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안학교는 대안인가?
    [교육담론] 심각한 문제점들
        2015년 05월 04일 10:0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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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원의 성격이 그래서인지 대안학교를 다녔던 학생들이나 그런 학교를 희망하는 학부형.학생들이 많다. 잠정적이긴 하지만 우리는 대안학교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고 결론지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첫째. 너무 공부를 안 한다. 공부가 부족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더 그랬다. 특히 수학.과학.영어 등에서는 매우 심각하다. 아마도 대안학교가 지향하는 일련의 교육이념과 기조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결정적인 측면은 중요한 시기에 적절한 지적 자극이 주어지지 않으면 훗날 이를 만회할 가능성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인간의 지적발전은 선형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시점마다 단계적으로 발전한다고 한다. 그 중 중요한 시기가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1.2 어느 시점이다. 이 시기에 적절한 공부를 하지 않으면 이를 만회하려 해도 잘 되지 않는다.

    나와 동료 강사들은 위 사실을 경험적으로 느끼고 충격을 받은 바 있다. 대안학교 학생들이 뒤늦게 수학공부를 하고 싶어도 잘 되지 않고 그것이 정신적인 자세에 문제라기보다는 일종의 생리적인 문제(뇌 회로가 수학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형성되지 않은 것) 때문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둘째. 지식의 편향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세월호나 80년 광주 같은 사건들에 대해 매우 잘 알고 그것과 관련된 이러저러한 행사에도 적극 참여한다. 그런데 그것의 역편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수학.과학에 대한 지식은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대다수의 학생들이 수학을 배워 뭐 하냐는 질문을 한다. 그런데 대안학교 학생들은 수학이 어렵기 때문에 그것을 푸념하는 정도가 아니라 인문사회과학이 중심 지식이고 수학과학은 안 배워도 되는 주변적인 학문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위와 같은 경향은 비단 대안학교 출신들에게서만 나타나는 문제가 아니다. 그들의 부모 그리고 넓게 보면 인문고전을 중시하는 80~90년대를 살았던 일련의 진보적 중년층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문제이다.

    셋째는 인성 교육에서 있어서도 양면적인 모습이다. 대안학교 출신들의 강점은 밝고 명랑하며 스스럼이 없다는 점이다. 주눅이 들지 않고 해맑은 청소년들은 정말 보기 좋다.

    그런데 여기에도 양면성은 있다. 우리가 사회를 통해 배워야 할 것은 협동과 배려, 나눔과 봉사와 같은 미덕도 있지만 때로는 복종과 타협, 조정과 굴복(?) 따위의 경험도 필요하다. 우리에게 중요한 인성은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어두운 구석까지를 받아들이고 이것을 극복하는 역동적인 인성이지 그것에서 떨어져 자신들만의 독특한 세계에서 발전한 인성은 아니기 때문이다.

    넷째는 자연친화적인 활동의 일면성이다. 대안학교의 다수가 자연친화적인 활동을 권장하고 노동의 의미를 중시한다. 그러나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가을 추수를 앞둔 논밭이 자연적일까? 그것 또한 1만년 전 인간이 농사를 시작하면서 자연계의 식물들을 인위적으로 선별한 인공의 산물이다. 1만년 전의 농사는 수렵과 채집을 대체하는 최고의 하이테크 산업이었다.

    중요한 것은 자연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역사적 맥락에서 파악하고 그에 맞게 자연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대안학교에서 말하는 자연친화적인 활동의 역사적 맥락은 산업사회의 지나친 경쟁구도와 이윤논리에 기반한 무차별한 개발일 듯 하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대안학교의 비젼은 너무 복고적이고 탈사회적이다. 마치 노장자나 불교를 보는 것 같다.

    21세기 도시화.정보화된 세상의 청년들이 자연을 벗하는 방식은 달라야 한다. 첨단 과학과 농업을 결합하여 농업에서 새로운 비젼을 발견하거나 인터넷이나 도농 거래를 통해 안전한 먹거리를 상품화하는 등의 활동이 있을 수 있다. 이런 활동을 위해서는 전통 농업을 뛰어 넘는 과학적 지식이 필요하고 사회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보다 사회와 친해져야 한다.

    다른 무엇보다 대안학교가 갖고 있는 결정적인 문제점은 교육의 기조를 잘못 잡은 것이다. 한국 사회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교육의 목표를 청소년들을 최첨단 지식, 쓸모 있는 지식인으로 키우는 것에 두지 않고 사교육비를 어떻게 절감할 것이냐 공부량을 얼마나 줄일 것이냐에 두고 있다.

    이렇게 가치와 본말이 전도된 인식이 어디에 있는가? 과도한 경쟁과 비용이 문제라는 점은 이해한다. 그러나 교육과 관련하여 양보할 수 없는 최선의 가치는 최고의 지식을, 모든 구성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특히 향후 전개될 고도지식사회, 지식기반 사회에서는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대안학교의 잘못된 패러다임은 대안학교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혁신학교나 각종 교육운동(가령 전교조) 등의 핵심 패러다임이 모두 여기에 맞춰져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70년대 이후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던 386세대와 그들을 전후한 세대의 신념체계와 연관되어 있다.

    전교조를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전교조는 80년대 인간화 교육을 전면에 걸며 등장했다. 여기서 인간화란 군사독재 시절의 난폭하고 권위적인 교육 시스템을 거부하고 학생들에게 건강한 인성과 그에 기반한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군부 치하의 봉건적이고 위계적인 한국사회와 정면 충돌했고 민주화운동의 모범으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이상한 신화가 발전했다.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보다는 인문고전을 중시해야 하고 무분별한 건설보다는 자연 그 자체를 유지?해야 한다. 지식보다는 땀 흘리는 노동이 중요하고 경쟁을 통한 역동적인 발전보다는 느리더라도 모두가 공존하는 사회가 중요하다…….

    사회를 구성하는 층위의 관점에서, 사회발전의 동력의 관점에서 보면 민주화보다 근본적인 것은 기후.인구와 같은 측면이고 과학기술의 발전, 식량생산의 급증과 같은 요소가 보다 본질적이다.

    현 상황은 군부통치와 정면에서 충돌하는 시대에서 배태된 부정적인 유산이 고도 지식사회라는 보다 근본적인 시대적 조류와 충돌하고 있다. 그리고 그 극적인 사례가 대안학교이다.

    터놓고 말하면 다음과 같다.

    21세기에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은 몰라도 된다. 그냥 지적 취미 생활로 해도 상관이 없다. 그러나 양자역학이나 빅데이터 따위를 모르면 바보(?)라고 봐야 한다.

    점을 보고 기복신앙을 갖고 있으며 70년대와 한국전쟁에 묶여 있는 노령층을 탓할 노릇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문고전을 중시하는 다수의 중년층도 시대와 맞지 않는 세계관을 고집스럽게 유지하고 있는 점에서 동일하다.

    필자소개
    민경우
    전 범민련 사무처장이었고, 현재는 의견공동체 ‘대안과 미래’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서울 금천지역에서 ‘교육생협’을 지향하면서 청소년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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