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의 정부를 보며
    상상한 암울한 미래의 단면
    [에정칼럼] 정부의 골든타임은 거꾸로 간다
        2015년 06월 18일 11: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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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00년, 전 세계는 비약적인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루어냈다. 더 많은 새로운 기술들이 등장했고 사람들은 예전보다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한 만큼 지구환경이 지속가능해졌거나 더 평등한 사회가 된 것은 아니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기후변화는 더욱 심화되었다. 제3세계 국민들은 자연재해와 질병 그리고 가난을 피해 주변 선진국으로의 이주를 시도하지만 번번이 거부당하고 있다. 100여 년간 전 세계는 기후변화와 싸워왔지만 결국 대응에 실패한 것이다.

    한국의 상황도 심각하다. 해안가는 침식되어 한반도의 지도는 작아졌다. 매년 더 더운 여름과 더 추운 겨울을 맞이해야 하고 때 아닌 돌풍이나 강력한 태풍에 의한 재해는 일상다반사가 됐다. 사회적 양극화는 극단에 치달았다. 더 이상 부자와 가난한자는 같은 공동체 안에 섞이지 않는다.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한 곳은 온전히 사회 기득권층을 위한 공간이다.

    가난한 이들도 나름의 공동체를 만들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철저한 몸수색을 거쳐 부자들의 사회로 출퇴근을 한다. 매년 뉴스의 절반 이상은 기후변화에 대한 이야기지만 정부는 위기가 아닌 기회라며 과학기술을 강조하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원전은 계속 건설되고 있다. 노동자들은 모두 가난한 지역의 주민들이다. 새롭게 건설되는 원전 옆에는 이미 가동이 중지된 옛 원전이 있다. 여전히 흉물스럽게 방치되어있는 이곳에는 경고문구 하나조차 없다. 그리고 오늘도 아이들은 이곳에서 해맑게 뛰어논다.

    온실가스

    사진 출처 = 환경부

    2050년, 지난 몇 년 동안 지구의 최고 기온이 경신되었다. 과학자들은 더 이상 기후변화를 예측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고 이야기하며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야한다고 경고한다.

    한국에서도 가뭄과 홍수는 더욱 빈번해졌고, 이제 자연에 기대어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대신 그 자리는 과학으로 대체되었다. 농업과학의 발전으로 아이들은 더 이상 벼가 자라는 풍경을 보지 못한다. 정부는 대부분의 식량작물은 환경이 통제되는 건물 안에서 자라게 될 것이라며 새로운 기술을 통해 식량 안보를 확보했다고 홍보한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세계적 논의는 계속되고 있지만, 실제적인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선진국과 대기업은 그들의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미명 아래 개발도상국에서의 개발에 열을 올렸고, 이들은 배출권이라는 새로운 자본을 축적하고 있다. 개도국과 저개발국가의 국민들의 삶은 여전히 피폐하다. ‘기아’라는 절대적인 어려움은 다소 해소되었지만 무분별한 개발과 기후변화로 인한 환경재난으로 또 다른 위기를 맞게 되었다.

    2030년 올해도 세계 정상들은 유엔 기후변화당사국총회를 개최했다. 하나같이 더 이상의 기후변화는 안 된다며 발언하고 나섰지만 정작 더 많은 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고 나서는 국가는 없다. 개도국의 기후재앙을 막기 위한 재정적 지원에 대한 약속은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선진국들은 경제적 위기 상황에서 개도국을 지원하는 데 여력이 없다는 핑계를 댔다.

    총회는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의지가 없는 국가에 대해 강력한 무역제재를 가하는 조항과 함께 기업이 개도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지원하는 경우 지금보다 더 많은 탄소 배출권을 부여하는 조항에 합의함으로써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보였다.

    회의장 밖에는 성난 세계 민중들로 가득 차있다. 유엔이 결국 기업에게 더 큰 오염물 시장을 선물로 준 것이며 이것이 기후위기 시대의 새로운 식민주의라고 외치고 있다.

    한국에서도 기후변화총회에 대한 소식을 전하며 박근혜 정부가 제시했던 한국의 감축목표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지난 2015년의 영상에는 국제적 위치에 걸맞지 않은 한국의 감축목표치를 규탄하는 시민사회의 집회 모습이 담겨있다. 이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인터뷰가 나온다. “제가 대통령을 했을 당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정부가 야심차고 공정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했다고 하는데 기후변화가 그렇게 막기 힘든 겁니까?”

    지금도 골든타임을 흘러가고 있다.

    현 정부 들어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골든타임을 놓쳐서…’였다. 세월호도, 이번 메르스도 정부는 골든타임을 인지하고 빠른 조치를 취하는데 실패했다.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고,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무능한 정부로 인해 심적 고통과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기후변화라는 지구적 문제 앞에 또 한 번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

    전 세계는 날로 심각해지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야심차고 공정한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제출하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그 시기가 바로 올해다. 더불어 이 공정하고 야심찬 목표는 반드시 이전에 약속했던 목표치보다 높아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달고 있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발표한 온실가스감축계획은 한마디로 터무니없다. 우선 이번 정부의 목표는 전혀 만족스럽지 않은 이명박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도 못 미친다. 결국 이전보다 더 야심찬 목표를 세우자는 세계적 합의를 무시한 것이다.

    이런 가당치도 않은 감축목표가 도출된 데에는 현 정부가 끊임없는 경제성장과 에너지소비를 당연한 미래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많은 학자들이 에너지 피크를 예상하고 있고 선진국에서는 GDP와 에너지 소비 간의 탈동조화(Decoupling)현상이 이미 일어나고 있지만 정부와 관계 전문가들의 눈에는 이것이 전혀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온실가스를 감축하기위한 방안이다. 여기에는 과학기술이라는 보이지 않는 귀신이 숨어있다. 정부가 가장 강조하고 있는 감축수단에는 원자력과 탄소를 포집하여 저장하는 CCS가 있다.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핵폐기물은 어떻게 할 것이며 원전의 완전한 폐쇄는 어떻게 할 것인가? 당장 고리 1호기의 가동정지 이후도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있는 정부면서 무작정 대안이라고 원전카드를 꺼내놓고 있다.

    탄소포집저장기술은 이보다 더 기가 차다. 왜냐하면 탄소포집저장기술에 대한 논의는 많지만 실제 검증되지 않은 기술이기 때문이다. 과연 100% 안전하게 이산화탄소를 저장할 수 있는 것인지 탄소저장 공간에 문제가 생겨서 누출되면 어떻게 될 것인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따라서 원전과 탄소포집저장기술 모두 결코 기후변화 대응에 적절한 대안이 아니다.

    한국의 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과학기술이 언젠가 기후변화를 포함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조금씩 있다. 하지만 정부가 인류와 지구의 미래를 위한 목표를 세움에 있어 상상력과 희망으로 채우는 것은 그저 지금의 문제를 미래세대로 미루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고 우리 미래세대들은 이번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에 담긴 메시지를 잘 새겨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앞으로 우리가 더 많은 원전과 함께 살아야 하고,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하며, 지금세대보다 더 비약적인 과학의 발전을 이루어내지 않으며 더욱 심각해진 기후변화의 영향을 경험해야 한다는 무서운 예언이기 때문이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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