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사유화'된 국가
    시리아, 북한 그리고 노르웨이와 남한
        2015년 06월 17일 05:2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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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3년 전인가요? 시리아에서는 민중 반란이 아직도 외세가 부추기는 추악한 내전으로 완전히 변질되기 전에, 제 강의를 수강하는 한 미국인 학생은 기말 과제물로 “시리아와 북한의 비교론”을 내겠다고 제게 접근했습니다.

    그 학생의 문제의식은, “시리아인들은 이렇게 훌륭하게 반란을 일으켰는데, 왜 북한인들은 시리아의 폭압정부와 절친한 김씨 왕조를 상대로 똑같이 반란을 일으키지 못할까, 일으키도록 하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런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랍어도 조선어도 못했던 그 학생에게, 아마도 자료적 한계 등으로 이런 과제물 쓰기가 힘들 것이라고 조언해주고 다른 주제를 권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하도 궁금했기에 시리아와 북조선의 근본적 차이를 그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아사드 정권의 노력은 있었지만, 시리아는 기본적으로 동원 능력이 약한 연성국가입니다. 재정적으로도, 경제적로도, 그리고 사상적으로도 국가가 국가의 고유기능인 국민 동원을 할 수 있는 능력에서 시리아는 한계가 있습니다.

    예컨대 시리아 국가는 중공업 건설 과제도 거의 완수하지 못해, 공업은 여전히 경공업 위주로 편성돼 있죠. 마찬가지로 비록 공공부문 위주의 아주 괜찮은 국민교육제도를 세웠지만, 농민들에게는 고교 진학의 기회는 아직도 도시민에 비해 적습니다. 그러니까 균질화돼 있는 “국민/인민”은, 시리아에서는 아직도 완전하게 출현된 게 아니라는 거죠.

    원칙상 사회주의 지향의 바스당 정부는 무상의료 및 무상교육을 원칙으로 두었지만, 재정과 관리능력의 부족으로 그 양도 질도 충분치 못했고, 최근에는 아예 시장화로 내몰려 내전 직전에는 의료부문에서 거의 40%가 유료서비스이었습니다.

    국가의 동원/관리 능력이 이 정도 제한돼 있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국민에게 국가보다는 그들이 소속돼 있는 종교/지역공동체가 일차적 소속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알라위트교 본위의 아사드 정부부터 앞장서서 종파 편향의 시범을 보이고, 그러다 보니 외세들이 민중운동의 틈을 타서 종파 간 갈등을 이용해 이렇게 내전을 부추기는 것이 상대적 쉬웠습니다. 연성국가인 만큼 외세의 간섭에 아주 쉽게 반은 무너진 상태가 된 거죠.

    시리아

    시리아 내전의 흔적들

    반대로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선, 그리고 그 존재기간 동안 계속해서 긴장과 위기 상황 속에서 살아야 했던 북조선이야말로 아마도 남미와 아프리카, 아시아에서는 가장 강력한 동원 능력을 가진 강성국가입니다.

    엄청난 희생으로 중공업화를 이루어 시리아와 달리 첨단무기 생산능력을 갖추게 됐으며, 또 아주 포괄적으로 철저하게 짜여진 공공 의료/교육 시스템을 가집니다. 90년대의 기아 사태 등으로 의료시스템은 타격을 받았지만, 교육 시스템은 배 고픈 상태에서도 계속 정상작동돼 균질화된 “인민”을 재생산해왔습니다.

    최근에 종교의 부활현상 등이 보이지만, 북조선인들의 일차적 소속은 국가이며 일차적 신념은 국가 본위의 반제적 좌파민족주의(주체사상)입니다. 지역갈등 등은 다 잠재돼 있긴 하지만, 그래도 외세들이 그런 요소를 이용해 내부 갈등을 부추길 수 있는 정도는 아닙니다.

    물론 이와 같은 초강성 국가라는 것은 그 자체로서도 부작용은 엄청 많습니다. “유일사상체제”하에서는 창조성부터 위축되고, 개개인의 자율성이나 독립성을 논하기조차 힘들고, 그러나 이와 같은 강성국가 체제의 과제가 집단생존이라면, 이 체제는 이 과제를 훌륭하게 수행한다고 볼 수도 있죠. 북조선은 시리아와 달리 외세의 놀이터로 전락 당하는 비운을 맞지도 않고 당분간 맞을 것 같지도 않으니까요.

    사실 생각해보면, 현 세계체제 속에서의 핵심부와 주변부의 진정한 정치형태적 차이는 바로 국가의 강성/연성 형태의 차이인 듯합니다. 구미권 국가들의 외피적 “민주주의” 등보다 훨씬 더 중요한 사실은, 거기에서 국가의 재원 관리, 국경 관리, 재분배, 그리고 통제와 동원의 능력이 엄청나다는 것이죠.

    노르웨이에서 국가가 책임을 지지 않는 게 하나라도 있나 싶을 정도로 국가는 정말 전지전능의 이미지를 지닙니다. 이민자가 멋도 모르고 아이를 한 대 때려 그 행위가 노르웨이인인 이웃에게 발견돼 국가의 아동보호기구(Barnevernet)에 신고되면 그 다음에 어떻게 될까요?

    운이 나쁘면 국가가 그 아이에 대한 친권을 부모로부터 빼앗아 양육가족을 정해 그 가족에 아이를 맡기고 그리고 그 양육에 대한 정기적 보고를 받고, 그나마 그 부모들이 운 좋으면 아마도 몇 개월간 아동보호기구에서 상담 받고 비폭력적 양육에 대한 강좌 듣고 그다음에 그 요원의 가정방문을 받아 양육 환경에 대한 체크 받고, 그러니까 아이를 향한 부모의 행동 하나하나가 국가로서 파악 대상이 될 수 있을 정도죠.

    물론 이와 같은 국가의 만능은 저 같이 건강이 나쁜 사람에게는 좋은 점도 있습니다. 제가 예컨대 지금 이상으로 요통이 나빠지면 제가 사는 뱌룸시의 지자체에서 제게 매일매일 음식 등을 서비스 차원에서 집으로 배달해 줄 의무가 있을 것입니다.(관련 글 링크)

    제가 요리할 능력을 잃으면 지자체에서 요원을 보내 요리를 해줄 것이고…그러니까 국가의 만능이란 아주 편한 측면도 있는데, 좌우간 확실한 게 핵심부 국가들의 국가 능력은 구쏘련 이상이라는 점입니다.

    사실, 북조선이나 쏘련 등 적색개발주의 국가들은 제1세계 국가들의 그런 능력을 훨씬 더 가난한 지역에서 본따 재현하기 위해서 부득불 경제를 국가화시키기도 하고, 또 인민들에게 여러 희생을 강요할 수밖에 없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적색개발주의로 가지 않는 주변부의 국가들을 보면, 리비아처럼 약간이라도 핵심부 제국주의자들에게 밉보이고, 또 내부에서 지역갈등 등의 조짐이 보이면, 바로 제국주의자들이 그걸 이용해 내전을 선동하고, 그다음에 그 국가를 폭탄으로 파멸시키고 마는 것입니다. 노르웨이 등의 폭격기로부터 폭탄들을 맞으면서 나토 폭격기 하나 떨어뜨리지도 못할 정도로 리비아 같은 주변부 국가들이 약하다는 것입니다…

    핵심부 국가들의 “강성”은 복지(welfare)와 군사(warfare)를 아우릅니다. 노르웨이에서는 똑같은 국가가 자국민/영주자들에게는 치밀한 복지서비스를 해주면서 리비아에서는 수만 명을 폭탄으로 살육했습니다. 노르웨이 국가는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인 동시에 세계 7대 무기수출국입니다.

    적색개발주의 국가들 (구쏘련이나 오늘날 북조선)은 이 두 측면을 본따 엄청난 희생으로 발전시킵니다. 소비품 배급량을 조절해가면서 제국주의자들로부터의 방어에 필요한 무기 만들기에 재부를 투입시키고, 또 복지모델을 나름대로 발전시킵니다.

    그러나 적색개발주의로 가지도 못한 주변부 국가들은 연성국가로 남아 외세로부터의 방어에 충분한 무기 생산도 못하고, 인민집단 통합에 필요한 복지서비스 제공도 못합니다. 그래서 제국주의자들의 필요에 따라서 이라크나 리비아와 같은 피침과 국망의 비운에 처해집니다. 그렇다면, 남한의 위치는 어떨까요?

    좀 특수합니다. 미국의 번견 국가(군사적 보호령)로서의 준핵심부 국가 남한은, 주변부 국가들과 달리 아주 중무장돼 있는 존재입니다. 자국 방위산업도 크지만, 또 세계 무기 수입시장의 4%를 차지하는 세계 주요 무기 수입국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중국은 무기 수입 시장의 5% 정도죠).

    그런데 동시에 복지기능의 발전 수준은, 핵심부 국가들과 아예 비교가 불가능하고, 이미 무상의료/보육/교육을 실시하는 적색개발주의 후계의 일부 동구 국가(체코, 폴란드 등)에 비해서도 너무나 복지가 없습니다.

    그리고 보면,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보이듯, 국가의 주요기능(방역 기능 등)은 거의 제대로 가동이 안되고, 국가를 좌우하는 주요 재벌(삼성 등)의 사익 추구는 전체의 공익을 아무리 해쳐도 국가가 그 어떤 조절 기능도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주 중무장돼 있는, 그러나 공공서비스에 극도로 무능한, 재벌에 의해 사유화된 국가”라고 보면 될 듯한데, 이게 아마도 준핵심부 신자유주의 국가의 대표적 사례일 것입니다.

    그런 국가에서는 “국민” 집단으로서의 의식화는 대체로 복지서비스라기보다는 각종의 세뇌로 이루어집니다. 교육체계에서의 세뇌, 군복무 시절의 세뇌, 언론의 세뇌… 그래서 표면적으로는 강성국가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공공부문은 이미 사익집단에 의해 사유화돼 있는 만큼, 이 “강성”은 상대적입니다. 위기국면이 오기만 하면, 한국에서야말로 엄청난 계급투쟁이 발생될 확률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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