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를 연민하지 마라 !
    [책소개] 『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해릴린 루소/ 책세상)
        2015년 04월 18일 09:0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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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가엾다’는 연민이나 ‘대단하다’는 찬사인 경우가 많다. 연민과 찬사는 장애인을 ‘결함 있는’ 특별한 존재로 타자화한다는 점에서는 근본적으로 같은 태도다.

    심리 치료사이자 여성 운동가, 화가이며 장애인 인권 운동가인 해릴린 루소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다가와 ‘정말 대단하세요’라고 말할 때마다, 설사 그의 의도가 선한 것이라 해도, 불쌍한 사람을 달래는 말로 들린다고 말한다.

    “무시당하는 것보다는 낫다, ‘대단하다’라는 달콤한 찬사. 그러나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생긴 그대로’ 봐주기를! 그 판단은 최소한 진짜일 테니까.” 이 책은 이제 노년에 접어든 한 뇌성마비 장애인 여성이 ‘타자’도 ‘괴물’도 아닌 ‘생긴 그대로의 나’로 세상의 편견에 맞서온 삶의 기록이다.

    그것은 거울 보는 것을 두려워하는 자기 내면의 편견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했던 오랜 분투의 과정이자, 가족과 친구들과의 따뜻한 연대 속에 ‘공동체’로 나아간 성장의 과정이며, 다만 남다른 점을 하나 가진 평범한 ‘인간’의 60여 년 생을 담은 투명한 자서전이다.

    그 고백은 너무나 솔직하여 때로 우리의 가슴을 울리지만,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은 매력적인 그녀의 담담하면서도 재기 넘치는 글쓰기는 우아하고 유쾌하다.

    저자 해릴린 루소는 뇌성마비를 가지고 태어나, 장애인으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뇌성마비는 겉으로 증상이 발현되는 장애다. 걸음걸이가 비틀리고 표정이 일그러지고 발음도 불분명하게 나온다.

    날마다 ‘정말 대단하세요’, ‘용감하세요’ 같은 칭찬이나 ‘불쌍하다, 쯧쯧’, ‘왜 그렇게 이상하게 걸어요?’ 같은 무례한 말을 들으며 살아온 해릴린은 장애인을 대하는 사람들의 그러한 태도가 어떤 상처를 남기는지, 그 상처들을 자신은 어떻게 극복했는지 세세히 털어놓는다.

    해릴린은 소위 ‘정상인’이라는 사람들이 ‘정말 대단하세요’ 식의 영웅주의, 고결한 사람 만들기, 역경을 극복한 승자로 모시기 같은 왜곡된 렌즈를 통해 자기 위안을 얻음과 동시에 은연중에 장애인들을 자기가 속한 정상인 집단과 따로 구분 짓는다고 말한다. 친절하고 달콤한 말로 위장한 또 다른 형태의 편견인 것이다.

    《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는 저자가 이런 거짓과 편견을 뛰어넘어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했는지를 솔직하게 독자들에게 전하는 책이다.

    해릴린은 장애를 가진 몸을 대하는 자기 자신과 세상의 편견을 가감 없이 고찰하는 것은 물론 가족들과의 관계,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연인과 나눈 친밀한 교감, 심리 치료사이자 예술가라는 활동 영역, 장애인 인권 운동 및 여성 운동에 참여해 겪었던 일 등을 상세하게 이야기한다.

    자신의 장애를 부정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장애인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장애를 자부심과 긍정적 자아, 세상을 향한 반항의 원천으로 끌어안는 성장 과정을 담백하고 유머러스한 문체로 그려낸 그녀의 이야기는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범주로 사회적 약자들을 타자화하는 우리 사회의 편견을 성찰하게 할 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삶에 관심이 있거나 ‘잘 쓴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도 글 자체의 힘으로 가만히 스며들어,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의 놀라움을 발견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신체의 장애와 상관없이 결핍감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영혼을 갉아먹는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줄 것이다.

    나를 대단하다고

    내 이름은 해릴린 ―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

    해릴린 루소는 의사 없이 출산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간호사들이 억지로 분만을 지연시키는 과정에서 산소 공급이 중단된 탓에 뇌성마비 장애를 안고 태어나게 되었다.

    아이의 건강을 염려해 온 힘을 다해서 간호사들을 할퀴고 물어뜯었던 어머니는 아이를 “한 번 꼭 안아준 뒤 세상과 당당히 마주하라고 밖으로” 내보내는 강인한 조력자였고, 이제 예순일곱 살이 된 해릴린은 “그때나 지금이나 누구를 기다려주는 성격이 아니라서 빨리 태어나고 싶었나 보다”라고 이야기한다. 자신의 장애의 기원을 이렇게 유머를 섞어 돌아볼 수 있게 되기까지 그녀는 어떤 시간들을 지나왔을까.

    “나는 새로운 영역에 들어가기 위해, 태어나고 또다시 태어나기 위해 셀 수 없이 많은 투쟁에 몸을 던졌다. 실패한 적도 많았다. 아직 네가 세상에 나올 때가 아니라며 제지하는 타인들의 차가운 손길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내 주위에 자궁 같은 보호막을 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오래전 그날 밖으로 나오겠다고 아우성치던 나의 고집스러운 이미지와 그런 나를 위해 간호사들을 할퀴고 물어뜯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어머니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고, 나는 매번 내 조그만 주먹에 온 힘을 실어 그 보호막을 힘껏 부숴버릴 수 있었다.”

    해릴린은 뇌성마미 장애를 안고 살아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장애인이 아닌 척하는 ‘패싱passing’ 단계를 거쳐 장애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어쩌다 한없이 관대해지는 날에는) 장애가 정체성과 유대감의 긍정적인 원천이 됐다고 여기게 되기까지 자신이 거쳐온 시간들을 솔직하게 펼쳐 보인다.

    ‘장애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행동하는 사람’이 되다

    뇌성마비는 몸의 움직임과 신체조절력에 영향을 끼치는 장애다. 해릴린은 보조기구를 사용하지 않고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정도이긴 하지만, 걸음걸이가 휘청거리고, 커피에 우유를 따르면 반쯤은 흘리기 일쑤고, 발음이 부자연스러우며, 얼굴 근육이 제멋대로 일그러지곤 한다.

    지금은 “누군가 내게 뇌수술 집도를 맡길 일은 없을 거란 얘기다”라고 농을 하는 그녀도 처음에는 장애 따윈 없다고 스스로를 부정했다. 따가운 시선과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정상인’인 척하면 아무도 눈치 못 챌 거라는 환상을 붙들고 있었던 건 그녀 스스로 뇌성마비를 더없이 추한 장애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콤플렉스로 똘똘 뭉친 그녀에게 뇌성마비 장애인은 학교도 직장도 불가능하고, 사랑받지도 결혼하지도 아이를 낳지도 못할 것이 분명한 존재였기에 도저히 동일시할 수가 없었다.

    해릴린으로 하여금 자기혐오와 부정의 단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 첫 번째 조력자는 다른 장애인 친구들이었다. 20대 후반이 되어 그동안 회피해왔던 장애인들과의 교류를 (직업적 필요에서) 시도했는데, 때는 장애인 인권 운동이 도약하던 1970년대 후반, 장애인 인권 단체 모임에 참여하면서 해릴린은 자신의 장애 정체성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장애에 대해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는 친구들을 따라 그녀도 자신의 장애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기 시작한 것이다. 정상인인 척하지 않아도 되니 “겁이 나면서도 큰 짐을 덜어낸 기분”이었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 해릴린이 장애 정체성을 더 깊이 고민하도록, 아니 그것과 정면 대결하게 해준 사건이 일어났다. 심리 치료사가 되기로 마음먹고 교육학, 사회복지학 석사학위를 받은 후 심리치료연구소에 등록해 공부하고 있었는데, 연구소로부터 뇌성마비 환자는 심리 치료사로서 부적격하니 과정을 그만두라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상담 환자들은 ‘정상적인’ 치료사를 원활 거라는 논리였다.

    이 일을 계기로 해릴린은 거부, 불편한 시선, 배제와 배척 등 자신이 그동안 겪어온 많은 문제가 자신의 장애 때문이 아니라 장애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 때문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동시에 그녀 자신도 장애에 대해 부정적인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 자신의 편견을 깨달은 것은 맹인의 눈이 번쩍 뜨이는 것과도 같은 경험이었다. 그날부로 갑자기 내 장애가 자랑스러워진 것은 아니지만, 나는 장애를 인정하기 꺼렸던 주된 이유가 장애 자체가 아니라 장애에 대한 내 태도에 있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이거였다. 내 태도를 어떻게 고칠 것인가?”

    연구소를 떠난 해릴린은 장애인 심리 치료사 모임을 만들고, 장애인 차별을 논의한 결과를 저널에 발표하고, 자신을 내쫓은 연구소를 고발했다. 재판에서는 승소하지 못했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그녀는 차별에 순응하는 수동적 인간으로 안주하는 대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되었다. 해릴린은 세상 밖으로 나왔고, 친구들과 공동체가 그녀의 기댈 언덕이 되어주었다.

    “비틀린 오른손이 곧 내가 되었다”

    장애인이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이고부터 해릴린은 장애인 인권 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장애 여성 및 소녀들을 위한 네트워킹 프로그램을 만들고 기고를 하고 강연을 하는 동안에도 그녀는 혼란스러운 감정에 시달렸다고 한다.

    장애인을 결함 있는 비정상적인 존재로 생각했던 시선을 완전히 떨치기 힘들어 마음 한구석에선 아직도 자신을 비장애인이라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뇌성마비 장애인과 마주치면 자신이 ‘정상’이 아님을 일깨워주는 거울 같아서 여전히 마음이 불편했다.

    그녀는 어떻게 이런 갈등을 넘어 뇌성마비 장애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무엇보다 ‘사랑’이 큰 힘이 되었다. 20대 후반까지 키스하는 법도 몰랐던 해릴린이지만 막상 연애를 해보니 생각만큼 불가능하지 않았다.

    “몇몇은 내게 이성적으로 호감을 보이고 성적인 흥분도 느꼈다는 것이 나로서는 고무적이었다. 장애를 가진 내 외모를 매력적이고 섹시하다고 생각하는 남자와 연애하는 것 자체가 내게는 대단한 치유 효과가 있었다.”

    해릴린은 40대 초반에 똑똑하고 매력 넘치는 남자 진 브라운을 만나 25년을 함께하고 있다.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 첫 데이트부터 둘 사이에 오간 교감과 첫날밤 같은 내밀한 영역까지 그녀는 자신의 성과 사랑의 문제를 투명하게 내보인다. 불수의운동이 심한 오른손이 섹스 전 애무할 때 아주 쓸 만하다는 이야기도 슬쩍 들려주면서. 해릴린과 진은 장애와 관련한, 아니 그 어떤 문제가 생겨도 그것을 부정하거나 회피하기보다 기꺼이 극복해나가려 한다는 점에서 행복한 커플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좋아해준 연인과 친구들뿐만 아니라 심리 치료와 그림 그리기, 글쓰기 등도 긍정적인 신체상을 갖는 데 도움을 주었다. 예술 활동에서도 현실을 직시하고 돌파하려는 해릴린의 낙천성이 잘 드러난다.

    자꾸만 오그라드는 탓에 남에게 보이기 신경 쓰였던 오른손을 집중적으로 그리는 과정은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에 변화를 일으켰다. “괴상하게 비틀리고 오그라든 그 손은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부인할 수 없는 나의 손이라는 정체성이 생겼다. 자화상을 그린 듯, 그 손이 곧 내가 되었다.” 또 입 주위 근육이 당겨져 무서워 보이는 얼굴을 찍은 사진을 잘라내서는 다른 표정의 사진 조각들과 함께 콜라주로 만들어보았다. 그랬더니 무서운 이미지는 추상적인 패턴의 일부가 되어, 외면하기보다 들여다보고 싶은 작품이 되었다. “거울에 비친 내 ‘무서운’ 얼굴을 보면 바로 그 콜라주가 떠올랐고, 덕분에 그렇게 보기 싫었던 내 입의 움직임을 전과는 다른 긍정적인 눈으로 보게 되었다.”

    글쓰기도 해릴린이 뇌성마비 장애에 대한 감정을 발산하는 또 다른 수단이다. 그녀는 자기 몸의 가장 싫은 부분들을 소재로 글을 쓰면서 그 부분들을 자신의 일부로 차차 인정하게 되었다. 또 ‘어딜 가나 사람들의 눈총을 받는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와 같이 장애 때문에 겪는 일들을 글의 주제로 삼는다. 장애와 관련해 더는 스스로에게 숨기는 것이 없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뇌성마비를 안고 살아간다는 게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좀 더 균형 잡힌 시각으로 분석해보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모든 용기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여기 짧게 요약한 이야기가 해릴린 루소의 삶을 다 말해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녀의 솔직함과 용기와 위트에 감동받지 않기란 힘든 일이지만, 이렇게 매력적인 사람으로 성장하기까지 그녀가 겪었을 고통과 상처를 짐작하기란 쉽지 않다.

    결국 그녀는 장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가진 남다른 모습을 열린 자세로 받아들이고, 모든 종류의 편견에 맞서 사회 정의를 위해 싸우며, 삶의 문제들을 창의적으로 해결하려고 애쓰는 성숙한 인간이 되었다.

    아직도 자신의 장애를 온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했다고 고백하지만, “그래도 작년하고만 비교해봐도 훨씬 나아졌고 5년 전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고 말하는 그녀이기에, 몇 년 후엔 그녀의 상상대로 벨리댄스나 비행기 조종을 시도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생긴 그대로의 나로, 감추거나 아닌 척하지 않고, 세상 밖으로 나가 우뚝 서기 위한 방법을 계속 찾아나가야 한다는 그녀의 조언은 장애 여부를 떠나 우리 모두에게 절박하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다.

    “숨거나 아닌 척하는 것을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는 것, 장애를 인정하고도 얼마든지 괜찮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한 번에 ‘괜찮은 상태’로 가는 묘약은 없다. 그런 게 있었다면 당장 권했을 것이다(먼저 나도 한 알 먹고). 그러나 거기에 이르기까지는 하나의 과정이, 여러분 각자가 걸어가야 하는 여정이 있다. 어쩌면 내 여정이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한 일들이 이해가 잘 안 되고, 그래서 내 도움 없이 여러분 각자가 정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해도, 어쨌든 여러분이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 자신을 믿고 자기에게 맞는 길을 찾아나가야 한다. 그리고 힘이 들 땐 그 길을 먼저 걸어간 인생 선배들을 찾아가 도움을 청해야 한다. 제일 중요한 건, 그렇게 해나가다 보면 엄청난 자기 발견과 해방의 순간을 맛보리라는 것을 먼저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철저히 부정하도록 세뇌당한 자신의 장애 또는 자신의 일부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놀라운 경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제 여러분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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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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