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이를 넘어선 유쾌한 싸움 이야기
    [책소개] 『권력에 맞선 상상력, 문화운동연대기』(양효실/ 시대의 창)
        2015년 05월 30일 01:0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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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 상황주의, 68혁명, 네그리튀드, 누벨바그, 히피, 펑크, 레게, 힙합, 멕시코 벽화운동, 치카노 벽화운동, 스톤월항쟁, 액트업, 여성주의 미술, 게릴라걸스, 홍대 두리반. 이렇게 호명된 단어에는 공통점이 있다. 시간도 다르고 장소도 다르지만 세계 각지에서 일어난 ‘문화운동’이라는 점이다. 당연히 차이점도 있다. ‘문화’라는 카테고리에 속하지만 ‘운동’이 다루는 주제와 내용, 목소리는 다르다.

    《권력에 맞선 상상력, 문화운동 연대기》는 20세기 초중반부터 21세기까지, 프랑스에서 한국의 두리반까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대표적인 문화운동을 이야기한다. 기 드보르, 고다르, 섹스 피스톨즈, 밥 말리, 주디 시카고, 게릴라걸스 그리고 한국의 자립음악생산조합까지 문화운동의 중심에서 치열하게 살아간/살아가는 인물이나 단체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이들은 차이를 넘어 부정의 호칭을 긍정의 정체성으로 변화시켰다. 그리고 권력에 맞서 싸웠다. 이들의 무기는 다름 아닌 상상력과 연대였다. 이 책은 이들에 대한 초상이자 이 시대를 살아내야 하는 한 개인의 모색이다. 더불어 다양성이 공존하는 내일을 꿈꾸며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집 안에 머무르지 말고 밖으로 나오라는 초대장이다.

    “우리는 모두 스스로의 내부와 한계를 갖고 있다.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게 상상력이라면, 권력에 맞선 상상력은 주어진 것을 의심하고 나와 너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만들려는 지금 이곳의 나와 너를 묶어줄 수 있는 감정, 즉 사랑에의 의지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차이와 한계에도 불구하고, 압도하는 절망과 당연한 결론일지 모르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방금도 나와 너의 만남은 일어난 것이리라.” _서문 <싸우고 모르고 사랑하고, 우리> 가운데.

    문화운동연대기

    68혁명에서 펑크, 레게, 힙합, 벽화 그리고 소수자 운동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국제상황주의와 기 드보르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예술을 일상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일상을 심미화하려고 했지만, 미적 혁명과 정치적 혁명의 간극을 극복하지 못하고 분열된 이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이들의 실천은 68혁명, 펑크, 힙합, 개념미술 등에 영향을 준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실패했지만 문화적으로는 성공한 68혁명을 통해, 진지하고 고독한 싸움에서 놀이와 축제로서의 시위이자 일상성의 혁명의 의미를 살핀다.

    뒤이어 나오는 네그리튀드, 펑크, 치카노, 퀴어, 게릴라걸스를 통해서는 모욕적인 이름을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삼은 이들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이들은 네그르negre(검둥이), 펑크(문제아), 치카노(작은), 퀴어(이상한), 걸(귀여운)과 같은 백인, 남성, 이성애자, 엘리트 중심의 사회가 빚어낸 부정적인 이름으로 정의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그 이름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재정의함으로써 유쾌한 반전을 도모한다.

    또한 누벨바그와 도그마95를 통해 영화사의 새로운 흐름을 짚고, 히피, 섹스 피스톨즈, 밥 말리, 길 스콧헤론, 퍼블릭 에너미 등을 등장시킨다. 이들을 통해 주류에 대항한 청년 문화, 자메이카 흑인들의 슬픔과 희망을 담은 음악-운동, 게토 흑인들의 가시 박힌 목소리를 표출한 아방가르드 예술 등을 톺는다. 그리고 한국 민중미술이 민중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데 힌트를 준 멕시코 벽화운동과 치카노 벽화운동을 통해 미술관 예술이 아닌 사람들과 호흡하는 미술관 밖 예술의 의미를 살핀다.

    책 마지막 장은 한국 문화운동사의 중요한 사건인 두리반 사건을 현장 중계하듯 소개한다. 서로 모르는, 다른, 예술가들과 일반인들이 두리반에 모여 펼쳤던 531일간의 ‘축제’는 차이와 다름이 어떻게 한 공간에서 어울려 감각적인 ‘코뮌’으로 거듭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승리의 경험까지.

    혁명은 TV에서 중계되지 않는다

    권력은 국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국가 권력뿐 아니라 이름과 형태만 다를 뿐 우리 속에 내재한 다양한 권력이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는 이 권력에 ‘도전’하는 시도들 역시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시도들은 번번이 권력에 가로막힌다.

    팝아티스트 이하 작가는 최근 김정은 머리 스타일을 한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을 담은 작품을 전단으로 만들어 뿌렸다. 그는 지난 2012년 대선 때에도 박근혜 후보를 풍자한 포스터를 붙여 기소당했다. 그러나 그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미술가 홍성담 작가는 지난해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에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한 작품 <세월오월>을 냈다가 전시를 철회했다. 그리고 올해 독일 전시에 이 작품을 출품하려 했으나, 국내 운송사가 “정치적 메시지가 담긴 예술품은 독일로 운송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작품 운송을 거부했다. 결국 그는 독일 갤리리 벽에서 그 그림을 다시 그려 전시했다.

    몇 해 전에는 대학 강사 박정수 씨가 G20 홍보 포스터에 쥐를 그려넣어 정권을 비판한 ‘쥐벽서’ 사건이 있었다. 재판까지 벌어진 이 사건에서 법원은 그에게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 또한 서울시는 성소수자 인권 문제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자 ‘서울시 인권헌장’을 폐기했다.

    모두 권력에 가로막힌 상상력들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더불어 산다는 것,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누리며 동시에 타인을 존중하며 산다는 것의 의미를 우리는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권력에 맞선 상상력, 문화운동 연대기》에 소개한 이야기들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방식들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자본이라는 거대한 장벽이자 권력에 억눌리고 안주해 문화적 ‘야성’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가슴에 이들의 이야기는 깊고 넓은 파문을 일으킬 것이다. 본문에 나오는 길 스콧헤론이 노래했듯, “혁명은 TV에서 중계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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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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