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구 봉산에
은밀하게 핀 고압송전탑
[에정칼럼] 전기요금 감면한다는 한전의 통지서
    2015년 04월 17일 10:4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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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6년째 사는 은평구는 서울의 북서부에 위치해 있다. 시가지 동편 남북으로는 북한산이, 서편 북서로는 봉산이 자리 잡고 있고 중심부를 가로지르며 불광천이 흐른다. 그래서인지 철근과 콘크리트 가득한 빌딩 숲 서울에서 느껴지는 차가움과 답답함이 은평구는 덜하다.

주말이면 북한산을 찾는 등산객들로 동쪽 지역이 북적북적하다. 반면, 서쪽에 자리 잡은 봉산은 등산객이라 불리는 이들보다는 은평구 주민들이 즐겨 찾는 산이다. 그도 그럴 것이 봉산은 나지막해 가벼이 오를 수 있으면서도 6개의 은평구 행정동에 걸쳐 뻗어 어디서든 오르기 쉽다. 봉산에서는 북한산은 빼어난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얼마 전, 동네주민이자 지인인 한 분은 아파트 경비사무실로부터 종이 한 장을 받고 당황스러워했다. 그 종이는 그녀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345kV 고압송전선로의 700m 이내에 있어 전기요금을 감면해 준다는 한전의 안내문이었다.

봉산에 초고압송전탑이 있다니. 그 사실을 공유한 우리 모두는 적잖게 당황스러웠다. 봉산에 오를 때면 송전탑이 거슬리곤 했지만 그것은 단지 정서적 거부감이었다. 주변 풍광과 어울리지 않는 철제구조물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 ‘은밀함연대’(은평과밀양이함께하는탈핵연대의 줄임말)을 통해 동네에서 밀양 할매들의 싸움에 열심히 연대하면서도, 우리가 즐겨 찾는 동네 산의 송전탑이 초고압일거란 데까지 생각이 미치지는 못했다. 초고압 송전탑은 밀양, 청도와 같은 먼 곳의 이야기인 줄로만 여겼던 것이다.

손은숙

봉산과 고압송전탑(사진=손은숙)

1996년에 세워졌다는 봉산 345kV 송전탑. 지난 19년 동안 전자파를 내뿜고 있었지만 은평구 주민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왜 몰랐을까. 사실 밀양 이치우 어르신의 분신과 밀양 할매들의 싸움이 사회적 의제가 되기 전까지 우리 대부분은 송전탑이 좀 큰 전봇대이거니 생각하고 살지 않았을까.

송전탑에서 나오는 전자파가 우리의 건강을 위협함을 인지하게 해 준 이들 또한 밀양 할매들이다. 대형 핵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를 대도시로 보내기 위해 송전탑이 세워지고 그 송전탑이 세워진 자리에 삶터, 일터를 잃은 이들의 피와 눈물이 고여 있음을 깨닫게 된 것. 그렇게 우리가 성찰할 수 있게 성장시킨 것도 밀양 할매들이라 생각한다. 어쨌든 345니 756니 하는 숫자가 의미하는 바를, 그들의 싸움에 관심을 가지며 우리는 배웠다.

봉산 345kV 송전탑은 행정구역상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은평구 주민들은 그에 대한 정보를 제공 받을 근거가 없었다. 그랬기에 한전은 은밀(?)하게 송전탑을 세우고 운영관리를 해왔다.

‘송․변전설비 주변지역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송주법’)은 9년 간 싸워온 밀양 주민들의 싸움을 무마시키기 위해 2014년 제정되었다. 송주법이 없었다면 지인의 집으로 온 한전의 안내문도 없었을 것이고 우리는 여전히 모른 채 살아갔을 것이다.

송주법은 765kV는 1000m 이내, 345kV는 700m 이내에 있는 마을과 가구에 대해 전기요금 감면 등의 지원 규정이 있다. 그래서 한전은 그 범위 내에 있는 가정에 안내문을 보냈던 것이다. 당신 집이 초고압 송전탑의 전자파 영향권에 있다고.

그러나 정작 밀양 송전탑반대 대책위는 송주법에 반대했다. 그들이 요구한 것은 보상이 아니었다. 초고압송전선 건설이 필요한지, 타당한지 먼저 따져 묻고자 했다. 즉, 결정 과정에 대한 투명한 공개와 참여를 요구했던 것이다. 또한 대책위는 보상에 관한 법을 만들려면 피해에 대한 객관적 조사가 먼저 할 것을 요구했다.

사실 보상대상과 보상범위를 정하려면 피해에 대한 객관적 조사는 상식이 아닌가. 그러나 정부는 피해에 대한 조사를 하지 않았다. 그나마 초고압 송전탑 피해에 대한 국내 조사는 2011년 한국토지공법학회에서 수행한 연구 결과가 유일하다. 그런데 정부는 한국토지공법학회의 보고서에서 제시한 기준보다 보상대상과 보상범위를 축소했다. 그러면서 154kV 송전탑과 송전선로의 주변 지역을 보상대상에 포함하지 않았다.

지난 주말 봉산 고압송전선로가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를 눈으로 보기 위해 나는 봉산에 올랐다. 철제구조물이거니 무심히 볼 땐 몰랐는데 봉산의 송전선로는 두 개였다. 345kV 송전탑은 고양시 방면으로 산 아래 자락으로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봉산 능선 길 바로 옆으로, 진달래와 생강나무 사이로 핀 송전탑, 그것은 154kV였다. 전자파 영향은 345kV에 비해 덜 하겠지만 한국토지공법학회의 조사 결과를 보면 154kV도 영향이 없지는 않다. 그리고 154kV는 은평구 주택가와 아파트, 그리고 초중고 5개의 학교들에 훨씬 가까이 있었다. 그렇게 154kV와 345kV 두 개의 고압송전탑과 송전선로가 나란히 흐르고 있다.

한국전력 관계자는 은평시민신문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은평에서는 송전탑이 보이지도 않기 때문에 (전자파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묻고 싶다. 조사는 해보고 하는 소리냐고.

다른 한편, 송전탑이 바로 보이고 한 송전탑이 서 있기도 한 그곳은 택지 개발이 한창이었다. 무주택자를 위한 중소형의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이 들어설 LH공사의 향동 보금자리 주택사업 지구다. LH공사 홈페이지에서 찾아보니, 21,000여명이 사는 8천 가구가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그 바로 옆으로 345kV 송전탑은 굳건하게 서 있다.

초고압 송전탑이 버젓이 서 있어도 무주택 서민들은 감지덕지하란 것인가. 택지를 조성 중인 LH공사도, 송전탑을 관리․운영하는 한전도 저 거대한 철제구조물 345kV이 보이지 않는 것인가. 이설계획도 지중화 계획도 아직은 없다고 한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원. 노동당 은평 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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