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핵발전소 비리와 최하층 노동자
    [에정칼럼] 고리1호기, 그래도 더 연장할 건가
        2015년 05월 19일 02:4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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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최초의 핵발전소인 고리 1호기는 지난 2007년 6월 9일 30년인 설계수명을 다하였으나, 사회적 논란 속에 상업운전을 10년 연장하였다. 이후 후쿠시마 사고와 정전은폐사건, 그리고 원전비리와 잦은 고장 등으로 폐쇄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부산지역 여론은 진보-보수를 넘어 고리1호기 폐쇄 여론이 매우 높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산업부는 5월말까지 고리1호기 포함 여부를 고려한 전력수급계획안을 국회에 보고할 계획이라고 한다. 한수원의 고리1호기 수명 재연장 신청 시한도 다음달 18일로 다가오고 있다.

    반세기 전의 결정, 고통 받는 현세대와 미래세대

    우리나라 핵발전소 정책은 이승만‧박정희 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승만 정부는 1953년 UN총회에서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핵의 평화적 이용(Atoms For Peace)’ 선언 이후, 1955년 한미원자력협정 체결, 1956년 문교부 내 원자력과 신설, 1958년 원자력법 제정과 원자력원 설치 등 기술개발 중심의 원자력 정책 기반을 조성했다.

    윤세영 문교부 기술교육국 초대 원자력과장은 “1954년 7월, 미국 정부로부터 ‘원자력의 비군사적 이용에 관한 한․미협력을 위한 협정’을 체결하자고 제의해 왔는데, 이것은 우리 정부로서는 뜻밖의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이후 미국의 원조로 기술교육과 연구용 원자로 도입 등이 이뤄졌다. 사실상 미국의 이해관계에 따른 세계질서 재편 전략의 일환으로 우리나라의 핵발전소 정책이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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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를 위한 원자력” 전시회를 관람하는 이승만(1956년)

    고리에 핵발전소를 짓겠다고 결정한 것은 박정희 정부 시기인 1968년이다. 핵발전소 부지와 관련해, 1965년 2월 1차 예비조사에서 경기도 행주군 행주외리, 경남 동래군 기장면, 장안면 등을 선정했고, 이후 1968년 원자력청이 차관교섭을 위해 타당성 조사를 미국 기술용역회사인 Burns & Roe사에 의뢰한 결과 경남 동래군 장안면으로 결정됐다. 반세기 전의 핵발전소 부지 결정에 의해 현세대는 물론이고, 미래세대까지 영구히 고통 받게 된 셈이다.

    특혜와 비리로 얼룩진 핵발전소의 역사

    한편, 핵발전소는 태생부터 특혜와 비리의혹이 사회적으로 크게 논란이 되었다. 박익수 전 국가과학기술자문회 위원장은 “당시 웨스팅하우스사의 한국 대리점은 화신산업(주) 아닙니까? 특히 (웨스팅하우스의) PWR, (제너럴일렉트릭의) BWR, (영국에서 개발한) AGR의 판매교섭과 경쟁이 치열한 무렵에 ‘만일 PWR을 선정해 주면 커미션 750만 불을 준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당시 원전 계약금액이 약 1억 5천만 불이었으니까, 그것의 약 5%가 커미션이라고 할 수 있지요.”라고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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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흥식 화신산업 사장과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

    핵발전소의 역사는 ‘비리의 역사’라고 볼 수 있다. 2012년 5월부터 2014년 7월까지 89건의 핵발전소 비리 1심 재판결과를 분석한 결과, 유죄판결을 받은 피고인은 205명이었다. 피고인들의 형량을 모두 더하면, 징역 4,084월, 집행유예 1,872월, 벌금 76억 5,800만원, 추징금 6억, 사회봉사 3,520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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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 핵발전소 비리 1심 판결 분석 결과

    이렇듯 다양하고, 기상천외한 핵발전소 비리는 최근 몇 년 동안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예컨대 이명박 전대통령이 현대건설 회장 시절인 1988년 영광원전 3,4호기 권력형 비리의혹으로 국감장에 선 일이 있다.

    현대건설은 전두환 군사정부 시절인 1987년 4월 총공사비 3조 3,230억원(44억 달러)의 영광 3,4호기의 토건 및 기전공사를 수의계약으로 체결했다. 이는 단일 공사 기준으로 국내 최대 규모였다. 당시 건설 공사의 수주가 덤핑 가격으로 이루어지는 관행 속에서 예정가의 90%가 넘는 좋은 가격으로 공사를 수주했으니, 관례에 따라 정치자금으로도 상당한 액수가 쓰였을 것이라는 한간의 소문이었고, 게다가 전두환 군사정부 시절임을 감안하면 합리적인 의혹이었다. 그래서인지 이 문제에 대한 신문이나 국회에서의 뜨거운 논쟁이 있었다.

    MB는 익히 알려진 것처럼 1965년 현대건설에 평사원으로 입사하여,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며 1970년 이사, 1977년(당시 35세)부터 1988년까지 현대건설 사장, 이후 1992년까지 현대건설 회장을 역임했다. MB는 자서전에서 밝히고 있듯이, 정치에 입문하기 전까지 현대건설의 핵발전 산업을 사실상 진두지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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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타파, 1988년 국감장에 선 이명박 현대건설 회장

    한편,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자서전 ‘신화는 없다(1995, 김영사 펴냄)’에서 영광 3,4호기 수의계약에 따른 정치자금 제공을 부인하고 있는데, 이 해명을 인정한다고 해도 이전의 핵발전소 공사에서는 정치자금을 제공했다고 스스로 시인한 셈이다. 참고로 현대건설은 고리1호기 건설에 웨스팅하우스의 하청으로 참여하여, 현재는 연간 5조원이 넘는 국내 핵발전소 시장의 맹주로 성장했다.

    목숨을 담보로 하는 핵 발전 노동

    핵발전소 문제를 접근할 때, 놓치기 쉽지만 중요한 것이 있는데, 핵발전소는 수많은 노동자들에 의해 건설‧운영‧관리되고 있으며, 핵쓰레기 처리와 폐로과정에도 수많은 노동자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2014년 현재 고리, 한빛, 월성, 한울 등 4개의 핵발전소 단지의 23기의 핵발전소에는 19,693명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이 중 정규직은 34.4%인 6,771명이고, 나머지 12,922명은 비정규직 노동자이거나, 사내협력업체 노동자이다.

    비정규직과 하청 노동 분야는 경정비, 조명설비, 수처리, 특수경비, 청소, 본부행정, 시설관리, 계측정비, 방사선안전관리, 소방시설관리 등 20여개에 달한다. 뿐만 아니라 핵연료봉 교체 시기에 맞춰 계획예방정비를 하는데, 40여 일 동안 하루에 200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단기간에 추가로 투입된다.

    핵발전소를 연상하면, 최첨단 컴퓨터 제어실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떠올리기 쉽지만, 실상은 방사능 오염과 각종 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고, 한국 사회 비정규직 노동자들 일반의 문제, 즉 불법파견과 고용불안, 그리고 저임금과 차별적인 처우에 고통 받고 있다.

    최근 한빛, 월성, 한울 등 경상정비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비정규직노동자들 200여명은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이들 경상정비 비정규직노동자들은 ▲경상정비공사계약을 용역계약으로 전환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 지침 준수·이행 ▲다단계 하청구조 청산 등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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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순옥의원실, 2015년 4월 14일

    한편, 지난 3월 산업통상자원부의 자체점검 결과에 따르면, 국내 핵발전소의 일반적인 산업안전 관리와 하청업체 관리에는 허점이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핵발전소 현장에 투입된 협력업체가 700여개에 달하지만, 핵발전 관련 공기업의 산업안전담당자가 타업무를 겸직하고 전문성이 떨어지는 등 관리상 문제점을 드러냈다.

    특히 영세한 재하청업체의 경우 안전투자가 미흡한 데다 간헐적인 발주에 따른 잦은 업체·인력 변동으로 안정적인 관리와 교육이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협력업체에 계약 외의 업무수행을 요구하거나, 계약 시 계약단가를 부당하게 낮추고, 불필요한 계약·입찰 조건을 내세우는 등 불합리한 업무 관행들도 확인됐다.

    핵발전소가 운영된다는 것은 그 안에서 일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핵발전소가 폐쇄된다 하더라도 폐로의 과정과 위험천만한 핵쓰레기를 안전하게 관리하는 노동자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현재의 핵발전소 노동자들, 특히 비정규직과 일용직 등 최하층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기본권과 안전망 구축은 ‘탈핵’과는 다른 관점에서 우리 사회가 책임질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의 어그러진 욕망과 미래세대

    핵발전소는 핵분열을 이용해 물을 끓여 전기를 생산하는 하나의 복잡한 기계일 뿐이다. 그러나 핵발전소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정부발주 사업이고, 참여기업이 매우 제한적이며, 소수의 이해당사자가 폐쇄적으로 관련 정책을 결정한다.

    또한, 감시와 견제의 사각지대에 있으며, 이를 가능케 하는 정치-관료-산업-학계-언론의 이익공동체가 똬리를 틀고 있다. 조달과 계약의 투명성을 확보한다고 하더라도 구조적으로 특혜와 부패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핵발전소를 건설‧운영하는 과정에서 차별과 위험에 노출돼 있고,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이들 핵발전 이익공동체가 재생가능에너지 혁명과 에너지효율 혁명을 방해하고,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의 이익을 위해 핵발전 체제를 유지‧강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박근혜정부는 국가에너지기본계획과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2035년까지 핵발전소를 현재의 23기에서 40기 내외로 확대하는 계획을 확정하려 하고 있다.

    고리핵발전소 인근 주민들은 반세기 전인 1960년대 이승만‧박정희 정부의 결정에 의해 건강과 재산권, 그리고 핵발전소 사고 위험의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박근혜정부의 2035년까지의 신규 핵발전소 건설계획은 설계수명 60년을 고려하면, 현세대는 물론이고, 22세기 후대에 고통을 떠넘기겠다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고리핵발전소의 폐로는 탈핵운동의 중요한 전기를 마련해 줄 것이지만, 일찍부터 ‘폐로산업’ 논쟁으로 전환된 것은 다소 유감스럽다. 폐로기술 국산화와 폐로산업 담론에서 우리사회에 익숙한 자본주의의 욕망을 살짝 엿볼 수 있다.

    폐로의 과정에서 차별적인 조건과 열악한 노동환경에 처해질 최하층 노동자의 문제, 그리고 폐로 이후 핵발전소에서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 일용직 노동자의 먹고사는 문제에 둔감한 것은 아닌지 따져볼 때다. 나아가 신규 핵발전소 건설과 송전탑 등 에너지정의와 에너지민주주의 문제 등 근본적인 질문을 함께 던질 필요가 있다.

    1960년대 미국의 평화운동가 A.J. 머스트는 냉소적인 기자의 질문에 백악관 앞에서 홀로 베트남전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하는 이유를 “정부정책과 바꾸기 위해 여기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나를 바꾸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현대건설, 삼성물산, 두산중공업 등 소수 핵발전 재벌의 이익을 위해, 특혜와 부패를 서슴치 않고, 최하층 노동자를 착취하면서, 현세대와 미래세대에 고통과 불안을 떠넘기는 자본주의의 어그러진 욕망을 직시하는 것에서부터 탈핵과 에너지전환은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필자소개
    에너지정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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