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성성은 남자들의 특권이 아니다!
    [책소개] 『여성의 남성성』(주디스 핼버스탬/ 이매진)
        2015년 05월 30일 12:57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당신은 화장실에 잘못 들어왔어요”
    ― 남성적 여성들이 만들어내는 남자 없는 남성성들

    자기가 여성적이기보다 남성적이라고 느끼는 여자들이 있다. 여자 화장실에 잘못 들어왔다며 쫓겨나지 않으려면 ‘엉덩이를 흔들고 젖통을 내밀어야’ 하는 여자들이 있다. 우리가 아는 화장실에서 여자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남자 행세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20세기 젠더 체계를 대표하는 남녀 구분 화장실을 남녀 공용 화장실로 바꾸게 하거나 성별 동일시의 범위를 넓히는 사람들 말이다. 《여성의 남성성》은 바로 그런 사람들 이야기다.

    주디스 핼버스탬 또는 J. 잭 핼버스탬은 지금 활동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퀴어 이론가 중 하나다. 2014년 번역된 《가가 페미니즘》에 이어 《여성의 남성성》이 드디어 한국 독자들을 찾아왔다.

    지금껏 톰보이, 안드로진, 부치, 스톤 부치, FTM 트랜스섹슈얼 등 남성적 여성들은 현대적인 레즈비언 주체에 미달하는 존재, 마초를 모방하는 미숙아, 가부장적 남성성을 미처 벗어던지지 못한 존재로 여겨졌고, 우울하고 병적인 모습으로 묘사되며 페미니즘과 레즈비어니즘 안에서도 억압돼왔다.

    어릴 때 ‘남자 같은 여자애’였고 지금은 ‘남자 같은 여자’인 핼버스탬은 퀴어 방법론과 도착된 현재주의라는 새로운 개념과 분석 도구로 무장한 채 제도적 이성애와 젠더 이원론을 상대로 학술적 백병전을 벌이며, 모호한 자기 삶과 정체성을 해명하고 정당성을 주장하는 정치적 기획을 밀어붙인다.

    스스로 책의 소재가 되거나(본문 344쪽), 드랙킹 공연의 참여 관찰자이자 관객 자리에도 앉는 핼버스탬은 존 래드클리프 홀을 비롯해 19세기부터 20세기 초를 살다간 사람들, 할리우드 영화나 B급 영화나 독립 영화들, 당대의 드랙킹 문화 등을 넘나들며 역사와 대중문화 속 남성적 여성들을 탐구하는 ‘문화 습격’을 감행한다.

    남자 없는 남성성, 남성적 퀴어 여성들의 다른 삶은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열린다. 무엇으로 구분되지 않는 만큼 부끄러워하기를 강요받던 ‘남성적 여성’이라는 ‘낙인’은 남성성을 남자들에게만 특권적으로 부여하는 현실을 뒤바꿀 ‘힘’이 된다.

    여성의 남성성

    “누가 남자고 누가 여자야?”
    ― 페미니즘을 넘어 역사와 문학과 대중문화 속 남성적 여성들

    핼버스탬은 현대 레즈비언을 기준 삼아 과거를 살다 간 남성적 여성들의 다양한 삶을 단순화하려는 시도를 거부한다. 그리고 남자 없는 남성성을 구성하는, 특권적이고 지배적이지 않은 ‘남성적인 것’들의 모호한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1장은 가장 명확한 형태의 여성의 남성성(톰보이즘이나 부치 등)에 관한 이론과 방법론에 관련된 고찰을 살펴보며, 여성의 남성성이라는 주제를 어서 빨리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여성의 남성성 이론이 남성성과 남자다움, 그리고 일반적으로 말하는 성별화된 행동의 분류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살펴본다.

    이어서 2장은 여성의 남성성을 역사 속에 자리매김하는 기획이 오늘날의 젠더 논의를 지배하는 갖가지 모순을 활용하는 식으로 전개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도착된 현재주의(perverse presentism)’ 방법론을 활용해 레즈비언 욕망의 초기 형태로서 19세기 여성의 남성성의 몇몇 사례(교사 두 명이 자기들을 트리바디즘 관계라고 비난한 한 여자를 고소한 1811년의 법정 소송 사건, 핼리팩스의 귀부인인 앤 리스터의 일기 등)를 해독한다.

    3장에서는 성도착자로 시선을 돌려 퀴어 방법론을 활용해 20세기를 살피면서 존 래드클리프 홀의 소설 《고독의 우물》(1928)을 낳은 역사적 맥락을 검토하며, 4장은 여성의 남성성이 좀더 구체적으로 체현된 스톤 부치를 다룬다. 스톤 부치를 둘러싼 젠더와 섹스와 욕망 사이의 모순들을 해명하려 노력하면서, 자기를 남자로 공상하는 여성의 남성성의 실패 사례가 아니라 자기를 인식하는 완전히 가시적인 성적 주체로 스톤 부치를 재구성한다.

    레즈비언 부치와 FTM 트랜스섹슈얼 사이의 경계 지대를 검토하는 5장에서는 여성적 체현의 유무 등 부치와 FTM 사이의 차이, 그 둘 사이에 생겨나는 공동체의 특성 등을 살펴본다.

    또한 6장은 부치의 다른 역사, 곧 영화에 담긴 여성의 남성성의 역사를 추적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부치를 여섯 개 범주(예비 부치, 포식자 부치, 판타지 부치, 복장도착 부치, 간신히 부치, 포스트모던 부치)로 나누고, 각각의 요건과 특징을 살핀다. 부치 캐릭터가 언제나 할리우드의 동성애 혐오를 보여주는 징후는 아니며, 퀴어 재현의 풍부한 역사를 의미할 수 있다는 지적도 한다.

    7장에서는 퀴어 남성성의 재현에서 가장 흥미로운 발전이 일어나는 장으로서 드랙킹 문화가 꽃피는 나이트클럽을 중심으로 드랙킹 쇼, 콘테스트, 캬바레, 퍼포먼스 등의 주요 특징을 간략히 살핀다. 몇 년에 걸쳐 뉴욕과 런던과 샌프란시스코의 드랙킹 문화를 핼버스탬이 직접 다녀온 생생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마지막 8장은 이 책의 결론으로, 여성의 남성성에 관한 주요 이론들을 한데 모아 표지에 쓴 성난 황소 다이크의 이미지를 거쳐 중계한다. 또한 핼버스탬 개인의 목소리를 담은 이야기를 활용해 여성의 남성성에 관한 탐구를 마무리한다.

    “낙인을 힘으로”
    ―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경계를 넘는 새로운 남성성들

    여성들이 자기의 남성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름 붙이는 다양한 방식을 살펴보고 설명하는 과정은 제도적 이성애를 뒤흔드는 문제 제기를 담고 있다. 동서고금의 많은 남성적 여성들은 남성성이 주는 가장 확실한 보상, 곧 정치적 권력과 대표성에서 배제된 채 자기만의 사랑 방식, 애인을 보호하고 지키려는 욕망, 보란 듯이 남성적 삶을 살자는 결정을 뒷받침할 근거를 마련해야 했다.

    낙인을 힘으로 바꾸는 창의적 존재 양식을 추적하는 데 쓸 ‘색인’이자 ‘용어’이자 ‘표지’로 여성의 남성성을 제시하는 《여성의 남성성》은, 지금 여기 한국을 살아가는 남성적 여성 퀴어들이 자기를 투명하게 바라보고 올바로 분석하며 새롭게 긍정하는 데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