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원 외교’ 아니라 ‘에너지 안보’다
    [책소개] 『에너지 안보』(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 코너하우스/ 이매진)
        2015년 04월 25일 10:2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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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03톤과 192킬로그램 ― 에너지가 낳은 세계를 불안하게 하는 에너지

    안보가 안 보인다. 핵을 머리에 이고 살고 사드 도입 논쟁으로 날 새우는 한국에서 안보가 안 보인다고? 안보에는 종류가 많다. 외부의 적에 맞서 자기를 보호하는 안보, 이익을 낼 수 있는 값싼 화석연료를 찾아야 하는 제조업자들의 안보, 군수 물자에 쓸 석유가 필요한 군대의 안보, 따뜻한 겨울을 바라는 가정의 안보, 음식 할 때 쓸 땔감이 필요한 농부의 안보, 기후 변화에 따른 농업 파국과 사회 혼란을 막으려는 세계 시민의 안보. 에너지 안보 이야기다.

    ‘온수 샤워, 차가운 맥주, 밝은 밤’을 만드느라 한 사람이 한 해에 쓰는 에너지 양은 미국이 7503석유 환산톤이고, 방글라데시는 192킬로그램이다(2008년 기준). 초고유가, 자원 민족주의, 에너지 기업들의 경쟁, 수송망 확보 등 성장 담론에 발목 잡힌 ‘대문자 에너지’를 둘러싼 분쟁은, 마땅히 누려야 할 인권인 냉난방, 음식 조리, 조명 같은 ‘소문자 에너지들’을 외면하거나 무시한다. 7503톤과 192킬로그램 사이에서 안전한 삶은 제 갈 길을 잃는다.

    《에너지 안보》는 영국을 기반으로 하는 비영리 기관 코너하우스가 체코,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의 시민 단체와 환경 단체와 유럽연합의 도움을 받아 진행한 국제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에너지 분야의 진보적 싱크탱크인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원들이 우리말로 옮겼다.

    근본적 생태 위기에 직면한 에너지 신냉전 시대, 에너지 안보는 전통적 접근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은이와 옮긴이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더 많고 안전한 에너지가 필요하니 송유관 묻고 송전선 깔며 물 막아 댐 짓자고 할 때, 에너지 안보의 모호함 탓에 ‘온수 샤워, 차가운 맥주, 밝은 밤’을 바라는 많은 사람들의 욕망은 쉽게 자극받는다. 불안한 개인들의 세계를 지켜줄 에너지 안보가 필요하다.

    에너지 안보

    화석연료 자본주의와 에너지 신냉전 ― 자원 외교를 넘어 에너지 안보로

    에너지는 노동의 생산성을 통제하고 끝 모른 채 늘어나는 산업의 필요에 맞춘, 얼마 안 된 발명품이다. 끝없는 자본 축적의 욕망에 관련된 대문자 에너지는 우리의 일상을 틀 짓는 소문자 에너지 안보하고 양립할 수 없다. 에너지 안보라는 문제투성이 개념은 화석연료에서 벗어난 민주적인 에너지 미래를 그리는 데 어떤 구실을 할 수 있을까?

    1장 ‘에너지의 기원’은 에너지원에 관련된 여러 형태의 정치적 투쟁을 무시하는 에너지, 물리학을 반영한 추상적이고 역사적인 에너지를 살펴본다. 셰일가스 경제와 탄소 배출권과 석유 파생 상품 거래라는 모호한 에너지(대문자 에너지) 대신 우리는 요리, 냉난방, 운반, 건축, 조명에 구체적인 에너지들을 쓴다. 바로 소문자 에너지다. 대문자 에너지와 소문자 에너지들은 적대적이고 모순된다. 대규모 에너지 프로젝트에 1000억 달러를 쓰는 인도는 7억 명이 쓰는 가정용 에너지 현대화 사업에는 그 비용의 2퍼센트도 쓰지 않는다.

    2장 ‘에너지가 낳은 세계’에서는 에너지 안보로 정당화되는 한편으로 에너지, 식량, 물, 토지 같은 생활필수품을 빼앗기며 새로운 희생과 불안을 낳는 에너지 인클로저(energy enclosures)의 흐름을 기술한다. 화석연료 자본주의 아래 27억 명이 건강과 숲을 희생시키며 전통적인 땔감을 써 음식을 하고 13억 명이 전기를 쓰지 못하는 사이, 내 집을 밝히는 불빛이 사라지면 안 된다는 소비자들이 쓰고 버릴 물건을 만들어야 하는 중국 등 신흥 공업국들이 벌이는 에너지 자원 경쟁은 자원 민족주의와 에너지 인클로저가 자랄 기름진 땅이 된다. 기업, 정부, 투자자, 인권 활동가, 환경 운동가, 군대, 과학자, 언론, 노조, 소비자를 한데 묶어 대문자 에너지가 낳은 세계를 재생산하는 권력 네트워크는 어떤 연료를 쓰고 어디에 발전소를 지을지를 둘러싸고 대립하는 대문자 에너지 시스템을 강화할 뿐이다.

    3장 ‘에너지-기후 시장’은 에너지와 기후 정책에 관한 시장 중심의 신자유주의 접근이 에너지 배체를 강화하는 과정, 그리고 에너지와 기후의 금융화가 에너지 부족을 가져오고 효과적인 기후 행동을 늦추는 과정을 설명한다. 기후 변화를 극복한다는 구실을 달고 나온 정책들은 더 많은 시장을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국가의 반대 개념으로 종종 이야기되는 시장은, 그러나 금융화된 신자유주의 아래 하나로 묶인다. 바로 에너지 금권 정치다.

    4장 ‘에너지 안보의 정체’에서는 모든 것을 안보화하는 흐름 속에서 나타나 화석연료를 동력으로 삼는 산업주의가 일상에서 정상 작동하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 뒤따르는 폭력을 좇는다. 화석연료에 기반 하는 에너지 안보는 폭력적이다. 굴착 작업 때 뽑아낸 물은 바닷물보다 4배나 짜고 독성 물질이 많은데, 핵 발전소 배출수보다 100배나 많은 방사능이 나오기도 한다. 폭력은 ‘온수 샤워, 차가운 맥주, 밝은 밤’을 향한 욕망에 기대어 커져만 간다.

    5장 ‘대문자 에너지 안보에 도전하기’는 에너지 안보에 도전하는 우리의 자세와 토론 거리를 제시한다. 우리에게는 추상적인 에너지 정책이 아니라, 주거와 식량과 이동과 전기를 모두 포함하는 삶의 문제를 해결할 전망이 필요하다.

    에너지 금권 정치 ― 소문자 에너지 안보와 생태 사회적 안보

    에너지 안보가 지배하는 신냉전 시대다. 희소성이 특징인 에너지를 개발하고 확보하는 과정은 많은 자금이 필요한 탓에 국가 사이의 갈등과 협력이 끼어들기 마련이다.

    금융화된 신자유주의 아래 팽창하는 에너지 시장의 주도권은 시장과 기업의 손으로 넘어갔다. 한국도 미얀마의 쉐가스 프로젝트와 인도네시아의 오일팜 플랜테이션에서 볼 수 있듯 대문자 에너지를 둘러싼 분쟁 당사자다. 화석연료 개발을 확대하는 한국 정부의 정책은 기후 변화가 가져올 재앙이나 불안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안보를 돌보지 않는다. 우리의 에너지 안보가 대문자 에너지에 기반을 둔 ‘자주 개발’이라는 성장 담론에서 벗어나 에너지를 생산하고 사용하는 단계마다 모든 사람의 평등한 에너지 기본권을 추구하는 소문자 에너지 안보, 곧 ‘생태 사회적 안보’로 확장되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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