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적자> 서회장과 박근혜의 5.16
    [말글 칼럼] "알았다, 고맙다"...저들의 내분 부추켜야
        2012년 07월 18일 10:2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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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드디어 5.16과 관련한 발언을 했네요.

    “5.16은 아버지의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이 발언은 묘하게 7월 16일 방영된 인기 드라마 <추적자>의 서회장(박근형 분)의 발언과 오버랩됩니다.

    “이 나라 백성들의 마음을 우예 알겠노. 4.19가 일어났을 때 민주주의다 뭐다 그래 난리를 치더이만, 한 해 뒤에 5.16이 일어나이까네 민주주의보다 경제 발전이 중요하다꼬 난리를 쳤다 아이가.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게 이 나라 백성들의 마음인기라.”

    <추적자>의 서회장으로 나오는 박근형

    서회장의 통찰은 우리가 박근혜의 발언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잘 보여줍니다.

    천편일률적인 반응이 심상찮다

    손자병법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작은 이익으로 적을 유인하면 적은 반드시 유인에 걸려들게 된다. 이와 같이 적에게 미끼를 던져 주어 적을 아군의 뜻대로 움직이게 한 다음, 복병을 숨겨 두고 불시에 공격하여야 한다.”

    누가 보더라도 박근혜의 발언은 제게 불리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걸 과감하게 내놓았습니다. 대체 왜 그랬을까요?

    신기한 것은 새누리당의 비박주자인 김문수, 이재오, 임태희뿐만 아니라 야당인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심지어 선진통일당까지 똑같은 이유로 비난한다는 겁니다. ‘5.16은 쿠데타’라는 거죠. 누가 봐도 빤한 대응입니다. 이걸 주구장창 물고 늘어질 모양입니다.

    저는 바로 이 하나 같이 똑같은 반응이 심상찮아 보입니다. 헌정을 유린한다는 비난에 그대로 노출될 만한 것을 던져 주니, 모두가 덥석 물어버린 꼴 아닌가 싶은 거지요.

    과연 박근혜가 이런 반발을 모르고 저 발언을 했을까요? 아니면, 적의 관심을 몽땅 한 군데로 몰아넣으려고 그랬을까요?

    이미 저들은 전부터 ‘5.16은 혁명’이라는 말을 흘렸더랬습니다. 그렇게 서서히 분위기를 이쪽으로 몰다가 이게 먹힐 만하니까 박근혜의 발언으로 분위기를 이쪽으로 확 끌어버린 건 아닐까 싶군요.

    그러나 똑같이 말한 건 아닙니다. 아랫사람들이 ‘혁명’이라고 말한 것과 달리, 박근혜는 아무런 설명 없이 그냥 ‘5.16’이라고 말하고 맙니다. 교묘한 처리죠.

    그들의 노림수

    박근혜의 최측근인 이정현 최고위원은 이렇게 말합니다.

    “5.16이 일어났던 당시의 상황을 보면, 보릿고개가 되면 쌀이 떨어져 굶어 죽는 사람이 나오는 정도로 경제가 어려웠고 남북 간 대치가 극심해 대통령 목을 따겠다고 무장공비가 청와대 코앞까지 쳐들어오던 시절.”

    이 발언과 드라마 속 서회장 발언을 한 번 비교해 보십시오. 민주주의보다는 경제라는 겁니다. 거의 똑같지 않은가요? 여기에 ‘안보’가 덧붙었다는 점이 다르긴 하지만요.

    사실 박근혜로서는 5.16이라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든 돌파를 해야 합니다. ‘쿠데타’로 인정할까요? 그건 ‘독재자의 딸’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밖에 안 됩니다.

    저들은 우선 ‘5.16’을 ‘과거의 사실’로 규정하고 ‘당시 상황’을 언급합니다. 민주주의보다 먹고사는 것이 더 급했고, 남북 대치가 급박했다는 거죠. 그게 혁명인지 쿠데타인지는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는 거지요.

    이것을 단지 과거에 대한 변명으로 봐서는 곤란합니다. 그래서야 어디 과거의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가 있나요? 이제는 현재로 끌고 들어올 차례죠.

    이정현의 발언은 박근혜 진영이 이번 대선을 어떤 주제로 치르려는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을 본받아 ‘경제’와 ‘안보’를 튼튼히 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거지요.

    낡아빠진 ‘안보’까지 거론한 것은, 최근의 종북 논란에서 보듯이, 이 주제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 본 거지요. 모르긴 몰라도 통진당의 두 의원 문제나 이미 검찰이 확보해 놓은 통진당 당원 명부는 이번 대선 판에서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 같습니다.

    젊은 층은 5.16을 모른다

    그렇더라도 5.16을 쿠데타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5.16을 뭐라 규정하든 무조건 박근혜를 찍을 유권자는 고정되어 있습니다. 관건은 부동층, 특히 젊은 층입니다. 박근혜가 사활을 걸어야 할 대상이 바로 여기죠.

    불행히도 이 젊은층들은 광주항쟁과 5.18조차도 모르는 세대들입니다. 이런 세대가 그보다도 20여년 전의 일을 알 리가 없지요.

    달리 말하면, 이들에게는 ‘혁명이다, 쿠데타다’ 따위가 전혀 내면화되어 있지 않다는 거지요. 이 앞에서 5.16으로 백날 싸워봤자, 늙은이들이 과거를 붙들고 투덕거리는 걸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걸 먼저 알아차린 것은 더 늙고 낡았다 여긴 저들입니다. 그만큼 싸움에 능숙한 거지요. 아니면, 제 생각과 다르더라도, 능숙한 참모의 말을 잘 듣는 거든가요.

    박근혜 진영은 절대 이 문제를 오래 끌고 갈 생각이 없습니다. 쿡 찌르고 곧장 ‘경제’와 ‘안보’로 달려갈 겁니다. 니들은 5.16 붙들고 늘어져라, 우린 우리 갈 길 간다, 면서요.

    이런 판국에 계속해서 야권이 이 문제에 매달린다면, 지난 총선과 마찬가지로, 아무 내용 없는 ‘민주주의와 독재’ 논란에 휘말리는 꼴이 될 뿐입니다.

    ‘적의 혼란을 기다린다’

    다시 손자병법 한 구절을 소개합니다.

    “아군은 엄격하게 질서를 유지하면서 적이 혼란해지기를 기다리고, 고요한 태세로 적이 떠들썩하게 흔들리기를 기다린다.”

    앞서 새누리당 내의 비박 주자들도 박근혜의 발언을 물고 늘어진다 했습니다. 이재오, 김문수, 임태희가 대신 싸워줄 용사들인 셈이지요.

    그들은 경선 과정에서 내내 이 문제를 붙들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잡아야할 것은 산토끼가 아니라 집토끼이니까요. 야권과 싸울 때는 5.16이 뭐든 고정표가 결집하지만, 자기들끼리 싸울 때는 다르거든요.

    이 집안 싸움을 그냥 구경만 해도 은근히 ‘독재자의 딸’ 이미지가 각인될 수 있다는 거죠. 이 정도로 충분합니다. 굳이 거들어서 고정표가 튼튼히 박근혜 쪽으로 결집하도록 할 까닭이 어딨느냐는 겁니다.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적이 던진 미끼에 놀아날 수도, 제 꾀에 제가 속아 넘어가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만 말하고 맙시다.

    “알았다, 고맙다.”

    필자소개
    민주노동당 활동을 하였고 지금은 정의당의 당원이다. 수도권에서 오랫동안 논술 전문강사로 일하다가 지금은 부산에 정착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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