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유년을 다시 만나다
    [메모리딩의 힘-4] 나의 육아 선생님, 조지 오웰
        2012년 07월 18일 02:1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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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을 완전히 다시 겪는 기분이다”
     – 조지 오웰

    조지 오웰의 작품을 무척 사랑한다. 우리에게는 <1984>, <동물농장>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언론의 말장난과 스페인 내전을 다룬 <칼탈로니아 찬가>라는 자전소설과 <위건 부두를 떠나며> 같은 에세이까지 챙겨 읽었다.

    그 중에서도 <나는 왜 쓰는가>라는 에세이를 참 좋아하는데, 그 책에 1946년경 촬영된 한 장의 사진이 인상적이었다. 오웰은 어린 아들을 남겨놓고 부인과 사별하게 되는데, 입양한 아들을 포기할 것이라던 주위의 예상과 달리 헌신적으로 아이를 돌본다. 그리고 남긴 말 한마디는 오웰의 헌신적인 육아를 잘 설명해준다.

    메모리딩 강의를 하면서 아이에게 읽은 책의 내용에 대해서 캐묻는 한 어머니의 경험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직접적으로 묻기보다는 제3자에게 대화하듯이 궁금한 감정을 표현하라는 주문에 대해서 어머니는 약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교육 방침이 오래 전부터 그랬고 지금도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변하는 게 가능한가요?”라고 물었다.

    우리의 부모님들은 전쟁의 비참함을 겪으면서도 헌신적으로 돌보셨다. “내 자식은 나처럼 살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살림은 빠듯하고 아이들한테 들어가는 돈을 감당하려면 쉬지 않고 일해야 했다.

    그래서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엄마의 엄마로부터 받아야 할 관심을 받지 못한 아이는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이렇게 말한다. “내 자식은 나처럼 살지 말았으면.” 메모리딩 강의에서 질문을 한 엄마의 걱정스런 눈빛에서 나는 이런 신호를 읽었다.

    엄마의 세심한 관찰과 어루만져주는 손길, 그리고 세상에 대한 자상한 설명을 듣지 못한 아이들은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서투르다.

    심리치료사인 스캇 펙 박사는 대다수의 어른들은 심리적으로는 죽을 때까지 아이로 남아 있다고 한다.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을 건 일대 도약이 필요한데, 그런 위험을 감수하기 위해서는 결핍된 욕구들을 채워 넣어야 하고 안전에 대한 보장이 되어 있어야 한다. 이것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부모 밖에 없다.

    매슬로의 욕구 단계 이론으로 보면 엄마의 엄마들은 아이들의 생존 욕구와 안전 욕구 등 초기 단계의 욕구를 책임지는 임무를 맡았다. 그리고 지금의 엄마들은 사회적 욕구나 자아 실현 욕구 같은 고차원적인 욕구를 책임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 시대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기회

    아이는 나에게 찾아온 소중한 손님이다. 그런데 왜 찾아왔을까? 소중한 손님은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러 왔을까?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이런 궁금증이 생겼다.

    이런 저런 책을 읽고 아이와 부대끼면서 얻은 결론은 “자기 치유의 기회”이다. 조지 오웰이 어린 시절을 다시 겪는 기분이 들었다고 했을 때 나는 그의 헌신적인 육아가 엄마의 엄마들이 보였던 헌신과는 다른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육아를 직접 해보면서 나는 아이에게 나의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부끄러운 나의 모습이었다.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면 나에게 물려 받은 습성들 때문에 고통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덜컥 겁이 났다.

    내 아이가 화가 나서 짜증을 낼 때, 마음에 상처를 받아 눈물을 흘릴 때, 두려운 상황을 피하려 뒷걸음질 쳤을 때, 동생을 밀치거나 때릴 때 나는 어떻게 아이의 마음은 어루만져주어야 하는지 모른 채 당황한다.

    그런 행동은 ‘잘못된 것’이라고 똑같이 꾸중을 하거나 형으로부터 동생의 장난감을 빼앗아 돌려주는 따위의 행동을 하기 일쑤였다. 어릴 적의 나는 내 마음을 몰랐고, 지금도 역시 아이의 마음을 모른다.

    아이를 키우면서 강하게 든 의문은 ‘내가 과연 심리적으로 건강한가’였다. 아이와 만나는 일상적인 상황에서 나의 서투른 행동이 아이에게 상처가 되고 안 좋은 감정이 생기게 하는 느낌이 자꾸 든다. 심리학 책을 열심히 읽으며 육아에 정성을 쏟은 까닭이다.

    그런데 엄마들을 만났을 때 비슷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심리적으로 건강하지 못함. 팔이 다치거나 다리를 삐끗한 것과 달리 마음의 병은 쉽게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이 마음에 병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른 채로 세월을 살아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자기 치유’였다. 아이와 함께 책을 읽고 독서놀이를 하면서 부모님은 유년의 모습을 보면서 치유를 하고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회복한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왜냐하면 교육은 반드시 심리적으로 건강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치유의 방법, 사랑

    자기치유의 답이 멀리 있는 게 아니다. 35개월 된 아들 민준이에게 처음으로 고백을 들었다. 주말에 사무실에 출근하는 아빠를 보며 울음을 터뜨리더니 “아빠랑 놀고 싶은데 아빠는 밖에 나가버려”라고 말한다.

    마음이 아팠다. 얼마나 아빠랑 놀고 싶었는데 표현을 못하고 마음속에 담아 두었을까? 이런 신호를 보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키즈 카페에 놀러 갔을 때 다시는 못 올 것처럼 정신 없이 노는 모습도 그렇고, 아빠가 늦게 오면 달려오면서 맞는 모습도 눈물 겨웠지만 아빠와 함께 하고 싶고 놀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뒤늦게 민준이의 마음을 알았지만 조금만 관찰하고 말을 걸면 아이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경청하기 연습이 필요한 시간이다. 심리학자들은 몰입과 경청을 주문한다.

    만약 아이와 놀아주면서 반쯤 정신을 팔려 있거나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 아이는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성격이 될 위험성이 크다고 한다. 특히 유치원이나 초등학생 저학년의 경우 더욱 주의 깊게 경청해 주길 원한다.

    물론 현실이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어떻게 할지 방법을 몰라서 쩔쩔 매는 경우도 많다.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을 하루 아침에 바꾸는 것이 힘들다는 것도 안다.

    아이는 부모가 가까이 머물러주기를 간절히 바라는데, 부모는 아이가 무엇을 하는지 관찰하고 그들의 세상으로 들어가고 싶어 애를 태운다.

    이 때 오랜 친구와의 대화를 생각해 보자. 10년 만에 만난 친구이지만 어제 만난 사람처럼 마음의 위로가 되고 어릴 적의 추억들이 한꺼번에 생각난다. 마치 구름 위를 뛰노는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다.

    이 때 필요한 건 그저 짧은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서 눈을 마주치고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이다. 아이와의 독서놀이도 이런 원리로 얼마든지 재미있게 할 수 있다.

    메모리딩 강의를 듣는 한 엄마의 말처럼 돈 들여서 비싼 보드게임 사거나 주말에 미어터지는 에버랜드 같은 곳에서 시간을 빼앗기는 게 아니라 책과 함께 할 시간만으로 할 수 있는 독서놀이 활동으로 가족의 이야기꽃을 피우는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아동전문가와 심리치료사들이 한결 같이 하는 말은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이들이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학교에 가서 친구를 사귀는 십대가 되면 부모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자체가 줄어든다. 만약 이 시간 안에 아이와 연대를 맺어 놓지 않으면 아이와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줄어든다.

    아이들의 변화되는 모습을 보면 실감이 난다. 태어나서 처음 만나고 자신에 대해서 모든 것을 책임져 주는 부모는 아이들에게 부모란 세상의 전부다.

    아이들은 다른 부모가 자신의 부모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자기 부모가 하는 방식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엄마와 아빠가 싸움을 할 때는 하늘이 흔들리는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한다.

    부모가 지시를 하면 처음에는 반항을 하다가 체념해서 고분고분하게 행동한다. 그러면서 마음속에 울분을 감추어 두고 있다. 이 보이지 않는 상처가 무서운 것이다. 십대가 되기까지는 대개 부모가 아이를 다루는 자신만의 방법을 알게 되고 효과도 본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가 문제다. 계속해서 성숙하고 달라지는 아이의 요구에 적응하지도, 아이에게 영향을 주기도 어려워진다. 결국 좋은 부모로서의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아이를 강압적으로 키우는 부모의 경우느 더 심하다. 어렸을 때는 아이가 공격적인 행동을 하더라도 힘으로 제압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청소년이 되면 부모보다 체격조건이 커지고 힘도 세지게 돼 부모가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이 때 계속 힘으로 제압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한다면 청소년이 된 아이가 도리어 부모를 힘으로 이기려 하거나 최악의 경우 부모를 구타하는 등의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고등학교 다닐 때 한 친구를 알게 되었는데, 1학년 때부터 친해져서 집에도 놀러가는 사이가 되었다. 2년이 지나고 고3 때 다시 친구 집에 놀러 갔었는데, 친구가 자기 방에서 담배를 뻑뻑 피고 듣기 민망할 정도로 부모 욕을 입에 달았다.

    참 황당해서 다시는 그 친구를 보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친구만의 잘못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욕망(욕구불만)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잠시 흐르지 못하게 할 수는 있지만 결국 제방이 터지고 자기 갈 길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지금은 아이와 놀아주고 책을 읽어주느라 정신이 없고 때로는 지치기도 하지만, 아이와 마음껏 놀 수 있는 지금의 시간이 머지않아 그리워질 것이다. 기형도 시인의 시처럼

    내 유년시절 바람이 문풍지를
    더듬던 동지 밤이면
    어머니는 내 머리를 무릎 위에 뉘이고
    무딘 칼끝으로 시퍼런 무를 깎아 주시곤 했다.
    어머니 무서워요 저 울음소리,
    어머니 조차 무서워요
    애야 그것은 네속에서 울리는 소리란다
    네가 크면 너는 이겨울을 그리워하기 위해
    더 큰소리로 울어야 한다
    ㅡ 기형도 시 <바람의 집> 일부

     

    필자소개
    오승주
    제 꿈은 어린이도서관장이 되는 것입니다. 땅도 파고 집도 짓고, 아이들과 산책도 하고 놀이도 하고 채소도 키우면서 책을 읽혀주고 싶어요. 아이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최선을 다해서 이야기를 해주고, 아이가 자라는 동안 함께 하고 아이와 함께 아파하며 아이가 세상의 일원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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