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리자를 옹호하며
    [기고] 정재원의 시리자 비판 반론
        2015년 04월 23일 11:43 오전

    Print Friendly

    국민대 정재원 교수의 언론 기고글 ‘그리스 시리자에 열광하는 관념좌파들, 현실을 봐라!’(원문 링크)에 대해 비판적 코멘트를 담은 글을 네덜란드에 거주하는 장광렬씨가 보내왔다. 두 사람은 페이스북의 친구 사이이며 한때 같은 진보신당의 당원이었다고 한다. 방식은 정재원 교수의 기고 글에 장광렬씨의 비판적 코멘트를 파란색으로 붙이는 식으로 게재한다. 존칭은 생략한다. 반론 혹은 의견은 적극 환영한다. <편집자>
    ——————-

    그리스 시리자에 열광하는 관념 좌파들, 현실을 봐라!

    [민교협의 정치시평] 그리스에서 한국 진보 좌파가 배워야 할 것은?

    지난 1월 25일 치러진 그리스 조기 총선에서 반자본주의·사회주의를 전면에 내건 급진좌파연합 시리자가 집권에 성공하는 일대 사건이 있었다. 전 세계적 우경화의 바람 속에서 얼마 전까지 불과 지지율이 3%에 불과했던 시리자의 집권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비록 그리스의 경제 위기를 과도한 복지 탓이라는 거짓 선동이 버젓이 유력지에 자주 실릴 정도로 먼 나라 얘기로 여겨 왔던 한국이지만, 지리멸렬한 상태에 놓인 진보 좌파의 발전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시리자의 집권은 상당한 관심사가 되었다.

    그러나 집권 이전의 호언장담과는 다르게, 연장한 구제금융이 끝나는 6월에 체결할 새 협상에서 총선 공약을 반영하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한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는 유럽연합(EU) 탈퇴는커녕 그리스와 채권단 서로에 이익이 되는 합의를 강조해 왔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유럽연합에서 탈퇴한다고 했었나? 나는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는 유로존 탈퇴에 반대하고 협상으로 유럽 나라들의 양보를 받아낸다고 했지, 탈퇴를 얘기한 적이 없다. 적어도 그가 시리자의 당 대표가 된 후에 그런 얘기는 없었다. 치프라스 총리가 그리스와 채권단 서로에 이익이 되는 합의를 강조하는 것이 문제인가? 채권단은 빌려준 돈을 돌려받으려고 한다. 그리스는 갚겠다는 거다. 그러나 갚을 수 있게 경제를 살릴 기회를 달라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정말 올바른 채무국의 태도 아닌가?

    또한 시리자 정부가 협상 타결을 위해 민영화와 연금, 노동 등의 부문에서 양보할 가능성이 커지고, 결국 지난 2월 20일 기존 구제금융 연장에 합의하게 되면서 에너지부 장관 등 시리자 내부 강경파의 불만이 폭발하게 되면서 이들에 의해 다시 조기총선이 제기되는 등 벌써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유럽연합은 치프라스에게 그리스 경제개혁안을 가져오지 않으면 자금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했다. 돈 갚을 납득할 만한 계획을 안 가져오면 나라를 망하게 하겠다는 거다. 그래서 그리스는 14개의 공항을 매각하겠다고 했다. 양보하지 않고 협상이 되나? 더구나 내가 사는 네덜란드나 독일, 핀란드 등 유럽나라의 여론은 빌려준 돈을 다 돌려받아야 한다는 건데 그걸 거부하면 그리스에게 앞으로 돈 한 푼도 안주겠다는 건데, 거기서 양보하지 않으면 어쩔 것인가?

    그리스가 유로에서 탈퇴하여 새로운 화폐로 전환한다면 큰 평가절하로 인한 손해가 확실하기 때문에 시리자 정부의 위험한 행보가 그리스의 유로 탈퇴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람들은 은행에서 현금을 대거 인출하는 등 국민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까지 겹쳐 경제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기댈 곳이라고는 러시아밖에 없지만 자신이 심각한 경제위기를 맞고 있는 러시아로서도 과거처럼 EU 대신 지원해 주겠다는 제스처조차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더해 국제무대에서의 치프라스 총리와 야니스 바루파키스 재무장관의 불필요한 ‘객기’는 일부 국민에게는 자존심 회복을 가져다주었는지는 몰라도 대부분의 국민에게는 불편함을 안겨 주었고, 그리스를 지지해 온 유럽의 시민들에게 실망감을 안겨 주었다.

    불필요한 객기란 무엇인지 모르겠다. 야니스 바루파키스 재무장관은 유럽 내에서 오히려 인기가 올라가고 있다. 그는 그리스 채무에 붙는 이자를 그리스 경제성장률과 맞추자고 했다. 그리스 경제가 1% 성장하면 1%의 이자를 내고, 5% 성장하면 5%의 이자를 내겠다는 것이다. 이건 정말 멋진 구상이다. 그리스 경제가 성장할수록 채권국은 더 많은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 또 그는 그리스의 경제환란이 휴머니스틱 재앙이라고 했다.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해결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얘기로 이는 그리스 상황을 잘 모르는 유럽시민들에게 생각의 전환을 가져오게 하였다. 유럽시민들은 ‘우리가 모질게 빚쟁이 노릇을 해서 그리스인들이 정말 비참한 지경에 이르렀구나’하는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게 만들었다.

    결정적으로 나치 독일의 만행에 대한 천문학적 배상금을 요구한 치프라스 총리의 행위는 궁여지책으로밖에 해석되지 못 하고 있다.

    천문학적인 배상금이라? 당신은 북한이 일본에 요구하는 배상금 역시 천문학적인 금액이라고 할 것인가? 그럼 박정희 정부가 받은 배상금은 적당한 것이었나? 미국에서 제약회사가 약을 잘못 만들어 팔면 얼마나 많은 배상금을 요구받는지 아는가? 독일이 언제 그리스에서 약탈해간 돈과 빼앗아간 생명에 대해서 제대로 사과하고 배상했는가? 이런 말을 좌파를 자처하는 사람이 써도 되는가? 독일이야말로 그리스에 빌려준 돈과 그 이자에 대한 천문학적인 금액의 상환을 요구하고 있는 것 아닌가? 병 고친다고 수술을 해 놓고 병은 하나도 못 고쳐놓고 천문학적인 수술비를 내라고 하는 것에는 왜 아무 말이 없는가?

    시리자

    연설하고 있는 시리자 치프라스 대표의 모습

    EU ‘자본’ 싫다고 더 추악한 ‘러시아’에 손 벌리는 시리자

    선거 전 시리자는 빈곤선 이하의 30만 가구에게 월 300킬로와트의 전력을 무상으로 공급하고, 소득이 전혀 없는 30만 가구에게는 식량 보조금을 지급하며, 난방용 연료에 대한 세금을 폐지하고, 직업이 없거나 의료 보험이 없는 가정에는 무상 의료를 제공할 것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일자리 창출과 최저 임금 보장도 혁명적인데, 정부, 민간, 사회 부문에서 3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월간 최저 임금을 현재 580유로(약 71만 원)에서 751유로(약 92만 원)로 올릴 것이며, 실업률이 50%에 이르는 20대와 장기 실업의 고통을 겪고 있는 55세 이상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 외에도 최저 임금의 월 750유로로 원상회복, 공공 보건 예산 유럽 평균 수준으로 확대, 의료 보험 본인 부담금 폐지, 민간 병원 국·공립화, 공공 병원의 부분 사유화 금지, 기초 생필품 가격 인하, 은행 국유화, 국가 성장 전략 부문(철도, 공항, 우편, 상수도)에서 사유화된 기업의 재국유화 등 전체적으로 전 지구적인 신자유주의 바람에 반하는 뚜렷한 좌파적 정책을 공약해 왔다. 무엇보다도 시리자는 이 모든 과정을 끊임없는 시민운동과의 결합을 통해 이룰 것을 강조함으로써 당의 관료화를 방지하고 민주주의를 확대하고자 노력해 왔다.

    동시에 50만 유로 이상 소득자에 대해 소득세를 75%로 인상하고, 대기업에 대한 법인세를 유럽 평균 수준으로 인상하며, 금융거래세 및 사치재 특별세를 도입하며, 투기적 금융 파생 상품을 금지하며, 그리스 정교회와 선박산업에 대한 금융 특혜를 폐지하며, 은행 영업 비밀 및 자본 해외 도피를 막으며, 국방비를 대폭 삭감하는 등의 정책을 통해 지배 엘리트들의 지배를 약화시킴과 동시에 분배와 복지를 강화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위와 같은 구체적인 좌파적 정책보다는 부채 탕감과 긴축 폐지, 반(反)EU 구호가 시리자 집권의 결정적 요인이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의 진보 좌파 진영은 유럽 주변부 특유의 중심부 유럽 국가들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된 민족주의적 감정에 대한 이해 없이 그저 급진 좌파의 당선 그 자체에 취해 있다. 안타깝지만 부패와 긴축 재정에 시달리는 노동 대중은 얼마든지 우익적 선택을 하고 있으며, 그들에게 있어서 우익적 선택과 좌익적 선택과의 차이는 거의 없다. 파시스트 정당인 황금사자당이 3위를 하게 한 그 동력과 차이가 크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긴축재정 반대 세력 혹은 EU 반대 세력에는 민족주의 우파들도 있는데, 특히 연정 파트너로 우파 정당인 그리스 독립당을 쉽게 택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유럽 주변부 좌파의 특징이자 취약점에서 기인한다. 반 EU 정책이 두 당 공히 같다는 데에서 이 두 당은 서로를 연립 파트너로 선택하는 괴이한 모습을 보였다.

    이것이 왜 괴이한가? 유럽에서 좌우 연정은 얼마든지 있다. 시리자가 과반수를 얻었다면 그리스 독립당과 연정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하고는 손을 잡아야 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그리스의 지배 엘리트로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PASOK)과 연정을 할까? 아니면 PASOK과 나눠먹기를 하던 신민당(ND)과 할까? 극우당도 같이 할 수 없다. 그리고 공산당은 시리자를 변절자로 치부하며 애초부터 연정을 안 하겠다고 했다. 누군가는 선택해야 하는 문제였던 것이다. 어느 당이든 공통점이 있으면 연정은 구성해야 하고 연정 하위파트너에게는 장관 자리 몇 개는 줘야 끌어들일 수가 있다. 김대중은 김종필을 끌어들여 한국 현대사에 최초의 정권교체를 이뤘다. 유신잔당과 연정을 한다는 비난을 감수한 채 말이다.

    우리의 관점에서는 절대로 성립할 수 없는 이러한 연대가 가능했던 것은 주변부에서는 반제·반서구주의가 갖는 민족주의적 특성이 쉽게 사회주의 이념과 혼융되어 왔던 전통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번 시리자의 집권은 결국 대안 없는 반EU 구호가 결정적인 것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리자의 집권은 대안 없는 반EU구호가 결정적이었다고? 위에 대안을 다 얘기하지 않았나? 문제는 돈이 없다는 것이다. 돈줄은 독일 메르켈과 그 뒤를 따르는 채권국 정부가 쥐고 있다. EU는 유럽 나라들이 함께 잘 살자고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회원국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와줘야 마땅하다. 하지만 시리자의 급진적인 공약에 겁을 먹은 정부들이 시리자에게 돈을 못 주겠고 강짜를 부리고 있다. 시리자는 애초부터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해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했다. 유럽연합 회원국들에게 자신들의 어려움을 알리고 함께 경제난을 풀겠다고 했다. 독일을 위시한 부자나라 정부가 가난한 나라에게 강요해온 긴축정책은 올바른 해법이 아니라고 차분히 설득해왔다. 그게 반EU 구호인가? 민주주의 하자는 걸 반정부 체제 전복세력이라고 불렀던 한국의 군사독재정권식 어법 아닌가? 시리자를 깔려고 너무 오버하고 있다.

    따라서 흥분을 가라앉히고 시리자의 집권이 가능했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는 것, 그리고 과연 긴축 반대와 EU 반대 외, 현재 경제적 조건에서 시리자의 사회 경제 정책이 진정으로 작동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예측할 수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정재원의 말대로 시리자의 사회 경제 정책은 진정으로 작동할 수 없다. 왜냐면 유럽연합, 유럽중앙은행, IMF가 아직 산소호흡기를 붙잡고 있고, 여차하면 호흡기를 빼려고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시리자가 하려는 건 거대한 강물을 역류시키려는 것이다. 긴축이 아니라 대규모 확대재정을 하려는 것이고 EU가 원래 취지대로 함께 잘 살 길을 도모하는 것이다. 독일의 메르켈이 칼자루를 쥐고 있고, 그 나라 여론이 메르켈을 지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건 계란으로 바위치기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리자는 자기들이 실패하면 유럽은 1930년대 대공황 때처럼 나치가 권력을 잡는 상황이 올 거라면서 유럽인들에게 합리적인 판단을 하도록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일부 관념 좌파들은 치프라스와 같은 개인 행위자에 초점을 맞추거나, 시리자가 집권 이후 우경화되었다거나, EU 특히 독일로부터의 압력과 방해가 실패의 결정적인 요인인 것처럼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고 있다. 긴축 반대와 EU 반대의 구호로 당선되었지만, 현재 그리스 경제 상황에서 이들의 여타 사회 경제 정책은 급진적 원칙만 나열되어 있을 뿐, 대안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진지한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

    시리자가 선거에 승리한 이후에 보여준 유럽언론의 보도를 쭉 훑어보라. 그들이 당선된 것 자체가 유럽의 은행, 독일편인 정부들에게는 재앙이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게 되어 있다. 그리스를 구제불능의 상태로 몰아넣은 자들에게 그리스 국민들은 NO라고 외쳤다. 그들의 투표는 유럽의 지배자들에게 던진 짱돌이다. 세계의 내놓으라는 경제학자들이 지난 5년간 그리스를 구제하겠다고 해놓고 벌인 뻘 짓에 대해서 “그만 꺼져”라고 외친 것이다. 지금 대안은 아주 분명하다. 케인즈주의 경제정책으로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다. 이미 역사가 입증한 대로 하면 되는 것을 왜 대안이 아니라고 하나?

    말 그대로 국가가 ‘파산’한 상황에서 최저임금 인상과 저소득층 전기 요금 면제, 공공 부문 인력 구조 조정 취소 등의 수많은 급진 좌파적 실험은 시작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이들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국가 예산을 책임지고 관리해야 하는 국가 권력 장악 이후 이 모든 정책의 성공 여부는 결국 돈이다. 경제가 파탄이 난 상황에서 이러한 정책이 가능하려면 방법은 거의 하나이다. 부유층, 올리가르히들, 선박 마피아들부터 세금을 더 걷거나 이들의 탈세를 철저히 막는 일 외에는 없다. 그러나 이는 결코 단기간으로 성과를 낼 수 없는 혁명에 가까운 기득권 세력과의 격렬하고도 끈기를 요하는 지리한 싸움이 될 것이다.

    말 한번 잘했다. 백번 동의한다. 그러나 유럽연합이 도와주지 않으면 위의 정책들은 할 수가 없다. 그리스 대기업들이 본사 주소를 네덜란드로 옮긴 걸 정재원은 아는가? 그걸 눈감아 주면서 세금 더 걷으라고 다그치고 있는 사람이 바로 네덜란드 노동당 소속의 재무장관이다. 그가 유럽재무장관모임(유로그룹)의 대표다. 유럽연합에서는 누구나 타국 은행에 돈을 맡길 수 있다. 유럽은행들과 그 정부들은 법인세와 재산세를 낮춰서 그 돈을 유치한다. 그런 거 하는 나라가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아일랜드 등이다. 돈이 다 새 나가는 데 어디서 자금을 유치한다는 말인가? 유럽연합이 진정한 공동의 번영을 추구하는 연합체라면 그런 거 못하게 막아야 한다. 밑 빠진 독에 물붓기라고 말하면서 독에 구멍 뚫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

    결국 유럽 중심부의 신자유주의 악마들의 추악한 ‘자본’이 싫다고 해도 좌파적 개혁을 추진한다고 해도 결국 또 다른 추악한 ‘자본’이 필요할 것이다. 이 점을 러시아는 잘 파악하고 있었고, 지금은 러시아 자신이 심각한 경제 위기에 빠져 있어 아무런 지원도 해 줄 수 없는 상황이지만, 불과 몇 개월 전 만해도 시리자에게 추파를 던져 왔다.

    추악하지 않은 자본은 없다. 그리고 지금 그 추악한 돈을 대고 그리스를 살릴 수 있는 건 유럽연합밖에 없다. 사우디아라비아라면 모를까? 사우디아라비아라면 그리스 땅을 다 사고도 남을 돈이 있겠지. 하지만 사우디가 그런 행동을 할 이유는 없다. 그리스 정부가 러시아 카드를 쓰는 건 맞다. 그것 때문에 유럽연합, 특히 독일은 굉장히 불쾌해하고 있다. 러시아와 독일은 1, 2차 세계대전에서 박 터지게 싸웠고, 유럽의 패권을 놓고 싸우고 있는데, 그리스가 러시아와 친해지고 지중해로 진출하게 되면 독일로서는 아주 괴로워진다. 러시아에 손짓하는 것은 일종의 벼랑 끝 전술이다. 마치 남편이 아내의 친정을 도와주지 않을 때 아내가 옛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하는 것과 같은 거다. 남편은 당연히 열 받는다. 하지만 아내가 옛 남자친구와 만난다면 그리고 둘이 사귄다면 남편은 어쩔 수 없이 아내의 친정을 도와줄 수밖에 없다. 미국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그리스가 유럽을 버리고 러시아와 연합할 수는 없다. 미국이 보고 있겠나? 치프라스 총리는 유럽연합이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풀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러시아에 농산물 수출을 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수출로 돈을 벌어야 하니까. 명목상 그렇다는 얘기다. 그러나 다른 유럽 나라들에게는 그리스의 지정학적인 가치를 잊지 말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호응하여 우리의 급진 좌파라는 시리자의 이데올로그들은 엉뚱하게도 이유보다 더 추악한 러시아라는 우산을 쓰려고 애쓰고 있다. 코치아스 외무부 장관은 러시아의 극우 민족주의자 두긴과 친분을 갖고 교류하고 있으며, 키메노스 국방장관은 모스크바를 방문 러시아 권위주의 정부 여당 의원들과 자주 회동해 왔다.

    *그리스의 산소호흡기를 떼어낼 뻔 했던 두 달 전 2월 11의 한 뉴스를 보자. 그리스 국방장관인 파노스 카메노스는 말하기를 만약 그리스가 유로권과 새로운 부채 협상에 이르는 데 실패하면 다른 곳에서 도움을 찾을 수 있다고 하였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협상이다. 그러나 협상이 없다면 (우리는 있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독일이 완고하게 버티고 유럽을 타격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대안으로 갈 수밖에 없다. 대안은 다른 곳으로부터 자금을 받는 것이다”고 그는 그리스 화요일 아침 방송된 텔레비전 방송에서 말하였다. “그것은 미국이 될 수 있고 러시아가 될 수 있으며 중국이나 다른 나라들이 될 수 있다”고 그는 말하였다.

    정재원은 부인하고 싶겠지만, 그리스의 키메노스 국방장관의 도박은 성공했다. 독일은 산소호흡기를 빼지 못했다.

    압권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파시스트 정권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넘어 크림 합병이라는 러시아의 타 주권 국가 침탈 행위를 지지하는 치프라스 총리의 언행이었다.

    *이건 좀 오버라고 생각한다. 치프라스가 ‘우크라이나 정부는 파시스트 정권이다, 크림합병 지지한다’고 말했나? 그렇게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내가 아는 한 그는 우크라이나의 친서방정부가 들어선 후 사태에서 서방이 러시아를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데 반대하며 서방의 제국주의적인 개입을 지적한 것을 확대해석한 것이다. 아래에 인터내셔날 비지니스 타임즈에 인용된 발언을 옮긴다.(관련 글 링크)

    “Now, [the] EU and Washington encourage and aim at the destabilisation of the country and at the same time they support directly and indirectly the neo-Nazi and extremist groups, which are today negotiating powerful positions in the so-called “national unity government,” said the statement.

    이제 유럽연합과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불안정을 부추길 뿐 아니라 불안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동시에 신 나치 극단주의 그룹을 직접 간접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들은 소위 범국민 연합정부에서 강력한 입지를 얻기 위해서 (정부 구성에) 협상 중이다.

    “The latest developments in Ukraine open up the way for pillaging from imperialist forces and greedy financial interest, while the geopolitical and geo-strategic contradictions pose huge dangers for peace in the heart of Europe.”

    우크라이나의 최근의 사태전개는 제국주의 세력의 수탈과 탐욕스런 은행들의 이해가 실현되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 그것은 지정학적, 지역전략적인 이해관계의 모순이 유럽의 핵심 요충지의 평화에 아주 큰 위험을 주는 가운데 발생하고 있다.

    진보 좌파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우익 독재의 전형인 푸틴과 그의 정책을 지지하는 시리자의 행보는 경제적 지원을 받기 위한 단순한 외교적 행보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전형적인 비중심부 좌파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러시아는 단일국가로서는 그리스의 가장 큰 무역 상대였다. 전체무역의 14%가 대러시아 교역이었고, 독일이 10%였다. 유럽의 러시아 제재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건 그리스다. 이런 점에 눈감으며 치프라스 총리를 공산당, 민족주의 좌파로 색칠하려는 건 무리다. 많은 이들이 그리스가 러시아 카드를 쓰는 걸 협상의 전술로 보지 유럽을 벗어나려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 아무리 그리스가 지금 어렵다고 해도 그리스는 유럽문명의 발상지이다. 러시아가 유럽인가? 아니다. 러시아는 유라시아 나라다. 그리스 국민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그리스는 러시아로 말을 바꿔 타지 않는다. 물론 유럽연합이 그리스를 버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유럽 좌파의 인기 부침 현상, 냉정히 분석해야

    결론적으로 유럽 주변부 좌파의 인기의 부침 현상은 냉정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특히 급진 좌파라는 이들이 러시아의 국제 정치경제 정책을 지지하는 것, 극우파와의 연정을 쉽게 하는 것 등에 대해 신랄한 비판이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어떻게 급진좌파 시리자가 내부 이데올로그들은 물론 당원들과 당내 정파들, 그리고 시리자를 지지한 유권자들의 반발 없이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는지 그 사회적 배경에 대해서 진지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

    해석은 자유다. 하지만 위에서 내가 지적했듯이 남에게 친러, 극우파와 연정 같은 억지 해석을 하고 이에 대해서 세계의 좌파들이 신랄하게 비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 많이 나간 주장이다. 만약 정재원 말이 사실이라면 벌써 아테네 시내에는 치프라스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대가 가득 찼을 것이다. 그런데 왜 안 그럴까? 나는 이번 여름 정재원이 그리스를 방문하길 바란다. 가서 시민들을 만나 왜 좌파, 그것도 급진좌파 그리스 정부가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하고, 서방 언론의 뭇매를 맞는지 그리고 유럽의 좌파정당들, 그리고 시리자가 속해 있는 유럽좌파연합(사민주의 왼쪽의 급진좌파정당들의 연합)이 왜 시리자를 지지하고 있는지 직접 해답을 찾기 바란다.

    시리자의 경험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이제 집권한 지 몇 개월도 안 되었는데 무엇을 교훈으로 삼을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몇 가지 지점에서 이미 많은 것을 논할 수 있으며, 많은 것이 예상 가능하기에 길게 써 보았다. 즉 시리자의 실험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향후 일어날 일들에 대해 원론에만 입각한 낡은 관념의 잣대로 평가, 극단적으로 환호하거나 폄하하는 추태가 반복되어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며, 이러한 잘못된 평가는 마찬가지로 한국의 진보 좌파 세력의 발전에도 해가 되기 때문이다. 혹여 실험이 실패했을 때, 서구 중심부 국가들과 초국적 자본과 같은 외적 요인, 혹은 집권 이후 우경화되었다면서 철저하지 못한 반자본주의 정책과 같은 원인에 집착하는 등 비현실적인 관념론적 사고에 근거한 비판은 아무 말도 안 하는 것과 같다.

    정재원은 자신이 균형 잡힌 비판을 하고 있다고 보는지 모르지만 내 눈에는 시리자의 의도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좌파가 왜 저러나 하고 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쩌냐! 치프라스 총리와 그리스의 시리자 정당은 지금 은행잔고가 바닥난 통장을 들고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절 살려주지 않으면 포수가 빵 하고 쏜데요’라고 애원하고 있다. 이때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거라’라고 말해 줄 맘 좋은 작은 소녀는 어디에도 없다. 그들은 그리스의 시리자가 성공하면 제2, 제3의 시리자가 나올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유일하게 그리스를 구원할 수 있는 건, 그리스의 실패가 결국 유로화 체제에 치명적인 상처를 줄 것이기 때문에 차마 버리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뿐이다. 마치 94년에 클린턴 정부가 북한을 치려고 했을 때, 시뮬레이션 결과 전쟁이 나면 미군과 미국 시민 수만 명이 죽고 한국의 군인과 민간인 역시 수십만 명이 희생당한다는 걸 알고 협상에 나섰던 것처럼 말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좌파 정당의 일당 국가 체제를 수립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면, 우리가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할 부분은 집권 자체가 아니라, 정당 정치 이면의 특권 관료-자본-사회 기득권 세력의 헤게모니 블록에 대한 제어 여부에 있다. 시리자가 정치정당 권력교체 여부와는 상관없이 사회를 지배하는 올리가르히들의 척결을 내세운 점은 한국의 진보 좌파들이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이다. 또한 작은 차이들을 극대화해서 서로를 잘게 나누고 적대시하는 한국 특유의 좌파 문화를 배격하고, 그리스에서처럼 좌파들 간의 유연한 연대 현상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리자가 좌파정당의 일당국가 체제를 수립하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지금이 1917년 러시아 상황도 아닌데,,, 하지만 그 뒷부분은 동의한다. 그리스의 지배계급은 너무 막 나갔다. 염치없이 자기 주머니 챙기기에 몰두했다. 한국의 높은 양반들도 한번 자기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기 바란다.

    최근 국민모임의 등장 이후 크게 약화된 한국의 진보 좌파 운동은 더욱 더 잘게 나뉘어져 분란이 발생하고 있다. 진정으로 비판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무관심하고, 심지어 무지한 반면, 진정으로 이해하고 배워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과도할 정도로 비판의 날을 세워 어떤 현상에 대해 엉뚱하게 정리하고 제대로 된 교훈을 얻지 못 하는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이제는 조금도 전진하기 어렵다고 단언한다. 자원을 바탕으로 한 베네수엘라에서보다 유럽 주변부 그리스의 시리자의 성공과 실패의 모습은 우리네 진보 좌파 운동의 발전을 고려할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단지 기존의 낡은 잣대로 평가하는 악습을 버려야 진정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이 글을 쓴 정재원은 한 번도 만나 본 적도 없는데 이런 날선 비판을 한 것에 대해서는 미안한 마음이 있다. 하지만 지식인이 다른 나라의 현재 진행형의 복잡한 정세를 단정내릴 때는 충분한 근거와 합리적 해석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 나는 페이스북에 네덜란드 사회당의 그리스 상황 설명 글을 인용했다. 그들은 시리자와 같은 그룹에 속한 당으로서 서로 만나 토론한 결과를 가지고 시리자를 옹호하는 글을 썼다. 네덜란드 국익이나 자기 당의 당리당략에는 어긋난다. 채권국 네덜란드에서 신용불량국가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건 표 깎는 짓이니 말이다. 내가 시리자를 위해서, 그리스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고 내가 발 딛고 있는 유럽이 올바른 길을 가도록 하기 위해서 취할 행동은 주류 언론의 비방보도에 현혹되지 않고, 진실을 믿으며 그들과 굳게 어깨 걸고 함께 싸워주는 것이다. 험난한 대국을 두고 있는 기사에게 훈수를 두느니 그에게 물 한잔을 주겠다.

    필자소개
    네덜란드 거주 한인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