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복지사회 가로막나
    [책소개] 『복지사회와 그 적들』(가오롄쿠이 / 부키)
        2015년 05월 09일 11:2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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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지 지출이 많은 나라는 정부 부채가 많다.” “복지 국가는 효율이 낮다.” “복지 사회는 부자 나라에서만 가능하다.” 복지국가에 대한 이러한 문제 제기들이 과연 사실일까? 복지국가는 현대 ‘위기 사회’가 지향해야 할 적절한 좌표인가?

    이 책 『복지 사회와 그 적들』은 바로 그러한 문제 제기에 대한 한 가지 답을 제시한다. 복지국가에도 결함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복지국가밖에 없다.’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종주국인 미국과 영국이 금융 위기나 유럽 부채 위기 등 초대형 경제 위기에 휘청거리는 사이, 복지국가의 대명사인 북유럽 선진국들은 여전히 낮은 실업률과 높은 1인당 GDP, 상대적으로 작은 빈부 격차를 실현하고 있다. 그런데 왜 복지 사회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일까?

    저자는 복지국가에 대한 문제 제기 자체에 일부 오류가 있다고 말한다. 복지를 축소하거나 거부하자는 주장들을 살펴보면 사실 관계를 왜곡하거나 핵심적인 진실을 감추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처럼 복지 국가에 대해 잘못 알려진 사실들과 거짓말을 바로잡고 복지 국가의 실체를 알리려는 시도다. 나아가 그러한 거짓말과 왜곡을 ‘누가 왜’ 만들어 내는지, 그리고 그렇게 형성된 복지 반대 담론이 어떻게 재생산되고 확대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복지국가의 탄생에서부터 발전 과정, 일부 복지국가의 탈복지 노선, 복지 사회의 개선점 등도 검토하면서, 복지 후발 국가들이 앞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한마디로, 복지 국가의 과거와 미래, 현재를 한데 아우른 복지국가 사용 설명서다.

    복지사회와 그 적들

    누가 복지를 반대하는가?

    강력한 복지 정책을 시행한 나라들이 이미 확실한 성공을 거뒀음에도 복지를 부정하고 반대하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복지에 대한 진실은 숨겨지고 사실과 다른 주장이 오히려 난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고대 로마의 정치인이자 웅변가 키케로는 “퀴 보노(Cui Bono)?”라는 말을 즐겨 썼다고 한다. “누가 이득을 보는가?”라는 의미다.

    이 책의 저자 또한 경제 칼럼니스트 스한빙의 ‘이익 분석법’을 요긴하게 써 볼 것을 제안한다. 복지의 효용을 깎아내림으로써 이득을 얻는 ‘배후의 수익자’가 누구인지를 분석해 보라는 얘기다.

    흔히 생각하듯 복지 사회가 저소득층이나 중산층에게만 좋은 것은 아니다. 복지 사회에서는 기업과 정부도 수익자가 된다. 복지 사회를 건설하면 세수를 바탕으로 재정 집행이 용이해지고 고용 문제가 상당수 해결돼 사회 화합 및 공직자의 청렴함이 구현된다. 기업에서는 뛰어난 자질을 갖춘 인재가 창조한 잉여 가치로 구현된다.

    다국적 기업 보유 수로 세계 1위에 올라 있는 북유럽이나, 비스마르크가 사회 보장 제도를 법적으로 수립한 이후 근로 상황과 산업 환경의 개선으로 기업의 수익이 크게 증대한 것을 바탕으로 독일 경제가 도약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복지 사회를 건설할 경우 유일하게 손해를 입는 계층은 이른바 고위층이다. 기득권을 가지고 있으면서 복지 사회로부터 가시적인 이익을 얻을 수 없는 계층이기 때문이다. 이들이야말로 복지의 최대 반대자다.

    저자는 고위층이라는 ‘이익 집단’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 위해가 더 크다고 말한다. 겉으로 드러난 이익 집단들이 여론과 국민 의사의 제약을 받는 반면, 드러나지 않는 이익 집단은 자기 집단의 이익을 몰래 도모하면서 명목상 국민과 대중을 내세우기 때문에 오히려 국민의 지지를 받는 일까지 생긴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감세’ 주장이다. ‘세금을 줄여야 한다’라는 주장은 사회적인 공감을 끌어내기 쉽다. 중산층과 저소득층은 당장의 수입이 조금이라도 는다. 부자와 기업은 줄어든 세금만큼 투자와 소비가 늘어, 궁극적으로 사회 하층에까지 부가 흘러드는 낙수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하니 누가 반대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감세로 이득을 보는 것은 언제나 부유층일 뿐이라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이미 증명됐다. 전례 없이 큰 폭의 감세를 단행한 1980년대 미국 레이건 정부 사례가 대표적이다. 단기적인 경제 지표만 호전됐을 뿐 낙수 효과는 없었으며, 의도했던 재정 적자 축소는 재정 적자에 무역 적자까지 얹혀진 ‘쌍둥이 적자’라는 반전으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쌍둥이 적자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그때부터 미국 사회의 빈부 격차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는 사실이다. 복지 예산 감소로 저소득층은 더욱 주변화됐고 중산층은 해체되기 시작했다. 이는 레이건과 같은 시기에 대처 정부가 들어선 영국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영국과 미국은 각각 대처와 레이건의 ‘탈복지화’ 드라이브로 복지 노선에서 이탈하게 되자, 이후의 제3의 길과 같은 대안적인 정책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한번 벌어진 사회의 간극을 다시 좁히지 못하고 있다.

    복지의 실현을 필사적으로 막으려는 ‘복지 사회의 적들’

    눈에 보이지 않는 이익 집단이 여론을 통제하고 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그들에게 복지 반대 논리를 제공한 전문가 집단과 그 논리를 확산시킬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한 언론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저자는 이러한 전문가로 ‘경제학자’를 꼽는다. 바로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이다. 그들은 시장은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스스로 찾는다면서 인위적인 개입이나 간섭을 반대한다. 정부가 커지면 시장에 손해라고 생각해 ‘작은 정부’를 선호한다. 그들에게는 북유럽 국가와 같은 공공 서비스형 정부나 고세수 정책은 타도해야 할 대상이다. “국가가 개입하면 경제가 성장할 수 없다.”라는 것이 그들이 자주 하는 협박이다.

    저자는 이러한 맹목적인 시장주의 경제학 이론도 문제지만, 학문적 깊이는 결여한 채 사회적 명성이나 지위만을 좇는 속물적인 경제학자가 많은 현실을 더욱더 개탄한다. 경제학자가 필요로 하는 연구 자금이 대부분 재단이나 기업, 다국적 투자 은행 등에서 직접 제공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경제학자가 이익 집단의 대변인 노릇을 하게 되는 인센티브가 작용하는 것이다.

    이들과 접촉하는 언론 역시 마찬가지다. 언론사의 경제부 기자 상당수가 체계적인 경제학 수업을 받은 경험이 거의 없다. 경제 전문 지식이 부족한 기자가 전문 지식이 깊지 않은 경제학자를 상대로 인터뷰를 하고 자문하는 상황인 것이다. 게다가 언론은 대중의 눈치를 보거나 선정적인 효과를 노려 가며 교묘하게 뉴스를 고르거나 배제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진정한 경제학자들은 말을 아끼고 침묵하는 반면, 극단적이고 편현합 주장만이 여론의 주목을 받게 된다.

    저자는 대중의 지지를 얻으려는 대중 추수주의뿐 아니라 문수주의(문자 추수주의), 즉 글로 먹고사는 학자들도 경계한다. 전문적인 지식 없이 감성적인 인식에 의거해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을 하는 ‘문예강(文藝腔)형’ 학자들, 언론에 기고하는 경제 평론가나 오피니언 리더 중에 진정한 학문적 배경 없이 단견과 편견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인기를 과시하는 이들이 대표적인 문수주의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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