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토부 '조종사 정신질환 가이드라인',
    조종사 노조 "심각한 부작용 낳을 내용들"
        2015년 06월 08일 06:0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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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토교통부가 항공 안전을 위해 ‘조종사 정신질환 예방 및 관리 가이드라인(안)’을 발표한 가운데, 항공기 조종사 노조 등은 “사회적·법적으로도 문제가 많으며 엄청난 부작용을 유발하는 초법적 내용”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 가이드라인은 회사 또는 정부가 조종사 개인의 정신건강 정보와 범죄경력을 수집·관리·처리할 수 있게 하고, 수시로 조종사들의 심리상담·면담을 실시하게 해 정신질환 조종사를 색출하고 비행을 중지시킬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을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국토부의 가이드라인은 독일항공 저먼윙스 부기장의 ‘자살비행’으로 전 탑승객이 사망하는 사건에 대한 선제적 조치인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국제 사회에서도 시도하지 않는 상당히 초법적인 내용이라는 것이다. 사고 발생국인 독일 또한 조종실 내 2인 상주 의무화 정도 조치만 취하고 있다.

    대한항공조종사노동조합, 아시아나항공조종사노동조합, 대한항공조종사새노동조합, 제주항공조종사노동조합,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항공협의회는 8일 성명을 내고 국토부의 가이드라인에 대해 국제적으로도 유례가 없으며, 개인의 인권침해, 평등권 위배, 근로기준법 위반은 물론 실효성도 없는 대책이라고 규탄했다.

    노조들은 “만약 이번 가이드라인이 적용될 경우 조종사들은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어도 병원에 가지 않고 숨기게 될 것이며, 제때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오히려 정신질환으로 인한 사고위험은 극도로 높아질 것”이라며 “정신질환 여부가 알려지면 비행을 정지당하고 생계를 위협받게 될 수 있는 것을 알면서 어떤 조종사가 자신의 심리적 문제를 솔직하게 상담할 것이며, 또한 어떤 조종사가 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제때 찾아갈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토교통부가 집중할 사항은 조종사의 스트레스와 피로도를 줄이고 심리적 안정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하는 정신질환 예방활동이어야 하지, 이번 가이드라인과 같이 조종사 정신질환자 색출·관리로 오히려 조종사들에게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행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국토부 가이드라인이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지적도 있다. 정신질환 검사를 통해 해결될 수 있는 사고라면 안전 담당 업무 전반의 노동자와 서비스 업무 담당자는 물론 고의사고를 낼 가능성이 있는 개인 자가용 운전자도 이 같은 가이드라인에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노조들은 “만약 독일 저먼윙스 사고와 같이 정신질환 때문에 발생하는 사고들에 대해 가이드라인처럼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고 인권을 제한하는 조치가 가능하다면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에 대해 비슷한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며 “국민 대부분에 대해 상시적으로 자신의 정신질환 여부를 보고해야 할 의무를 부과해야 하고 상시적으로 면담을 실시해 우울증 등 정신질환이 포착되면 운전면허를 정지 등 관련 업무를 정지할 수 있는 조치가 취해질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토부는 유독 조종사에 한정하여 가이드라인과 같은 조치가 취해져야 하는 이유를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가이드라인이 상위법인 항공법에 위반되는 사안임은 물론 국내 법상 어떤 근거도 없는 초법적 내용이라는 비판도 있다.

    우선 국토부 가이드라인 제1조는 ‘「항공법」 제31조에 따른 것’으로 명시하고 있지만, 항공법 제31조는 물론 개인정보보호법 등 법령 어디에도 항공사에게 조종사의 정신질환 병력과 범죄경력 같은 민감정보를 수집·관리·처분할 권한을 부여하고 있지 않다.

    또한 이들은 “조종사에게 자신의 정신질환을 보고할 의무를 부과하는 것도 대한민국 법령 어디에도 근거가 없는 초법적 사항”이라며 “정신질환 정도 여부와 관련 없이 항공사가 비행복귀 여부에 적합한지를 평가해 비행임무에 투입할지 여부를 자의적으로 결정 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것도 근로기준법 등 관련 법령에 비추어 볼 때 초법적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가이드라인 도출 과정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조종사 개인의 인권침해, 평등권 침해, 근기법 위반, 실효성 여부 불투명 등의 논란이 일고 있음에도 고작 두 차례의 회의와 이해당사자인 조종사와의 한 차례의 간담회만을 치르고 강행하겠다는 것이 국토부의 입장이다.

    노조들은 “국토부가 이번 가이드라인을 도출한 과정을 보면 정말 한숨만 나올 뿐”이라며 “조종사들에게는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에 6월 2일에 간담회를 하자며 의견을 달라는 식이어서 형식적으로 들러리 세우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들은 “국토부가 이번 가이드라인을 강행한다면 우리 제 조종사단체로서는 언론선전, 국회청원, 집회 등 강력한 대정부투쟁을 벌일 것”이라며 “제 조종사단체는 국토교통부의 이번 시도를 강력히 규탄하며, 지금이라도 국제적 기준이 도출될 때까지 이번 가이드라인 추진을 즉각 중단할 것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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