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아베의 폭주 지속,
    방조․옹호하는 미국 정부
    안보와 평화에 무능한 박근혜 정부
        2015년 04월 23일 04:3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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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 지배와 침략’, ‘사죄’를 언급 않는 아베 총리

    아베 일본 총리는 22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반둥회의 60주년 기념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 연설에서 2차대전에 대해서는 깊이 반성한다고 하면서도 ‘식민지 지배와 침략’, ‘사죄’를 언급하지 않았다.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한 통절한 사죄와 반성’은 1995년 무라야마 담화의 핵심이다. 2005년 고이즈미 총리의 경우 반둥회의 50주년 기념 회의와 전후 60주년 담화에서 이들 표현을 승계해 언급한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한편 아베 총리는 20일 오후 BS후지방송에 출연, 전후 70주년 담화에 ‘침략’과 ‘사죄’ 등의 표현을 담을 것인지에 대해 “(과거 담화와) 같다면 담화를 낼 필요가 없다”며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을) 계승한다고 한 이상 다시 쓸 필요는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요미우리신문> 같은 보수언론도 22일 사설에서 “일본의 침략 전쟁을 인정하고 반성한다는 역사 인식을 빼놓고 전후 70년을 총괄할 수는 없다”며 아베 담화에서 과거사를 사죄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아베의 과거사에 대한 이런 퇴행적 행태는 “침략의 정의는 학술적, 국제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며 전전 일본군의 침략을 마치 ‘자위’나 ‘해방’을 위한 것인 양 호도하는 수구적 인식을 (차마 직접 이야기하지는 못하고)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을 시작으로, 종군위안부에 대한 일본군의 요청 및 직간접 관여와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강제성을 핵심으로 하는 ‘고노 담화’를 검증이라는 명분으로 끊임없이 흠집 내려던 행태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 명확하다.

    한편, 2014년 7월 각의결정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다고 해석한 아베 정부는 그 후속작업으로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의 개정을 이달 말까지 완료하고, 전쟁 중인 미군과 타국군을 자위대가 지구 어디에서든 후방지원을 할 수 있는 항구법인 ‘국제평화지원법’ 등을 신설하는 등 안보 관련법을 5월 중순부터 열리는 정기국회에서 제․개정할 예정이다.

    아베

    아베의 우경화, 방조 혹은 옹호하는 미국 정부

    4월 16일 워싱턴에서 있었던 한‧미‧일 외교차관 협의회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블링큰 차관은 “공통의 의제와 공통의 접근, 공통의 가치가 한·미·일 3국을 단결시킬 것”이라며 “한·일 양국이 직면한 공통의 목표와 도전과제가 현존하는 갈등을 훨씬 압도할 것임이 분명하다”고 말해 미래를 강조하며 역사는 사실상 묻어두고 가자는 최근 미국 당국자의 발언과 같은 기조의 발언을 했다.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도 지난 8일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미·일 협력이 가져다줄 잠재적인 이익이 “과거의 긴장이나 현재의 정치보다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2월 말 웬디 셔먼 국무부차관이 “어느 정치 지도자도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받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연설한 것과 같은 맥락의 발언을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지난 6일 일본 언론 인터뷰에서, 가해 주체를 거론하지 않은 채 일본군 위안부를 ‘인신매매 희생자’로 표현한 아베의 발언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이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등이 종군위안부를 ‘성노예’로 표현하며 이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던 이전의 태도에서 크게 후퇴한 것이다.

    한편, 미국 정부는 일본의 안보 관련법 제‧개정 움직임, 특히 자위대의 대미지원 활동범위를 전면적으로 확대하는 것에 대해 “역사적 시도”라며 크게 환영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의 우경화 행보를 실제적으로 지원하는 꼴이다.

    ‘투트랙’ 전략을 공식화한 박근혜 정부와 조용한 여야, 그 원인

    조태용 외교부 제1차관은 한‧미‧일 외교차관 협의회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과거사 문제에 일관된 입장을 유지하는 한편, 북한을 비롯한 다른 분야에서는 협력을 증대시켜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조 차관은 과거사 문제에 대한 우리 정부의 강력한 입장을 천명하고 일본 측이 전향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다고 하나, 일본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고 미국도 적극적인 중재 의사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위 블링큰 차관의 발언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 당국자의 발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 고위당국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아베의 미국 방문 때 올바른 역사인식을 담은 메시지를 던지는 게 중요하다는 입장을 강조했으나, 일본의 사이키 차관은 아베 총리가 나름대로 ‘올바른’ 역사인식에 대한 입장을 밝혀왔다면서 정확히 답변을 하지 않았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리고 일본 사이키 차관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우리도 역사를 정면으로 직시하고 있으며 아베 총리가 공개적으로 과거사 문제에 대한 견해를 표명했다”고 강변하며, “한국과 일본은 (식민지 시대가 아니라 ‘일본이 한국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그들이 자화자찬하는 수교 후) 50년간의 양국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16~17일 열린 한‧미‧일 국방부 차관보급의 3자 안보토의에서는 미·일 양국으로부터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 협상 진행상황을 보고받고 ‘일본이 한국의 영역과 주변지역에서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경우 한국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기본 입장을 전달했다고 한다.

    “일본 자위대 활동은 관련국(일본)의 요청이 있어야 하고, 우리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 일본도 동의했다”는 언론보도도 있었으나, 공식적인 공동 언론보도문에서는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이 제3국의 주권 존중을 포함한 국제법을 준수하는 방향으로 추진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동의했다는 일반론적 수준의 언급에 그쳤다. 곧 발표되는 새로운 미일 방위협력지침 등에 ‘한국의 사전 동의’ 등 관련 내용이 명문화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된다.

    종군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에 대한 확실한 반성과 전향적 조치에 대한 구체적 약속도 없이 안보협력 증대 등 투트랙 전략을 추진할 것을 박근혜 정부가 공식화하는 것은 2014년 연말 한미일 정보공유 약정의 발효와 MD를 매개로 한 한미일 3각 안보협력의 가속화와 같은 맥락이다.

    현재 한국 내에서는 정부의 이런 투트랙 전략에 대해 여당은 물론 야당도 큰 문제제기를 않고 있다. 2013년 후반 김장수 당시 안보실장, 2014년 초 김관진 당시 국방장관 등이 집단적 자위권 추진에 대해 “일본(국민)이 결정할 문제”라고 밝혀 사실상 방조하는 것 아니냐는 강한 비판을 받았고, 2014년 7월 아베 정부가 각의 결정으로 집단적 자위권 행사 가능을 천명할 때 야당은 물론 새누리당도 강한 우려의 목소리를 냈던 것과 비교가 되는 상황이다.

    이는 첫째, 한국의 일반적 관심이 일본군(자위대)의 한반도 진출 혹은 한반도 사태 개입에 대한 우려와 제어장치에 집중된 데 기인한다고 판단된다. 둘째, 이미 일본 정부의 공식 해석이 변경되었고, 아베 정부가 안정적 집권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반대해봤자 뭐하겠느냐는 체념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셋째, 미국 정부가 과거사에 대한 퇴행적 태도를 보이는 일본을 견제하기는커녕,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를 옹호하고 안보협력을 종용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못마땅하기는 하지만, 북한의 위협이 커진 상황에서 한미동맹 유지를 위해서는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강해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아직 여론의 다수는 북한의 위협에 대처한답시고 일본과의 군사적 협력까지 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으며, 더욱이 일본 군대의 한반도 진출을 허용하거나 대중국 3각동맹을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아베의 행태는 물론 미국과 한국 정부의 정책도 지속될 가능성 높음

    한국 정부는 이른바 아베 담화가 “무라야마 담화, 고이즈미 담화보다 후퇴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누차 밝혀왔다. 그러나 반둥회의에서의 이번 발언으로 보아, 아베는 4월 말 미 상하원 합동연설, 8월의 종전 70주년 담화에서도 식민지배와 침략에 대한 통절한 사죄는 없이 단지 2차대전 당시의 행위만 반성하는 기조로 과거사에 대해 언급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보인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주요 언론은 아베 총리의 미국 방문이 성공리에 진행되기 위해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과거 일제의 식민지배 및 전쟁 범죄를 진정으로 반성하고 사과하라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대중 견제를 위해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를 환영, 옹호하는 오바마 정부뿐만 아니라 워싱턴 정가의 분위기로 보아, 아베의 사과가 (미국을 상대로 한) 2차대전을 일으킨 데 대해 후회 및 반성하고 식민 지배에 대해서는 명시적으로 사과하지 않는 등 과거사에 대해서는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도, 집단적 자위권을 통해 미국과의 안보협력을 강화하는 이른바 ‘적극적 평화주의’를 역설하면 크게 환영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 박근혜 정부는 고위당국자가 미국 정부의 행태에 대해 비판적인 국내여론에 대해 오히려 못마땅하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을 지렛대로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전향적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기는커녕, 오히려 안보협력을 지렛대로 미국을 이용해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유야무야하려는 아베 정부의 전략에 속절없이 당하고 있는 꼴이다. 스스로 천명하고 있는 ‘아베 담화가 무라야마 담화 등에 비해 후퇴해서는 안 된다’는 기준이 무시되고 난 후에도 투트랙 전략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이다.

    침략의 과거사에 대한 진솔한 사죄는 평화로운 미래의 초석

    현 한국 정부의 정책은 일본이 안보 역할을 확대하기 위해서도 철저한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일본 정부를 설득하지도 정책의 변화를 이끌어내지도 못하고 있다. ‘안보협력을 위해서는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퇴행적 행태가 바로잡아져야 한다며, 저지선 혹은 올바른 행위로 견인할 지렛대 역할을 해줄 것’을 미국에게 바라겠지만, 전혀 미국을 견인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사와 집단적 자위권 문제 등을 분리시키다보니 한편으로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의 변화를 꾀하는 일본의 정책에 대한 방책은 약화시키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 미래라는 이름으로 안보협력을 강제하는 미국 정부에 끌려들어가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적당히 덮고 넘어가거나 후퇴시키려는 퇴행적 행태마저 속절없이 지켜보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과거 고이즈미 정부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 강화 등에 대해 당시 참여정부가 일본은 물론 미국에 대해서도 주요 인사와의 회담 등에서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한계 등 미국의 역사적 책임을 강조하며 목소리를 높인 것과도 비교되는 대목이다.

    미래를 위해 과거를 덮자는 미국의 이기적 행태의 문제점

    최근 미국 정부의 입장은 미래를 위해 과거와 관련한 현재의 갈등을 덮고 가자는 쪽으로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던지고 있다.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를 바란 미국의 행태는 냉전체제가 본격화된 이후 거의 일관된 것이었다.

    그렇더라도 아베 정부의 과거사에 대한 퇴행적 행태마저 견제하기는커녕 적당히 넘어가도록 옹호하는 것은 비록 중국 견제, 방위비 삭감 등에 따라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가 자국의 입장에서는 더욱 절실해졌다손 치더라도 지나치게 자기 중심적인 이기적 행태임은 분명하다.

    미국은 전후 실시되었던 일본의 전범에 대한 단죄 등을 냉전 이후 흐지부지해 아베의 외할아버지 기시 같은 A급 전범이 정계에 복귀해 수상이 될 가능성을 열어줬다. 뿐만 아니라, 과거사에 대한 책임과 배상 및 독도,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 등 해양영토문제에 있어 일본에 너무 관대하고 유리한 반면, 한국, 중국 등에는 불리한 내용이 담긴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한‧중의 참여도 없이 서둘러 체결해 현재 과거사와 해양영토를 둘러싸고 한중일이 갈등을 거듭하고 있는 원죄를 저지른 바 있기도 하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미래를 위한 협력으로 성큼 내딛지 못하고 갈등을 되풀이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은 동아시아 국가들에게도 책임이 있지만, 미-소 간 냉전체제의 구축 속에서 자신의 전략적 이익을 위해 과거사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전후 미국에게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또다시 미-중 간 신냉전체제를 예비하고 오히려 그것을 부추기는 듯한 행태는 더 큰 비극을 잉태할 수 있다.

    전후의 일본은 어쨌든 군부의 폭주를 반성하고 다시금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절대 다수가 동의했고 기시와 같은 사람이 보수에서도 방계로 밀려나게 만들었지만, 오늘의 일본은 아베의 폭주를 견제할 정치세력이나 정치적 실천이 부재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과거와 미래의 관계에 대한 보편적 인식, 폭넓은 공감대 필요

    우리가 일본에 과거사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촉구하는 것은 일본을 국제사회에서 망신주거나, 영원한 족쇄로 삼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미래를 만들 것인가 하는 인식의 기반 위에 있는 것임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민족과 국가라는 이름으로 전쟁으로 폭주했던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대전제로 하면서, 미래 역시 민족과 국가의 영광을 호명하며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전쟁의 불씨를 피우는 것과 단연코 절연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어떠한 미래를 만들 것인가 하는 선의의 경쟁도 필요하다. 미국이 이야기하는 미래가 단지 자신의 일방적 패권의 관철이고, 그것을 위해 중국이 잠재적 도전세력으로 클 가능성을 원천봉쇄하겠다는 것이면 그것은 동의를 얻거나 성공하기 힘들 것이다. 중국이 이야기하는 미래 역시 전통 사회의 중화주의를 재연하려는 것이거나, 남중국해 해양영토 갈등을 둘러싸고 보여주는 대국주의적 행태에 기반을 둔 것이라면 역시 동의를 얻기 힘들 것이다.

    한국 등 역내 중견국, 특히 평화애호 진영 등은 대립이 심화된 지금의 현실에서는 쉽지 않아 보일지라도 ‘동아시아 평화공영 공동체’의 비전을 분명하고 풍부하게 하면서, 단지 구상에 그치지 않고 협력을 촉진하기 위한 구체적 실천들을 전개하는 게 필요한 때이다.

    필자소개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문제를 연구하는 정책가이며, 진보정당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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