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 해도 해야 할 일,
    노동자 정치세력화
        2012년 07월 17일 05:0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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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로운 노동정치 제안자모임’에서 일하고 있는 박서희씨가 노동정치의 새출발을 현장에서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내용으로 투고 글을 보내왔습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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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생을 목수로 지낸 한 노인이 땅바닥에 집 그림을 그렸답니다. 지붕부터 그리는 것이 아니라 주춧돌, 기둥, 도리, 들보, 서까래, 지붕의 순서로. 그가 그린 집의 순서는 집을 짓는 순서였습니다.

    우리는 지붕부터 그리지 않고 주춧돌부터 놓는 생산하는 자의 눈을 가졌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붕부터 얹는 상층의 합의에 휩쓸리기 보다는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우는 노동자의 눈으로 우리의 길을 갑시다. 새로운 노동정치는 기초부터 탄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머릿속은 바쁜데 손은 한가한 지금

     통합진보당이 쇄신을 한다 하고, 진보신당이 재창당을 한다 하고, 새로운 노동정치를 위한 제안자 모임도 있고, 변혁적 정치세력화를 위한 추진 모임도 있고, 민주노총도 제2 정치세력화를 위한 혁신위를 꾸리고… 진보정치를 두고 여러 가지 움직임들이 있습니다.

    안그래도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주제인 노동정치가 상황까지 복잡하니 더더욱 마음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닐까 한편으로는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시작했는데 한번 실패하고 나니 다시 시작할 엄두도 안납니다. 꼭 내가 해야 하나, 꼭 지금 해야 하나 회의적이기도 합니다.

    조합원들과 상황 공유를 하려도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이런 저런 고민들을 하다가 당장 목에 칼이 들어오는 것도 아닌데 뭘 애써 하냐 싶기도 합니다. 머릿속은 결코 한가하지 않은데 결과적으로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노동 중심의 대중적 진보정당

    내용적으로 노동자들의 지향을 담고 있고, 형식적으로는 숫적으로나 제도적으로나 노동자들이 당의 주인이 되는 것. 그리고 자본주의의 한계를 뛰어넘겠다는 명확한 이념을 가지면서도 실천적으로 유연해 대중의 지지를 받는 진보정당.

    이기면 장땡이라는 패권보다는 소수의 가치가 살아있고, 정권교체보다는 세력교체를 위한 장기적 안목과 착실한 실천이 존재하는 정당.

    정규직이건 비정규직이건, 민주노총 조합원이건 아니건 노동자라면 누구나 나를 위한 정당, 내가 지지할만한 정당이라 생각하기에 손색이 없는 정당.

    당원으로 활동하기에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고 도움도 되는 정당.

    사업장 안에서만 노동자이고 진보정당의 노동자 당원이다가 퇴근하면 단지 개인이 되어버리는 현실에서, 민중의 집 등으로 생활정치를 구현할 것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추진하며 돈 대고 몸 대고에 그치지 않도록 시스템화 시킨 정당.

    말 그대로 노동자 정당.

    이런 정당 하나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지금, 이런 정당이 하늘에서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뭐든지 합시다. 손 놓고 구경하는 것만 빼고

    모든 사업과 투쟁이 그렇듯 평가와 토론, 모색과 실천이 필요합니다. 노동자정당은 필요하다는 인식이라면 뭐라도 해야 합니다. 무엇을 기다리고 계십니까? 통진당의 쇄신? 진보신당의 재창당? 여러 노동정치 모임들이 잘 되는 것? 누군가가 노동정치 운동에 대한 완결된 평가서를 주고, 향후 나아갈 바에 대해 완결된 구조의 그림을 내놓고, 구체적인 실천 방안에 대해 지침으로 내려줄 것을 기다리십니까?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아래로부터의 의견수렴과 조직화.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사업장에서 필요한 자료들 초안으로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에 대해 평가 할 수 있습니다.

    노동정치나 민중의 집 등에 대해 학습도 할 수 있고, 근거리 사업장들이 함께 토론회도 열 수 있습니다. 사업장 안에서 새로운 노동정치 추진모임을 만들수도 있고, 어떤 모임에서 오라하면 가는게 아니라 오히려 사업장에서 이런 저런 모임들을 불러 간담회도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번 대선에 노동자 후보가 나온다면 누가 좋겠는지 사업장 조합원들에게 설문을 해볼수도 있고, 노동자 당이라면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고 상상력을 발휘할 수도 있습니다.

    조건이 된다면 민중의 집을 하나 만들거나 참여할 수 있고, 시리즈 선전물을 만들어 노동정치에 대해 냉소가 능사가 아니라는 조합원들의 자신감 회복을 꾀할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노동정치를 위한 제안자 모임에 들어가 새 판 짜기에 힘을 실을수도 있고, 통진당에서 당 쇄신에 함께 하거나 진보신당의 재창당에 노력을 기울일수도 있겠습니다.

    뭐라도 합시다. 현장의 냉소는 그냥 두면 둘수록 더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 지난 몇 년간 이미 경험한 일입니다.

    최대한 정답에 근접한 선택을 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토론합시다. 손 놓고 구경하는 것만 빼고 뭐라도 해야 할 때입니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하고, 지금이 아니어도 언젠간 해야 할 일입니다. 목수의 그림처럼, 생산하는 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새로운 노동정치의 탄탄한 기초공사를 시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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