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도 ‘철학’이 있을까?
[책소개] 『처음 읽는 한국 현대철학』(한구철학사상연구회/ 동녘)
    2015년 05월 30일 12:5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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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철학 혹은 철학자는 있는가? 이 책은 단순하기 짝이 없는 물음에서 시작되었다. 이 책이 소개하는 ‘우리 철학자’들은 전통 지성의 세례를 받았지만 격변의 역사 앞에서 스스로 달리 생각하고 실천하면서 독자적인 사유의 흔적을 남기고자 애쓴 인물들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최제우, 나철, 박은식, 신채호, 박치우, 박종홍, 함석헌 등은 인간과 삶, 사회 및 역사, 자연과 우주 등, 현대철학의 주요 주제들을 진지하게 탐문하고 신중하게 답하여 실천함으로써, 종교지도자나 독립운동가로서의 정체성을 뛰어넘는 진정한 현대 ‘철학자’의 면모를 보여준다.

이 책의 출간은 한국 철학사에서 나타난 기나긴 ‘수용’의 역사를 따르지 않고 독자적인 지적 모험을 감행한 이들의 사유를 통해, ‘우리’ 철학의 빛나는 가능성을 엿보고 역사의 뒤편에 가려진 우리 철학자들을 ‘발굴’해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최제우의 ‘동학’에서 함석헌의 ‘씨ㅇ·ㄹ 철학’까지

한국철학은 우리 민족이 오랜 역사 속에서 자신들이 몸담고 살아온 자연 조건과 사회 상황에서의 경험들을 추상화하고 체계화해낸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오랜 기간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삶과 세계에 대한 문제들을 고민하면서 해답을 찾으려 노력했고, 이 과정에서 독자적인 사유 체계를 만들거나 외래 사상을 받아들여 자신들의 사상으로 다듬어 갔다.

이런 한국철학에 관해 나온 책들은 대부분 원효나 지눌 등 불교 사상가와 퇴계 이황, 율곡 이이 등 성리학자부터 시작해 연암 박지원, 다산 정약용 등 조선 후기 실학자까지만 다루고 있다.

이 책은 그동안 동학사상 이전 까지만 주로 다뤄왔던 한국철학을 ‘현대’까지 이어나가고 있다. 그동안 학술서로는 한국 현대철학사상에 대한 연구와 함께 박종홍, 신남철, 박치우 등이 개별적으로 다루어지기는 했지만, 대중교양서로 한국현대철학이 체계적으로 소개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출간의 의미는 깊다.

처음 읽는 한국철학

이 책은 ‘한국 현대철학’이란 이름으로 여러 인물을 소개하지만, 차례를 살펴보면 이런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이 사람이 왜 철학자로 분류된 것일까?’ 실제로 이 책에 소개된 인물 가운데 상당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철학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은 적이 없으며 널리 알려진 철학 저술이나 논문을 남기지도 않았다. 강단에서 철학교육에 임한 경험도 없는 이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근거로 이들을 ‘철학자’로 부를 수 있을까?

저자들은 우리가 ‘철학’에 관해 일정한 상(像)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철학은 대학 전공학과에서 전수되는 학문 체계인 만큼 엄밀하고 실증적이며 논리적인 학문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우리의 고정관념 속 철학의 상을 완강하게 견지한다면, 사실 이 책에서 다루는 인물 대다수는 ‘철학자’가 아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철학의 상은 주로 근(현)대 서양에서 형성된 것이고, 그나마 일본을 통해 기틀이 마련되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바로 이러한 철학의 상, 이 시대 우리에게 고착화된 철학의 상에 얽매이려 하지 않는 태도가 이 책의 중요한 전제라고 강조한다.

따라서 이 책 제목에 포함된 ‘철학’은 좁은 의미의 학제화된 철학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이 다루는 ‘철학자’ 또한 좁은 의미의 철학 전문 연구자가 아니다. 인간과 삶, 인간의 사회 및 역사, 자연과 우주에 대해 진지하게 탐문하고 신중하게 답하며, 이러한 지적 통찰을 삶 속에서 실천한 이가 있다면, 철학 전공 여부와 상관없이 ‘철학자’로 부를 수 있다고 이 책은 강조한다. 이런 의미에서 박은식, 신채호, 나철, 최제우, 함석헌 등은 ‘철학자’이다. 비록 박종홍, 신남철, 박치우처럼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지 않았고, 종교지도자나 독립운동가의 정체성이 더 강하지만 말이다.

‘현대’를 억압한 ‘현대’와 우리 철학의 가능성을 탐구하다!

우리 철학사를 비판적으로 되돌아보면, 이 책에 포함된 몇몇 철학자와 철학적 운동의 가치가 더욱 빛난다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최제우와 동학, 나철과 대종교, 신채호 등은 사실 우리 철학계에서 그리 크게 중시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서구철학의 잣대를 들이댄다면 이들은 신비주의적이고 비논리적이며 이론의 일관성도 갖추고 있지 않다고 평가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이 스스로 기존의 전통에서 벗어나려 했고, 분명히 벗어났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이 책은 강조한다. 실제로 이들은 전통적 지성의 지반을 떠남으로써 이전에는 용인될 수 없었던 이론적 시도를 했고, 동시에 서구학문 내지 서구철학의 거센 유입에 일방적으로 휩쓸리지도 않았다. 따라서 이들은 공통적으로 우리 철학사에서 나타난 기나긴 수용의 역사를 벗어났다.

기존의 전통도 서구적 전통도 이들의 기반은 아니었다. 이들의 사유와 실천은 뿌리가 없으며, 따라서 특정한 ‘근본’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웠다. 이들은 자신의 사유를 성숙시킨 전통을 하루아침에 버리고 끊임없는 사유의 유랑을 지속했다. 기존 전통을 버렸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전통의 지배하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근(현)대로 접어드는 시점에 서구지성들이 ‘고대 그리스’라는 새로운 전통의 뿌리를 더듬었듯이, 이들은 ‘단군’으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했다. 전통의 근원적 쇄신은 상당히 중요한 ‘modern’의 징후라는 점에서 이들의 시도는 그 자체로 ‘modernity’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고 또한 강조한다. 나아가 유불선의 전통을 통합하여 동서의 사유를 융합하기도 하는데, 이는 새로운 체계를 만들기 위한 창조적이며 진취적인 시도였다.

이질적 사유체계를 아우르고 존재론과 가치론을 통합하며 이론과 실천을 하나로 보는 사유의 깊이와 통합적 방법론은 나름대로 정교한 논리와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 자유롭고도 거침없는 지성의 실험은 ‘새로운’ 것이었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있었다.

이 책은 나아가 이들의 지적 모험에서 ‘우리’ 철학의 가능성이 엿보인다고 말한다. 옛 전통과 새 전통 그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이들은 두 전통 어디에도 귀속되지 않는 개념과 방법, 체계를 스스로 만들었고, 이론적으로도 상당한 의미가 깊다고 말이다. 물론 개념적 정교함이나 논리적 체계성 면에서 미흡한 점도 있지만, 그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이들의 문제의식은 ‘인간’, ‘사회’, ‘자연’ 등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었다. 이는 분명 현대철학의 사유와 맞닿아 있으며, 특히 우리가 관심을 갖는 서구철학의 주제와 상통하면서도 깊이 있고 폭이 넓다. 따라서 이들의 사유가 지닌 철학적 가능성은 학문적으로 주목할 만한 가치를 지닌다.

현대 사회체제가 부조리하게 작동하고 교정 가능성이 점점 낮아지자, 벤야민, 바디우, 지젝 등이 말한 ‘폭력’에 관한 성찰이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이들의 논의는 지금도 우리사회에서 주목받고 있는데, 맥락이 동일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신채호는 ‘폭력’을 독립의 수단으로 간주한 인물이다. 그의 이론적 수준이나 완결성은 차치하더라도 우리는 신채호의 사유와 문제의식을 지적 전통으로 잇지 못했다. 일제강점기 이후 지성사와 철학사에 강단화·학제화 양상이 두드러지면서 의도적으로 ‘잇지’ 않은 성격이 강하다. 만일 뿌리 없는 이들의 사유를 새로운 기원으로 하는 전통이 이어졌다면, 현대사회를 통찰하는 고유의 철학적 문제 틀이 지금쯤 우리에게 마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이 책은 아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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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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