계급타협이 아니라 반노동이었던 거다. 계급 배제적 측면이고

    전경련 부설 한국경제연구원의 경제민주화 토론회

    정승일 :박정희 체제가 무슨 계급타협인가? 전혀 아니다. 우리는 박정희 체제가 계급타협이라는 그런 엉뚱한 말은 한 적이 없다.

    남종석 :제 말의 뜻은 일단 투자를 해야 계급타협의 조건이 만들어진다는 것이고, 독일에서는 이와 유사한 계급타협을 했다. 그런데 독일이 미국과 다른 측면은 뭐냐면 미국은 개별기업의 경쟁력이 워낙 셌기 때문에 1950년대 수준에서 장하준 선생도 얘기하지만 100개 사업 중에서 99개가 미국은 개별기업의 경쟁력이 최고로 월등했다. 그래서 계급타협을 안해도 기업 자체가 충분히 노동을 수용할 수 있고 노동은 거기서 자기 임금을 높일 수 있었다.

    그런데 독일은 미국과 경쟁이 안되니까 노동자를 끌어안고, 야 쟤들(미국) 이겨야 되니까 우리 협력해야 한다는 식으로 얘기를 하고 그래서 노사정위원회가 만들어진 거다. 그리고 소위 공장위원회 같은 것을 만들어서 경영 참여를 시킨다. 그때 독일에서 노동자들은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임금 상승을 제한했다.

    대신 자본쪽에서는 완전 고용을 보장해주었던 거다. 저는 그부분 정도까지는 타협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말하자면 비정규직의 고용안정화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를 축소하는 것이 된다면, 계급타협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승일 :독일의 경우 당시 비정규직도 거의 없고 정규직 중심으로 완전고용이 달성되어 있는데다가, 설령 임금을 낮추더라도 사회복지가 많으니까 말하자면 비임금적인 소득, 즉 사회임금이 높이 보장이 되니, 생활수준은 계속 높게 유지가 되었던 거다. 그 정도는 되어야 계급 타협이 가능하다.

    남종석 :현재 우리 상황이 독일과 조금 다른 건 방위비를 미국이 외부화시켜줬다는 점이다. 미국이 유럽의 안보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의 비용을 상당 부분 복지를 돌릴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 같은 경우는 1990년대 와서 미국의 전략은 동아시아에서 한국과 일본이 무장을 강화하고 안보 부담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방위비를 계속 늘리라고 미국이 요구하는 상황이다. 복지를 그렇게 많이 늘이는데 한계가 있다는 거다.

    정승일 :그렇지만 국방예산을 줄인다고 해봐야 그 걸로는 언 발에 오줌누기 정도이다. 복지국가를 제대로 만들기에 턱없이 모자란다. 근본적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국민경제 대비 정부재정 규모 그 자체가 너무 작다. 30% 정도에 불과한데, 스웨덴은 60%다. 즉 앞으로 우리의 국민경제 대비 정부 예산을 지금의 두 배로 늘려야 하고, 그 대부분을 넓은 의미의 복지예산으로 써야 한다.

    또한 국방예산을 우리가 마음대로 줄일 수 없다. 왜냐하면 남북관계가 있고 미국이랑 동맹관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 혼자 일방적으로 줄일 수 없다. 그런데 우리의 복지국가 5개년 계획의 운명이 남북관계와 한미관계에 의해 좌우된다? 말이 안된다. 남북관계가 개선되야 그 이후 비로소 복지국가를 만들 수 있다? 말이 안된다.

    지금 서민들, 없는 사람들의 삶이 너무나 힘들다. 남북관계, 한미관계 그런 것과 관계없이 복지예산을 대폭 늘려야 한다. 국방 예산이 정부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그리 많지 않다. (정부 재정 대비 2012년 14.8%이고, 국민경제(GDP) 대비로는 2010년 기준 2.5% – 편집자.) 현재 복지예산이 정부 재정의 10%도 안된다. 그게 가장 큰 문제다. 2배, 4배로 늘려야 한다.

    남종석 :여튼 과거 박정희과 같이 노동배제적이고 억압적인 방식으로 가는 것은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거다.

    정승일 :노동배제적 타협은 받아들일 수도 없고, 우리나라 산업 발전에도 안좋다. 지금 우리나라에 비정규직도 많고 저임금 노동자들도 많다. 전체 고졸자의 80%가 전문대와 대학을 가고 있고, 말하자면 좋은 교육을 받고 있다. 그런데 전문대졸, 대졸자의 절반이 넘는 이들이 비정규직이다. 이건 개인적으로도 낭비이고 국가적 낭비다. 경제학적으로 보더라도 비효율의 극치이다.

    고등교육을 받는 사람들에게 그에 걸맞는 고임금을 주어야 한다. 그러려면 최저임금 수준을 높여야 하고, 중소기업에 취업하거나 자영업을 하더라도 연소득 4천만원 이상이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그렇게 높은 임금을 주더라도 되는 고숙련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고, 그러려면 회사의 생산성도 높아져야 한다.

    복지국가가 중소기업, 자영업도 고도화시켜 생산성을 높이도록 요구하고 강제해서, 저임금 노동력에 기생하는 나쁜 자영업, 나쁜 중소기업은 단계적으로 없애버려야 한다.

    임금과 생산성이 일치해야 된다는 것은 경제학적으로 올바른 이야기다. 그렇다면 고임금을 주는 좋은 일자리를 대량으로 누군가가 만들어야 한다. 만약 그런 일을 시장이 안하고 자본이 안한다면, 민주공화국이 그것을 하도록 족치고 규율해야 한다.

    이와 연관시켜서 사회민주주의 이야기를 더 해보자면, 좌파들은 자본주의가 나쁘고 착취적인 체제라고 말한다. 그런데 만약 노동을 착취하여 발생한 잉여가치를 자본가들이 개인적으로 전혀 소비하지 못하고 전액 다 생산적으로 투자한다면, 즉 투기도 못하다로록 하고 오로지 생산적인 투자를 한다면, 그걸 우리가 나쁘다고 해야 되나?

    나는 그런 자본주의라면 비록 착취적인 체제라고 하더라도 그 착취된 부가 다시 일자리 창출도 트리클다운되어 되돌아오는 까닭에 사회적으로 용서받을 수 있다고 본다.

    남종석 :그런 체제를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만들진 못할 거다. 생산성 향상과 자본의 경쟁력 강화, 양질의 일자리 제공과 노동자계급의 안정된 소득은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호황국면, 그것도 경쟁력이 있는 경우에 한해서만 가능하다.

    정승일 :아니다. 자본주의라 하더라도 그게 가능하다. 스웨덴 같은 경우에 1950~60년대에 스웨덴 사민당이 기업의 법인세를 깎아주었다. 그 댓가로, 기업들은 법적으로 반드시 의무적으로 이익의 일정 비율을 투자적립금을 적립하게 만들었다. 그 적립금은 반드시 생산적인 곳에 투자하여야 했다.

    그에 반해 개인 소득에 대해서는 높은 세율을 메겼다. 자본가 개인이 받아가는 개인소득이 배당 등의 개인소득에 대해서는 고소득자에 대한 최고 세율이 80% 이상이었다. 예컨대 10억 이상의 개인소득에 대해서는 그것의 80%를 세금으로 내고 20%만 자기 소득이 되었다는 거다. 말하자면 자본가가 자기 소유의 기업에서 돈을 무지 많이 벌긴 했는데, 정작 자기가 개인적으로 쓸 수 있는 가처분 소득은 많이 없었다는 거다. 정부가 거두어서 사회공동체 전체를 위해 사용했기 때문이다.

    자본가 입장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말하자면 이건희 같은 경우도 1년에 100억 이상은 못 가져가도록 했다. 말하자면 자본가의 소유권은 인정하지만, 그 소유로부터 발생한 소득의 처분권은 민주공화국이 20%만 인정하고 80%는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게 사회민주주의다.

    남종석 :그것은 경제적 조건이 매우 호황기이고 스웨덴 노동자계급의 힘이 셌기 때문에 그렇다. 현재와 같이 노동자계급이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 부르주아 집단은 결코 그런 방식을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정승일 :제 말은, 노동자 계급의 힘이 세다는 건 기본이고,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사회민주주의를 개량주의라고 비난하는데, 어디 한번 그 개량이 어디까지 가능한지 그 한계까지 살펴보자는 거다.

    사회민주주의 체제에서도 자본가들은 분명 자본이 소유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건희 회장은 분명 삼성전자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하지만 그 소유로부터 발생한 소득에 대해서는 복지국가가 80% 과세한다. 아니 더 나갈 수도 있다. 영국 노동당은 1970년대 말에 최고세율을 91%까지 높였다. 말하자면 100억 벌은 자가 있다면, 10억을 넘은 90억에 대해 그 91% 즉 81.9억원의 소득세를 내야했다. 영국 노동당이 그랬다.

    정종권 :보수당의 대처 정권으로 넘어가기 전에 그랬나?

    정승일 :그 직전에 그랬다. 그런데 이론적으로는 99%까지 뗄 수가 있다. 그럼 100억 벌면 10억 넘은 90억에 대해서는 그 99%인 89.1억 원을 세금으로 내고, 말하자면 복지국가 민주공화국에 납부하고, 너는 1천만원만 가져라는 식이 된다.

    말하자면 자본을 가진 자에게, “그래, 너는 자본가이고 너의 소유권은 너의 것임을 인정한다. 그런데 투자는 네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야. 비생산적 투기는 절대 안되고, 기업 운영해서 번 수익 중 일정 비율 이상은 반드시 생산적인 곳에 투자해서 일자리를 창출해야 되, 알았지?’라고 민주공화국이 의무를 가했다.

    이렇게 되면 소유권은 말하자면 핫바지가 된다. 소유권이 명의만 있을 뿐이지, 투자도 자기 자유대로 못해, 거기서 발생하는 소득도 자기 마음대로 가져가지 못해, 복지국가에 좌지우지 된다. 말하자면 소유권이 핵심이 아니라는 거다.

    그런데도 소유권을 핵심적으로 중시하면서 자본의 소유권을 박탈하는 국유화, 사회화 하지 않는 사회민주주의를 개량주의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그런데 이 정도 개량이면 소유권은 핵심이 아니라 허수아비에 불과한게 아닌가?

    남종석 :사실은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차이가 나는데, 맑스주의자들의 시각에서는 경제에 성장기와 쇠퇴기가 있다. 지금은 이윤율의 하락 국면 즉 쇠퇴기이다. 그건 객관적 팩트이다. 80년대에 이윤율이 올라가는데 그것은 산업 부분이 아니라 금융 부문에서 올라간 거다. 2000년대 와서는 금융 부문과 산업 부문 동시에 하락하는데 이윤율이 그렇게 되는 상황에서 일단 부르조아들이 타협할 수 있는 여지를 거의 포기한다.

    금융과 산업자본 각자 자기 이윤율이 줄어드니까 세금 내는 거 자체를 거부하는데 세금 많이 내게하면 세후소득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자 세금 부담에 대한 자본의 저항이 나타나는 것이다. 당연히 세수가 줄고 복지도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이것이 지금 전 세계가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운동과 노동자계급을 해체시키는 것도 경제위기에 대한 자본의 대응 방식이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기업들은 투자를 줄이고, 신규 투자를 하는 것도 순수 투자라 아니라 있는 기업을 잡아먹어 덩치 키우는 것이고,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비정규직, 장시간 노동, 저임금화를 강요하는 것이다. 구조적 위기에서 자본은 노동에 대해 보다 공격적으로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정승일 선생 하는 말씀의 수준까지 가려면 거의 혁명에 준하는 급진적 사회 변화가 있어야 가능할 것 같다.

    정승일 :그렇죠. 그 정도로 사회가 변화하려면 하루 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 2~30년은 걸린다. 예를 들어 스웨덴의 경우 사회민주당이 최고세율을 75%로 높인게 1950년대 초반이다. 1930년대 초반에 집권해서 처음 20년간은 최고세율을 3~40% 수준으로 밖에 유지 못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사회민주당의 집권이 안정화되면서 비로소 사회민주당이 더 왼쪽으로 돌기 시작했다. 그때 가서야 비로소 안정된 다수 의석으로 계속 가니까, 원래 하고 싶은 정책과 노선을 추진할 수 있었다.

    1930-40년대에 스웨덴 사회민주당 내에도 대자본을 국유화하자는 이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비그포르스 같은 이들이 나서서 최종적으로 국유화 강령을 포기하면서 소유보다는 통제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실용적이라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소유권과 점유권, 처분권을 분리해서 접근하자는 칼 레비 같은 사회민주주의 사상가들의 영향이 컸다. 그렇게 소유권 개념을 분리해서 접근하면서 그 각각의 범주에 대해 각기 다른 방식으로 통제하는 것이 자본을 사회적으로 통제하는 제대로 된 방식이라는 거다.

    정종권 :어떤 취지의 말인지는 알겠다. 말하자면 자본주의란 울타리를 넘어가지 않으면서도 가장 비자본주의적 실험을 극한적으로 추구했던 것이 스웨덴 모델이라고 얘기하는 것 같다. 근데 그게 가능했던 조건이 있을텐데 현 시점에서도 그 모델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하나의 이념적 현실적 모델로서의 의미를 1950~60년대의 스웨덴 사회에 부여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가능했던 여러 가지 조건들, 스웨덴이라는 나라의 규모와 경제 구조, 사민당이나 노동운동의 힘과 조직력, 그리고 당시의 글로벌 국제경제 속에서 일정한 자율성을 가졌던 측면 등 이런 점에서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현실화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정승일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세대가 1980년대에 사회주의와 혁명을 얘기할 때 언제 우리나라의 인구 규모나 노조 조직율을 따지면서 그것이 우리나라에서 가능하냐 아니냐를 따졌나? 누가 ‘쿠바는 나라가 작아서 사회주의가 가능하고 미국은 나라가 커서 불가능하다’, 뭐 이런 얘기를 하나?

    만약 사회민주주의는 스웨덴처럼 인구가 작은 나라에서나 하는 거라면, 그것보다 훨씬 좌파적인 공산주의를 어떻게 러시아나 중국 같은 엄청나게 많은 인구를 가진 대국에서 할 수 있었다는 건가?

    요즘에는 독일과 프랑스의 사회민주당들도 자국의 미래를 위해 스웨덴 모델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상정한다. 우리나라 진보가 지금 이야기하여야 하는 것은 인구규모나 노동조합 조직력을 고려한 ‘실현 가능한 현실적’ 모델 같은 것이 아니다. 한국의 진보가 앞으로 20년, 40년간 무엇을 지향하여야 하는지, 그 핵심적 가치관과 사회운영의 기본 원리, 지향성은 무엇인지를 논해야 한다.

    남종석 :국유화를 했느냐 안했느냐가 사회주의의 기준을 아닌 것 같다. 국유화를 했다고 하더라도 시장 경제에 따라 경제 시스템이 움직이면 그건 사회주의가 아니라 국가자본주의라고 봐야 한다. 노동자계급이 스스로의 조직에 의해서 기업에 대해 자주관리를 할 수 있을 때 그것은 일정하게 사회주의로 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되려면 국가 자체의 성격이 바뀌어야 되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정승일 :그 얘기도 맞는 얘기지만, 이렇게 접근해보자. 노동자 자주관리라는 말을 방금 하셨는데, 독일 대기업의 경우에는 공동결정제가 있다. 회사 이사회의 절반이 종업원 대표로 구성된다. 그렇다면 그런 회사는 일종의 절반의 노동자 자주관리 아닌가?

    남종석 :그 부분에서는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

    정승일 :그럼 절반이 아니라 1/3쯤 (자주관리)한다고 칩시다. 스웨덴의 대기업은 종업원 대표가 이사회의 1/3이다.

    남종석 :그런 문제가 아니다. 시장이란 게 존재하고 국가와 기업이 자본을 재생산하는 것이고 그 자본의 재생산에 노동자들이 참여하는 거 그 자체는 경쟁력 향상을 위한 참여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노동자 자주관리라기 보다는 기업의 헤게모니 하에서 노동이 재생산에 통합된 것이다

    정승일 : 아니다. 그것은 아니다.

    남종석 :일정하게 그것에 참여하는 조건에 대해 논의를 해봐야 한다.

    정승일 :옛날에 레닌이 노동자 자주관리를 반대했다. 자주관리 기업이 결국은 국가계획경제의 틀에 안들어가기 때문이다. 그 당시 생각한 사회주의라는 것은 중앙계획 경제이고 거시경제 전체를 국가가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인데, 자주관리라는 것은 결국 협동조합처럼 미시적으로는 노동자의 것이지만, 거시경제적으로는 시장논리에 따라 작동된다.

    따라서 결국은 어떤 회사는 잘 나가고, 어떤 회사는 망하게 된다. 그래서 자주관리 기업을 반대한다는 것이 레닌의 논리였다.

    남종석 선생의 견해는 그처럼 개별적인 회사들이 자기 회사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 각자 시장 논리대로 움직인다면, 그것이 자주관리가 됐건 공동결정제가 되었던, 그것은 자주관리의 본래 의미가 아니라는 뜻인가?.

    남종석 :두가지 의미이다. 일단 기층에서는 자주관리를 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 이러한 자주관리 기업의 대표들이 국가정책이나 경제정책을 결정하거나 그 과정에 참여할 때 국가자본주의와 다른 성격과 맥락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좀 부언하자면 이렇다. 레닌의 사회주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하에서 국가자본주의였다. 소비에트와 같은 노동자 조직이 관리하는 국가자본주의가 레닌이 통치하던 시절의 사회주의였던 것이다. 이는 시장을 부분적으로 수용하되 노동자들의 자주적 조직이 이를 관리하며 이행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레닌 사후 권력투쟁 과정에서 노동자 자주조직은 없어지고 소비에트는 당의 하부기관으로 전락한다. 노동자 자주조직(소비에트) 없는 국가자본주의는 그냥 자본주의체제일 뿐이다. 그래서 프랑스 마르크스주의자 베틀레임은 스탈린 이후를 국가자본주의라고 주장한다. 요는 기업조직을 노동자의 자주적 조직이 통제할 때 노동자 자주관리가 의미 있다는 것이다. 부르주아의 소유권이 인정되는 하에서의 노동자 경영참여는 경쟁력 향상 논리일 뿐이다.

    정승일 :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민주주의에는 복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해방이 들어간다. 노동권과 노동조합 권리가 충분히 발전되어야 하고 산별노조와 산별교섭이 있어야 한다. 동시에 저는 독일식 공동결정제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본다.

    물론 그것으로도 부족하다. 자본에 대한 사회적 통제라는 게 도대체 뭐냐? 자본에 대한 사회적 저항기구, 견제기구에는 노동조합도 있고 협동조합도 있고, 시민운동과 중앙은행, 금융감독기구, 국회, 대통령도 있다. 자본을 사회적으로 통제한다는 것은 협동조합과 노동조합, 중앙은행, 국회, 대통령, 시민단체, 소비자운동, 공정거래위원회 등 다양한 차원에서 다차원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남종석 :그 정도면 거의 시장사회주의론이다. 경쟁에 의해서 상품이 생산되고 판매되는 것 뿐이지 나머지는 거의 사회주의화된 것이나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

    정종권 :그러니까 일단 아까 말했던 99%를 포함한 소득을 벌어와야 된다. 어디서? 벌려면 시장에서 벌어야지 어디서 벌 수 있겠나? 그런데 그 소득의 99%는 개인이 아니라 사회가 가져가고 처분한다. 그러니까 돈을 시장에서 번다는 의미, 돈을 버는 시스템이라는 점에서는 자본주의인 거죠. 정 선생의 핵심 요지는 이렇게 정리될 거 같다.

    정승일 :말하자면 자본의 소유권을 인정해준다는 것 말고는 자본주의가 다 날아가 버린 거다. 그런데도 전통적 사회주의자들은 너무 소유권 문제에 집착을 한다. 마르크스가 쓴 『자본론』에도 소유권이란 페이퍼 즉 증서에 불과하다는 말이 나온다.

    말하자면, 소득을 자기 마음대로 처분하고 통제하지도 못하는 소유란 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이다. 만약 사회민주주의처럼 자본으로부터 발생한 소득을 사회적으로 규제하고 통제하고 접수한다면, 그 소유권은 페이퍼에 불과하다.

    이종태 :제 생각에 지금 그렇게 하자는 건 아닌 것 같다.

    남종석 :아니 저도 지금 당장 그렇게 하자는 것보다는 지금은 주주자본주의와 금융자본을 억압하면서 산업자본의 성장이라는 것을 매개로 해서 계급타협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다.

    정승일 : 저는 우리나라 좌파 분들이 1990년대 초반 사회주의 무너진 이후, 사회민주주의가 됐건 뭐가 됐건 간에, 지금까지 껍데기만 가지고 토론해왔다는 생각이다. 아까 말했던 것처럼, 지금 우리 진보가 직면한 고민은 스웨덴 모델이 이 땅에서 과연 가능할까 아닐까의 문제가 아니다. 진보가 지향해야할 가치관과 미래 비전이 뭐고 우리가 국민들한테 어떤 비전을 가지고서 설득하며 함께 할 것인지, 그런 고민이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이런 게 없었다.

    예컨대 사회주의를 이야기하는 분들과 대화해보면, 이 분들은 한국은행 독립성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를 물어도 답이 없고, 주주자본주의를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답이 없다. 오직 자본주의 타도하자는 말만 한다. 그런데 자본주의를 타도한 다음에 어떤 사회가 되는 거고, 그래서 서민들, 대다수 시민들의 삶이 어떻게 바뀌는지에 대해 물어보아도 별로 뾰족한 답이 없다.

    정종권 : 제대로 된 사회주의자들과 대화를 안해보신 것 같다.(웃음)

    정종권 :오늘 좌담을 마무리하면서 정리를 다시 한번 해보자. 한국 사회의 개혁 혹은 변혁이나 개선을 위해서 가장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할 과제, 특히 경제적 측면에서의 우선 과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얘기를 하면서 마무리를 했으면 한다. 논의 중에 나온 얘기인데 마무리를 그렇게 했으면 한다.

    비정규직 없는 공장만들기 순회 투쟁 장면(사진=민주노총)

    정승일 :장하성이나 이병천 선생 같은 분들은 여전히 출자총액제한 같은 재벌 개혁이 제일 중요하고 시급하다는 거고, 그래야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이 이루어져 트리클다운이 된다는 거다.

    저는 재벌개혁, 하청단가 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것이 비정규직 문제라고 본다. 그런데 비정규직 문제를 보더라도, 대기업 정규직만이 가진 특권적인 사내복지를 비정규직은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로 된다. 진보적 자유주의를 말하는 분들은 대기업 정규직의 특권적 사내복지를 해체하자고, 그러려면 대기업 정규직이 조직화된 민주노총 같은 조직은 약화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저는 특권적 사내복지를 해체하는 것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국가적인 보편적 복지의 구축이라고 생각한다. 특권적 사내 복지를 굳이 필요 없게 만들면 된다는 거다. 가령 전국민에게 등록금을 무상으로 만든다면, 굳이 현대차노조가 정규직 조합원을 위한 대학 학자금 지원 같은 것에 집착할 필요가 없어진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과 함께 보편적 복지를 만들어 가는 게 우리나라 진보의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이다. 그게 정치적으로 진보 정치가 성장하는 길이라고 본다.

    정종권 :경제적 정책 과제를 말씀 했으면 한다.

    정승일 :저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과 보편적 복지, 이를 위한 부자 증세 운동이 곧 동시에 가장 중요한 경제정책이라고 본다. 우리가 여기 레디앙에서 좌담을 하는 이유는 진보 운동의 전망과 비전을 이야기하자는 거지, 한국 경제와 한국 자본주의의 장래를 고민하는 정부 입장에 서자는 거는 아니라고 본다. (웃음)

    한국경제의 미래를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 진보의 성장의 관점에서 볼 때, 과연 재벌개혁, 출자총액제한에 우리나라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이 열심히 앞장서고 나서는 게 그렇게 우선되고 중요한가? 출자총액제한 강화를 슬로건으로 내세워 노동현장, 삶의 현장에서 가서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지지를 호소하겠다는 건가? 웃기는 이야기다.

    진보가 할 일은 직장과 삶의 현장에서 평범한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비정규직 문제와 가난한 자영업자들, 식당 아줌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여야 하고, 이들 모두를 포함한 전국민 복지를 어떻게 늘릴 것인지, 그것을 위해 누구로부터 세금을 더 거둘 것인지에 대해서야 한다.

    비정규직 담론은 사실 조직 노동운동만의 담론이 아니다. 노동현장 밖에 있는 이들, 취업 않거나 못하고 있는 이들을 모두 다 포함하는 담론이다. 청년과 여성, 노인 등을 포함하면 전국민의 2/3가 말하자면 비정규직이다. 이들이 직면하고 있는 등록금과 노인연금, 아이들 보육, 아이들 학교 문제, 전월세난 문제을 이야기하여야 한다.

    가령 65세 이상 노인의 절반 정도가 절대 빈곤층이다. 말하자면 3끼 밥먹기도 힘들어 한다. 일년에 1만 명의 노인이 자살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모든 노인분들에게 1인당 월 30만원, 50만원 정도의 기초노령연금을 앞으로 3년 뒤, 5년 뒤에 지급하여야 한다.

    그것을 어떻게 할 것인지, 그에 필요한 국가예산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해 우리나라 진보 전체가 토론하고 논의하여야 한다. 이런 것이 출자총액제한이니 순환출자 같은 것보다 중요하고 시급하다. 그래야 진보가 대중들의 삶과 영혼 속에서 살아 숨쉰다.

    정종권 :그러기 위해서 주주자본주의나 금융화의 흐름에 대해 제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정승일 : 물론이다. 주주자본주의와 금융자본에 대한 통제와 그런 복지국가 운동이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복지국가를 가로막는 집단 중 하나가 분명 막강한 재벌들이다. 하지만 재벌들만 그러나? 재벌들 혼자 잘 먹고 잘 살려고 복지국가운동을 방해하고 노동운동을 가로막나? 재벌들이 노동자 압박하고 착취하면 그 뒤에 있는 재테크 세력이 좋아하고 월스트리트가 좋아한다.

    말하자면 재벌은 얼굴마담인데, 지금 우리나라 진보는 그 얼굴마담만 패면서 재벌을 깨면 철옹성이 무너질 것처럼 착각한다. 정작 재테크 세력과 월스트리트 주식펀드들은 그것에 대해 ‘잘 한다’라고 박수치면서, 자신들의 이해득실을 계산하고 있다.

    남종석 :전 두가지 측면이 우선과제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일단 경제정책 측면에서 기본적으로 금융억압을 단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금융시장을 억압해서 국가와 정책이 기업들로 하여금 투자를 강제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 만들어내는 게 굉장히 중요한 정책 과제이다. 그것이 겸업은행의 문제이든 아니면 자본이동에 대한 통제이든 또는 모기지론과 관련된 컨트롤이든, 이 부분에서 금융 부분을 통제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하나는 노동자 계급의 계급적 연대를 발전시키는 것이 현실적으로 복지국가를 만들어내는 사회적 세력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갈등을 만들어내면서 정규직에 대항하는 비정규직을 만들어낸다거나 하는 방식이 아니라 공동의 의제를 만들어놓고 함께 싸울 수 있는 계급적인 저항 전선을 만들어내는 문제라고 본다.

    그리고 이것들에 대해서 지식인이든 시민사회든 지지하는 흐름을 만들고 노동자들을 지원하고 조직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러한 세력적 흐름이 안된다면 어떤 진보적인 구조 개혁이나 신자유주의 극복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가지만 더 얘기하면 제가 정당의 당원이기는 하지만 정당에 대한 의존이나 지원활동을 통해 그 목표를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된다는 생각도 한다. 노동자 스스로 자지 조직화와 자기 세력화가 중심이 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최근의 흐름은 노동운동이나 진보운동 전체의 과제를 정당에 의존하거나 의탁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에서 문제의식을 느낀다.

    정종권 :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그리스의 급진좌파정당 시리자의 경우가 그와 유사하다고 본다. 시리자가 열심히 한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노동조합이나 노동자의 힘이라는 것이 받쳐주었던 것 같다. 총선 전에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총파업을 거의 열두번인가를 했었다. 파업 초기에는 조합원들도 파업에 소극적으로 참여하는 수준에서 집회에 적극 참여하는 능동형으로 바뀌어갔다고 한다.

    시리자의 지지율도 시리자 자체의 정치활동에도 이유가 있겠지만 이러한 노동조합의 조직화된 힘들과 노동자들의 급진화가 주요한 배경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정리 발언을 부탁한다.

    이종태 : 어느 정도 다 담은 것 같다. 사실 계속 얘기된 논점이 경제민주화 싫다는 게 아니라 경제민주화 하려면 복지를 해야 되고 복지를 위해선 금융 억압을 해야된다는 얘기로 수렴되는 것 같다. 정승일 남종석 선생 두분의 얘기가 그 지점에서는 일정하게 수렴되는 것 같다.

    정승일 :그리고 부자증세 해야 되고 또한 연소득 5천만원 넘는 이들은 세금을 더 많이 낼 생각을 해야 한다.

    남종석 : 특히 자본소득(배당, 주식평가차익 등)에 대한 세금 부과가 중요하다.

    정승일 : 복지국가 담론이 작년 가을부터 정치판에서 사라져버렸다. 요금 통합진보당은 별로 복지 얘기를 안한다. 민주당도 별로 얘기 안한다. 박근혜도 조금 얘기하다가 이쪽에서 안하니까, 어이구 잘됐다 하면서 별로 안하고 있다.

    요즘에는 온통 경제민주화 얘기 뿐이다. 경제민주화 이야기 속에 물론 간간히 비정규직 이야기도 하고 있지만, 사실 비정규직 보다는 재벌개혁 쪽 이야기가 훨씬 많다.

    공정한 시장질서 논의도 제법 나온다. 문재인 의원의 대통령 출사표를 보니, 복지국가 이야기는 뒷전에 있고, 공정한 시장질서 이야기가 첫 번째로 나왔다. 출자총액제한 등 재벌개혁과 공정한 시장질서 구축이 우선이고, 그것으로도 않되는 빈부격차 문제는 복지를 조금 해서 막겠다는 거다. 앞으로 발표될 안철수 씨의 비전도 그것과 대동소이할 거라고 생각한다.

    이게 바로 진보적 자유주의 버전의 ‘공정국가’다. 복지국가보다 공정국가를 더 앞세우는 이들이 바로 자유주의자들이다.

    저는 앞으로 한국에서 진짜 진보적 아젠더가 등장해야 한다고 보는데, 그것은 재벌과 금융자본 전체를 어떻게 사회적, 국가적으로 통제할 것인지, 그와 함께 비정규직 차별 해소와 보편적 복지의 과제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그리로 세금을 어떻게 부자들도 더 공평하게 더 내게 만들 것인지 등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정종권 :고생하셨다. 오늘의 좌담은 여기까지 했으면 한다. 필요한 의제와 논점이 생기고, 이런 대화와 논의의 필요성이 더 제기된다면 레디앙은 그 역할을 기꺼히 맡겠다. 참여해주셔서 감사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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