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좌파의 ‘재벌개혁론’은 어디?
    [연속기고③] 좌파의 안목을 가진 경제개혁 담론 부재
        2012년 07월 18일 02:3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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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합진보당 사태가 주는 진보정치와 진보운동에 대한 효과와 의미에 대한 세번째 연속 기고 글이다. 두번째 기고글을 보려면 여기를.<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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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합진보당의 이른바 ‘새로나기 혁신 보고서’에 재벌 문제가 언급되어 있다고 해서 당 홈페이지에 들어가 PDF 파일을 다운받아 읽어보았다.

    놀라웠다. ‘재검토해야 한다’는 얘기 외에 아무 내용이 없어서 한 번 놀랐고, 정작 한국의 재벌개혁 이슈에서 가장 뜨겁고 핵심적인 부분에 대해 아무런 고민이 없다는 데 두 번 놀랐고, 읽어 내려가기 고통스러울 정도로 무신경한 비문(非文,) 악문(惡文), 오자, 탈자 때문에 세 번 놀랐다.

    해당 보고서의 내용 중 ‘재벌’에 관한 부분을 일부 인용해 보겠다. 글자 하나 바꾸지 않은 ‘그대로’의 인용이다.

    “지난 총선에서 우리는 30대 재벌을 3,000개의 전문기업화라는 공약을 내세운 바 있으며 통합진보당의 경제정책의 핵심이 재벌해체라고 인식되어있는 것이 현실이다.
    기본적으로 재벌을 해체하고 제제하는 방향에 대해 동의한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적시되어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재검토되어야할 필요가 있다. (중략)
    그러나 과연 계열분리명령제를 핵심으로 하는 3천개의 전문기업화가 현실적인 정책인가. 재벌은 해체의 대상인가 아니면 개혁하되 기업집단으로 적절히 통제해야 할 것인가. 우리당이 전반적인 경제개혁 정책은 수립되어 있으며 그 속에서 재벌정책이 바르게 설정되어 있는 것인가 등의 질문에 대해 자신 있게 답변할 준비를 해야 한다.”
    – <새로나기 방향과 과제 보고서(최종)> 22~23쪽

    이게 사실상 관련 내용의 전부다. 뭘 어쩌자는 건지 알 수 없으나 재벌해체의 현실성을 문제 삼고 있다는 것은 알겠다. 그런데 그걸로 끝인가. 물론 보고서 하나로 정책의 미시적인 부분까지 모두 다룰 수 없는 게 당연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 보고서의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기본적으로 재벌을 해체하는 방향에 동의한다”는 문장, 여기서부터 뭔가가 턱, 하고 걸린다.

    바로 이 부분이야말로 가장 핵심이며 최고로 위험한 뇌관인데 아무렇지도 않게 그야말로 당연하다는 듯 넘어가버리고 있다. 기본적으로 재벌을 해체하는 데 동의한다고? 통합진보당이 얼마나 급진적인 정당인지는 속단할 수 없지만, 현재 당론이 ‘재벌해체’라는 걸 알고 있는 당원이 과연 얼마나 될지 정말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사실 ‘재벌해체’라는 의제가 한국사회에서 (운동권들 사이에서가 아니라) 대중적 화두가 된 적은 내가 기억하기로 단 한 번도 없다.

    통합진보당보다 더한 ‘빨갱이’들이 모여 있다는 진보신당에서도 공식적인 토론회나 행사에서 ‘뜨거운 감자인 재벌개혁’ 등등의 표현을 사용하지 ‘재벌해체’라는 표현을 잘 쓰지 않는다.

    덜 과격해서가 아니다. 그것이 더 적확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장하준‧정승일‧이종태 등과 김상조‧이병천‧유종일‧정태인 등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벌어진 논쟁을 주주자본주의 논쟁이니 신자유주의 논쟁이니 재벌개혁 논쟁이라는 말로 부르는 경우는 있어도 재벌해체 논쟁이라 부르는 경우는 없다(앞으로 장하준 그룹을 ‘대타협론자’로, 김상조 그룹을 ‘재벌개혁론자’로 부르겠다).

    그냥 상식적인, 그리고 냉소적인 물음 하나만으로도 이유가 설명된다. 까놓고 말해서, 지금 ‘개혁’도 안되는데 ‘해체’를 어떻게 하나?

    대타협론자들보다 훨씬 재벌에 적대적인 재벌개혁론자들 조차도, 최근 들어서는 ‘개혁’을 말하지 ‘해체’라는 단어를 좀처럼 입에 올리지 않는다.

    전경련 부설 한국경제연구원이 개최한 경제민주화 토론회

    만약 ‘새로나기 보고서’가 제대로 된 것이었다면, 느닷없이 재벌해체의 현실성을 물으면서 현실주의자인 척을 할 게 아니라 이미 오랫동안 사회적으로 논의되어온 재벌개혁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또렷한 입장과 전망을 내놓았어야 하지 않을까?

    재벌타협론 대 재벌개혁론, 그 10년의 논쟁

    대타협론자 대 재벌개혁론자의 논쟁은 사실 재벌개혁 문제만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전반적인 한국경제의 성격을 규정하는 논쟁이었고, 앞서 언급한 학자들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논리를 가지고 논쟁에 참여해왔다.

    가장 최근에는 <프레시안>에서 이병천, 이종태, 정태인 등이 참여한 논쟁이 중계되었다. 여러 매체, 다양한 지면을 통해 진행된 대타협론 대 재벌개혁론의 대결은 2000년대 한국사회 인텔리들의 논쟁 중에서 아마 가장 길고 거대한 논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방대한 논쟁을 이 짧은 글에서 제대로 정리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니 내 식대로, 즉 ‘무식하게’ 요약할 수밖에 없다.

    논쟁이 진보‧개혁 진영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시점을 사람에 따라 다르게 잡을 수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거의 최초의 계기는 경제전문 기자이자 작금의 대표적인 재벌 대타협론자로 알려진 이종태가 진보 시사지 <말>의 편집장이 된 2003년이다.

    <말> 2003년 3월호 표지기사의 제목은 ‘한국사회, 재벌독재에서 금융독재로’였다. 이때부터 월간 <말>은 주로 장하준과 정승일의 글과 말을 빌어 주주자본주의를 강하게 비판하고 사회적 대타협을 주장하게 된다.

    영국에서 주로 활동하던 장하준이라는 학자가 한국 독자에게 ‘출중한 내공의 세계적 경제학자’로 각광받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장하준과 정승일과 뜻을 같이 하는 학자들이 많이 모여 있던 단체가 지금은 해체한 대안연대회의(대안연대)였다.

    한편, 소액주주운동 등 주주권을 강조하며 재벌개혁을 주장해온 대표적 학자들이 참여연대와 이래저래 관련이 있었다. 그래서 이 논쟁은 처음에 대안연대/참여연대 논쟁으로 불리기도 했다.

    논쟁에 불이 붙으면서(지금도 그런 것 같지만 상대 진영에 대한 인식공격성 발언들이 난무했다), 다른 매체들이 하나 둘 관여했고, 참여연대의 재벌개혁론만 알던 시민들도 대안연대의 논리를 처음 접하면서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장하준 등 대타협론자의 논리를 거칠게 한 단어로 요약하면 ‘주주자본주의 반대(이해당사자 자본주의)’였다. 주식 소유자의 권리를 최우선으로 하는 시스템은 단기적 주가상승에 목매달게 되고 결국 국민경제의 장기적 발전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이미 관련도서들이 많이 나와 있으니 구체적인 근거나 사례들은 책을 통해 참고하면 된다(개인적으로는 장하준의 <국가의 역할><사다리 걷어차기>와 장하준‧정승일‧이종태 공저 <쾌도난마 한국경제>를 추천한다).

    그래서 이들은 재벌의 제왕적 경영행태를 바로잡는다는 명분으로 주주권에 기대 재벌개혁에 나서는 한국 재벌개혁론자들을 신랄하게 비난한다. 그것은 결국 해외투기자본의 논리이며 한국의 경제주권을 해외자본에 팔아넘기는 결과로 귀결될 거라는 것이다.

    대안은 사회적 대타협이다. ‘황금주’ 등의 장치를 통해 재벌경영에 독점적 지위를 보장해주는 대신 고용안정과 투자 등의 사회적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는 것. 여기에 단골로 등장하는 모범사례는 스웨덴의 발렌베리 재벌이다.

    재벌 대타협론자들은 스웨덴이 국가-노동자조직-재벌의 대타협을 통해 비로소 세계에서 가장 평등한 복지국가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재벌개혁론자들은 재벌타협론자의 재벌 중심적 대안이 실효성이 없다고 공박한다. 재벌타협론의 핵심은 국가의 역할이다. 더 정확히 말해서 국가의 ‘능력’이다.

    불필요한 낭비나 갈등을 줄이고 기업을 컨트롤해서 성장산업에 ‘선택과 집중’하게 하려면 국가가 압도적으로 유능하든가, 압도적으로 폭력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미 박정희 시대도 아닌데, 국가가 기업의 차세대 성장산업 따위를 기획하고 지정해줄 수는 없다. 게다가 지금 경제부처 관료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마치 구좌파가 신좌파를 비판하듯, 재벌타협론자들은 재벌개혁론자들의 방식을 두고 ‘껍데기는 진보지만 내용은 신자유주의’라고 말한다.

    그러나 재벌개혁론자들의 논리가 비록 제조업 분야에 대해 타협론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가졌을지 몰라도 금융분문 규제를 전부 풀어야한다든가, 시장에 대한 정부개입은 최소한으로 해야 한다 식의 주장을 한 적은, 내가 알기로 없다.

    또한 자본의 국적성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도 아니다. 해외자본의 ‘먹튀’ 논란에 대해서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해외자본의 투자동기가 어떤지에 따라 해석도 달라진다는 입장에 가깝다.

    좌파의 재벌개혁론은 어디에

    대선이 다가오면서 다시금 재벌개혁을 둘러싼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다른 당도 아닌 새누리당이 ‘경제민주화’란 단어를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의 핵심이 다름 아닌 재벌개혁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실소하거나 코웃음을 쳤다. 민주당은 경제민주화는 자신들이 원조라며 분기탱천한다. “자연산 경제민주화”와 “성형 경제민주화”란 표현까지 등장했다.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럴 만도 하다. 현재까지(2012년 7월 16일) 집권여당과 박근혜 씨가 그간의 재벌 편들기에서 벗어나 획기적인 재벌개혁안을 내놓았다는 얘긴 듣지 못했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이라는 이슈에서 저렇게 패기만만하게 원조논쟁을 벌일 정도로 잘해왔느냐고 묻는다면 그저 웃을 수밖에 없다.

    출자총액제한제도와 금산분리만 하더라도 민주당은 참여정부 시절의 ‘원죄’가 있다(출총제는 이명박 정부가 폐지하지 않았냐고 할지 모르지만, 사실상 폐지에 가까울 정도로 무력화된 건 2007년이었고 그때는 참여정부 집권시기였다). 재벌개혁을 논할 자격으로 따지자면, 새누리당이 50보, 민주당이 51보쯤 된다.

    그러나 좌파가 참여정부의 한계를 남의 일처럼 조소할 수만은 없다. 그래도 개혁적이라는 정권이 재벌문제에서 얼마나 무력하게 허물어졌는지에 대해서 좌파는 숙고를 거듭해야 한다. 진보신당이 민주당 정도의 힘을 얻어 정권을 잡는다고 해서 재벌을 통제할 수 있을까?

    십중팔구 민주당의 오류를 답습할 것이다. 아니, 민주당만도 못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재벌 시스템을 바꾼다는 것은 그야말로 지난한 목표다. 재벌을 악마화하는 여론몰이나 재벌에 투자를 해주십사 읍소하는 전략 모두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참여정부가 우리에게 남긴 소중한 교훈이었다.

    시장의 논리, 주주자본주의의 논리로 재벌을 규제한다는 생각만큼이나 재벌과의 대타협론도 목가적이긴 마찬가지다.

    대체 재벌이 뭐가 아쉬워서 타협을 한단 말인가. 노조 조직률 10%도 안되는 한국의 노조가 노조조직률 80%의 스웨덴 노총 같은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전제부터 어불성설이다. 타협이란 것은 당사자가 서로에게 최소한 ‘부정적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을 때 성사된다. 부정적 강제력이란 상대를 잘되게 하진 못해도 최소한 치명적으로 방해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이다. 과연 지금 재벌에게 그 정도의 힘을 행사할만한 집단이 대한민국에 존재하는가.

    10년간 재벌타협론과 재벌개혁론이 논쟁해왔고, 10년 전에 비하면 양자의 입장은 눈에 띠게 좁혀졌다. 아니, 애초부터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다. 양자 모두 자신이 ‘진짜 진보’라는 양, 상대를 “좌파 신자유주의자”로 규정하거나 ‘박정희주의자’라는 식으로 몰아갔지만 본질적인 공통점이 있다.

    바로 성장전략을 중심으로 국민경제를 사고한다는 점이다. 흔히, 주주자본주의의 원칙이 1원 1표(또는 1주 1표)라면, 이해당사자 자본주의의 원칙은 1인 1표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재벌타협론자들이 정확히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를 주장하고 있느냐하면, 그건 아니다. 장하준 모델에서 핵심은 국가가 산업정책을 기획하고 은행을 통해 재벌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것이다. 관료의 ‘창조적’ 역할은 틈만 나면 강조되지만 노동자의 역량은 그렇게 평가되지 않는다.

    재벌타협론과 재벌개혁론 간의 논쟁은 분명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결실을 남겼다. 양쪽 모두 경청할만하고 동시에 비판받을 지점도 적지 않다. 한국의 좌파는 이 결실을 스폰지처럼 흡수해야 한다. 그리고 나름대로 곰삭혀온 문제의식과 소중한 경험들을 그 고민에 함께 녹여내야 한다.

    하지만 노동자의 민주적 참여가 배제된 재벌개혁은 그것이 아무리 ‘민족경제’니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을 달고 있더라도 좌파의 ‘재벌개혁론’이라 말하기 어려운 게 아닐까.

    이를테면 과거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 시절 송태경이 정교화시킨 노동자기업소유 및 우리사주 전략과 현실적용 사례들, 그리고 철학자 김상봉이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에서 갈파한 노동자 경영참여의 철학 말이다.

    그것은 한 마디로 ‘생산/경영에서의 노동자 중심성’이다. 물론 노동자 경영참가나 기업소유가 여전히 여러 가지 이론적‧실천적 난맥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좌파의 결론이 될 순 없더라도 좌파적 재벌개혁론의 ‘출발점’으로 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어차피 재벌개혁이라는 문제는 5년짜리 정권 하나가 어찌해볼 수 있는 스케일의 것이 아니다. 좌파는 긴 안목과 시민의 눈높이를 염두에 두면서도 치열하게, 재벌개혁에 대한 나름의 대답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필자소개
    계간 R 편집위원‧<소수의견><88만원 세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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