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결집 통해
진보정치가 해야 할 것들
[릴레이 기고-1] 왜, 얼마나, 어떻게
    2015년 06월 05일 10:2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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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 내에서 최근의 진보정치 재편과 결집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에 재편에 찬성하는 노동당 내 당원들이 진보재편의 의미와 필요성 등에 대한 릴레이 글을 레디앙에 기고하기로 했다. 그 첫 번째 글로 강상구 노동당 당원의 글을 게재한다. 재편에 대해 비판적인 글 또한 언제든지 환영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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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앞서는 우파의 대안과 항상 뒤를 쫓는 좌파의 비판

우파는 주로 국가권력을 통해 위기의 대안을 실천해 왔다. 좌파는 대개 한발 늦고 언제나 우파의 정책을 비판하는 처지다. 의제를 주도하는 건 우파고, 좌파는 늘 ‘반대 투쟁’을 하는 쪽이었다.

우파적 대안은 명쾌하다. 박근혜 정부의 정책을 보자.

정부 부채도 많고, 소득 양극화․가계 빚도 심각한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갖 나쁜 방안들을 내놓았다. 노동시장은 이른바 ‘이중구조개혁’을 추진 중이다. 쌀 전면 수입을 시작했다. 의료 민영화, 철도 민영화는 슬금슬금 진행 중이다. 모두가 민중을 죽여 기업을 살리는 정책이다.

박근혜 정부는 애초에 ‘2015년 경제정책 방향’에서 공공, 금융, 노동, 교육 등 4대 핵심분야의 구조개혁을 통해 경제체질을 개선하겠다면서, ‘부자천국 빈자지옥’ 스타일의 한심한 정책들을 나열해 놨었다.

그렇다면 좌파는 뭐하고 있나.

다른 사회 운동은 필자가 평가할 처지가 못 되고, 진보정치 얘기만 하자.

민주노총518

518 전국노동자대회 모습(사진=노동과세계)

목록 1. 노동, 농업의 변화에 제 역할 못하는 진보정당

진보정치는 노동시장 변화 시도에 무기력하다. 이것이 진보정치가 못하고 있는 목록 첫 번째다.

노동시장 이중구조개혁은 저성과자를 개별적으로 해고하도록 만들고, 파견 허용 업종 확대, 기간제 기간 연장 등으로 비정규직을 대폭 늘리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게 갖고 있는 어떤 ‘역사적 의미’ 같은 게 있다.

정리해고제 이후 이제는 개별해고가 용이하도록 하는 매우 큰 제도 변화를 앞두고 있는 것이다. 또, 비정규 양산법이 만들어진 이래 다시 비정규직을 큰 폭으로 늘릴지도 모르는 비정규직 양산 ‘2차 시기’가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맞서는 진보정치의 역할은 무엇인가? 비정규직양산법이 만들어지던 당시 민주노동당은 국회 안과 밖에서 결사적인 투쟁을 했었다. 민주노총의 집회에 가장 많이 가장 굳건하게 연대하던 것도 민주노동당이었다. 민주노동당은 노동자의 유일한 진보정당으로서 자신의 분명한 위상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에 비하면 지금 진보정치의 대응은 초라하다. 단순 입장 발표 이외에 추가적인 활동이 눈에 띄지 않는다. 노동당의 경우는 하다 못해 곧 있을 장그래 대행진에 전당적인 결합조차 쉽지 않다. 당의 지역조직이 전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무너졌기 때문이다.

진보정치가 못하고 있는 목록 두 번째는 농업과 관련한 대응이다.

정부는 작년에 쌀 관세화 유예 종료를 선언했다.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서 다른 농산물과 달리 20년 동안 유예했던 쌀 수입 개방을 공식화한 것이다. 게다가 쌀 관세화로 그 동안 있었던 밥상용 쌀 의무수입 조건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5월 8일 정부는 밥쌀용 쌀 1만 톤을 수입하겠다고 밝혔다. 한국 농업에 큰 타격을 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한중 FTA는 이제 국회비준만을 남겨두고 있다.

농민집회

밥상용 쌀 수입 규탄 농민 집회(사진=노동과세계)

이 일련의 과정에서 농민들은 ‘외롭게’ 투쟁하고 있다. 20년 전 우루과이라운드 반대 투쟁 때부터 지금까지 농민들의 투쟁에는 언제나 학생운동이 함께 했고, 2000년대 이후에는 진보정당이 단짝 파트너였다.

농민 집회에 농민회 깃발 다음으로 가장 많은 깃발은 민주노동당 깃발이었으며, 2005년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던 농민들을 정부가 강경진압하고 그 과정에서 홍덕표, 전용철 두 분이 돌아가실 때에도 가장 강력히 연대하던 세력이 민주노동당이었다. 필자도 그날 그 현장에 있었다.

그러나 농민투쟁에서 진보정치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어이없는 궁금증이 하나 있다. 진보정당 당직자 중에 쌀 관세화 유예가 종료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밥쌀용 쌀 1만 톤을 수입하겠다고 밝힌 사실, 한중 FTA가 국회비준만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진보정당이 농민투쟁에 늘 함께 하던 시절에 이런 정도는 활동가들 모두가 공유하는 사실이었다. 지금은? 일부를 제외하면 진보정당 활동가들 중 최근에 농업 문제에 애정을 갖고 발언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다.

목록 2. 의제 주도력을 기대할 수 없는 진보정치

진보정치는 민중의 투쟁에 함께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의제의 생산 능력도 현저히 낮아졌다.

국회 의석이 없을 때에도 민주노동당은 상가건물임대차 보호법, 고금리 제한법 등을 만들어 시민단체들과 함께 입법청원을 하는 등 새로운 의제 생산능력을 선보였다.

국회 진출 이후 민주노동당은 무상의료, 무상교육, 부유세 등 당시로서는 대단히 파격적인 정책 대안을 앞세워 공격적 의제 주도 능력을 선보였고, 국민들의 지지를 확보해 나갔다. 그때는 좌파가 ‘선빵’을 날리기도 했단 소리다.

그 이후 10여년, ‘진보정치’ 하면 떠오르는 의제가 무엇이 있나. 여전히 우리는 무상의료, 무상교육, 부유층 과세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진보정치의 초창기에 생산되었던 그 의제들이 지금도 우리 주장의 핵심인 이유는 사회가 바뀌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능력이 그때만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의제 주도 능력이 항상 먼저 공격하는 방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방어적 의제 주도 능력 역시 제대로만 갖춰져 있으면 정세를 끌고 간다.

대표적인 예가 한미FTA 반대 투쟁이다.

2000년대 중반, 정부가 한미FTA 추진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당시 민주노동당의 빼어난 대응 때문이었다. 한미 FTA 전체 조항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문제점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민주노동당의 강력한 정책 능력 때문이었다.

40명의 정책연구원과 의원실 10곳에 소속된 수십 명의 정책보좌관들, 그리고 10명에 가까운 진보정치연구소는 한국 현대사를 통틀어 최고 최대의 정책생산역량이었다. 노동당의 경우 지금 상근 정책 역량은 1명이다.

정태인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이 한미FTA에 반대하여 청와대를 나온 후 선택한 곳이 민주노동당 한미FTA저지 운동본부였다는 사실은 당시 민주노동당의 힘을 보여줬던 사례 가운데 하나다.

현재는 어떤가. 진보정치가 제시하는 의제는 새로울 것이 하나도 없다. 오래된 정책이라도 대중들에게 새롭게 꾸며 제시할 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하물며, 변모하는 시대 상황에 맞춰 새로운 의제를 발굴할 능력을 기대하는 것은 과욕이다.

예를 들어 보자. 최근 ‘우버’ 문제가 꽤 이슈가 됐었다. 면허가 없는 사람이 택시 영업을 하는 것은 운수사업법 위반이어서 몇 달 전에 우버 관계자들이 불구속 입건되기도 했었다.

‘우버’는 기존 자본주의적 상품 생산 및 거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대안적 모델로 생각되는 면이 있었다.

일시적으로 남는 차, 일시적으로 비는 방을 딱 그때 그 차나 방이 필요한 사람에게 한시적으로 공급한다는 발상은 기존 자본주의 시스템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남는 물건을 필요한 사람에게 제공하는 비자본주의적 시스템과 뭔가 통할 것 같았고, 그래서 ‘공유경제’의 대표적 사례로 충분해 보이는 잠재력이 있는 것으로 이해됐다.

그러나 이런 잠재력에 가장 먼저 반응한 건 비시장적 질서 창출에 관심 있어야 할 사회운동이나 진보정치가 아니라 역시 자본이었다. 일시적으로 남는 차나 방을 연결하는 네트워크 자체가 기업이 되었다.

게다가 최근엔 네트워크의 대상이 노동력으로까지 연결되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사정은 완전히 심각해진다. 그야말로 필요할 때만 사람을 갖다 쓰는 극단적으로 불안정한 노동시장이 출현하는 것일 테니까.

이렇게 되면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모이는 사람들의 연대가 만들어 내는 힘이 정치력의 근본인 좌파는 매우 곤란해진다. 장소와 시간을 완전히 분리한 채 일시적 연결만을 허용하는 경제는 그야말로 우파에게만 천국이다.

그러니까 ‘우버 스타일’은 그나마 비시장영역에 있던, 그러니까 시장에서 다루기에는 너무 분산적이었던 자원을 최대한 끌어 모아 시장질서에 급속도로 편입시키는 방안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맑스가 말한 것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흐름이 눈앞에서 만들어 지고 있는데, 이에 대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고민은 어디서도 준비되고 있지 못하다. 이런 것에 대해 대안을 논의하는 진보정당을 본 적이 있는가? 노동당 안에서는 그런 토론을 공식적으로 해본 적이 없다. 누워서 침 뱉기이고 필자의 책임도 적지 않지만 실상이 그렇다.

목록 3. 위기에 대안 제시 못하는 진보정치

더욱 큰 문제는 한국 경제의 대안을 구성하는 진보정치의 구체적 역할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세계경제의 위기, 한국경제의 본격적 저성장 국면 진입에 따라 진보정치의 한국사회 변혁전략은 새로워져야 한다.

1997년 IMF 구조조정 이후 서민 경제가 파탄에 이르렀던 그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이 21세기 진보정치의 출발을 알렸다. 또한, 수 년 간의 활동의 결과로 2007년에는 한국사회변화를 위한 종합적 구상을 담은 사회국가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당시 사회국가론은 ‘녹색사회국가. 평화공동체’라는 사회국가비전을 제시하면서 이 비전을 보다 내실 있게 채워나가는 것,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변동에 따라 구체적인 내용을 꾸준히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진보정당의 임무라고 밝혔었다.

우리의 대안은 박근혜 정부의 정반대쪽에 있다.

사회국가론은 4가지 ‘공개념’을 바탕으로 한 4대 기본권을 당면의 과제로 반드시 실현하자고 주장했었다. 1가구 1주택 원칙 확립, 다주택자 소유 주택 처분, 공공주택 확대 등을 핵심으로 한 ‘주거 공개념’, 대학입시 폐지, 대학평준화, 국공립대 통합 및 확대 등의 ‘교육 공개념’,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 폐지, 주치의 제도 전면 실시 등을 포함한 ‘의료 공개념’,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비정규직 사용사유제한 등의 ‘일자리 공개념’ 이 그것이다.

그러나 결론은 지금 우리가 보는 대로다.

진보정치의 쇠락은 곧 이 4대 기본권의 현실화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는 또한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나쁜 정책들의 기반이다. 그러니까 정말 문제는 박근혜 정부가 민중의 삶을 더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이후로 진보정치가 지속적으로 전투에서 패배하고 있으며, 역전의 계기를 좀처럼 잡지 못하고 있고 그 결과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 같은 극우파가 마음껏 활개를 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국가론은 4대 기본권의 현실화에 이어 대안 경제 과제, 그리고 한반도 및 대외정책 과제들을 실현하자고 제안했었다. 이 부분에 관하여 말하자면 현재 진보정당은 그때의 그 과제를 거의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연대 혁신 경제 모델을 만들자는 구상 아래, 시장을 민주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다양한 고민들, 토지와 주택에 대한 공적 규제, 불로소득에 대한 철저한 과세, 재벌 해체, 경제민주주의의 당면 목표로서 노사공동결정제, 무차별 개방이 아닌 전략적 개방 경제, 통상전략의 민주화, 진보적 지역경제블록 추진 등의 각종 구상들은 원래 한국사회의 총체적 변화를 위한 종합적 계획 하에 체계적으로 배치된 계획들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런 것들은 진보정당의 강령 안에서 겨우 살아남아있거나 당들의 편의에 따라 취사선택되어 정책 목록 안에 나열되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어느 당은 이 가운데에서도 ‘복지국가’에 어울리는 취지의 정책들만을 강조하고, 또 어느 당은 아예 고민이 없거나 정세와 상관없이 책에서 보고 배운 이론만을 반복해서 말한다.

당시의 사회국가 구상이 수 년 간의 분투의 결과였다면, 지금 강령 정도에 문서상으로만 있거나, 일부 활동가들의 머릿속에 의지로만 남아 있거나 혹은 정책 목록 안에 이름으로만 존재하는 대안 사회의 구상은 진보정치 쇠락의 징표에 불과하다.

한때 대안세계화의 세계적 흐름에 함께 하기 위해 베네주엘라를 방문하고, 칸쿤․홍콩 WTO 각료 회담 반대 투쟁에 대거 투쟁단을 보내며, 세계 사회 포럼에 참여했던 진보정당의 기세, 한국사회의 총체적 변화를 목표로 그야말로 거대한 전환을 지치지 않고 꿈꾸었던 진보정치의 배포는 사라졌다.

목록 4. 한반도 및 동북아 질서 변화에서 주된 행위자가 못되는 진보정당

한국사회의 총체적 변화와 관련하여 마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분야가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의 평화 문제다. 이와 관련해서 말하자면, 진보정당은 2009년 이후 단 한 번도 주요 행위자가 되어 본 적이 없고, 그럴만한 행위자들을 조직하지도 못했다.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2009년부터 현재까지 6자 회담은 중단된 상태다. 그 사이 북한의 핵능력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최근에는 북한이 미사일을 잠수함에서 발사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한 것 같은 모습도 연출됐다.

그 실험이 사실인지 그렇지 않은지 말이 많지만 전문가들은 어쨌든 가까운 시일 안에 북한이 관련 기술을 획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한, 2020년까지 수십 기의 핵무기를 보유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렇게 될 경우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국면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미 상황은 그 전과 많이 다르다.

북한은 과거 남북교류가 활성화되었던 시절에 비해 현재 남한에 기대하는 게 별로 없고, 경제적으로 남한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러시아와 철도 현대화 등 여러 형태의 경제 교류를 급속히 진전시키고 있고, 한때 냉랭했던 중국과의 관계도 풀렸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난 기간 그러니까 2009~2015년은 또 어떤 시기이냐 하면 진보정치가 분열․쇠락하던 시기이다. 진보정치는 평택미군기지 이전 저지 투쟁 이후 한반도․동북아 관계 및 관련 정세에 개입하는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진보정치가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한 이 시기에 북한의 핵 능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남북관계는 후퇴했다. 평화는 멀어졌다.

진보정당이 한반도에서 조속히 주요 행위자로 등장해야 한다. 동북아 정세에 개입할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을 빠르게 회복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고 상황이 이대로 진행되어 예상처럼 북한이 다량의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고, 남북 간의 교류는 완전히 불필요한 것으로 인식될 경우 사태는 매우 불행하게 전개될 수 있다. 지금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진보정치가 나서야 할 대단히 비상한 시기이다.

앞서 말했던 사회국가 구상에서 진보정당의 구상은 원대했다. 남북 간 군사적 신뢰 구축, 통상전력 감축, 이를 위한 군축회담 등등의 프로세스는 그때로서는 손에 잡히는 미래였다.

미국이 중국을 가상의 적으로 상정하고, 부대 배치를 변경시키는 와중에 진보정치는 서해지역 평화벨트 구상을 제시하고, 각 지자체가 비핵선언 또는 평화 조례를 제정하며, 지자체협의회를 구성하여 다양한 평화활동을 전개하는 꿈을 꾸었었다.

남북의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는 결정적 과정을 진행하여, 한미동맹의 근거를 자연스럽게 소멸시키고 이를 통해 동북아 지역의 갈등 및 군사적 대립의 소지를 줄이는 기획 역시 황당무계하지 않았다.

그러나 진보정치가 몰락한 한반도에서 진행되는 상황은 얼마 전에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지금은 사드 배치 논란, 한-미-일 대 북-러-중의 신냉전 구도 부활 같은 우파 주도의 퇴행적 흐름뿐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휴전이라는 잠정적 전쟁 상태를 완전히 끝내고 한반도를 평화가 살아 숨 쉬는 대안적 체제로 바꾸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진보정치가 최소한의 자기 역량을 갖춰야 한다.

진보결집은 혁신의 출발이 될 수 있다.

요즘 같은 시기에는 ‘연대’ 자체가 목적이어야 한다. 사실 운동이란 게 원래 그런 것이다. 예를 들어 노동자 계급은 그 자체로 사회를 바꿀 주체가 아니라, 계급 내의 차이와 분열을 극복하고 연대할 때에만 비로소 ‘계급’이 된다.

진보정치가 전략으로 삼아야 할 연대의 내용은 이런 것들이다.

*노동연대, 복지연대, 평화연대, 적록 연대.

모두 몇 년 안 된 과거에 진보정치가 제안했던 내용들이다. 정규직 노동과 비정규직 노동이 연대하고, 빈곤층-노동자-중간층이 복지동맹을 구축하며,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적 흐름을 연결하고, 적색과 녹색이 융합하는 것. 무엇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과제다.

그러나 진보정치가 제시했던 ‘연대 전략’은 성공하지 못했고, 우파가 의도했던 각자 알아서 살라는 신자유주의의 교리는 우리 사회를 완전히 석권했다. 동맹과 연대의 구축은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어떻게든 해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연대는커녕, 진보정치는 연대에 도움이 되지 못했고, 연대를 방해하기 까지 했다. 노동 현장의 분화를 극복해야 할 진보정치는 아무 힘을 발휘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진보정치의 분열이 현장의 분열을 낳았다.

어떤 이들은 기존 정당들의 혁신이 먼저라고 얘기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혁신도 최소한의 자원 투입이 이루어진 다음, 그러니까 아주 기본적인 역량이 갖춰진 다음에 기대할 일이다. 아무 것도 없는 데 혁신을 기대하는 것은 창조주나 할 일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현재의 분리 상태로는 혁신을 기대할 수 없다. 지금처럼 진보정치의 역량이 소진될 대로 소진된 상황에서는 어떤 혁신도 나올 수 없다.

노동당이 진보신당 시절부터 진보의 재구성을 위해 노력한 지 8년이다. 비록 거창하진 않지만 다양한 시도와 실험들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시도마저도 당세의 하락과 함께 위축될 대로 위축되었다. 밭이 말라 영글다 만 열매 꼴이다. 물이 공급되지 않으면 그 열매는 곧 죽는다.

진보결집은 새롭게 역량을 갖추는 것이고, 흩어진 자원을 집중하는 것이며, 그래서 혁신의 새로운 출발이 될 수 있다. 노동당의 입장에서는 말라비틀어져 있으나 아직은 죽지 않은 열매를 다시 생기 있게 되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또 어떤 분들은 개량-혁명, 사민주의-사회주의의 구분법으로 다른 세력을 평가한다.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 분들의 생각법을 따른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진보결집을 거부하는 것은 북한산과 관악산이라는 목적지가 다르다는 이유로 부산에서부터 서울까지 각자 짐을 지고 가기로 결정한 것과 같은 꼴이다. 짐은 나눠질 수 있을 때까지는 나눠지는 게 현명하다.

물론, 진보결집으로 문제가 다 해결될 거라고는 아무도 말할 수 없다. 다만, 새로운 혁신의 동력을 진보결집을 통해서 마련하는 것이 진보결집 주장자들의 견해라는 점을 설명하고 싶을 뿐이다.

최소한 노동과 농업의 변화에 대응할 실력을 갖추자는 것, 참신한 의제 생산을 위한 기본 역량을 구축하자는 것, 사회변화의 대안 모색을 위한 기초 체력을 다시 마련하자는 것, 한반도평화를 위한 주요 행위자가 되어 다급한 과제를 늦지 않게 수행하자는 것, 사회연대를 위해 우리의 잘못을 시정하자는 것이다. 이런 일을 하는 데 정의당은 안 되고, 노동당은 된다는 법이 어디 있나. 이런 것을 하는 데 개혁세력은 안 되고, 혁명 세력만이 된다는 보장은 또 어디 있나.

자전거는 달리지 않으면 넘어진다. 일단은 자전거가 달려야 1km 든 2km든 전진할 수 있고, 방향이 틀리면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 그러나 힘이 없으면 아예 자전거를 구르지도 못한다. 지금 진보정당의 꼴이 이렇다. 우리의 주장은 이 상황에서도 자전거를 다시 달리게 할 방법이 있으며, 여러 세력이 어느 만큼은 동행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동의하시는 분들은 진보결집에 함께 해주셨으면 한다.

필자소개
노동당 당원. 구로 민중의 집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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