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뿌리, 금융의 뿌리
[책소개] 『돈의 발명』(알레산드로 마르초 마뇨/ 책세상)
    2015년 06월 21일 02:0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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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뿌리는 언제, 어디에서부터 뻗어 나왔을까?

풍부한 사료를 토대로 16세기 책의 혁명을 펼쳐 보인《책공장 베네치아》의 저자인 이탈리아 역사학자 알레산드로 마르초 마뇨가 이번에는 금융의 기원을 추적한다.

이를 위해 그는 14~16세기 이탈리아의 광장과 골목으로 눈길을 돌린다. 이 책은 금융의 중심지가 이탈리아였던 시절, 베네치아에서 만들어진 금화가 전 유럽에서 통용되고, 지구 반대편 인도에서 튀니지 상인이 제노바 방언을 쏟아내던 때의 금융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단테 알리기에리나 프랑코 사케티 등 당대 문인들의 작품뿐 아니라, 조반니 빌라니와 마린 사누도 등의 역사가들이 기록한 연대기, 이탈리아 각 지역별 문서 보관소의 자료, 대를 이어 전해진 상인들의 회계장부, 재판소에 보관된 범죄 기록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 곳곳을 누비며 직접 발품을 팔아 수집한 방대한 사료를 적재적소에 활용하여 초기 금융의 역사에 얽힌 각양각색의 살아 숨 쉬는 이야기들을 생동감 있는 묘사로 풀어놓는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파란만장한 돈의 모험이 시끌벅적한 이탈리아 뒷골목을 배경으로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복원된다.

번성했던 이탈리아 도시국가를 무대로 은행·다국적기업·보험회사가 처음 만들어지고, 이자·환전·인플레이션·주가 조작 같은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모습을 추적한 한 편의 드라마.

이 책이 재현해낸 태동기 금융의 역사는 ‘돈’을 중심에 둔 경제의 역사이자, 이윤을 좇는 인간의 욕망을 비추는 거울이며, 그 배후에서 각축하는 정치적 사회적 권력의 투쟁기이기도 하다. 금융자본주의가 만개한 21세기에 그것은 먼 유럽의 옛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첨단의 이슈가 아닐까.

“화폐와 은행은 낯익은 물건이지만 화폐와 은행의 역사는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근대의 화폐와 은행이 생겨난 것은 불과 수백 년 전이지만, 그것이 태어나기 위해서 그 모태라 할 이탈리아에서는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복잡한 사연을 거쳐야 했다. 경제학자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화폐도 은행도 순전히 시장 거래의 합리성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상업, 공동체, 국가권력, 지정학 등의 복잡한 사연 속에서 생겨난 것이며 이탈리아의 이야기는 그 무수한 사연들을 담고 있다. 이 책은 능숙한 역사 이야기꾼의 솜씨로 그러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전하고 있으며, 화폐와 은행의 숨겨진 속살을 잘 드러내고 있는 귀한 책이다. 식상한 경제학의 화폐 이론을 넘어서 그 역사적 탄생을 알고 싶은 분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

홍기빈(《돈의 본성》 옮긴이,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연구위원장)

돈의 발명

피노키오가 땅에 파묻은 금화 ‘체키노’는 실재했던 화폐일까?

금융의 역사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물론 화폐다. 화폐는 고대 로마와 아랍 지역에서 이미 사용되기 시작했지만 중세에 접어들면서 유럽에서는 거의 종적을 감춘다. 토지를 중심으로 자급자족하던 영주들에게는 화폐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다시 화폐가 필요해진 것은 상인과 수공업자가 나타나면서부터다.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신성로마제국의 ‘데나로’였지만, 곧이어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이 바통을 이어받아 자기 도시의 화폐를 주조하기 시작했다. 베네치아에서는 ‘그로소’와 ‘오볼로’, ‘토르네셀로’ 같은 은화가 먼저 만들어졌고, 제노바와 피렌체에서는 순도 95% 이상의 금화 ‘제노비노’와 ‘피오리노’가 각각 주조되었다.

이탈리아의 금화는 그것을 발행한 도시국가의 경제력을 상징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권력도 상징했다. 게다가 지혜를 의미하기도 했다. “이탈리아가 다른 나라보다 먼저 화폐의 중요성과 안정된 화폐의 필요성을 깨달았다는 사실을 입증해주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화폐는 신뢰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예술적으로도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에 수백 년 동안 전 유럽의 시장을 지배했으며 “어느 나라에서든 이탈리아인은 조폐소 일꾼으로 환영받았다”. (본문 36쪽)

당시 만들어진 금속화폐 중 가장 성공한 것은 1284년에 만들어진 베네치아의 ‘두카토’였다. 두카토는 1544년부터 ‘체키노’라고 불렸는데, 그 순도는 99.7%로 거의 전설적이었으며, 전 유럽에서 기준 화폐로 기능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동화《피노키오의 모험》에도 이 체키노가 등장한다. 땅에 돈을 묻으면 돈 나무가 자라서 돈이 주렁주렁 열릴 것이라는 여우와 고양이의 거짓말에 속아 피노키오가 땅에 묻었던 그 금화 말이다.

자그마한 탁자에서부터 시작된‘은행’의 변천사!

화폐 역시 하나의 상품이었다. 화폐가 상품으로 바뀌었을 때, 상인은 은행가가 되었다. 그로부터 수세기 뒤에 빅터 로스차일드는 말했다. “은행가는 돈을 그것이 있는 곳에서 그것이 필요한 곳으로 옮기는 직업”이라고. (본문 51쪽)

비토레 카르파초, 〈성 마테오의 소명〉

화폐가 만들어지고 상인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점차 상인들이 은행가로 변모하고, 초기 은행의 모체라 할 수 있는 것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저자 알레산드로 마르초 마뇨는 은행의 탄생 초기에 이루어진 가장 중요한 활동으로 환전을 꼽는다.

교황청은 모든 기독교 국가를 대상으로 세금을 거두어들였으므로 각지에서 수많은 물건과 갖가지 화폐가 모여들었고, 그 과정에서 물건들을 감정하고 거래할 상인과 환전상이 필요해졌다. 그렇게 탄생한 최초의 은행가들은 탁자 위에 천을 깔고 돈 자루를 올려두는 단순한 형태의 은행을 운영한다. ‘은행’을 뜻하는 이탈리아 단어 ‘방카(banca)’ 역시 탁자를 뜻하는 ‘방코(banco)’에서 유래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은행가들은 금고를 이용해 예금 업무도 수행하기 시작한다. 초기 은행들은 주로 가족 구성원들이 직접 운영하는 가족회사로 운영된다. 14세기에는 피렌체의 바르디 가문과 페루치 가문의 은행이 주도적으로 활동했고, 15세기에는 메디치 가문이 오늘날의 지주회사의 초기 형태를 띤 은행을 설립해 교황청의 자금을 운용하거나 국제무역과 정기시에서 환전과 송금 업무 등을 수행한다.

그러나 흑사병, 선박의 난파, 전쟁 등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개인은행이 파산 일도에 서자, 서서히 공공은행이 그 자리를 대체한다. 개인은행들의 파산으로 도시 전체가 공황 상태에 빠지는 것을 목도한 도시국가들이 국영은행을 설립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베네치아에서는 16세기에 ‘피아자 디 리알토 은행’과 17세기에 ‘지로 은행’이, 시에나에서는 15세기에 ‘몬테 데이 파스키 은행’이 설립되어 자국의 금융업을 전담했는데, 후자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활발히 영업 중이다.

금속화폐에서 신용화폐로, 오늘날 금융 체계의 토대가 마련되다

이처럼 은행이 근대적인 형태로 발전하는 동안, 그 외의 금융 활동들도 근대적인 체계를 갖추기 시작한다. 우선 은행가들의 길드가 설립되고 은행가들에게 ‘신용’과 ‘정직’이 강조되면서, 금화와 은화 등 금속화폐를 주로 사용하던 상거래에 신용화폐가 고개를 내밀게 된다. 그중에서도, 신용거래가 확립되는 데 크게 이바지한 환어음은 국가와 국가 간의 무역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한편, 상인들은 폭풍우와 해적의 위협으로부터 부담을 덜기 위해 해상보험을 발전시키고 은행가들은 보험증권으로 이윤을 추구하기 시작한다. 그뿐 아니라 회계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할 수 있는 복식부기가 탄생해, 이탈리아의 수학자 루카 파촐리의 활약으로 널리 퍼져나간다. 인쇄술의 도움으로 상인과 은행가들에게 실용적인 지침을 담은 교본과 주판에 관한 책들도 쏟아져 큰 인기를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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