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성당원제'와 진보정당, 그 복합성
[연속기고②] 목적 아닌 수단이되, 회피할 수 없는 수단
    2012년 07월 16일 12:1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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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합진보당 내부 논란과 갈등에 대한 기고 글 두번째를 싣는다. 연속기고 첫번째 글을 보시려면 여기를.<편집자>

문제가 생겼을 거란 건 통합진보당원들은 물론이고 민주노동당 경험이 있는 진보신당원들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5월 2일 진상조사위 1차 발표 이후 몰아닥친 후폭풍은 상상 이상이었다. 이 폭풍 속에서 진보신당을 통합진보당과 구별해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단지 당명이 비슷했기 때문에, 통합진보당이 남한 사회 대표적인 진보정당의 위치를 점유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훼손된 것은 ‘진보’란 단어에 사람들이 가졌던 막연한 호감 뿐만이 아니었다. ‘비례대표제’와 ‘진성당원제’, 그건 진보정당 운동이 한국 정치를 개혁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으로 선전했던 것들의 정당성이 물음에 붙여지고 도마 위에 올랐다.

정당에서 후보를 제멋대로 선출할 뿐이라면 차라리 지역구 유권자가 직접 뽑는 것이 더 민주적이지 않느냐는 질문이 나올까 두려웠다. 조직투표와 대리투표가 그 정도로 성행할 정도라면 진성당원제 정당이란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질문이 나올까 두려웠다.

그 두려운 상황을 피하게 해준 건 역설적으로 이 문제를 ‘종북주의’로 엮고 싶었던 보수언론이었다. 표찰 들고 투표하는 게 ‘북한식’이라는 그들의 어깃장 속에서 난감한 질문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졌다.

그러나 응당 있어야 했던 토론을 거치지 못한 상황에서, 사태가 다소 진정되고 난 후 나온 ‘새로나기’ 특위의 혁신방안이 구렁이 담 넘어가듯 이 문제를 건드렸다. 비례대표제와 진성당원제에 관한 고민을 ‘비례대표 명부 100% 전략공천’으로 따로 떼어놓는 복안이었다.

진성당원제에 대한 어떤 격세지감

이 복안을 평가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니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보자. 11년 전, 진성당원제는 민주노동당을 지지했던 ‘우리’에게 하나의 신앙과도 같았다. 민주노동당의 이론가였던 주대환은 민주당에서 노무현이 대선 후보가 되어야 한다고 외쳤던 강준만 앞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 우리나라 정치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는 “정당이 없다”는 점에 있다. 아니 “당원이 없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는 진정한 의미의 당원이 없다. 당원이 없으니 정당이 없는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보고를 보면 1997년 당시 신한국당에서 2만2천7백93명의 당원이 당비를 내었다. 그리고 국민회의는 2천6백37명의 당원이 당비를 내었다. 자민련은 4백 명이었다. 신한국당이 당비를 낸 사람 수가 좀 많지만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떤 실존적 이유에서 당비를 냈는지는 당시에 신한국당이 여당이었다는 사실을 알면 금방 알 수 있다. 당비를 낸다는 것은 당원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다. 그런데 지구당 부위원장 명함이라도 하나 받아서 생업에 도움이 되거나 장차 시의원이라도 한번 해볼 생각이 없으면서 당비를 내는 평당원은 없다. 이런 사정은 지금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현실 위에 우리나라 정치는 서 있다.

현재 당비를 내는 당원의 수는 민주노동당이 가장 많음이 분명하다. 당원의 수로 본다면 민주노동당이 우리나라 최대 정당이다. 아니 당원이 있는 정당은 민주노동당이 유일하다. 물론 그런 민주노동당도 역시 당원의 범위를 당비를 낼뿐만 아니라 당의 이념과 정책을 학습하고 선전하고 조직하는 사람으로 본다면 2만 명의 당원 가운데 5천명 정도가 진정한 당원이고 1만5천명은 후원회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만큼 ‘당원’은 우리나라에서 희귀한 존재인 것이다. 매우 진보적이라고 알려진 대학 교수라도 정작 우리가 입당 원서를 들고 가면 온갖 핑계로 입당 원서를 써주지 않을 때 우리는 슬픔을 느끼면서 ‘한국적 삶의 방식’의 힘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그래서 나는 강준만이 ‘민주당 당원이 아니며 될 뜻도 없다’고 촌스럽게 순한국식으로 버틸 것이 아니라 민주당에 입당하는 모범을 보이는 것이 우리나라 정치의 발전과 개혁, 현대화에 책 몇 권 쓰는 것보다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2000년 4월 총선에서 노무현은 낙선했지만 인기는 더 올라갔다. 아니 그는 집권 여당의 대통령 후보군에 들어갔다. 그는 ‘망국적 지역감정’에 저항하여 장렬히 싸운 의병장으로 커다란 명예와 명분을 얻은 듯이 보인다. 그런데 지난 총선을 차분히 다시 생각해보자. 선거의 과정이나 결과를 잘 보자. 노무현이 정면 대결한 것으로 되어 있는 지역감정이라는 문제를 보더라도 노무현이 문제제기일 수는 있지만 답은 아니다. 권영길이야말로 답이다. 지난 총선에서 노무현이 낙선한 데 대해 애석해하는 사람들이 조금 깊이 생각해보았다면 실제로 한국 정치의 근본적인 개혁을 위해서는 권영길의 낙선이 훨씬 더 애석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노무현은 만 표 이상 차이로 낙선했다. 아니 노무현은 처음부터 당선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출마했다. 그것은 해결책이 없는 문제제기와도 같은 것이다. 노무현의 투기, 계산된 행동, 영남에 출마해서 낙선해도 본전이라는 계산에 근거한 정치 쇼, 즉 사기극이었던 것이다. 반면에 권영길은 당선될 수 있었다. 왜? 그것은 권영길이 진지한 답이었기 때문이다. 그 다람쥐 쳇바퀴 같은 지역감정의 대결구도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길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내용으로 깊이 들어가 보면 노무현의 선거운동은 보수 정치인의 선거운동 그 자체였다. 그것은 새로운 시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개인 사업이었다. 후보 개인이 선거자금을 다 내거나 만들어내고 투기를 했다. 그러나 권영길의 선거운동은 수천 명이 한 푼 두 푼을 내고 자발적으로 선거운동을 벌인, 한국 정치에는 없던,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권영길 후보는 정말 한 푼도 내지 않았으며 권영길의 선거운동에 활동비를 받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것은 하나의 아름다운 작품이었으며 우리가 책에서 보았던 영국노동당 선거운동과 같았다. 그러나 노무현의 선거운동은 전혀 달랐다. 마찬가지로 모든 점에서 노무현에게 근본적 차원으로 깊이 들어가 보면 아무 것도 새로운 것은 없다. (…)
 – 주대환, “비판적 지지는 없다”, 민주노동당 기관지 <이론과 실천> 2001년 10월호

이 글이 ‘진성당원제’를 대하는 정서는 거의 낭만적이라고 표현해야 할 수준이다. 이 글에서 볼 때 진성당원제는 진보정당 운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어떤 격세지감을 느낀다.

이 글의 서술방식은 이정희가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의 정당성을 묻는 질문 앞에서 “진보정당의 기준은 진성당원제다. 따라서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은 문제가 없다”고 답변한 것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가 이정희의 논법을 반박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설령 우리가 국민참여당과의 합당을 지지하는 입장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렇다. 사실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은, 국민참여당 주체들에 대한 노동계의 뿌리깊은 반감의 문제를 빼고 생각한다면, 통합 직전 그들이 노동 문제에 대해 상당 부분 전향적인 자세를 취했기 때문에 반대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진보정당의 기준이 진성당원제이기 때문에 그들과의 통합이 정당하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진성당원제가 아무리 진보정당에 중요한 가치라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수단’에 해당한다. 한국 사회엔 다양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진보정치를 추구하지 않는 이들 몇 만명이 모여 그럭저럭 굴러가는 진성당원제 정당을 만들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고 그 정당을 우리가 진보정당이라 부를 수는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아마도 통합 이전의 국민참여당이 이 가능성의 현실태에 가까웠을 것이다.

이정희의 논법은 ‘매우 중요하지만 목적은 아닌 어떤 것’을 ‘목적’으로 위치시킬 때 어떤 왜곡된 논변이 가능한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는 진성당원제가 목적인지 수단인지도 한 번 더 생각해 보면서 변한 세월을 인지하게 된다.

진성당원제와 통합진보당의 혁신

앞서의 질문에 대한 해답은 결국 한국 사회에서 ‘진성당원제 있는 보수정당’이 가능하다는 사실에서 도출되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서 ‘진성당원제 없는 진보정당’도 가능할까?

이 물음 역시 굉장히 중요하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진성당원제가 폐해로 드러난 상황에서 과거 민주노동당의 역사가 다른 식으로 전개되었을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통합진보당이나 진보신당의 어떤 문제를 대함에 있어 진성당원제를 폐기하거나 약화시키는 쪽을 하나의 개혁 방안으로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상상 가능한 재미있는 상황은 많다. 가령 민주노동당이 진성당원제 정당이 아니라는 가정 하에 2008년 분당의 상황을 돌이켜 보자. 만일 민주노동당이 진성당원제 정당이 아니었다면, 노회찬과 심상정은 그 당을 이탈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의 행동으로서도 훗날의 행동으로서도 증명된 바이지만, 애초에 그들은 분당의 의사가 없었다. 그러나 그 당이 진성당원제 정당이었기에, 평등파의 절반 정도가 이탈한 민주노동당에서 그들의 입지는 허물어진 것이나 다름없었고, 그들은 진보신당을 창당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문제를 근본으로 가져가 과연 진성당원제 없이 민주노동당이 탄생할 수 있었을지 묻는다면, 우리는 고개를 가로젓게 될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국민승리21의 대선 패배 이후에도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원한 일부 민주노총 조합원들에 대해 CMS 당비 납부를 설득해 냄으로써 탄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진성당원제 없는 진보정당’의 가능성은 두 가지 밖에 없었다. 민주노총이 조합원들에 대한 별도의 입당 요구없이 자신의 자금으로 당을 만들려 했거나, CMS를 납부하는 당원들에게 권리를 주지 않거나.

그러나 당원이 아니면 후원금을 낼 수도 없는 우리의 제도적 환경에서 전자는 불가능했고, 후자 역시 당시로선 쓸 수 있는 방식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민주노동당은 단일한 이념체계로 뭉친 일군의 활동가들의 정당이 아니라 정파연합당이었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엔 각 정파끼리의 갈등을 중재할 수 있는 기제가 필요했고, 또한 매번 그 중재의 결론이 다르게 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필요했다. 그리고 당원들의 투표에 의해 권력이 창출된다는 원칙은 그 필요에 부응하는 것이었다.

통합진보당 새로나기특위 토론 장면(사진=참세상)

그래서 최장집과 그를 따르는 이들이 ‘정당 내 민주주의’의 강조가 적절치 못하다고 비판하고 카리스마적 정치인을 희구해도 한국의 진보정당은 진성당원제를 포기할 수 없게 되었다.

요약하자면 진성당원제는 당연히 진보정당 운동의 목표가 아닌 수단에 불과하지만, 한국 사회 실정에서 재정과 조직화의 문제에 있어 ‘회피할 수 없는 수단’이 되어 버린 것이다.

국민참여당의 입장은 또 조금 다르다. 그들 대부분은 열린우리당 내에서 진성당원제를 요구했지만 좌절당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요구는 현재의 통합진보당 상황과 비교해보면 조금 모순적인 구석이 있다.

기간당원제라는 어정쩡한 혼합형 체제를 택했던 열린우리당 내에서 참여계 당원들은 다수파였다. 그러나 참여계 성향의 사람들이 열린우리당 지지층 내에서 다수파였던 것은 또 아니다. 숫자의 문제로 볼 때는 전통적 민주당 지지자가 노무현과 유시민을 특출나게 지지한 이들보다 훨씬 많았던 것이 현실이다.

즉 열린우리당 당시 참여계 당원들은 ‘당원의 생각과 지지자의 생각이 다를 때 당원의 생각을 따르라고 요구하는’ 지금으로 치면 구당권파의 주장과 비슷한 포지션에 서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열린우리당 내에서 자신들의 노선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을 진성당원제의 문제로 사유하게 되었다. 한 당에서 진성당원제만 실행되면 지지자의 의사를 충실히 반영하는 정당이 구성될 것으로 믿었다(아마 그들은 자신들이 열린우리당 지지자의 다수를 대변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해선 별로 인지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에서 그들이 깨달은 것은 10여 년의 세월 동안 민주노동당 내에서 각 정파가 대립하며 만들어 낸 ‘선거의 기술’들이 만만찮다는 것이었다.

민주노동당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중매체라는 프리즘을 거쳐 ‘괴물’처럼 다가오는 통합진보당의 부정선거의 양상이 하늘에서 맥락 없이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즉 그 부정사례들은 진성당원제가 잘못 시행된 결과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진성당원제라는 하나의 제도가 시행된다고 모든 문제가 자동적으로 해결되지는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지금껏 살펴본 맥락들 때문에 통합진보당 역시 진성당원제를 결정적인 수준에서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3연합과 참여계, 그리고 통합연대(진보신당 탈당파)는 과거 민주노동당의 정파연합보다도 훨씬 이질적이며 이들 역시 갈등을 중재할 수 있는 어떤 심급을 필요로 한다. 진성당원제에 대한 일정한 후퇴를 함의한다고도 볼 수 있는 혁신안에 대한 평가도 여기에서 가능할 수 있다.

‘과반 투표 과반 찬성’ 규정을 없앤 것은 경쟁을 줄이기 위한 조치라고 생각된다. 진보세력은 그간 여러 사회운동 단체에서 과반 투표를 위해 미투표자를 독려하다 보니 조직투표와 대리투표가 일어나는 상황을 겪었고, 통합진보당의 선거 문화 역시 이 토대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경쟁은 완화될 수 있는 걸까. ‘비례대표에 대한 100% 전략 공천’이란 개선책은 결국 하나의 선거를 생략하는 대신 당권선거에 걸린 ‘지분’의 크기를 키우는 것이다.

여느 사회운동 단체와는 달리 이제 통합진보당은 나눠야 할 이권이 충분히 있는 정당이다. 비례대표 경선 부정이 굉장히 첨예한 문제가 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비례대표 명부 전략공천에 힘을 쓸 수 있고 당 대변인을 선임할 수 있는 당대표 및 최고위원 선거에 모든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그 ‘과열’은 이번 선거에서부터 드러났다. 당원명부에 있지만 당권은 없는 ‘유령당원’을 동원한 광범위한 대리투표가 있었을거라 ‘추정’되는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당시 투표자 총수가 41,672명이었는데, 이번 당대표 선거 투표자 총수가 38,161명이다. 겨우 3,500명 줄어들었을 뿐이다.

당원명부를 정돈하면서 당권자를 대폭 줄인 사정을 감안하면 오히려 투표율은 훨씬 높아졌다. 결과적으로 보아 통합진보당의 쇄신책은 원하던 효과를 거두지는 못하면서 평당원들의 결정권의 상당부분을 뺏어간 셈이다.

물론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의 역사에서 평당원들이 본인에게 주어진 권리들을 주체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정파의 선택에 포섭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통합진보당 ‘새로나기’ 특위의 쇄신안은 결과적으로 볼 때 그 ‘포섭’을 방해한 것이 아니라 어차피 포섭될 이들의 선택권을 제약하자는 쪽이었다고 볼 수 있다.

즉 통합진보당의 쇄신안은 진성당원제를 결정적으로 후퇴시켜서 문제인 게 아니라, 진성당원제를 결정적으로 후퇴시킬 수는 없는 상황에서 (차라리 그게 가능했다면 장단점을 따져볼 만한 일이었으리라) 진성당원제의 가능성마저 잘라버리는 근시안적인 대책이 나온 상황에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진성당원제의 통제를 벗어난 통합진보당의 미래

강기갑은 세간의 예상보다 훨씬 더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이는 모바일 투표와 ARS라는 매체에 익숙한 참여계의 강력한 조직력에 기인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내게는 이 선거 결과가 사실 ‘조직표’라는 것이 이 선거들의 파행적 모습에 질린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일사분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사실 그 ‘조직’이란 것의 실체는 투표에 대한 정보 및 관심을 위임하는 일종의 느슨한 사적 네트워크다. 자주파가 평등파에 대해 지속적으로 우위를 점해왔던 조직화의 실체도 ‘구국의 강철대오’의 조직이 아니라 이러한 네트워크에서의 우위였다.

그리고 이는 한국 사회 시민들의 삶의 형식과 정서에 밀착한 것이었다. ‘인간적이고 술 잘 사주는 어떤 선배’에 의해 운동으로 이끌린 그들은 선거 때마다 누구를 찍어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도 들었고 지침이 없을 경우 스스로 전화를 걸어 “누구를 찍어야 해요?”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이석기에 대한 다수표도 이렇게 생긴 것이었기에, 뉴스를 보고 놀란 그들 중 상당수가 연합의 단속에도 불구하고 강병기에게 표를 주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물론 이 선거결과는 통합진보당으로서는 한시름 놓은 상황이다. 경기동부연합 출신 의원 대여섯 명이 따로 당을 만드는 식의 ‘분당’을 점치는 이도 있지만, 내 생각엔 그보다는 이석기와 김재연 두 사람만 무소속으로 당을 이탈하면서 통합진보당 내부에선 여러 노선이 동거하는 식으로 정리될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당권선거에서 참여계의 승리는 대변인의 인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2012년 대선 정국에서 조중동의 ‘종북주의’ 논쟁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대변인의 인선이 중요한데, 구당권파인 경기동부연합은 물론이거니와 인천연합이나 울산연합 쪽 사람들에게 대변인실의 권한을 넘겨줘도 이 문제에 관한 한 답이 없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있어 참여계가 자신의 의사를 관철할 수 있다면, 민주통합당과의 야권연대가 다시 한번 안정궤도에 오를 수도 있다.

이 영역에서는 이제 당원들이 할 수 있는 바가 없어진다. 조중동이 통합진보당 내부의 어떤 목소리를 잘 발굴해내어 종북주의 논쟁을 재점화시킬 수 있느냐, 그것을 점화시키면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느냐가 문제의 관건이다.

아마 이 수준에서 당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건 과거 민주노동당의 제도였다 해도 마찬가지 상황이었을 거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에게 다른 상황은, 이 당에 있어 2012년은 당의 명운이 결정적으로 달려 있는 중요한 해라는 것이다.

이런 중요한 상황에서 기존 당원이나 새로 들어가는 당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사실상 이번 선거에서 끝났다는 것이 통합진보당원의 처지에 대한 객관적인 설명이다.

따라서 정치에 관심있는 시민에게 ‘통합진보당 입당’이 현명한 선택지가 아닌 것은 당권선거 이전 뿐만이 아니라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2012년 통합진보당의 운명은 이미 ‘기술자’들끼리의 싸움의 수준으로 넘어갔고 2012년 이후 통합진보당의 운명 역시 전적으로 이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난감한 것은 여기서 통합진보당이 잘 하기만을 바라야 하는 진보신당원의 사정이다. 만약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함께 정권교체에 성공한다면, 이후에 통합진보당 외부의 진보세력 분파에게도 역할이 주어질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정권교체에 실패한다면, 아마도 통합진보당은 민주통합당에 각을 세우면서 영향력을 유지하려 할 것이고 외부 분파의 설 자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한다고 해서 사태의 향방이 바뀔 수는 없다는 것이 또한 객관적인 현실이다.

통합진보당은 진성당원제를 수용한 민주노동당 창당 이후 12년 진보정당의 역사에서 돋보이게, 진보정당 운동을 지지하는 모든 이들을 논평가로 후퇴(?)시켜버렸다. 진보정당 당원된 바로는 일찍이 경험하기 힘들었던, 할 수 있는 건 구경 밖에 없는 어떤 시국 속으로 우리는 함께 걸어 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필자소개
'미디어스' 기자. 미디어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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