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주도학습' 비판
    [교육담론] 지적 고립의 위험성
        2015년 06월 01일 11:2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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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교육에 대한 대안으로 자기주도학습을 권하는 사람들이 있다. 필자는 자기주도학습은 환상일 뿐만 아니라 유해로운 경향이라고 생각한다. 아래에서는 이에 대해 말해 보겠다.

    공부는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등을 포함하는 매우 폭넓은 개념이다. 반면 자기주도학습은 일종의 공부 방법에 불과하다. 공부법에 불과한 자기주도학습을 무슨 큰 대안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 자체가 엉터리다. 더 큰 문제는 거기에 도사리고 있는 일련의 편향이다.

    자기주도학습은 혼자서 공부해도 될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현대 학문은 혼자서 공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첫째. 고도의 전문성이다. 과거에는 부처와 같은 대사상가, 뉴턴과 같은 대천재가 혼자서 무언가를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시대는 오래 전에 끝났다.

    가령 지금은 프랑스와 스위스 국경 지하를 관통하는 수십 km에 입자가속기를 설치하고 수조원의 예산과 수천명의 박사급 연구원이 모여 함께 연구하는 시대이다. 현재의 학문은 고도로 체계화되고 심오한 단계로 접어 들고 있다. 따라서 아무리 탁월한 개인이라도 혼자서 어떤 업적을 이룰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둘째. 공부의 효율과 속도이다. 알아야 할 지식과 정보는 산더미 같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공부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정보를 찾아 내고 그것을 어떻게 조합할 것이냐이다. 자기주도 학습을 통해 무엇을 찾아 낼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시대의 발전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면 하나마나한 공부이다. 따라서 공부에서 중요한 것은 고만고만한 공부를 애써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추세에 걸맞는 공부가 무엇인가를 찾고 부단히 이를 모색하는 것이다.

    학원에 있다 보면 고집이 센 친구를 만나게 된다. 이들의 결정적인 맹점은 혼자 공부를 하다 타이밍을 놓친다는 점이다. 반면 선생의 효과적인 지도를 잘 수용하는 학생들은 정말 빨리 성장한다. 1:1 공부의 경우 학교 수업이나 혼자 공부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효과적이다.

    혼자 공부하면 창의성이 떨어진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창의성이란 일정한 정보와 공부를 배경으로 이를 자기 것으로 숙성하고 여기에 새로운 고민을 보태는 작업이다. 좋은 선생은 선생이 제공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고 가르쳐 줄 것과 혼자 고민해야 하는 작업도 구분한다.

    학생들의 수준과 창의성을 결정하는 것은 역으로 학생의 주변에 누가 있는가이다. 경험적으로 보면 누군가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느냐가 고민의 정도와 창의성을 결정한다. 학생 주변에 지적인 자극이 없다면 학생의 수준은 일천하다. 고등학생인데 초등학교 수준의 고민을 하는 친구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뭔가 흥미있는 말을 하는 학생들의 과거에는 어느 지점에선가 지적인 자극을 준 누군가가 있다.

    결국 창의성이란 것은 해당 시대의 첨단 지식을 폭넓게 공유하고 그 바탕 위에서 이뤄지는 무엇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지적으로 고립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그런데 자기주도학습은 스스로 고립될 것을 조장한다.

    자기주도학습사

    자기주도학습사 양성과정의 강의 모습

    자기주도학습의 결정적인 폐해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학문의 아마추어리즘을 조장한다는 점이다. 현재의 수학.과학은 그야말로 전문적이다. 모든 자원과 시간을 총동원하여 가장 효율적이고 치밀하게 접근하지 않으면 따라갈 수조차 없다. 그런데 자기주도학습이라는 미명하에 비생산적인 공부를 강요(?)한다는 점이다.

    필자는 중3에서 고1 올라가는 겨울방학 하루 5시간씩 수학 공부를 했다. 그럼에도 고1 첫 시험에서 낭패를 봤다. 애써 공부하기는 했지만 헛다리를 짚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시간 동안 과외를 받았던 아이들은 같은 시간을 공부했음에도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결정적인 패착은 너무 한가한 곳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뺏기고 있었던 것이다.

    학원에서 이런 광경을 많이 본다. 공부를 함에 있어 가장 선차적이고 중요한 것은 무조건 훌륭한 선생을 찾는 것이다. 자기주도학습은 그런 후에 가능하다. 다음에 나올 논점을 미리 당겨 말한다면 가난한 학생이 있으면 경제적인 지원을 통해 좋은 선생을 구해줄 일이지 혼자 공부해도 된다고 조언하지 말아야 한다. 터놓고 말하면 그것은 기만(?)에 가깝다.

    둘째는 교육개혁의 방향을 호도한다는 점이다.

    교육의 기본은 제대로 된 교육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교육의 질이다. 최선의 컨텐츠와 최고의 선생을 양성해야 한다.

    그런데 자기주도학습은 굳이 사교육을 시키지 않아도 혼자서 공부를 해도 잘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사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을 어떻게든 줄이려는 얄팍한 계산이다.

    학원을 하다 보면 기가 막히는 광경을 많이 본다. 교사들 중 다수가 사교육을 더 많이 시킨다. 반면 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학원을 끊는 학생들이 있다. 이들을 유혹하는 공간이 학교의 야자니 자율학습이고 이를 조장하는 이데올로기 중 하나가 자기주도학습이다.

    가난한 학생들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재원을 마련해 좋은 선생을 소개시켜 주는 것이지 혼자 공부해도 좋다며 낙후하고 저질 공간으로 밀어 넣는 것이 아니다. 같은 차원에서 교육개혁의 방향 또한 어떻게든 좋은 선생을 육성하고 좋은 컨텐츠를 생산하여 공교육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자기주도학습과 같은 잘못된 이데올로기가 너무 많이 퍼져 있다. 이 모두가 어떻게든 사교육비를 줄여야 하고 공교육을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기저 위에 형성되어 있는 것 같다. 이제는 그 기저 자체를 흔들 때가 되었다.

    필자소개
    민경우
    전 범민련 사무처장이었고, 현재는 의견공동체 ‘대안과 미래’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서울 금천지역에서 ‘교육생협’을 지향하면서 청소년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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