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8 나의 아픔이
    4.16 유가족과 다르지 않다"
    [책] 『5.18 엄마가 4.16 아들에게』(최봉희/ 레디앙)
        2015년 06월 07일 11:06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올해 나이 78세인 최봉희 시인이 세월호 참사 1년을 담은 기록 시집 『5.18 엄마가 4.16 아들에게』를 펴냈다. 이번 시집은 광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저자의 여섯 번째 시집이다. 수록 시는 57편.

    시인 자신이 80년 광주 항쟁 때 17살 난 아들을 찾아 거리에 나섰다가 계엄군의 곤봉에 맞아 쓰러진 경험이 있는 5.18 부상자다. 이제 그때의 그 아들은 자라서 17난 아이들을 잃은 단원고 실종, 사망 학생들의 아버지 또래가 됐다. 이 시집의 제목이 『5.18 엄마가 4.16 아들에게』로 정해진 까닭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아이를 잃은 엄마가 길거리 한복판에 얼굴을 내놓고 서명을 받으며, 삭발까지 하고,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는 것”을 보면서 “5.18 나의 아픔이 4.16 유가족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며 “참사가 일어난 갑오년 4월은 내 나이 일흔여덟, 나는 깊은 바다에서 잠들어 있다가 숨 쉬며 올라와 유가족의 슬픔에 동참하게 되었다.”고 시집을 펴낸 배경을 적고 있다.

    이번 시집은 지난해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1년 동안 세월호에 관한 시를 엮은 것이며, 모두 3부로 나뉘어 시간의 흐름을 따라 구성돼 있으며, 참사 1주기를 맞아 저자가 다시 팽목항을 다녀오면서 쓴 시로 끝을 맺고 있다.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시 <5.18엄마가 4.16아들에게>에서 ‘1980년 5월 18일 엄마는 젊었고 / 세 아이를 낳아 기를, 35년이 흘러 / 2014년 4월 16일 엄마의 아들은 아빠가 되었다. … 너의 슬픔은 엄마보다 더 깊고 / 엄마의 슬픔은 너보다 더 길다 // 엄마는 팽목항 바다를 향해 울음을 삼키고 있는 / 안산의 아들을 본다 / 네가 낳은 열일곱 아이는 어디 있느냐?’면서 광주와 안산의 슬픔을 하나로 일치시키고 있다.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팩트(fact)보다 더 담담한 팩트가 훌륭한 시어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슬픔을 가장 슬프게 전달한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다. 이 시집의 눈에 띄는 시적 성취다. 예컨대 이런 시다.

    용돈

    2014년 5월 5일, 세월호 참사 20일째

    아이가 다니던 학교 근처에서
    작은 세탁소를 하고 있습니다.

    4월 15일 생일이 지나면 첫 주민등록증을
    받게 될 거라고 좋아하던 우리 아이입니다.

    수학여행 떠난 후 세월호 참사 소식에
    진도 팽목항으로 급히 내려왔습니다.

    전원 구조란 말만 믿고 세탁소에는
    이렇게 써 붙였습니다.
    ‘내일 17일까지 쉽니다’

    아이는 잠자듯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수학여행 갈 때 손에 쥐어 준
    2만 원이 전부였으니
    그게 너무너무 미안해서 울었습니다.

    아이의 젖은 옷에서 꺼낸 지갑에는
    두 번 접힌 만 원짜리 두 장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우리 아이 어떡해요?
    그 돈마저도 쓰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 전문

    ***

    내 손을 잡아 주겠니?

    민간인 잠수 요원이 잠수복 입고 헬멧 쓰고
    호흡기 달고 바다 속으로 잠입합니다
    수심 37미터
    세월호가 무겁게 누워 있는 곳
    그가 아이들을 찾으러 갔습니다
    책상 다리에 몸이 끼인 아이
    친구 손잡고 있는 아이
    눈 감고 잠자 듯 누워 있는 아이
    오렌지색 퉁퉁한 구명조끼를 입은 아이
    얘들아, 널 안고 가려고 내가 왔다
    무서운 아저씨는 아니란다
    그러니까 내 손 잡아 주겠니?
    슬픔 없는 좋은 세상 데려다 줄게
    나비처럼 훨훨 날라고 하늘나라로 보내 줄게

    안산 집에 가자
    엄마가 애타게 기다리신다
    민간 잠수 요원은 혼자 울었습니다
    너무 기가 막혀 엉엉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 전문

    518엄마가

    백수인 조선대 교수는 발문에서 “이 시는 ‘동병상련’의 정이라는 의미보다 한 차원 높은, 역사적 차원에서의 ‘국가 폭력에 의한 피해의 상속’이라는 측면을 부각시키고 있음을 볼 수 있다.”고 쓰고 있다.

    백 교수는 이어 “이 시집은 ‘세월호 참사’ 이후 1년 동안의 흐름과 그 슬픈 감정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기록”이라면서 “최 시인은 시를 통해 희생자와 그 가족, 그리고 시인 자신을 포함하여 슬픔의 바다에 빠져 있는 모든 이들을 어루만져 주고 싶었을 것이다.

    진정으로 슬픔과 고통을 함께할 때 마음이 녹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집은 우리 모두가 공동으로 갖는 위대한 슬픔이다. 그리고 이 슬픈 노래들을 통해 화해와 치유로 나아가는 길이 열리길 염원하고 있다.”고 이 시집의 의미를 밝히고 있다.

    도법스님은 추천사에서 “세월호의 아픔을 온통 자기 것으로 받아들여, 담담한 언어로 써 내려간 이 시집이 유가족과 많은 분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고, 우리가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가는 출발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고 썼다.

    출판사는 저자와 상의해 이번 시집의 가격을 4,160원으로 정했다. “4월 16일을 잊지 않으려는 뜻”이며 “4월16일 이후, 우리 삶의 작고 하찮은 것 속에도 4월 16일은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시집은 저자와 편집자, 디자이너, 인쇄에 이르기까지 모두 절반의 기부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다.

     시집을 내며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갑오년 4월은 내 나이 일흔여덟. 그렇게 열심히 나이를 삼키다가 나도 깊은 바다에 가라앉았습니다. 좋은 시 한 편 쓰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지만 시 쓰는 일엔 게을렀고, 책을 읽고 세상을 들여다보는 일만큼은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남 앞에 나서 본 일 없었다는 한 엄마가 아이를 잃고 나서야 길거리 한복판에 얼굴 내놓고 서명을 받으며, 삭발까지 하면서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5.18 나의 아픔이 4.16 유가족과 다르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누가 나를 끌고 나왔는지, 나는 깊은 바다에서 잠들어 있다가 숨 쉬며 올라와 유가족의 슬픔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세상을 떠날 날이 가까워 오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오직 이 화두 하나에 골몰하다 보니, 시가 될 수도 없고, 밥을 굶어도 좋을, 시 한편 잘 썼다고 할 수도 없는,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그대로의 사실을 기록으로 쓰는 내내 자주 울었습니다. 거기에 감기가 찾아와서 기침이 심했지만 눕지 못하고 제때 밥도 먹지 못하고 봄이 어디까지 왔다가 시름없이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유가족 엄마들이 길거리에 선뜻 나서듯이, 용기를 내어 기록 시집을 남기게 되었으니 그나마 위로가 되고, 지난 1년이 내게는 의미 있는 시간으로 남았습니다.

    예쁜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하늘로 간 어린 별들의 꿈속에 새 생명을 불어넣고 싶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아껴주는 이웃이 있어, 비록 모든 것을 잃었다 해도 스스로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

    4월은 잔인하다고 했던가요? 4월은 그러나 부활의 달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봄의 시작이 어찌 찬란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삶에는 부끄러운 일들이 많습니다. 보이지 않는 장벽은 스스로 무너지지 않습니다. 기다리지 말고 우리가 그 장벽을 넘어야 합니다. 이다음에 내가 유가족을 만날 수 있게 된다면 그 때에 슬픔을 함께 나누며 꼭 안아 주고 싶습니다. 먼 훗날 그들의 가슴이 따뜻해져서 아픈 짐도 잠시 내려놓고 환하게 웃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을 믿습니다. 새로운 삶에 용기와 희망을 잃지 마시고, 힘내시기 바랍니다. 조금이나마 유가족 분들께 위안을 드리고자 이 작고 초라한 시집을 남깁니다. –  최 봉 희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