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엉터리 중학교 교과서
    [교육담론] 선행학습과 학교시스템
        2015년 05월 26일 09:2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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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행학습에 대한 폐해를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오죽했으면 선행학습을 금지하는 법률까지 제정될 정도니 말이다. 그리고 이의 대안으로 심화학습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필자는 선행보다 심화가 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심화라는 이름하에 불필요한 공부를 이중삼중으로 공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수분해를 아무리 꼬아 놓아 봐야 그냥 인수분해이다. 인수분해를 소화할 수 있으면 그냥 진도를 나가면 그만이다. 그런데 선행은 안된다니 어디 퀴즈 문제에 나올법한 문제를 푸는 경우가 있다. 이것도 일종의 아동 학대이다)

    선행과 심화 이전에 논의해야 할 점은 현행 교과가 학생들의 인지 발달 단계에 맞게 제대로 설계되어 있는가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교육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는가이다. 아래에서는 주로 수학과목을 중심으로 이를 논해 보고자 한다.

    어려서 과도한 수학 공부를 시키는 부모들이 있다. 학원에 있다 보면 이 나라 엄마들 대부분이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공부 걱정을 하는 것을 보면 기가 질린다. 이 경우 다음의 두 가지가 문제이다.

    첫째는 학생들이 섣부른 공부를 통해 정작 중요한 공부를 놓친다는 점이다. 수학은 고도로 추상화된 학문이다. 가령 함부로 종이와 펜을 쥐어 주고 두 자리 수의 곱셈을 시키는 것은 무모한 것이다. 인류가 0이나 위치기수법을 창안해 펜과 종이를 가지고 이를 자유롭게 계산할 수 있었던 것은 기껏해야 몇 백 년 전이다. 그 이전에는 손가락이나 돌맹이(주판) 등을 가지고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계산을 했다. 따라서 학생들도 인류가 거쳐 온 경험을 충분히 갖게 하여 근원적인 수학적 감각을 키워주는 것이 좋다.

    둘째는 과도한 공부량이다. 어려서 충분히 놀지 못한 학생들은 훗날 문제를 일으킨다. 공부가 싫어 진절머리를 치는 중1~2 학생들을 보면 대책이 없다. 위의 관점에서 보면 과도한 선행이 문제이다.

    선행학습

    수업장면(방송화면 캡처)

    그러나 초등 고학년에서 중학교에 들어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학생들 다수가 학교 수업 시간에 또 학습지 등을 통해 단순 연산을 반복한다. 이 시점에서는 반대 양상이 벌어진다. 학생들은 지루한 반복 물량식 공부에 진절머리를 친다.

    이른바 스토리텔링 수학이나 사고력 문제, 중학교 수학을 뒤덮고 있는 유클리드 기하학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스토리텔링 수학을 어설프게 도입하다 보니 이게 국어 문제인지 수학문제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해 이리저리 꼬아 놓은 문장제 문제는 보는 것만으로 짜증스럽다. 나는 유클리드 기하학을 왜 그렇게 많이 가르치는 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사교육이 아니다. 문제의 근원은 교과서와 교과서를 집필한 교수들 그리고 일선 현장에서 이를 가르치는 교사들이다. 그리고 이들이 문제를 교묘히 은폐하고 자신의 기득권을 챙길 수 있도록 조장하고 있는 이데올로기(공교육 정상화론)이다.

    필자가 보기에 중학교 교과서는 엉터리다. 교과서를 집필한 교수들에게 큰 기대를 걸지 않는 게 좋다. 그들은 우리의 예상보다 그들의 이권에 민감하다. 그러니 사회교과가 법과정치, 윤리와사상, 사회와문화 등으로 세분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는 수학에도 예외가 아니다.

    교과서가 그렇다면 일선 현장에서 이를 제어해야 한다. 그런데 일선 교사들은 실력이 없거나 그것을 강제할 사회적 유인이 없다. 교사들은 행정 업무가 많아 내용을 연구할 시간이 없다고 한다.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치자. 그렇다면 교사운동은 교과 연구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공무를 줄이는 방향으로 집중되어야 한다.

    그런데 교사들의 핵심 관심사는 연금이다. 교사 본인도, 학부모도 그리고 학생들도 학교에서 공부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학교는 그냥 통과의례이지 학교에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는다. 덕분에 현직 교사들은 학생들을 평가하는 엄청난 권한을 갖고 있음에도 그것에 걸맞는 책임에서는 자유롭다.

    이런 업무 해태를 조장하고 있는 것이 교육운동의 방향이다. 교과서나 공교육이 정상이라면 사교육이 기형화되기 어렵다. 학교 현장이 그렇고 시험문제가 그렇고 입시가 그러니 사교육은 그에 맞추는 것이다. 본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문제의 처음은 공교육 종사자들의 업무 해태이다.

    선행 교육을 법적.이데올로기적으로 막아 놓고 이른바 심화나 변별력이라는 이름하에 시험이나 입시를 꼬아 버리면 피해는 중저소득등, 중저학력층 부모와 그 자녀에게 집중된다.

    학교 교육에 충실하면 된다는 말을 진짜 믿는 부모들이 있다. 문제의 핵심은 중학교이다. 초등학교 때 이미 학생들의 실력 차이는 적지 않다. 수학은 그나마 덜하지만 영어는 매우 심각하다. 어려서부터 해외 연수나 여행을 다녀 온 학생들과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한 학생은 애초부터 경쟁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격차가 중학교에서 교묘히 은폐된다. 중학교라는 공간에 한정시켜 놓으면 강남구 아이들과 금천구 아이들의 차이가 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차이는 고1이 되는 순간 확연히 드러나고 일단 고등학생이 되면 시간이 없다.

    그렇다면 학생들이 싫어하고 교육적으로도 적절하지 않는데 무리한 선행을 시킬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수학을 좋아하는 남학생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단순 연산의 물량식 반복이다. 그런데 현행 중학교는 대놓고 이를 조장한다. 반면 남자 중학생들에게 고등수학을 가르치거나 수능 사고력 문제 등을 주면 아주 좋아한다.(정말 좋아한다) 애초에 교과 설계가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결론을 내려 보자.

    핵심은 현행 학교 시스템이 시대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학의 경우 한 학급에 30명 되는 학생들을 모아 놓고 가르칠 수 없다. 그것도 수준 차이가 나는 학생들이 있을 경우 누구라도 효과적이고 재밌는 수업이 불가능하다.

    시중에는 교수들이 쓴 종이 교과서보다 훨씬 세련된 컨텐츠들이 널려 있다. EBS의 동영상 강의나 다큐멘타리 등만 봐도 매우 훌륭하다. 결국 학교.학제.교과서 등 학교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소들이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여러 이유로 이를 건드릴 수 없기 때문에 어떻게든 공교육을 살려 보려고 불가능한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것은 살아남을 수 없다. 이것이 역사의 철리이다. 19세기 학교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몸부림은 성공할 수 없다. 그리고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을 어떻게든 봉합하려는 시도가 선행학습 금지이다.

    상황이 위와 같기 때문에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진다. 인터스텔라를 보고 과학 공부를 하는 것은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 당연히 좋은 일이다. 그런데 이것은 엄청난 선행이다. 시중에는 수학 교양서들이 널려 있다. 이들 모두 학교에서 강력한 추천 도서들이다. 그런데 그 내용은 대부분 선행이다. 일선 현장에서 보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구분할 수 없는 해괴한 상황이 연일 벌어지고 있다.

    실천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은 점이 중요하다.

    학교에 대한 대안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당장 학교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학교에 대한 대안을 고민하면서도 학교를 건전하게 바꾸려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여기까지는 좋다. 문제는 학교 정상화론의 방향이다.

    핵심은 예산이나 제도가 아니라 공교육 종사자들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다. 책임과 권한이 공정해야 한다. 이상한 교과서 때문에 수포자가 양산되었다면 해당 교사는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성의 없고 지루한 수업과 이상한 문제 때문에 사교육을 조장하는 교사가 있다면 퇴출시켜야 한다.

    조금 더 나가보자. 이것이 고용 보장에 장애가 된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필자는 성의 없고 지루한 수업으로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지식인 수학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는 교사가 있다면 징계 받아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필자소개
    전 범민련 사무처장이었고, 현재는 의견공동체 ‘대안과 미래’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서울 금천지역에서 ‘교육생협’을 지향하면서 청소년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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