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르스 방관하는 한국,
    홍역에 호들갑인 베를린
    [기고] '방심'보다 '호들갑'이 낫다
        2015년 06월 05일 01:4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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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르스’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신종 바이러스로 인한 공포감에 한국이 떨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현재 6월 3일 기준 30명의 환자가 발생했으며, 1324명이 격리되어 있다고 발표되었다. 한국뿐 아니라 발병 의심자가 아무 문제 없이 해외로 출국해, 비행기 승객과 승무원, 그리고 현지에서 발병자를 접촉한 수백 명이 격리되었다.

    정부의 미온적이고 소극적인 대처는 시민들 사이의 불안감을 키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보건당국은 최초 발병자의 신고를 묵살하고, 환자의 친척 중에 정부 고위공직자가 있다는 말을 듣고서야 뒤늦게 발병사실을 확인하는 등 사실상 보건당국으로서의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하고 권력에 굴종하는 모습만을 보였을 뿐이다.

    정부는 메르스 확산의 공포가 커지던 초기 국면에 주말이 지난 뒤인 월요일(6월 1일)에야 대책회의를 하겠다며 늑장을 부리기도 했다. 시민들이 공포에 떨건 말건, 추가 발병자가 나오든 말든 각료들은 주말에는 쉬어야 하는 모양이다. 이후 나온 대책이라고 해봐야 낙타를 조심하라는 것과 괴담자를 엄벌하겠다는 것밖에 없어서 코웃음을 사고 있다. 그러는 사이 중동에서 발생한 이 바이러스는 한국 정부의 무능을 기반으로 아시아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전염성 질환의 경우 조기에 대처하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갈 수 있는 위험이 있는데도 여유만만해 보이는 정부의 태도를 보면, 오히려 이러한 시민들 사이의 불안과 공포를 반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자아낸다.

    이러한 한국 소식을 접한 뒤, 나는 며칠 전에 받은 학교에서 발송한, 그러나 베를린 당국에서 보낸 내용의 한 통의 편지가 생각났다.

    사진1 (1)

    5월 18일자로 발송된 이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내가 5월 12일 훔볼트 대학교 철학과에서 홍역에 걸린 환자와 접촉했으며, 홍역은 매우 전염성이 뛰어나고 감기와 유사한 초기 증상이 나타나니 각별히 유의하라는 것이다.

    만약 내가 과거 홍역에 걸린 적이 있거나 예방주사를 맞은 경우에는 상관이 없지만, 두 경우 모두 아니라면 바로 병원에 가서 MMR이라는 예방주사를 맞아야 하며, 감기와 유사한 증상이 나타날 경우 반드시 병원에 가서 홍역 환자와 접촉한 사실이 있음을 통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편지의 뒷면에는 베를린 보건청에서 홍역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적어 놓았으며, 굵은 글씨로 아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을 시 14일 뒤에는 공공 구역에 출입해도 된다고 덧붙였다.

    홍역에 대한 베를린 시의 이러한 조치를 보고 나는 과민반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홍역은 백신이 개발되지 않은 신종 전염병도 아니고, 사망에 이르는 질병도 아니다. 그런데 철학과에서 환자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그와 접촉했을 가능성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일일이 가정으로 편지를 보내고 경고 메시지와 자세한 안내까지 적는 것을 보니 내 머릿속에는 자연스레 ‘호들갑’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오버하는 거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런데 오늘 한국의 메르스 공포에 대한 소식을 접하면서 다른 고민을 하게 됐다. 아직 백신이 개발되지 않은 신종 바이러스 앞에서 손을 놓고 있는 한국 정부와, 홍역이 발생했으므로 주의하라며 대학 당국과 협조해 해당 발병자가 다닌 학교 학생들과 예상되는 모든 접촉자에게 편지를 보내는 ‘호들갑 떠는’ 베를린.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무엇을 택해야 할까?

    유비무환이라는 말이 있고, 돌다리도 두드려 건너라는 말이 있다. 하물며 인간의 생명에 관한 것인데 ‘방심’보다는 ‘호들갑’이 낫지 않을까. 전임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전면 허용하겠다고 했다가 대통령이 청와대에 올라가 아침이슬을 따라 부르는 웃지 못할 상황을 맞이했고, 작년에는 세월호 참사로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음에도 현 정부가 국민의 생명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걸 보면, 현재 한국의 상황에 걸맞는 속담은 우이독경, 쇠귀에 경 읽기가 아닌가 싶다. 듣지도 않는 소의 귀에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야 하는 국민의 목은 아프기만 하다.

    국가의 존재이유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라고 우리는 교과서에서 배웠다. 우리는 지금 스스로의 존재이유를 부정하고 있는 국가를 목도하고 있다. 불행한 시대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져야만 한다. 메르스에 걸린 사람들은 대부분 1인실에 입원할 경제력이 되지 못하는 서민들이고, 정부의 무능한 대책으로 걸리지 않아도 될 평에 걸린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치사약이 40%에 달한다는 병과 싸워야 한다. 또다시,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에 굴복해선 안 된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필자소개
    독일 훔볼트 대학 철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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