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나물 캐러 가는 날
    아는 사람만 아는 산나물 괴발딱주
        2015년 05월 15일 11:4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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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마을 앞에는 삼정산이 있고, 뒤에는 삼봉산이 있다. 둘 다 1200m 남짓의 높이다. 앞산을 오르든 뒷산을 오르든 서너 시간은 쉬엄쉬엄 올라야 한다. 그렇다 우리 동네는 이름 그대로 산내(山內)다.

    오늘 아침은 좀 부산스럽다. 도시락도 챙기고, 물도 넉넉히 물통에 담아 넣고, 아참 소주도 한 병 배낭에 집어넣고, 국에 밥을 휘이 저어 한술 뜨고, 얼른 길을 나선다. 마을 초입에 등산복장도 아니고, 그렇다고 밭일 가는 복장도 아닌 어정쩡한 차림의 촌사람들이 서성거리고 있다. 뭐지?

    따블캡 트럭에 대충 타고, 자리가 모자라 짐칸에도 서넛이 올라타고, 울퉁불퉁 산길을 달린다. 아스팔트 길이 끝나고, 시멘트 포장길마저 끝나면, 비포장의 임도가 나온다. 한 번씩 쿨렁할 때마다 짐칸에 올라탄 사람들이 연신 비명을 질러댄다. 한참을 올랐나, 트럭에서 씩씩거리는 소리가 나고, 두어 번 헛바퀴가 돌 무렵 차는 목적지에 도착한다. 이제부터는 걸어서 올라야 한다.

    비장한 각오로 모인 촌사람들은 길도 없는 산길을 헤치고 깔막을 잘도 올라간다. 다들 두리번 두리번. 산삼이라도 캐러 온 걸까. 숨이 꼴딱 넘어갈 무렵 능선에 올라선다. 잘 생긴 능선길을 따라 또 한번 숨이 꼴딱 넘어가고, 드디어 삼봉산 정상에 도착한다. 아무렴, 등산 온 것이 아니라도, 정상에 올랐으니 사방으로 툭 트여진 풍광도 한번 감상하시고, 주섬주섬 배낭에서 이것저것 꺼내 정상주도 한 잔하면서 땀도 식히고, 본격적인 채취 작업에 들어갈 만반의 준비태세를 갖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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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에 어디서 많이 땄더라, 어디가 군락지더라, 다양한 정보가 속출하고, 드디어 공격 포인트가 정해지고, 길도 없는 곳을 향해 내려선다. 바위길이 험하고, 수풀이 발목을 부여잡고, 그러다 눈 앞으로 비탈진 밭이 나온다. 다들 흩어져 숲 속으로 하나 둘 자취를 감춘다. 시작이다.

    괴발딱주(생긴 모양이 고양이 발을 닮았다고 그렇게 부른다) 표준말로는 단풍취, 이 맘 때쯤 땅을 뚫고 나오기 시작하고, 새순 특히 줄기가 맛이 일품이다. 고도 1000m 이상에서만 서식하고, 재배가 안된다, 그래서 귀하고 그만큼 아는 사람만 아는 산나물이다.

    다들, 허리에 앞주머니를 차고 혹은 한 손에 마대자루를 들고 허리를 숙이고 괴발딱주를 따기에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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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너 시간 흩어져 9부 능선을 훑으며 다들 한 포대씩 괴발딱주를 딴다. 괴발딱주를 따다가 한 눈을 팔기도 한다. 어라, 더덕이네, 포대를 제쳐놓고 약초 호미를 꺼내 더덕 줄기를 따라 땅속 깊이 숨어있는 더덕을 캐기도 한다. 더덕 향이 엄청 진하고 좋다. 이제 허리도 아프고 목도 마르고 할 즈음, 여기저기서, 고함 소리가 들린다. 그래, 점심 먹을 시간이다. 그 넓은 산에 흩어져 있다가도, 신기하게 한 군데 장소로 속속 모여든다. 배낭 가득히, 그리고 마대자루 가득히 괴발딱주를 담아서, 오늘 할당량을 다 했는지 가늠해 보고, 흐뭇한 맘으로 도시락을 펼쳐 놓고, 라면도 끓이고, 소주도 한 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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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하산이다. 내려서는 길이 가파르고, 어깨에 짊어진 포대자루가 무겁지만, 맘이 급하다. 이 놈들을 포장해서 얼른 택배로 부쳐야, 상하지 않고 받는 사람이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무슨 짓이냐고? 저 번에 말했던, ‘지리산에 살래’ 회원들에게 푸짐한 선물꾸러미를 발송하는 날이다. 발송 날에 맞춰 괴발딱주를 따서, 신선하게 보내기 위해, 새벽부터 그렇게 바지런을 떨었던 것이다.

    지리산 작당소에 도착해, 괴발딱주를 포함해 여러 가지 농산물을 포장하고 택배박스에 넣고, 정신없이 서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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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때, 푸짐하지 않은가. 괴발딱주 한 봉지, 곤드레 한 봉지, 현미 뻥튀기 2종류, 된장과 간장, 포도즙, 건표고버섯, 옻칠한 조리용숟가락, 덤으로 ‘산내마을신문’까지….

    자, 이제, 택배도 다 부쳤고, 이제 우리가 따온 괴발딱주를 안주 삼아 뒷풀이나 해볼까. 괴발딱주는 생으로 된장에 찍어 먹어도 맛있고, 살짝 데쳐서 고추장과 식초로 간을 해서 무쳐 먹어도 맛있다. 이런 복받은 삶이 또 있을라구? 다들 한마디씩 하면서, 새벽부터 설친 하루의 고된(?) 노동을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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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뒷풀이 하다가 핫바지 방구 새듯이 하나 둘씩 자리를 뜬다. 누구는 고사리 밭에, 누구는 고추밭으로, 또 누구는 못자리 해놓은 하우스로…. 그렇다, 지금은 농번기다. 어린아이의 고사리 손도 빌려야 한다는, 그 농·번·기.

    필자소개
    대구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지금은 지리산에 살고 있는 초보 농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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