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 결집,
지역조직 혁신의 계기로
[릴레이기고-5] "제3의 선택지"
    2015년 06월 19일 11:1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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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글이며, 가끔 등장하는 우리 당에 대한 평가 또한 마찬가지다. 2008년 9월부터 지금까지 대전시당 당직자로 일해 왔다. 짧지 않은 시간, 노력을 바쳐 온 조직에 대해 가혹한 평가를 내려야 하는 현실도 가혹하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내내 당의 주요 간부 중 한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느끼며 많이 답답했고 또한 아팠음도 말씀드린다.

#1. 끊어지지 않는 악순환의 고리

2011~12년을 지나며, 대전시당 역시 당직자 수가 급격히 줄었다. 2011년 집단 탈당의 여파와 2012년 총선 이후 국고보조금 중단으로 인한 재정 악화가 그 원인이었다. 당직자 수의 변화는 당 활동력의 축소를 불러왔고, 이는 당원들이 당비 납부를 중단하거나 탈당하는 등으로 다시 이어졌다. 결국 ‘당직자 규모의 축소 – 활동력의 축소 – 당권자 규모의 축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싸이클에 접어들게 되었다.

우리는 이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 ‘당권회복운동’, ‘민중의 집 건설 운동’, ‘2014년 지역구 광역의원 후보 집중 지방선거’ 등을 치렀으나, 지금까지도 그 고리를 끊어내지 못하고 있다.

#2. 제 목소리 내기도 어렵다!

작년 대전시는 도시철도 2호선 건설 방식 문제로 시끄러웠다. 쟁점은 트램이냐 고가방식이냐로 맞춰졌지만, 이 둘 모두 최선의 대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나는 불편했다. 이때 진보정당은 ‘고가방식 중단, BRT 중심의 대중교통 체계 도입’을 주장하며 공동 기자회견을 추진했고, 여론의 관심을 끌어내는데도 성공했다. 이는 당시의 가장 뜨거운 이슈이기도 했고, 고가방식에 대한 찬반 토론만이 있는 상황에서 제3의 대안을 제기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도시철도

대전 도시철도 관련 기자회견 모습(사진=노동당 대전시당)

한편 시민대책위는 당장 고가방식을 저지하는 것에 힘을 쏟았으며, 실제로 시장의 양보를 이끌어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논쟁은 거기까지 였다. BRT라는 훌륭한 대안은 아무도 모르게 자취를 감추었고, 최악을 막을 힘조차 없는 진보정당은 최선의 대안을 토론의 무대에 올릴 힘조차 발휘하지 못했다.

#3. 차이를 드러내지 못하고, 지구력만 시험하는 소모전!

지역조직 활동가에게 인내와 끈기는 필수 덕목이다. 당장의 성과를 기대하지 않고, 끈질기게 만나고 이야기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오늘 나간 아침선전전에 내일 또 나가야 하고, 어제 간 집회에 다음 주에도 가야 한다. 신발창이 마르고 닳도록 돌아다녀야, 저 사람이 어느 당에서 왔는지 정도를 구분한다.

가끔 마이크가 주어지기도 하지만, 5분 정도 이야기를 듣고 세 진보정당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이 오히려 특별한 일이다. 게다가 한 사람의 연대가 절실한 국면에서 특정 정당의 당원이 된다는 것도 쉽지 않은 선택이다. 투쟁을 마무리한 후에라도 간부들과 공식적인 간담회 한번 갖는 일조차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진보정당 분립 구도는 노동자들에게 더욱 분명하고 뚜렷한 선택지를 만들어 주기보다는 그 무엇도 선택할 수 없는 어정쩡함과 그 선택을 피해갈 수 있는 명분을 열어주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제, 진보결집으로 제3의 선택지가 되어 보자!

무엇보다 우리는 구체적인 지역 활동과 실질적인 정치 행위 속에 진보정당이 분립해야 하는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해내지 못했다. 굳이 노동자 투쟁이 아니더라도, 지금 유성에서 진행 중인 ‘원자력안전조례 제정 운동’처럼 진보정당이 함께 나서야 할 일들은 여전히 많이 있다. 좀 심하게 표현해서, 조직사업을 빼고 나면 집중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대부분의 사업이 겹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같이 일을 많이 하면서도 당을 따로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있냐면서, 지역당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하기도 한다. 웃픈 얘기지만, 그냥 흘려들을 수도 없는 이야기다.

나는 진보결집으로 만들어지는 새로운 진보정당이 위에서 나열한 문제들을 일거에 해소해 줄 것이라 믿지 않는다. 또한 각 주체들 간의 이념적, 역사적, 문화적 차이 등이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에도 동의한다.

다만, 지난 8년간 진보신당-노동당으로 활동했던 시간동안 진보정당의 분립이 진보정치운동 전체 발전의 또 다른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리의 믿음을 스스로 증명해내지 못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라는 점이다. 진보정당들끼리의 경계는 더욱 분명해졌지만, 정치세력으로서 대중적인 신뢰와 가능성은 잃어버린 시간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나는 진보결집이 적어도 이 시점에서 진보정치운동이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의 단초를 풀 수 있는 출발점이라 여긴다. 그것은 무책임하고 무능한 보수양당 독점 정치구도에서 진보정당이 제3의 선택지로 등장할 가능성과 진보정치운동이 노동을 비롯한 사회운동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는 상황을 개선하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진보정당이 기본적인 활동을 벌일 수 있는 수준의 인력과 재정적 여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물론 진보결집만 하면 저절로 그리 될 것이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념과 활동, 조직운영의 혁신을 수행하지 못하면 꿈만 꾸다 말 일이 될 것이다. 이어서 하려는 이야기는 그중 지역조직에 대한 이야기인데,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것이 한두 번 해 온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있어 진짜 중요한 것은 구체적 실행이다. 진보결집을 통한 새 진보정당이 만들어지든 아니든 함께 검토해보고 실행해 보고 싶은 과제들이다.

글자 그대로, ‘지역’ 맞춤형 ‘조직’!

당연한 말이지만, 지역 당부가 중앙 정치 일정 따라다니기에만 급급해서는 당의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이는 중앙과 지역을 상대화하는 위계적인 조직 체계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지역조직의 역량과 계획의 한계 역시 무시 못 할 요인이다.

지역 맞춤형 조직은 ‘조사 없이 발언 없다’는 말처럼 지역에 대해 꼼꼼히 조사하고 분석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가장 구체적인 지표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며, 현실의 작동 방식에 대해서도 더 구체적인 우리들만의 판단을 갖게 해 줄 것이다. 그리하여, ‘노동당과 함께 만드는 새로운 대전 2050’처럼, 다른 정치세력과는 차별화된 계획을 제시하는 것이다. 몇년도에 집권할 것이라는 계획이 아니라, ‘우리의 가치에 기반한 우리 지역의 변화와 비젼’을 가장 구체적인 표현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러한 계획은 지역 당부 활동의 기준과 평가의 지표가 될 것이며, 지역 정치세력으로서 정체성을 획득하는 것은 물론 일관성 있는 대안과 비판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또한, 실제 의회에 진입하거나 집권할 경우에는 현안과 사람에 쓸려 다니며 우왕좌왕하지 않을 수 있는 설계도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더불어, 당이 포괄하는 인적자원도 풍부해질 텐데 이것이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도 있겠다. 전문가와 활동가들에게 당에 대한 호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며, 이미 당원이자 지지자인 분들에게는 책임감과 자부심을 높여 줄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뿌리 삼는 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 중에서 노동조합이라도 만들 수 있는 이들은 극소수다. 우리 동네 골목에서 만날 수 있는 학원 강사, 대형마트 노동자, 장애인 활동 보조인, 택배 기사, 택시 기사, 혼자서 건물 청소하는 노동자 등이 모두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이들이 뿌리가 되고 버팀목이 되는 진보정당이 되어야 한다.

골목길에 파라솔이라도 펼쳐 놓고 앉아 하소연이라도 들어주고, 노동상담도 하며 같은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것이 진보정당이 해야 할 일이다. 협동조합, 사회단체, 노동조합도 소개할 수 있겠다. 이를 통해 자본의 정글 속에서 벌이는 생존을 위한 무한 경쟁을 벗어나, 협동과 연대의 비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을 경험할 수 있도록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진보정당의 역할이다. 진보정당의 지역조직은 노동조합조차 찾아가기 어려운 가난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수시로 드나들 수 있는 삶과 투쟁의 든든한 동반자이어야 한다.

지역운동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조직!

조직의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사업은 당 내로 집중되는 경향이 생긴다. 그간 이러한 상황에서 당장 발생하는 투쟁 사안 외에 주민조직, 시민사회진영과의 관계 형성에 구체적인 계획을 갖지 못했다. 수동적이고 의례적인 공동 활동을 넘어서 시기별, 의제별로 우리의 계획을 중심으로 한 능동적인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예를 들어, 최근에 제기된 정치개혁과제는 시민사회진영에서도 일정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데, 적극적인 사업의 제안과 이러한 과정에서 형성되는 공감대는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계기와 힘이 될 수 있다. 나아가서 진보정당의 입장에서 시민사회진영, 주민운동과의 네트워크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지역사회의 진보적 재편을 위해 필수적이다.

누구도 차별을 느끼지 않는 조직!

진보정당은 다양한 영역에서 소수자 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에 함께 해 왔다. 그 결과로 여성, 사회적 소수자들의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제정되거나, 제도화하는 결실을 맺기도 하였다. 진보정당은 장애평등교육과 성평등교육 등을 당원의무교육으로 정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차별은 일상화되어 있으며, 정도의 차이는 있으되 진보정당 역시 청정지역이라 자신할 수 없다. 당원과 지지자, 주민이 어우러지는 정치적 공간인 지역조직에서의 인권 감수성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정기적인 교육은 물론이거니와 지역조직은 물론 당원 개인의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 여성, 장애인, 청소년,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들의 다양한 차이를 인정하는 문화가 정착되는 가운데 누구도 차별을 느껴지지 않는 평등한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당원들의 활동을 정치적 원동력으로 삼는 조직!

고된 생업에 종사하면서도 쉴 틈조차 당에 헌신하는 당원들의 노력이 진보정당을 더욱 빛나게 해 왔다.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노동자들과 함께 한 희망식당은 일요일마다 문을 열며 1년을 지속시켰다. 소수 당원들의 지치지 않는 노력이 진보정당을 빛나게 한 모범이었다. 똑같은 방식은 아니지만, 진보정당에게는 개인의 재능과 관심을 활동으로 이어가고자 하는 당원들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몇 해 전 협동조합에서 일하던 당원이 시당과 공동으로 적정기술 관련 강좌를 열었고 이에 관심 있어 참여했던 당원은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후속모임을 몇 차례 진행하였다.

이런 당원들의 열정과 헌신을 더욱 구체적이고 치밀하게 지원하고 당의 계획으로 만들 수 있다면, 진보정당은 더욱 풍부해질 수 있다. 언제나 부족할 수밖에 없는 상근당직자만 바라보지 말고, 당원들의 열정과 참여를 구체적으로 조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게다가 진보정당에는 사회운동의 각 분야에서 헌신하는 활동가들이 있다. 실력 있고 신망 높은 노동조합 활동가가 있으며, 요즘 한참 뜨고 있는 사회적 경제 분야의 실력자들이 있다. 자기 사는 동네에서 주민들과 협력하여 협동조합을 만들고 어렵지만 지혜를 짜내 운영하고 있는 동네활동가들도 있다. 공연, 글쓰기, 영상분야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인도 우리의 자랑이다. 이러한 당원들의 역량이 더욱 빛나면서, 당의 정치력 강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 방법도 모색해야 한다.

우리는 진보정치의 성장을 위해 여러 가지 일을 도모했다. 가장 직접적으로는 당의 지역조직을 만들고, 노동조합과 공동 사업을 벌였으며 협동조합, 민중의집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각각의 영역은 큰 틀로 묶여지기보다 개별화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주체의 존재가 그 연계를 확인하고 있는 정도다.

나는 이러한 현상의 핵심에 ‘정치적 구심력’의 부재가 있다고 본다. 진보정당이 정치적 구심이 되는 것은 주체들의 의지를 넘어, 우리 사회에서의 정치적 위상, 현실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 등 객관적으로 일정한 실력을 갖췄을 때 가능해진다.

개개인의 일상을 조직하고, 지역의 변화를 조직하는 일은 그 자체로 정치이자, 정당의 본업이다. 자본으로부터 배제되고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이들이 투쟁의 주체로 조직되고, 각기 다른 사회운동의 주체가 만나고 부딪치고 결의하는 공간으로서 진보정당의 지역 조직이 부활해야 한다.

이렇게 대중 속에서 진보정당의 필요를 재확인하며 현실의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 그 자체가 우리가 진보정치의 위기를 극복해내는 길이자, 진보결집을 통해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어야 할 이유이다.

필자소개
노동당 대전시당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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