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 자신의 모습 찾기
    [청춘일기] 교토-오사카 여행기
        2015년 04월 24일 02:3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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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이 슌지 영화에 푹 빠져있던 시절, 가슴 절절한 사랑을 외치던 주인공들보다 눈에 끌린 것은 작고 오밀조밀한 가옥들이 몰려있는 골목길과, 자동차보다 더 많이 보이는 도로의 자전거들, 그리고 언제나 “죄송합니다.” 혹은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버릇처럼 하는 예의바른 사람들이었다.

    언젠가 한번쯤은 살아보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모습을 비추던 나라. 비행기로는 한 시간 반이 소요되는, 가깝고도 아주 먼 나라 일본에서 3박 4일을 보냈다.

    하루도 쉬지 않고 두 달 간 학생복을 판 대가로 나는 일본에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나마도 같이 동행했던 친구들의 금전적인 도움이 없었다면(친구들은 나의 급여가 조금 늦어지는 관계로 비행기 값과 숙박비를 흔쾌히 빌려주었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으로만 여행에 대한 욕망을 대체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떠나는 해외여행은 처음이기에, 긴장되면서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친구들 몰래 심호흡을 하기도 했다.

    비행기에서 받아든 입국심사카드에 대충 아는 만큼 적어놓고 일본 땅을 밟기만을 기다렸다. 해외여행을 자주 다니던 친구들이 아니었던 탓에 입국심사카드를 본 심사자는 우리들에게 다시 써 올 것을 권했다.

    마침 같은 처지의 한국인들이 있기에 그들에게 물어가며 카드를 작성하고는 드디어 심사장을 통과할 수 있었다. 일종의 동지애와 애국심 같은 것을 경험하고선 평소에는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왔구나!

    비로소 나는 그렇게나 바라고 바라던 일본에 도착했다!

    박나회1

    중심 여행지로 정한 교토는 과거 일본의 수도로 현대적인 느낌보다는 과거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 신사들이 많아 전통적인 일본의 풍경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가기로 결정한 이후 어느 지역을 먼저 돌아봐야할지 알아보았을 때 고민 없이 선택한 곳이 교토라는 지역이었다. 진정한 일본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공항을 빠져나오는 방법부터 익숙하지 않아 무척 헤맸다. 캐리어를 끌고 움직이는 많은 사람들과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다른 언어들 때문에 더욱 위축됐다. 움츠린 어깨에 통증이 느껴졌다.

    첫날 예약한 료칸으로 가기 위해 길을 찾는 과정은 혼돈 그 자체였다. 두 명의 핸드폰은 꺼지고 로밍을 해온 친구의 핸드폰만 얼마 안 되는 배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영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는 친구가 있어 길 물어 보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큰 오산이었다. 일본 사람들은 영어로 길을 물어보던 친구에게 ‘스미마셍’이라며 일관했고 우리는 손짓 발짓을 해가며 길을 물어보았다. 지하철에 겨우 몸을 실었다.

    박나회2

    일본의 전철 속 풍경은 우리나라와 다를 바 없었다. 대부분이 그렇듯 스마트폰을 보거나 졸거나 둘 중 하나였다. 우리는 ‘별 다를 바 없네?’ 라고 속삭이며 알 수 없는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료칸을 찾아가는 과정이 무척 복잡해 겨우 막차를 타고 도착할 수 있었다. 그마저도 버스 시간표를 알려준 친절한 여학생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다행히 한 시간 정도는 온천을 이용할 수 있었다. 따뜻한 노천탕에 몸을 담그고 별을 바라보며 그래도 성공적인 첫 일본여행에 대해 자축했다.

    모시모시 (もしもし)

    살아가며 우린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 위해 노력할까. 타지에서의 나의 존재를 확인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타인을 불러 세우는 것이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타인에게서 내가 서있는 곳을 인식하고, 앞으로 가야할 곳을 찾는다.

    우리는 자주 물었다. 묻기 위해선 누군가를 불러 세워야했는데 성격이 급한 한 친구는 생각도 하기 전에 이렇게 말하며 누군가를 불러 세웠다.

    “모시모시(もしもし)!”

    나는 “모시모시”라는 말이 전화할 때만 쓰는 말로, 누군가를 불러 세울 때 쓰기는 부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길을 묻는데 가장 적극적이었던 그녀를 부끄러워했다. 그리고선 잘못된 정보를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그건 전화할 때 쓰는 말이니 차라리 “스미마셍”이라고 먼저 말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딱히 “모시모시”라는 말이 그 상황에서 잘못된 말은 아니었다. 한국말로는 “여보세요” 라는 뜻으로 주의를 환기시킬 때 써도 큰 불편함이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나는 타지에서 웃음거리가 되거나 피해를 주는 이방인이 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돌아보면 나는 한국에서도 쓸데없는 곳에 자존심을 부리곤 했다. 모르면서도 아는 척 혹은 몰라도 묻지 않기, 내가 피해보더라도 남들에게는 피해주지 않기. 부모님은 그런 날 보며 양반인 척 하다 큰 코 다친다며 경고 섞인 악담을 해주시기도 했다. 일본에서 나는 무례한 타지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지만 가장 가까운 친구들에게 무례한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간혹 말하지 않아도 누군가 내 존재에 대해서 알아봐주었으면 했다. 굳이 ‘모시모시’ 혹은 ‘여보세요’ 하지 않아도 나에게 다가와 친절을 베풀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아주 작은(?) 소망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여행을 와서 알았다. 체면 차리다가는 밥도 죽도 얻어먹지 못하는 신세가 된다는 걸. 아마 적극적으로 길을 묻던 친구가 아니었다면 더 힘들었던 여행이 되었을 것이다.

    박나회3

    비행기를 놓치다

    여행 중에 몇 번의 고비가 있었다. 한 친구는 여행 전부터 으슬으슬 감기기운이 있다고 하더니 여행에 와서 심한 독감에 걸렸다. 계속 기침을 해대는 통에 가장 건강했던 내가 숙소에서 빠져나와 약과 함께 음식을 사러 뛰어다녔다. 물어물어 약국을 찾았다. 약사에게 목을 가리키며 콜록콜록 기침하는 시늉을 하자 약사는 친절하게 약을 주며 복용 방법에 대해 어색한 바디랭귀지로 설명해주었다.

    또 한 친구는 허리가 좋지 않았다. 난 교토에서 볼 수 있는 유적지나 신사들은 모두 다 가 볼 예정이었다. 아프다는 이유로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던 친구와 다투기도 했다. 방광이 약해 소변을 잘 참지 못하던 친구 탓에 이름도 모르는 정류장에 내린 적도 있었다. 공중화장실을 찾아볼 수 없는 곳에서 아무 상가나 들어가 “토일렛!” 이라고 외치고는 “스미마셍”이라고 꾸벅거리며 나오기도 했다. 그때는 민망하고 힘든 상황이었지만 지나보니 웃음만 나오는 일들이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도 아찔했던 경험이 있다. 그것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놓친 일이었다. 설마 했던 일이 실제로 벌어져버린 것이다. 체크인 시간 10분을 넘겨 절대 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비행기가 출발한 것도 아닌데 왜 탈 수 없냐고 항의했지만 안내문을 미리 확인하지 못한 우리의 탓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상황에 한 친구가 말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밥이나 먹고 생각하자”

    맥도날드에서 빅맥버거를 시켰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의논하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이제 남은 돈은 100엔 남짓이었다. 다행히 한 친구에게 해외에서 사용할 수 있는 신용카드가 있었다. 그러나 모든 항공사를 돌아다녀도 자리가 있는 비행기가 없었다. 설 시즌이기 때문에 아마도 자리가 나는 것은 3월 쯤일지도 모른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3월이라면 한 달 동안 공항에 있어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때서야 심각성을 인지했다.

    대기할 수 있는 항공사에는 모두 대기를 신청했다. 아마도 셋이 함께 한국으로 가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한껏 풀이 죽어 공항에 오기 전 들렀던 마켓에 가지 말았어야 했다고 투정했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건 우리 옆에서 한국 사람으로 보이는 여자들이 십분 전 우리의 모습처럼 발을 동동 구르며 여러 항공사로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녀들의 모습을 보며 안도감을 느꼈다. 언제까지 머물러야 할지 모르는 간사이 공항을 유유히 돌아볼 수 있는 여유까지 생겼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다음날에는 갈수 있을까.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지만 상당히 긍정적인 친구들 탓에 나도 맘 졸이지 않은 척 했다. 애꿎은 손톱을 물어뜯으면서 말이다.

    우리는 조금 더 현실적으로 상황을 대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곳에서 오래 있게 된다면 어떻게 지내야 할지에 대한 방법을 강구했다. 공항에 샤워실이 있는지 알아보기도 하고 남은 돈이 없어 기념품으로 사둔 과자들로 식사를 하자고 했다.

    그렇게 저녁이 되었을까. 공항 스피커에서 우리의 이름이 불리는 것을 들었다. 힘 없이 의자에 앉아있던 우리는 소리를 지르며 달려갔다. 행운이라고 해야 하는지는 모르지만 한 가족이 취소를 한 것 같았다. 다행히 우리는 셋이 함께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여행할 권리

    일본에서의 나는 영화 속 주인공의 모습처럼 비춰지길 원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짠 음식들, 여행 내내 계속되던 비바람, 씻을 공간이 협소했던 숙소까지. 한국으로 돌아와 일본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니 다들 한국보다 초췌하고 얼굴이 팅팅 부어있었다. 주인공은커녕 엑스트라도 되지 못할 행색이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사진을 보고 모두가 암묵적으로 SNS에는 사진을 올리지 말자고 합의했다. 얼마 동안은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여행에서 무엇을 얻고 돌아왔는가에 대해 생각했다. 여행 내내 사색을 하거나 나의 여행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흘러간 3박 4일이 아쉬웠다.

    ‘여행할 권리’ 라는 말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 김연수 작가의 여행 산문집 제목이기도 하다. 그가 여행을 하는 이유에 관한 인상적인 대목이 있다.

    “공항을 찾아가는 까닭은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 아닐까. 그러니 공항 대합실에 서서 출발하는 항공편들의 목적지를 볼 때마다 그토록 심하게 가슴이 두근거리겠지. 망각, 망실, 혹은 망명을 향한 무의식적인 매혹.”

    내가 공항에서 느꼈던 두근거림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저 어딘가로 간다는 사실에 신이 난 것이었을까. 그렇다면 굳이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까지 갈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내가 일본에서 확인한 것은, 나의 존재였다. 그러니까 나는 한국이라는 나의 나라, 나의 고향에서 내가 부재함을 느꼈다. 익숙한 생활환경과 반복되는 동선. 하루하루가 별반 다르지 않은 일상 속에서 점점 내가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졸업 후 ‘새로운 미래의 도약을 위해’ 라는 거창한 목표로 여행을 계획했지만, 그 이전의 삶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다만 내가 그곳에서 보았던 낯설고 어색한 나의 모습이 진짜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존재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닌 내가 몰랐던 나의 부족하고 어수룩한 모습들을 통해 진짜 나를 확인한다.

    그런 점에서 모두에게 여행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저 지친 나를 위로해주기 위한 ‘힐링’이 아닌 자기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게 되는 것, 그것이 여행을 모두가 누려야만 하는 권리이자 목적이지 않을까.

    필자소개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해 문화재단 입사를 준비하고 있다. 현재는 생애 첫 비행기를 타기 위해 교복전문점에서 한 달 꼬박 쉬지도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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