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분 - ①
    [글쟁이들] 연재소설 '3분'
        2015년 04월 29일 04:4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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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이라는 이름은 문학상과 같은 어떤 제도적 틀과 규범에 의해서만 그 권위와 자격이 부여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 문학을 선망하고 욕망하고 지향한다. 그런 꿈과 욕망을 가진 이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코너를 ‘글쟁이들’이라는 제목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첫 글로 연재소설을 게재한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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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화목난로

    거실 복판에서 사리는 불을 지피고 있었다. 땔감이 없으면 불은 꺼진다. 난로는 철제 안전망에 둘러싸여 있었다. 사리는 갈탄이 반쯤 담긴 통을 들고 조심스레 펜스 너머 난로에 손을 대봤다. 홍역을 앓는 아이의 이마처럼 뜨거웠다. 하지만 거실 전체를 데울 정도는 아니었다. 사리는 허리를 숙여 연료 투입구 안을 들여다봤다.

    웅크린 곰처럼 시커먼 무쇠난로가 홍매화 새순처럼 새빨간 혀를 날름거리며 갈탄을 탐내고 있었다. 사리는 체온계를 넣기 위해 아이의 입을 벌리듯 연로투입구를 열었다. 매캐하고 구수한 냄새가 났다. 일렁이는 아지랑이 속에서 갈탄을 하나씩 난로 안으로 던져 넣는 사리의 모습이 마치 어린 짐승에게 살덩이를 잘라 먹이는 사육사처럼도 보였다.

    ‘한 번에 넣으면 확 피었다가 금방 꺼져. 조금씩 자주 넣어야 돼.’

    갈탄 터지는 소리 뒤편에서 수지의 잔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사리는 통을 바닥에 내려놓고 연료투입구를 손으로 막으며 체중을 실었다. 현기증 때문에 난로를 짚고 쉬는 것처럼도 보였다. 화목난로는 숨이 막혀 발작하는 짐승처럼 버둥거렸다. 속심지에 불씨가 박힌 석탄뭉치처럼 난로 속에서 뻑뻑 터지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완전히 잦아들 때 까지 사리는 연료투입구를 틀어막고 묵묵히 서있었다. 난로의 떨림이 이내 잦아들었다. 사리는 그제야 허리를 펴며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느릿한 몸놀림은 마치 열을 받아 말랑해진 양초를 보는 듯 했다.

    화목난로에 뿌리를 박은 양철 굴뚝의 줄기는 발코니 밖으로 뻗어 있었다.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폐병에 걸린 화목난로가 뿜어낸 잿개비가 겨울바람에 흩날리는 것 같았다. 난로가 만든 아지랑이가 발코니 창에 비친 사리를 흔들고 있었다. 사리는 발코니 창에 어린 자신의 모습이 마치 바다 밑바닥에 뿌리를 박고 비틀거리는 해초 같다고 생각했다. 수조 안에 갇힌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숨이 가빠졌다.

    사리는 현관출입구 쪽으로 몸을 돌렸다. 베이지색 페인트칠이 된 철문이 보였다. 사리의 동공이 가루약이라도 풀어놓은 듯 베이지색으로 물들었다. 당장이라도 문이 열리며 수지가 들어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동공에 덮인 베이지색은 걷히지 않았다.

    허리께까지 오는 철제 안전망을 치켜들고 현관문으로 들어오던 수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마중 나오라고 전화를 하지 미련하다 너도 참.”

    “일 하는데 방해 될까봐 그랬지. 들고 올만 했어.”

    사리는 털실내화를 수지의 발 앞에 밀어놓고 안전망을 받아들었다. 잠시 스친 수지의 맨손이 얼음 안전망만큼이나 차가웠다. 사리는 저도 모르게 아랫입술 안쪽을 깨물었다.

    수지가 연두색 구두를 벗었다. 작은 발을 감싼 레몬 색 양말이 흠뻑 젖어 있었다. 사리는 냉장고 구석에서 무른 레몬을 발견했을 때와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수지는 칭찬을 바라는 아이처럼 마냥 미소 짓고 있었다.

    “화났어?”

    젖은 양말을 벗고 털실내화에 발을 넣은 수지가 사리의 품으로 파고 들며 물었다. 사리는 옆구리를 파고드는 수지의 팔이 너무 차서 안전망을 들지 않은 팔로 수지의 허리를 당겨 안았다. 차가웠다. 땀 냄새가 섞인 체취마저도 차가웠다.

    “씻어 얼른.”

    수지는 몸에 밴 냉기가 채 가시기 전에 사리의 품을 빠져나갔다. 사리는 그때 수지가 안겼던 것이 자신의 몸이 아닌 사리의 마음을 녹이기 위한 것이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

    수지는 현관에 사리를 세워두고, 지금 사리가 서있는 거실복판으로 총총거리며 뛰어와 노트북 앞에 앉았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화목난로를 검색했다. 수지는 주문하려고 보는 상품마다 기본적으로 안전망이 딸려 있다며 속상해했다.

    “난로도 사기 전에 펜스부터 사오는 애가 어디 있냐?”

    사리는 수지에게 핀잔을 줬다. 언 발과 손으로 격자 안전망을 들고 겨울 거리를 헤맸을 수지의 모습을 떠올리자 자신이 형편없는 남자가 된 것 같아서였다.

    “안전망 없이 난로부터 덜컥 들였다가 오빠 다치면 어떡해?”

    “내가 애냐?”

    “잘해줘도 짜증 부리는 거 보니까 애 맞네.”

    수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으며 화목난로를 골랐다. 마치 새로 나온 명품구두를 고르는 여자처럼 신나 보였다.

    “웬 난로야?”

    사리는 안전망을 한쪽에 내려놓고 수지에게 물었다.

    “낭만적이잖아. 난방비도 절약하고.”

    어느새 결제를 마친 수지는 욕실로 들어갔다. 뒷모습만 봐도 들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며칠 후 석탄 덩이처럼 시커먼 화목난로가 현관을 통해 들어왔다. 수지는 난로를 거실 복판에 놓자고 했다. 사리는 동의했다.

    수지는 난로 위에 걸터앉아 연통을 붙잡고, 설치기사와 사리가 양철 연통을 밖으로 빼내는 걸 지켜봤다. 사리가 설치기사의 잔소리에 화를 누르며 진땀을 쏟는 동안 수지는 내내 미소 짓고 있었다. 난로 위에 앉아있는 작은 몸집의 수지가 마치 곰의 등짝에 올라탄 어린 사슴 같다고 사리는 생각했다. 수지를 만나는 건 5년 만의 일이었다.

    화목난로

    2 연

    사리는 난로 위에서 달그락거리는 스테인리스 주전자를 보면서 싱겁게 미소 짓던 수지의 얼굴을 떠올렸다. 지금도 다용도실에는 그때 난로의 덤으로 온 여분의 안전망이 그대로 있었다. 시간이 지나 녹이 낀 안전망은 거실의 안전망과 같은 제품이었다. 사리는 거실의 안전망을 보면 같은 물건도 관리하기에 따라 전혀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사리는 마른 행주에 기름을 묻혀 수지가 사들고 왔던 안전망을 닦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녹이 생긴 곳이 있는지 거울을 들여다보듯 주의 깊게, 행여 살이 휘진 않을까 염려하며 살얼음의 표면을 닦듯 격자 사이사이를 부드럽게 문질렀다. 강화유리로 된 연료 투입구에서 나온 불빛이 안전망에 부딪혀 흩어졌다. 부서진 빛이 사리의 이마에 조각조각 박혔다. 안전망은 한 가득 그물에 걸린 정오의 멸치 떼처럼 반짝거렸다. 손톱으로 튕기면 대리석 바닥에 떨어진 은제 나이프처럼 맑은 소리를 낼 것만 같았다.

    닦을수록 깨끗이 닦으려는 욕심이 점점 커졌다. 팔에 들어가는 힘이 점점 더 세졌다. 자칫하면 안전망이 우그러질지도 몰랐다.

    사리는 안전망을 닦으며 화목난로 곁에서 수지와 함께 나던 오래 전 겨울을 떠올렸다.

    수지의 풍성한 머리칼과 책장을 번갈아 넘기며 읽던 책. 수지가 요리 블로그를 보며 만든 음식. 한 이불 속에서 발을 얽은 채 장난을 치며 마시던 홍차. 바닥에 놓인 노트북으로 여러 번 봤던 영화. 그런 것들을 누리며 언젠지도 모르게 나누던 사랑. 어떤 영화도 결말까지 볼 수 없었다. 서로가 서로를 산만하게 만들어서 다른 것에 집중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난로가 꺼지는 것도 모르고 사랑을 나누다가 잠 드는 밤이 이어졌다. 겨울은 둘을 더 밀착시키는 이유에 불과했다.

    유년시절의 사리에게 겨울은 원치 않는 스키 캠프나 어학 프로그램의 계절이었다. 아버지의 뜻을 거스른 이후 겨울은 이가 바스러지도록 버텨야 하는 혹한과 궁핍의 계절이었다. 사리가 겨울을 좋아하게 된 것은 오로지 수지 때문이었다. 사리는 겨울이 좋았다. 수지는 여름에 사라졌기 때문에 굳이 겨울을 다시 싫어할 이유가 사리에게는 없었다.

    사리는 한참 전부터 난로 위에서 부들거리고 있던 스테인리스 주전자를 기울여 머그잔을 채웠다. 주전자 주둥이에서 흐른 몇 방울의 찻물이 난로에 닿으며 ‘칫잇’ 하며 증발했다. 그 소리가 사리에게 수지와 보던 흑백영화의 한 장면을 기억하게 했다. 시커먼 증기기차가 역에 도착하는 장면이었다.

    수지가 사리의 집에 오기로 한 약속시간은 저녁 일곱 시였다. 5년 만에 재회였다. 사리는 손목시계를 봤다. 분침이 숫자 1을 가리키고 있었다. 사리는 프랭크 뮬러의 정방형 디자인이나 번들거리는 윤택이 거슬렸다. 숫자도 너무 컸다. 취향이나 센스를 칭찬 받는 건 고사하고 과시욕만 들킬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이미테이션으로 보일 것 같아서 싫었다. 사리는 시계를 바꿔 차기 위해 거실장 서랍을 열었다.

    서랍 안에는 시계며 벨트가 잘 정돈 돼 있었다. 대부분이 아버지의 유품들이었다. 고가구에서 풍기는 특유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사리는 나무가 썩는 냄새라고 생각했다. 나무는 수명이 긴 만큼 오랜 시간에 거쳐 썩는 것이라고 믿었다. 사리는 땅 속 나무관 속에 있을 아버지의 유해를 떠올렸다. 이미 다 썩어버리고 뼈만 남았을 아버지의 해골에 나무냄새가 스며들고 있을 것 같았다. 사리는 어머니가 아버지 집에서 옮겨다 놓은 가구를 이번 겨울이 지나기 전 모두 땔감으로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사리는 검정색 세이코 크레도르를 집어 들었다. 액세서리라기 보단 기계 같은 느낌이 강했다. 적어도 이거라면 허영에 찌든 남자로 보이진 않을 것 같았다. 눈금이 푸른색이라 고루해 보일 것 같지도 않았다. 사리는 손목시계를 바꿔 차고 다시 화목난로 곁으로 가 앉았다. 세이코 크레도르의 분침이 3을 가리키고 있었다.

    사리는 거실장 서랍을 다소 세게 닫았다. 거실장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흔들렸고, 바로 옆 벽에 걸려 있던 방패연이 툭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리는 연을 다시 벽에 걸어 균형을 맞춘 뒤 휴대폰 액정을 봤다. 7시 15분, 부재중 전화는 없었다.

    사리는 수지에게 전화를 걸어볼까 하다가 그만두기로 했다. 초조해 보이고 싶지 않았다. 가급적 초연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5년간 수지를 기다리면서 사리는 단 한 번도 수지를 기다리는 것처럼 굴지 않았다. 그리움이 불꽃처럼 간절하게 피어오를 때 마다 침묵을 석탄 쏟아 넣듯 들이 부어 불꽃을 덮어버렸다. 지난 5년은 그런 작업의 반복이었다.

    사리는 창을 열고 조용히 발코니로 나가 밖을 살폈다. 5층 아파트들이 담처럼 겹겹이 시야를 막고 있었다. 5년은 아파트 보다 작았던 나무들이 아파트보다 더 자랄 만큼의 시간이었다. 가오리연 하나가 나무 꼭대기에 엉켜 바람에 꼬리를 펄럭이고 있는 게 보였다.

    1km쯤 거리 밖에 있는 14층 아파트들은 마치 절벽처럼 솟아 있었다. 바람은 폭포가 쏟아지듯 그 꼭대기에서 이쪽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14층 아파트에서 불어 온 바람에 휩쓸린 눈발이 땅에 닿지 못 하고 이리저리 흩날리기만 했다.

    5층 아파트 창의 조명과 가로등 불빛이 허공 속에서 발광하는 눈을 비췄다. 사리는 여름 날벌레들의 교미비행을 보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행인들은 죄인처럼 움츠린 채 종종걸음으로 쫓기고 있었다. 바람이 수용소의 지도 위원처럼 그들의 발걸음을 채근했다. 표류하다가 암초에 걸린 것 마냥 나무 끝에 걸린 가오리연이 풍속계처럼 꼬리를 파르르 떨었다. 당장 찢어져도 이상할 것 같지 않았다.

    “오빠, 혹시 연 만들 줄 알아?”

    5년 전 겨울, 이곳에서 수지는 사리와 어깨를 맞대고 서서 거리를 함께 내려다보다가 물었다.

    “또 연 타령이야?”

    “뭐가 또야? 이제 두 번 물어보는구만. 연 못 만들지?”

    “문방구에서 준비물 사다가 만드는 거 학교 미술시간에 다 하잖아. 너희는 안 했어?”

    “만들어 봤지. 날리질 못 했지. 얼마나 높이 날려봤어? 정말 저 14층 아파트보다 높이 올라가기도 해?”

    “글쎄?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그쯤 올라가지.”

    “아, 정말 그렇게 높이도 올라가? 그렇게 높이 올라가면 줄이 팽팽하게 당겨지겠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 실 끊어? 아니면 다시 감아서 내려?”

    “당연히 끊지. 그걸 다시 내려서 뭐해.”

    “끊는 거구나……. 오빠, 나 연 좀 만들어주면 안 돼? 어디까지 올라가는지 한 번 같이 날려보자.”

    “애냐? 나중에 날 풀리면 한강 가서 구경이나 해. 거기 연 날리는 사람들 천지야.”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사리는 그때까지 연을 만들어 본 적도, 날려 본 적도 없었다. 사리가 연을 만들어 보고, 날려 본 건 수지가 사라진 이후의 일이었다.

    사리는 손목시계를 봤다. 분침이 어느새 5에 가 있었다. 스마트폰의 액정은 여전히 꺼진 채였다. 사리가 날렸던 연이 앙상한 나무 꼭대기에서 꼬리를 편 채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날아가지 않으려 나무를 붙들고 필사적으로 버티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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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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