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중해, 난민들의 공동묘지
    유럽: 공범으로서의 "주류" 노동계와 자본?
        2015년 04월 27일 03:5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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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중해에서 지난주에 또 하나의 피난민 밀항선이 좌초돼 대규모의 참사가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관련 기사 링크) 한꺼번에 거의 천 명 가까운 생명들이 이 세상을 고통스럽게 떠난 거죠. 그들 중의 상당 부분은 시리아 등 서방세계가 부추겨온 전쟁의 현장에서 피난 온 사람들입니다.

    사실 이 세상에서 정치적 “도덕”이 존재했다면, 계속해서 친러/친중파 아사드 정권의 타도를 위한 시리아 내전을 부추겨온 서방국가들이야말로 그 내전의 피해자들에게 피난민 신분 부여는 물론 각종 손실에 대한 배상 내지 보상까지 해주었어야 했을 것입니다.

    문제는, 현재의 정치는 “도덕”과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것이겠죠. 지중해는 유럽 국가들의 중산층들이 늘 휴양철에 일광욕과 수영을 즐기러 오는 유럽의 휴양이자 제3세계인들의 ‘공동묘지’입니다.

    지금대로 간다면 아마도 금년에 지중해에서 익사를 당한 피난민의 수는 약 3만 명에 이를 것입니다. 만약 이와 같은 템포로 유럽의 이민자 통제가 피난민들을 예컨대 2백년 동안 계속 죽인다면 그 희생자의 수는 대략 6백만 명에 달하겠죠. 또 하나의 홀로코스트가, 유럽의 ‘복지국가’ 인민들의 곁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민 통제의 살인성을, 모두들이 다 익히 인지합니다. 아무리 통제한다고 한들, 전장에서 매일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매일매일 빈곤에 주눅이 들어 지쳐가는 사람들은 유럽 같은 중심부 지역에 몰려들 것입니다.

    경비정 등으로 그 밀항선들을 잡으려 든다면 야간 항해를 하면서 가장 위험한 항해로를 선택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또 엄청난 희생이 발생될 것이죠. 이 참극을 미연에 방지하자면 사실 세계혁명이 성공되지 않는 이상 두 가지 현실적 방안이 있을 것입니다:

    난민선 침폴

    방송화면

    1. “자유무역”을 강요하는 제3세계에에 대한 정치 간섭을 그만두고 아시아, 아프리카 등에서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간접적으로나마 보호무역 (생산자에게의 보조금, 비관세 장벽을 통한 핵심부 경쟁사 제품 유통의 차단 등)을 할 만큼 정치력이 강하고 공업화를 이끌 만큼 시장과 자금이 있는 대규모의 자주적인 경제권들의 출현을 용인한다는 것입니다.

    10년 전만 해도 서방세계로 피난민으로 가려는 사람들 중에서는 중국인과 러시아인들이 꽤 많았는데, 지금 그 수가 크게 줄어든 이유는 뭘까요? 관료 주도의 다소 자주적인 경제권역에서 비록 착취가 일어나더라도 일단 유의미한 경제발전을 이끌어나가 빈곤을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예컨대 우크라이나의 동부 주민들이 유럽연합의 사실상의 식민지로 전락해나가는 우크라이나에 남으려 하지 않고 러시아 경제권에 들어가려 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유럽연합의 식민지 백성이 가난할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알기 때문이죠.

    그런데 과연 중국과 러시아가 더 이상 서방 세계 지배자들의 말을 곧잘 들으려 하지 않는 현실을 직시하는 유럽 지배자들이 ‘자유무역’ 미명 하의 ‘나머지 세계’에 대한 간섭, 패권 정책을 포기하려 하겠습니까?

    지배자 입장도 자명하지만, 예컨대 독일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중동의 아랍권이 하나의 자주적 경제권역이 된다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1차적 타격을 받을 것은 바로 중동으로의 독일 수출이고, 이는 바로 기업 감원과 감봉으로 이어질 것이잖아요. 물론 장기적으로야 세계의 모든 노동자들에게 이런 주변부의 발전이 기여할 핵심부의 위기,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위기는 유리하지만, 그게 궁극의 문제지, 당면의 경제적 이익의 문제는 아닙니다.

    2. 폐쇄적인 유럽 노동시장을 보다 개방한다는 것이고 합법적 이민의 통로를 획기적으로 넓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실 유럽자본으로서는 유리한 면들이 많을 것입니다. 노동시장에서 공급이 수요를 크게 상회하면 곧바로 노동의 가격이 획기적으로 떨어져, 예컨대 독일기업들이 중국 등 저임금 국가들과의 경쟁을 보다 효과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자본의 일각에서는 어쩌면 환영할지도 모르지만, 노동계의 반응은…. 굳이 묻지 않아도 알만하지 않습니까? 정책 노선을 그렇게 잡으면 다음 선거에서 프랑스의 “국민전선”과 같은 반이민 준파쇼 정당들이 바로 집권할 것은 불문가지의 일입니다. 유럽의 “주류” 노동자들은 관념적 내지 감상적 차원에서는 당연히 제3세계의 참극을 안타까워하는 경우들이 많지만…그 제3세계의 민중들과 본인들의 본토에서 직장을 둘러싼 경쟁에 돌입할 마음이라고는 한 치도 없을 것입니다.

    유럽은 지금 그야말로 ‘요새 유럽’처럼, 이민자들을 차단시키기 위한 여러 벽들을 구축하는 중입니다. 4년 전만 해도 (2011년에) 피난민 신청자들에 대한 거부 비율은 좌파내각 통치하의 노르웨이에서 46%이었으며 프랑스에서는 아예 86%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이민 거부를 하더라도 노르웨이에서는 피난민 차단을 주요 정책 과제로 삼는 우파 내각이 곧 등장했으며 프랑스에서 “국민전선”의 인기만 계속 상승합니다.

    거의 유사 파시스트라고 할 그 정당은 201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4분의 1의 표를 득표하는 등 “현대판 공산당”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이었습니다. 과거의 공산당이 그랬듯이 오늘날 ‘국민전선’ 투표자들의 대다수는 바로 노동자이기 때문입니다.

    요약하자면, 노동자라고 해서 바로 의식이 있는 노동계급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이 아니고, 특히 제3세계와의 비대칭적 관계에 있는 핵심부에서 그렇게 되기가 쉽지도 않습니다. 핵심부 전체의 특권적인 위치를 감안하면, 특별한 반자본 의식과 국제주의적 계급정신이 결여된 노동자들이 그들의 당면 이익 차원에서 그런 특권적 입장의 지속을 원하며 그들의 노동시장에서의 위치를 위협한다 싶은 이민자에 충분히 가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동조합이 비정규직들의 투쟁에 대해 취한 태도를 생각해보시면 당장 이해하실 수 있을 터인데, 다소 유리한 위치에 있으면서 특별히 계급의식이 없는 노동자라면 매우 쉽게 자본의 공범이 된다는 것이죠. 사실 지중해가 주변부 인민들의 커다란 공동묘지가 되는 근원적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요새 유럽’ 안에서는 주류 노동계가 지배자들과의 공범 관계에 있는 만큼 타자들의 희생만 커진다는 것입니다.

    만약 국제주의이며 반자본주의적인 좌파 인텔리겐차가 적어도 유럽 조직노동자들의 이와 같은 보수적 경향을 역전시키지 못한다면, 정말 언제든지 끔찍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히틀러의 제국에서 피점령지 약탈 과정에서 병사 군복 입은 ‘노동자’ 출신들과 장교복 입은 ‘부르주아’ 출신들이 한때나마 이해관계의 공동체를 이루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절대 잊으면 안 됩니다.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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