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치기 농사꾼들의
    서툰 농사 이야기
    [다른 삶과 다른 생각] 농사 채비
        2015년 04월 21일 09:4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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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 오고, 근질근질하던 몸도 좀 펴고, 겨우내 눈 덮인 논밭을 한 번씩 둘러보고, 이제 슬슬 농사지을 채비를 해야 한다. ‘산림경제’같은 농사책도 한번 기웃거리고, 작년이 써둔 농사일기도 한번 뒤적여보고, 그래도 뭐니 뭐니 해도 동네 어르신들이 뭘 하는가 보고 따라 하는 게 우리 같은 얼치기 농꾼들에겐 장땡이지요.

    지난 가을에 잘 숨겨둔 양파와 마늘이 겨우내 언 땅을 뚫고 제일 먼저 뛰쳐나온다. 양파는 모종을 심고, 마늘은 통마늘을 쪽을 내어 한 알씩 심는데, 마늘 한 알이 나중에 6쪽이 되어 나오는데, 벼농사가 쌀 한 톨에서 추수할 때 대략 1000알 이상 나오는 것에 비교하면, 겨우 6배 장사에 불과하다고 심심풀이로 투덜댄다. 물론, 마늘은 마늘쪽도 먹기에, 우리 같은 얼치기들에겐 잘 자라주기만 하면 무조건 고마울 따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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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기농을 하는 농사꾼에겐 퇴비를 만들거나 구하는 것도 하나의 고된 일이다. 농협에서 파는 화학비료나 제초제, 살충제를 휙휙 뿌리면, 손쉽기도 하고 효과도 좋지만, 땅을 살리고 우리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기에 화학제품을 사용하는 것은 꺼림칙하다. 그래서 가축퇴비나 유기퇴비를 사용하고, 집에서 각자의 비법으로 만든 다양한 퇴비와 제초제를 사용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왕겨훈탄이다. 귀농해서 유기농으로 농사짓는 집에선 이 맘 때쯤이면 마당에서 훈탄을 만드는 연기가 쏠쏠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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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탄은 왕겨를 열분해하여 얻어지는데 80% 이상이 탄소질이며 무수한 구멍으로 이루어져있다. 무수한 구멍군은 거대한 표면적을 이루는데, 훈탄 1g당 400평방미터나 된다. 훈탄의 거대한 표면적이 토양미생물의 서식처가 되어 토양개량에 굉장히 효과적이다. 땅을 살리고 먹거리를 살리는 것이 우리 몸을 살리는 것이다. 요즘은 집을 지을 때 훈탄을 단열재로도 사용한다. 스티로폼보다 훨씬 환경적이고 또 효과도 좋다나.

    우리 마을에서 봄이 되면 제일 먼저 심는 작물은 감자이다. 씨감자의 눈이 나온 곳을 칼로 쪽을 낸다. 동네 어르신들은 씨감자 하나로 열 쪽 이상을 내지만, 얼치기들은 대충 대여섯 쪽을 내거나 귀찮으면 그냥 뭉텅 4등분하기도 한다. 쪽을 낸 씨감자에 재를 묻혀 소독한 후 밭에 심으면 된다. 감자를 흔히 하지감자라고 부르는데, 하지 쯤 그러니 6월 중순경에 땅에서 캐면 감자농사는 끝. 벌써 고슬고슬한 햇감자가 먹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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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니 뭐니 해도, 농사의 최고봉은 나락농사다.

    우리가 늘상 먹기도 하고, 또 없어서는 안 되는 목숨 같은 곡식이기에 그렇다. 요즘은 기계화가 잘되었다고 해도, 논농사는 손이 많이 간다. 혼자서 해도 되지만, 우리 조상님들이 그랬듯이 귀농한 얼치기 농사꾼들도 볍씨 파종과 못자리 준비, 손이 많이 가는 모내기, 타작은 품앗이로 서로서로 도와가며 한다.

    논농사의 시작은 볍씨를 준비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우선 볍씨를 소금물에 띄워 어리버리한 볍씨는 버리고 똑똑한 놈들만 골라낸다. 그리고 열탕 소독하고, 침종시킨다. 침종이 뭐냐고? 볍씨가 빨리 발아되고 초기에 균일하게 생육될 수 있도록 맑은 물에 담가서 필요한 수분을 흡수하게 하는 과정인데, 며칠 동안 찬물에 담궜다가 건졌다가를 반복해서 한다. 그러다 볍씨를 건져서 따뜻한 곳에서 눈을 틔우고, 이 놈들을 모판에다 파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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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판에 파종한 볍씨는 논에 만든 물못자리에서 키우거나, 상자쌓기를 거친 후 비닐하우스에서 키우기도 한다. 요즘은 물못자리 보다 비닐하우스에서 키우는 방식을 선호한다. 그게 좀 편하기도 하고, 실패할 확률을 줄이기 때문이다. 근데, 올해 울 동네 귀농한 농사꾼 몇몇은 물못자리를 한다. 음…멋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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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못자리한 벼는 한 달 정도 잘 관리하면, 한 뼘 정도 크게 되고, 이 놈들을 논에다 심게 된다. 그게 모내기다. 모를 못자리에서 본논으로 내온다는 의미이고, 유식하게 말하면 이앙(移秧)이다. 모내기가 끝나면, 유기농을 하는 농사꾼은 부지런히 피와 잡초를 뽑아야 하는데, 너–무 힘들다. 그래서 나온 묘법이 오리를 논에 집어넣는 오리농법과 우렁이를 넣는 우렁이농업이다. 오리농법은 오리를 아침이 집어넣고 저녁에 다시 빼고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 요즘은 잘 안하는 추세이고, 우렁이농업이 대세를 차지한다.

    우렁이농법은 물 위로 나온 풀(벼도 포함)은 먹지 않고 물 아래 있는 풀만 먹는 우렁이의 성질을 이용하는 농법인데, 물 관리를 잘해야 한다. 물이 마르면 우렁이가 풀을 먹지 못해, 제초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근데 초보 농꾼에게 이 물 관리는 쉬운 게 아니라서, 피 뽑는 생고생을 한두 번은 해야 한다.

    이상하게 올해는 봄장마가 들었나, 비가 자주 온다.

    봄비가 촉촉이 내리면, 뒷마당에 세워둔 표고목에 한 번 가보게 된다. 왜냐고? 표고버섯이 올라왔나 보러가지요. 촉촉한 봄비에 참나무에 심어놓은 표고종균에서 표고버섯이 뾰족이 올라오면, 그 날 저녁 밥상엔 표고부침개, 표고찌게가 올라오고, 생표고를 기름간장에 찍어 소주 안주로 해먹는데, 그 맛이 기가 막히지요.

    아무리, 얼치기 농사꾼이지만, 그래도 땀을 흘린 만큼, 땅과 자연은 보답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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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그리고 올해 우리 마을 귀농한 얼치기 농사꾼들이 일을 저질렀다. 그 동안 자기가 농사지은 것은 자기가 팔아야 했는데, 농산물 파는 게 그리 녹녹치는 않다. 그래서 공동 브랜드를 만들어 공동판매하기로 하고, 또 농산물 펀드를 만들었다. 그게 뭐냐고요? 일명 ‘지리산에 살래’펀드, 33만원짜리 펀드를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구매를 하면, 우리 농사꾼들이 그 분들에게 농산물을 공급해 주는 방식이다. 150명의 펀드 구매자를 모집했는데, 하자마자 펀드가 완판 되었다. 이제 열심히 농사를 지어, 그 분들에게 농산물을 드리면 된다. 궁금하신 분은 ‘지리산에 살래’(http://jirisaneum.net/salae_fund) 한번 놀러와 보세요.

    필자소개
    지리산에서 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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