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루의 '세계사편력',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
[책소개] 『네루의 세계사편력 다시 읽기』(이광수/ 나름북스)
    2015년 05월 02일 12:4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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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편력’은 인도의 독립 운동가 네루가 감옥(1930년 10월 26일부터 1933년 9월 8일까지)에서 딸에게 보낸 196통의 편지를 묶은 책으로, 서양사 위주의 역사 서술에서 배제당한 서아시아,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중남아메리카 등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이 점에서 ‘세계사편력’은 흔히 세계화 시대라고 일컬어지는 현재에도 그 빛을 잃지 않는 명저다. 하지만 ‘세계사편력’은 그 방대함으로 청소년이나 비전문가인 일반 시민이 읽기엔 적잖이 부담이 된다. 부산외국어대 이광수 교수가 새로 쓴 《네루의 세계사편력 다시 읽기》는 네루의 원저를 쉽게 풀어쓴 해설서이자, 교양 역사서다. ‘세계사편력’을 따라 고대로부터 중세, 근대 그리고 현대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저자는 유럽 중심의 역사 서술을 비판하며, 세계사를 균형감 있게 다룬다.

유럽 중심주의와 지배자 관점의 역사 서술 비판

흔히 고대 역사라 하면 그리스와 로마 혹은 알렉산드로스와 같은 정복자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로마가 번성할 때 아프리카 해안에는 로마의 강적 카르타고가 버티고 있었고, 동양에선 중국이 하나라와 상나라를 거치면서 중앙 정부에 기반을 둔 국가를 성립했다. 하지만 당시 유럽인들은 지중해 연안을 제외한 중국이나 인도 같은 나라는 마법이 횡행하는 신비의 나라로 생각했다.

이 같은 유럽인들의 사고는 현재까지도 이어져 우리의 역사관과 세계사 서술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례로, 저자는 알렉산드로스를 ‘대왕’으로 부르고, 그의 침략이 아시아에 문명을 전해준 것처럼 얘기하는 것도 전형적인 유럽 중심의 역사 서술이라고 비판한다.

“우리는 알렉산드로스를 ‘대왕’이라고 높여 부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정복당한 사람들이 그를 위대한 대왕이라 부를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알렉산드로스는 그의 아버지 필립포스와 함께 잇달아 페르시아 침략을 자행했습니다. 또 그리스의 한 도시 테베가 알렉산드로스에 반항하자 수많은 시민을 학살하고 수만 명에 이르는 사람을 노예로 삼는 등 매우 잔인하게 이 도시를 파괴했습니다. 그가 저지른 야만적 행위는 그리스인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고, 그의 침략을 받은 많은 아시아 민족들에게 감탄은커녕 반감과 증오를 불러일으키게 합니다. 그래서 그를 ‘대왕’이라 부르는 이는 유럽 사람들이지 모든 사람은 아닙니다.” (36-37쪽)

저자는 지배자의 시각에서 바라본 역사만이 아니라, 지배당하고 착취당한 이들의 시선으로 세계사를 훑어 나간다. 이러한 관점은 네루의 역사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네루 역시 지배와 피지배를 극복하기 위해 세계사는 서로 다른 지역의 상호 교류와 종합에 관한 이야기여야 한다고 믿었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어떤 국가 혹은 문명의 번성 이유를 권력자나 지배자 개인에게서 찾는 기존의 역사 서술이 놓치는 역사의 이면을 들춰볼 수 있다.

“로마에는 이 (귀족과 평민) 두 계급 외에 방대한 수의 노예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시민이 아니었기 때문에 선거권도 없었고 소나 개처럼 주인의 사유재산일 뿐이었습니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영화는 바로 이 광범위한 노예제도를 토대로 이루어졌지요.”(47-48쪽)

네루 세계사 편력

“왜 유럽은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을까?”

《네루의 세계사편력 다시 읽기》는 네루의 ‘세계사편력’과 마찬가지로 고대와 중세에 비해 근현대에 좀 더 비중을 두고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왜 문명이 번성했던 아시아나 이슬람권은 쇠퇴했는지, 그에 비하면 보잘 것 없던 유럽은 왜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는지, 근대 이후 전개된 세계사에 의문이 생긴다. 흔히 유럽이 19세기 들어 세계의 패권을 잡은 이유를 유럽만의 고유한 문화적 우월성 혹은 고대 그리스 문명에서 찾는다. 그러나 저자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근현대 역사와 유럽의 팽창을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유럽의 산업혁명은 식민지를 매우 필요로 했습니다. 산업혁명의 초기 국면에서 생산물이 이윤을 남기려면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자유노동이라는 것이 존재해선 안됐습니다. 따라서 생산을 위해서는 조야하고, 아직 발전되지 않은, 그야말로 야만적 상태의 강제된 노예노동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나라를 침략해 그곳에서 매우 낮은 가격에 상품을 만들어 가져와야 했던 것입니다. 그 상품을 유럽 시장에 팔아 이익을 남기고, 그 돈으로 다시 상품을 만들어 해외 시장에 강제로 팔아넘기는 시스템은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산업혁명을 부채질했습니다. 결국 19세기 유럽의 세계 지배는 유럽 고유의 문화적 요인 때문이 아니라 1492년 이후 자행한 아메리카 침략과 수탈에 따른 것입니다.”(206쪽)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은 싼값에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다른 나라를 침략해 원료를 수탈하고 노동력을 착취했다. 그리고 앞 다퉈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지의 나라를 식민화했다. 이처럼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제국주의와 결합할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한국도 아시아의 여러 나라와 마찬가지로 제국주의의 침략을 받았다. 또 일제로부터 해방되자 한반도는 강대국들에 의해 두 개로 쪼개져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눴다. 한국인들은 일본이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며 자신들의 제국주의 침략을 정당화할 때 공분하지만, 유럽이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에서 행한 똑같은 역사적 악행에 대해선 입을 다문다. 오히려 인도를 비롯해 식민지 경험을 공유하는 다른 나라들의 빈곤 문제를 그들의 문화적 습속이나 민족성 탓으로 돌리며 쉬이 폄하한다. ‘우리’ 이외의 다른 이들의 역사는 식민지 근대화론자들과 같은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역사적 진실과도 거리가 먼 이중적 역사 인식이다.

“유럽에서는 기존 질서가 사라지면서 새로운 질서가 탄생하는 변화가 자연적으로 진행되었지만, 인도에서는 기존 질서의 소멸이 외부의 힘에 의해 이루어졌고, 자국의 이익을 우선한 영국이 새로운 질서를 탄생하지 못하도록 강제했습니다. 인도는 전진하기는커녕 영국의 정책을 통해 도리어 후퇴하여 전보다 더 비참한 농업국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인도 빈곤 문제의 기초이자 근본입니다.”(162쪽)

“팔레스타인 문제의 원인은 종교일까?”

자본주의와 결합한 제국주의는 세계 곳곳을 지배하고 착취했다. 영국 등 일찍이 자본주의가 자리 잡은 서구 국가들은 자신들의 나라엔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공화국을 건설했지만, 그들이 지배한 나라들엔 자본주의적 발전도, 민주주의의 확산도 용인하지 않았다. 그래서 고대와 중세 시대 그 어떤 지역보다 문명의 꽃을 피웠던 이슬람 지역은 테러와 전쟁으로 얼룩졌다. 흔히 이슬람 종교에서 그 원인을 찾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이 역시 제국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현재도 분쟁이 계속되는 팔레스타인 문제는 이를 잘 보여준다.

“지금도 세계 평화를 저해하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과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에서 벌어지는 테러와 학살 그리고 전쟁의 원인이 많은 부분 팔레스타인 문제에 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가 이 문제의 성격을 종교 혹은 문화 사이의 충돌로 몰고 가지만 사실은 다릅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경제 문제입니다. 팔레스타인은 자치 정부도 없이 영국의 식민지 취급을 받으면서 그 땅에서 오랫동안 살아왔기 때문에 민족자결과 완전 독립을 요구했을 뿐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그 지역으로 이주해 오는 유대인에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2천 년이 넘도록 살고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조국의 땅에 남이 이주해 들어오는 것을 그냥 둘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아랍인들은 팔레스타인 기독교도의 전폭적인 지지까지 받았고, 모두가 하나로 뭉쳐 투쟁했습니다. 이것은 곧 근본적인 쟁점이 종교 문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 이주해온 자와 예전부터 살아왔던 거주자 사이의 경제권을 둘러싼 충돌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영국은 아랍인과 유대인을 계속 충돌시킴으로써 이러한 사태를 지속시키고자 했습니다.”(242쪽)

‘세계사편력’의 현대적 재평가

《세계사편력 다시 읽기》에서 저자는 ‘세계사편력’의 내용을 단순히 해설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네루의 관점을 비판적으로 재평가한다. 서구 제국주의를 강하게 비판했던 네루는 인도 혹은 힌두 민족의 패권적 팽창이나 카스트제도의 역사에 대해서는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네루의 역사 인식에서 가장 문제가 있는 부분이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민족주의적 역사관의 한계를 지적한다.

“네루는 카스트 제도가 처음 만들어지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첨예한 계급 제도로 변했고, 그 안에서 심각한 착취와 차별이 일어났음을 애써 보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그가 식민 지배 아래에서 민족운동을 이끌어가던 지도자로서 역사의 진실을 보는 것보다 민족 전체에 자긍심과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민족주의는 역사의 진실이 민족의 영광에 반하면 민족의 영광을 취하는 이념이기 때문입니다.”(27쪽)

신자유주의 시대 ‘세계사편력’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

‘세계사편력’은 네루가 독립운동을 벌이던 1930년대 이전까지의 세계사를 담고 있다. 이후 세계는 또다시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참화를 겪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두 진영이 대립한 냉전 시대를 지나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서구 열강의 식민지였던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가 독립했다. 소련의 붕괴로 냉전 시대는 막을 내렸고, 비로소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세계 곳곳에선 여전히 전쟁과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이슬람 세계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세계의 갈등은 2001년 발생한 ‘9·11 테러’ 이후 더욱 악화했다. 또한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등 제3세계 국가들은 무력을 앞세운 서구 열강의 식민 지배에선 벗어났지만, 빈곤 문제로 신음하고 있다. 80여 년 전 네루가 당대 세계를 바라보던 문제의식의 두 가지 축, 즉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는 여전히 오늘날 세계의 많은 부분을 우리에게 설명해준다. 현대적 제국주의의 전형은 뒤늦게 유럽으로부터 독립해 초강대국으로 거듭난 미국에서 잘 드러난다.

“미국은 더 이상 남아메리카에 예전 방식으로 제국을 건설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상품을 통해 그들의 시장을 장악한 것입니다. 미국 자본가들은 투자와 금융을 통해 남아메리카의 여러 작은 나라에 효과적인 지배력을 행사함으로써 은행과 철도와 광산을 움직여 그들을 착취해 이익을 극대화했습니다. 이것은 제국의 새로운 형태이자 과거와는 다른 근대적 착취 형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주목할 만합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경제적인 것으로 아무런 외부적 징후도 없는 착취와 지배입니다.”(198쪽)

18세기 산업혁명과 함께 등장한 자본주의는 이제 세계를 지배하는 단 하나의 체제로 자리 잡았다. 20세기 중반 이후 ‘신자유주의’라는 새 옷을 갈아입은 자본주의는 과거와 양상은 달라졌지만, 경제적 지배를 토대로 여전히 그 위세를 떨치고 있다. 그러나 역사라는 거대한 흐름에서 보자면 현재의 이 체제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는 건 불문가지다. 현재 세계의 모순을 과거 역사를 통해 되짚고, 더욱 평등하고 민주적인 인류 사회 건설을 지향해야 할 오늘의 우리가 ‘세계사편력’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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